나와 너의 사회과학 - 우리 삶과 세상을 읽기 위한 사회과학 방법론 강의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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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출판계의 가장 큰 이슈는 작년부터 일기 시작한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의 열풍이라고 한다. 2010년 가장 큰 화제작이었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누적 판매량 기준으로 80만 부를, 장하준 교수의 신자유주의 비판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도 40만 부를 넘어섰다고 하고 각종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인문 사회과학 서적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런 인문 사회과학 서적의 열풍은 인문학 강좌·강연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대학·출판사들이 속속 강좌·강연을 개설하고 있으며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현상(奇現象)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이런 인문사회과학서적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세계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욕과 모순이 팽배한 사회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즉 지금까지 실용학문에만 치우쳐 있던 우리 자신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자 경제적 가치에만 매몰돼 있던 현실에서 윤리나 정의 등 근본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보는 건강한 움직임이라는 해석이다(대전일보 2011-1-27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 ‘인문학 신드롬’> 기사 발췌). 그만큼 시절이 하수상하다 보니 현실 정치와 사회, 경제에 대한 관심과 비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반증일 것이다. 덕분에 나도 작년과 올해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을 종종 접할 수 있었는데, 몇 몇 책들 - 대표적으로 이택광 교수의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 로버트 미지크의 <좌파들의 반항>을 꼽을 수 있겠다. 두 책 다 현대 “신좌파”를 다루고 있다 - 에 대해서는 사회과학에 대한 기초 소양이 절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회과학에 대한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입문서들을 물색해봤지만 마땅한 책을 만날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에 제대로 된 사회과학 방법론에 대한 기초 입문서를 만나게 되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이자 우리 시대 대표 논객(論客)으로 유명한 우석훈 교수의 <나와 너의 사회과학; 우리 삶과 세상을 읽기 위한 사회과학 방법론 강의(김영사/2011년 3월)>이 바로 그 책이다.  

작가는 서문 “무엇이 공동체를 지키는가”에서 몇 년 동안 대학생, 대학원생들과 크고 작은 스터디를 하면서 기초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이야기하면서 학문의 전문화만 지나치게 외치면서 사회과학의 기본을 다루는 논의가 없었고 마땅히 쓸 만한 교과서가 없어 사회과학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안내하는 책을 내고 싶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책의 대상을 인문 사회 분야의 학부 1~2학년 또는 비전공자인 경우 대학원 1학기 정도로 사회과학에 대한 개괄적인 입문서 수준에 맞추려고 노력했으며 1990년대 이후 발전된 방법론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했다고 한다. 작가는 사회과학이 기본적으로는 수다쟁이들의 언어로 사회과학자들은 참 많은 사람들이고 간단한 것을 아주 기괴한 언어를 통해서 복잡하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며 우리 사회가 좋아질 수 만 있다면 좀 시끄럽고 요란해져도 좋을 것이라고 말하다. 그러나 상처를 주는 데만 집중하다가 결국 많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남성적인 측면만 강조되어 수컷들의 호전성이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던 상처받거나 아픈 기억의 1980년대의 사회과학이 아니라 더 많은 소녀들과 주부들이 초대되어 그들이 “당신들이 맞다. 틀리다”라고 기꺼이 평가할 수 있고 글을 쓰거나 생각을 정리할 때 또는 사회의 대안을 찾아갈 때 길잡이가 되어주는 실용적인 목적의 사회과학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사회과학이란 무엇일까? 작가는 사전적 의미로는 “인간 사회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모든 경험과학”으로 사회학, 정치학, 법학, 행정학, 심리학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또한 사회과학은 신과 같은 절대자의 존재로부터 본질을 유추하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이 아니라 사회현상에 대한 증명과 실험, 관찰을 하는 “과학(科學)”이며 사회과학 방법론이란 사회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하나의 이론이라면 우리가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알 것인지, 즉 인식의 수단에 대해 논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또한 사회과학은 사회적인 문제가 생겨야 발달하는 거지, 문제 자체가 없다면 필요 없는 학문일 수 있겠지만 흥할 때는 세계를 지배했을 정도로 정신없이 올라갔지만 망할 때는 급속히 내려갔던, 흥하고 망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이렇다 할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를 배출하지 못했던 네덜란드와 지금의 한국이 비슷한 상황이라며 뭐가 문제인지 파악이라도 해야 대책이 생기는 법인데, 성장 일변도로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그런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는 인식조차 생기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한편으로는 독립을 쟁취하면서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 즉 위기에서 우리를 구한 희망의 원천인 “내부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강점으로 꼽는다.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사회과학이 화려하게 꽃피었던 절정기로 민주화 열망이 강렬했던 1987년부터 1995년 사이였다고 말하면서 학문의 기본이자 예술의 기본인 사회과학이 현재는 폭이 굉장히 좁아졌고, 독서의 기초 체력이 약해졌을 뿐더러 저자군도 아주 빈약해져서 2~3년 전부터 주장해온 “사회과학 르네상스”를 위해서는 바로 “사람”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 강좌의 목적은 “좋은 독자”가 아니라 “좋은 저자”를 위함이며 그런 ‘예비 저자’ 들에게 유용한 방법론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사회과학 방법론의 정의와 집필 동기를 밝히는 <1장 지금 우리에게는 사회과학이 필요하다>이 끝나고 나면 <2장 착해지기 vs 똑똑해지기>부터는 본격적인 사회과학 방법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즉 각종 사회과학 서적들에서 한번쯤은 접해봤지만 명확하게 개념정리가 되지 않았던 “이기주의 가설과 이타주의 가설”, “데카르트와 칸트, 헤겔” 철학, 경제학에서의 “개인(왈라스)과 전체(케인즈)의 개념”, “환원주의와 다원론”, “균질성과 비균질성”, “목적론적 역사관과 진화론”, “보편주의와 특수주의”, “선형과 비선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들을 이 서평에서 모두 설명할 수 는 없을 테고 작가의 현실 문제와 비유를 통한 설명을 몇 가지만 소개해보자. 

작가는 한국에서 착한 사람들을 은평 뉴타운에서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뉴타운을 조성하면 50%의 집 가진 사람 중에서 아주 일부만 상당한 이익을 볼뿐 나머지 집 없는 사람들은 무조건 손해를 보는데도 동네가 발전하는 것 같아서 좋다는 이유로 대부분 찬성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경제적 합리성, 즉 이기주의 가설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진짜 이타주의를 구현하는 사람들이라고 평한다. 그래서 뉴타운이 건설되면 당장 쫓겨날 세입자들과 돈이 없어 외곽으로 이주하는 집주인들에게 그들의 삶에 어떤 운명이 닥칠 것이라고 알려주는 ‘똑똑해지기’ 혹은 ‘집단지식(collective knowledge)'의 시도가 한국에서는 이제껏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생각보다 효과가 놓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금처럼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우리 스스로 질문하지 않으면 그땐 정말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즉 사회과학이 그러한 문제에 대한 질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전문가형 지식과 백과사전형 지식 중 어느게 유리하냐고 물으면서 주류 언론에서는 ‘전문가’를 외쳐댔지만 사실은 이미 백과사전형 지식의 시대가 도래되었다고 말하며 실제로 한국을 움직이는 것도 이런 유형의 지식인, 즉 얕지만 넓게 알면서도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 ‘기획자(planner)'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백과사전형 지식을 갖춘 사람이 배출되기 어려운 구조여서 지금이라도 사회과학을 통해 이런 지식인들을 많이 양성해야 하며, 우리 모두가 사회과학자가 될 수 는 없지만 사회과학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 개념들을 어느 정도 익히고 이해한다면 스스로 공동체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경제학 조류를 ‘개인-구조’,‘설명-이해’ 4개의 분면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경제학을 전공한 나로서도 생소한 분류라서 꽤나 색다르고 흥미로웠다. “개인”을 강조하고 미래에 이렇게 되리라고 예측하는 “설명”이 이론의 기본 틀인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개인-설명‘ 분면에 배치하는 것과 달리 개인 대신 ”구조“를 강조했던 케인스와 스탈린주의는 ”구조-설명“ 분면에 배치한다. 한편 개인들 사이의 약속에 의해서 제도가 등장하는 과정을 살피려고 했던 신제도학파나 협약주의자, 게임이론은 ”개인-이해“ 분면에 배치한다. 그렇다면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장하준 교수는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작가는 '국가의 역할’을 경제 발전이라는 틀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장하준 교수는 각 국가가 처한 제도적 상황이나 역사적 조건에 따라 경제 발전 과정이 다를 수 있다고 본다는 면에서, 국가와 개인이라는 두 가지 눈을 다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이해’, ‘개인-이해’의 경계에 배치하는데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작가는 마지막 장인 <13장 사회과학, 실험은 없다!>에서 사회과학의 할 일이 정권 교체나 민주정부의 수립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와 이론의 영역이 구분되고 또 정책과 분석의 영역이 구분되어야 하며 이론과 분석은 정권을 바꾸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사회과학의 르네상스가 이루어진다면 현실의 많은 문제들이 지금보다 개선될 것이며 작가는 더 많은 일반인 저자들이 집단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며 특히 또한 한국에서 “과잉대표” 경향이 있는 남성들보다 “과소대표”된 사회적 주체들인 20대들과 30~40대 주부들이나 직장 여성들이 자신의 소신을 체계화하여 사회과학의 저자로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는데 이는 단순히 정권을 바꾼다거나 한국 사회를 질적으로 성장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근본적인 변화를 희망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그리고 사회과학이 개개인에게는 삶이 풍성해지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이런 움직임이 집단적으로 대중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며 책을 끝맺는다.  

소개 하고 싶은 책 내용들이 많다보니 쓸데없이 글이 길어졌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나처럼 사회과학에 대한 기초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입문서”로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몇몇 대목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문도 있었지만 인터넷이나 참고서적들을 통해서 보충해서 이해해 나간다면 사회과학 방법론의 기본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고, 그러한 개념 정리를 충실히 해낸다면 보다 깊이 있는 사회과학서적들을 학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이 널리 읽혀서 작가의 바램대로 “좋은 독자”가 아닌 “좋은 저자” 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작가가 원하는 “사회과학 르네상스”를 여는 계기가 되어 주기를, 그리고 그날이 온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 다음 10년의 논의와 변화를 모아 이 책의 개정판을 내겠다는 작가의 약속이 꼭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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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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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4년 일본 각종 추리문학상을 휩쓸었고, 국내 모 인터넷 서점에 서평 글들이 90 여 편이 올라와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식스센스 이후로 최고의 반전”이라는 극찬까지 받았던 화제작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원제 葉櫻の季節に君を想うということ/한스미디어/2005년 12월)>를 “드디어” 읽었다. “드디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일본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지라 작가의 명성과 이 책의 유명세를 수없이 들어왔지만 좀처럼 이 책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가 두 달 전 지인에게서 이 책을 선물 받고서도 다른 책 읽느라고 한동안 책꽂이에 꼽아두고 애써 모른 척하다가 이제야 결국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급하게 읽어야 할 책들이 있었기도 하지만 내가 올린 몇몇 서평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남들이 좋다고 하면 “얼마나 대단하길래” 하며 괜히 의심부터 해보는 고질병 탓도 있을 테고 추리소설이라 하기에는 너무 멋 부린 제목과 순정만화 같은 표지 그림 때문에 왠지 꺼려진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선물해주신 분께는 미안하지만 읽다가 재미없으면 바로 덮어두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요일 오전부터 읽기 시작한 이 책, 500 여 페이지가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을 졸린 눈을 비비면서 밤늦게 까지 다 읽고야 말았고, 다 읽고 나서도 많은 분들이 찬사를 보냈던 마지막 반전의 충격과 가시지 않는 여운 때문에 결국 밤잠을 설치고야 말았다.  

 책의 줄거리는 단순한 편이다. 경비원, 컴퓨터 강사, 엑스트라 배우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프리터(Freeter) - 자유(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를 합성한 신조어로 1987년 일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네이버 발췌) - 독신남이자 자유분망한 성생활을 즐기는 “나루세 마사토”는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자살을 하려고 선로에 뛰어내린 여인 “사쿠라”를 구해준다. 전형적인 일본인 얼굴이라 할 정도로 평범한 미모인지라 금세 까먹은 그에게 며칠 후 그녀에게서 사례를 하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 오면서 그녀와 인연이 시작되고 둘은 어느새 연인관계가 된다. 한편 같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고등학교 후배 “기요시”가 짝사랑하는 여자인 “아이코”에게서 할아버지의 뺑소니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요즘 우리 언론에서도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노인대상 물품 사기 업체인 “호라이 클럽”을 조사하게 된다. 학교 졸업하고 잠시 몸담았던 탐정사무소 경력을 살려 조사를 시작하면서 단순한 물품 사기가 아니라 노인 명의로 보험을 가입해서 살인을 저질러 보험금을 수령하는 “보험 살인”임을 알게 된 나루세는 후배 기요시와 함께 청소부로 위장하여 사무실에 잠입했다가 정체가 탄로나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그를 미행했던 사쿠라의 기지로 간신히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홀로 수사에 나선 나루세, 우연찮게 러브호텔에서 남자와 팔짱을 끼고 나오는 것을 목격하고는 배신감에 사쿠라를 다그치지만 막대한 빚 때문에 매춘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그녀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그녀의 빚을 대신 갚아주기로 마음을 먹고는 호라이 클럽 사무실에 다시 잠입하여 증거 서류를 찾다가 그만 놀라운 사실을 알아내고야 만다. 다시금 일당에게 붙잡혀 사건의 내막을 들은 나루세는 간신히 탈출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알아낸 놀라운 사실을 자신의 여동생과 사쿠라에게 털어놓게 되고, 이 대목에서 읽는 내내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충격적인 반전을 선보인다.  

  워낙 소문을 많이 들었던 터라 단단히 마음먹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전개될 수 록 반전이 등장할 만한 대목이 없을 정도로 단순한 내용이고 추리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사건 전개나 트릭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서 혹시 낚인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글 솜씨 - 나루세의 탐정시절 회상 장면과 그가 겪은 두 건의 자살 사건과 그에 얽힌 애달픈 사연 등 기본 골격 외에 별도의 이야기들을 배치하여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하고 있다. 물론 이런 회상 장면이 줄거리 흐름을 방해한다는 평도 만만치 않다 - 가 꽤나 재미있어서 내처 읽게 만든다. 그런데 남은 페이지가 갈수록 얇아지는 데도 요란한 소문의 반전은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지지부진했던 보험살인사건이 갑작스레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면서 몰입감이 점점 높아지더니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사무실 잠입 장면에서 긴장감을 최고조로 이끌어낸다. 사건의 내막을 범인들에게서 직접 듣고 위기 순간에서 극적으로 탈출하는 장면에서 이제 경찰에 신고하고 사건이 마무리 되겠구나 하는 순간에 그 “유명한” 반전이 드디어 등장한다. 처음에는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기야 잘 못 읽은 거 아냐 하고 어리둥절하다 못해 허망하기까지 한 반전 대목을 몇 번을 다시 읽다가 “이건 사기다!” 라는 말과 함께 나루세가 등장하는 앞 장면들을 다시 펼쳐 읽었더니 결론 - 다 읽고 나서 다른 분들의 서평을 읽어보니 반전의 정체를 밝힌 글들도 제법 많았다는 걸 알았다. 결국 반전을 미리 알지 않고 본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 을 미리 알았으면 눈치 챘을 만한 단서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한방 얻어 맞은 충격에 한동안 멍한 상태에 빠졌고 어느새 졸음도 싹 달아나버렸다. 다시 정신 차려 마저 읽고 나니 어느새 늦은 시간이어서 서둘러 누운 잠자리,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반전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떠올라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계속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이르러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이 책의 장르를 일본 추리소설식으로 분류한다면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역자는 옮긴이의 말에서 신본격파와 사회파의 결합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일본의 노인문제와 복지 재정 고갈 등을 언급하는 대목을 보면 “사회파” 추리소설 범주에는 들어갈 수 있지만 사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의 플롯이나 트릭은 그다지 절묘하게 느껴지지 않아 고전 추리소설을 지향한다는 신본격파로 분류하기에는 어려울 듯 하다.  대신 작가가 작심하고 독자들을 철저히 속이는 사기극(?)의 절정이라는 면에서는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의 암묵적인 전제나 편견을 이용한 트릭'으로 등장인물의 말투, 이름, 성별이나 연령을 오인시키거나, 작품 내에 또 다른 작품을 교차 배치하거나 시간 순서를 바꾸거나 해서 오인시키는 방법인 “서술 트릭”으로 분류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물론 작가가 독자들이 추리 가능하도록 충분한 단서를 제공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도 있을 것이다. 몇 번을 언급하고 있는 반전, 사실 이 리뷰를 쓰면서 속 시원히 밝히고 싶어 근질근질 거리는 것을 꾹 참았다. “남자에게 정말 좋은데,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모 회사 사장님의 답답한 심정이 절로 공감이 간다고나 할까?^^ 절대 반전을 미리 알지 말고 읽기를 권하고 싶다.  

책 읽느라고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고 다 읽고 나서도 책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쉽게 잠을 못 이룬 경험이나 며칠이 지나 서평을 쓰면서도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가 않는 경험을 참 오랜만에 해보는 것 같다. 괜한 선입견에 계속 읽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이 책, 많은 독자들의 찬사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멋진 선물을 해준 이웃에게 이 글을 빌어 고맙다는 인사 말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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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팻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 표창원 감수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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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로파일러(Profiler).

범죄사건의 정황이나 단서들을 분석하여 용의자의 성격과 행동유형, 심지어 신상 정보라 할 수 있는 성별· 연령· 직업· 취향· 콤플렉스 등을 추론하여 수사방향을 설정하고, 검거 후에는 심리적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자백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범죄심리분석가(네이버 발췌)”를 지칭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해외에서는 1972년 FBI가 이 수사 기법을 공식 도입하면서 시작했다고 하니 그 역사가 벌써 40여년 가까이 이른다고 하며, 요즘 케이블 TV 편성표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수사물 드라마에서는 이런 프로파일러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많다고 하니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그런 존재라 할 수 있다. 내가 프로파일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지난 2010년 부산 여중생 살인 사건 보도에서 국내 프로파일러 권위자가 출연해 용의자의 성격이나 행동반경 등을 추론해내는 방송을 보고난 후였으니 꽤나 늦게 알게 된 셈이다. 그 이후 접해본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들에서 작은 단서들만으로 범인을 척척 맞추던 “셜록 홈즈”와 같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프로파일러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런 모습들이 매력적이었는지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프로파일러가 되는 방법”이라는 질문들과 답변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과연 프로파일러는 21세기 신종(新種) 탐정(探偵)일까? 미국 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전문 프로파일러라는 “팻 브라운”은 그녀의 저서 <프로파일러; 연쇄살인범과 사이코패스를 추적하며 지낸 나의 인생(원제 The Profiler/시공사/2011년 3월)>에서 현실 속의 프로파일러들은 드라마에서 그려진 것 같은 전지전능과는 거리가 멀다고 잘라 말한다. 

 

  책 표지를 열면 한국 프로파일러 권위자의 <추천사> - 앞선 말한 부산 여중생 사건 보도에서 본 그 프로파일러다 -와 <한국어판 서문> - 태권도를 배웠고 그녀의 첫 애인도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우리와는 인연이 있다 - , <감사의 말>, <독자 여러분께>, <머리말>, <프롤로그> 거쳐야 비로소 본론인 PART1이 시작된다. 왜 이렇게 소개글과 서두가 긴지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몇 몇 글은 건너뛰고 서둘러 본론에 들어갔다.  

 

작가 팻 브라운은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 아이의 엄마이자 수화통역사 - 청각장애인, 농아들에게 수화로 의사전달을 하는 사람. 작가는 병원에서 근무한다 - 로 근무하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고 한다. 그런데 1990년 그녀가 살고 있던 마을에서 “앤 캘리”라는 20대 여인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그녀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그녀는 평소 수상쩍게 생각해온 세입자 “월트”가 앤 캘리를 죽인 살인범으로 확신하고 그의 방을 뒤져 각종 증거물을 찾아내어 경찰서에 들고 가지만 한마디로 문전박대당하고 만다. 결국 그녀는 자신 스스로 이 사건을 해결하기로 결심하고 관련 서적과 강의를 들어가면서 공부하기 시작하고, 결국 6년 만에 “월트”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재수사하게 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월트는 증거불충분으로 용의선상에서 제외되고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 프로파일러로 나선 그녀는 많은 사건들을 프로파일링하고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PART1에서는 이처럼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녀가 동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계기로 프로파일러에 입문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고, PART2에서는 그녀가 본격 프로파일러로 나서면서 그녀가 직접 프로파일링한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FBI와 같은 공식 수사기관에 속하지 않은 “민간” 프로파일러이고, 사건 발생 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피해자 가족들에게 의뢰받아 사건 기록들과 증거물들, 탐문 수사 - 이미 오래전 사건이라 증거들은 불충분하고 제한적이며 비협조적인 경찰들, 냉담한 사건 주변 사람들 등으로 그 과정이 꽤나 힘들고 어려워 보인다 - 등을 통해서 그녀가 직접 결론을 도출해 낸 사건들로 어찌보면 그녀의 의견 제시일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미제(未濟)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즉 그녀는 매 사건들마다 자신의 프로파일링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면서 사건들을 재수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추리소설이나 드라마에서 그려지고 있는 과장된 프로파일러의 허상(虛像)을 깨뜨리고 실제 프로파일러들의 수사과정을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프로파일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프로파일러 직업 소개서”로써 꽤나 유익한 정보가 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러한 사실성과 구체성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를 프로파일러의 길로 나서게 한 사건에서부터 쉽게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세입자가 의심스러운 진술과 행동을 보인다는 이유로 그의 방을 뒤져 옷가지와 몇몇 물품들을 찾아내 경찰에 들고 가서 수사를 해달라고 떼를 쓴다고 해서 어느 경찰이 불충분한 물증과 증언만 믿고 수사 - 물론 작가는 경찰이 처음부터 사건 해결의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증언을 믿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에 나설지 억지스럽기까지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프로파일링한 사건들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도 추론과정이 흥미로운 면도 없진 않지만 너무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명들로 지루하게까지 느껴지고, 결론 자체도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았으며, 미제 사건에 대한 그녀의 확신 또한 조금은 위험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자신의 가족을 참혹하게 잃고 괴로워하는 가족들과 어디 하소연할 데 없어 억울한 처지에 몰린 용의자들에게 위안을 주고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팻 브라운의 진정성(眞正性)만큼은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재미를 떠나서 때론 사기꾼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경찰들의 냉소와 법 집행 기관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사건의 진실을 위해 애쓰는 그녀의 용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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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명탐정의 저주 / 히가시노 게이고/ 재인/2011년 3월 26일 

 

추리 소설 독자라면 누구나 아는, 그러나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는 각종 트릭의 상투성과 부자연스러움을 일류 추리 소설 작가가 자신의 소설 속에서 낱낱이 까발리고 나서 일본 추리 소설계를 발칵 뒤집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 <명탐정의 저주>는 <명탐정의 규칙>의 후속작으로, 전작의 주인공들이 재등장해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연작이자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다. - 알라딘 소개글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 팬이라면 구태여 설명이 필요없을  최고의 작가인 그의 신간이라니 당연히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을 책이다. <명탐정의 규칙>은 입소문은 참 많이 들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 책의 연작이라니 이 책부터 시작해보고 싶다. 

2. 달과 게/미치오 슈스케/북폴리오/2011-03-25 

 

2011년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각종 문학상의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의 영광을 차지한 미치오 슈스케. 미치오 슈스케는 2009년 140회부터 2011년 144회에 이르기까지 총 5번에 걸쳐 나오키상 후보에 올라 마침내 5번째 노미네이트 만에 수상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모두 휩쓰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 알라딘 소개글 

먼저 읽은 많은 분들이 호평하는 책이라 관심이 많았던 책으로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섬세한 감정선과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라니 일본 유명 문학상이라는 나오키상 수상작의 명성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해보고 싶다. 

3. 이제 지구는 누가 지키지 / 존 맥널리/북스피어 / 2011-03-25 

 

찌질하고 한심하고, 어설프기까지 한 초능력자들의 고군분투기로 구성된 단편집. 이 단편집은 평범한 히어로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파워는 갖고 있지만 완벽한 슈퍼 파워는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이다. 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는, 자신 안에 있는 힘 때문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 알라딘 소개글 

찌질이 슈퍼 히어로들의 이야기라니 그 기발한 발상만으로도 재미가 있을 것 같아 선뜻 추천해본다. 두께가 만만치 않아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슈퍼히어로들 이면에 감춰진 속살들을 엿보는 그런 재미라면 무난히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4. 미스터 피넛 1,2/애덤 로스/현대문학/2011-03-21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뉴요커」 선정 '2010년 올해의 책'. 사랑의 달콤한 광채와 결혼의 어두운 측면을 통렬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출간 전부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초현실적인 이 첫 소설로 애덤 로스는 미국 문단에서 가장 촉망받는 신예 작가로 급부상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13개국에서 작품이 출간돼 크게 각광받고 있다.- 알라딘 소개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길래 신생 작가의 첫 데뷔작이 저렇게 각광을 받을 수 있다니 무척 궁금하다. 종종 외국 언론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들 읽어보면 내 정서랑 맞지 앉아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작품만큼은 애 먹이지 않고 술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길 바래본다^^ 

5. 카인의 유전자/톰 녹스/레드박스/2011-03-18 

 

<창세기 비밀>의 작가 톰 녹스의 두번째 소설. "유대인과 한국인은 정말 다른 인종보다 아이큐가 높을까?" 혹은 "아프리카 흑인들은 서양의 백인들보다 유전적으로 지능이 떨어질까?" <카인의 유전자>는 이와 같이 자칫하면 인종차별을 용납하고 위험한 민족주의를 부추길 수 있는 민감하고 논쟁적인 질문에 흥미롭게 답변하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알라딘 소개 

작가의 전작인 <창세기 비밀>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후속작이 나온다는 소식에 어찌나 반가웠던지^^ 인종차별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이번에는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냈을 지 기대된다. 

9기 신간평가단 첫 페이퍼네요^^ 3월에도 워낙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 목록에서 고르는 데 꽤나 애를 먹었습니다. 제가 고른 5권 중에 꼭 선택되기를 바라면서 책 선정 발표를 두근두근 거리며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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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지옥 이타카
유메노 큐사쿠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일본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나로서도 “유메노 큐사쿠(夢野久作)”는 처음 들어본 지라 이번에 출간된 그의 작품 <소녀지옥(원제 小女地獄/디엔씨미디어/2011년 3월)>을 읽기 전에 작가 이력(履歷)부터 살펴봤다. 지금으로부터 90 여 년 전인 일본 2,30년대 미스터리 소설의 대표적 작가로 미스터리 3대 기서(奇書) 중 하나인 <도구라 마구라>의 작가라고 한다. 꼬리 물기로 검색한 <도구라 마구라>, 일본 추리, 환상, 호러, 과학소설의 시초가 된 그 작품으로 이 책을 읽으면 반드시 한번쯤은 정신이상을 불러일으킨다는 - 추천평에 <긴다이치 코스케>의 작가가 “요코미조 세이시”가 “이 책을 읽고 머리가 약간 이상해져 버렸어. 하하하.”라는 글이 있다 -, 말 그대로 “기괴(奇怪)”한 소설 쯤인 것 같다. 그런 <도구라 마구라>와 함께 작가의 후기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라고 하고, 기모노를 곱게 차려 입은 여자 주변에 피가 번진 것으로 추측되는 붉은 색 문양의 표지 그림, <소녀 지옥>이라는 강렬한 제목이 인상적인 이 책, 처음 시작부터가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이 책 또한 정신 이상을 불러올 정도로 충격적인 작품인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책 첫 페이지를 넘겼다.  

  책에는 책 제목이기도 한 <소녀지옥>에 3편의 단편과 별도의 3편의 단편, 총 6편이 단편이 실려 있다. 첫 작품인 <아무것도 아닌>은 거짓말을 일삼는 간호사 “히메구사 유리코”에 관한 이야기이다. 뛰어난 간호 실력과 싹싹함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기존 간호사들을 제치고 이제 막 개업한 우스키 병원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녀를 아끼는 병원장 우스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녀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그는 그녀에 대해 조사를 벌이는데, 알고 보니 모든 것이 거짓 그 자체인 그녀의 이야기에 섬뜩한 공포마저 느끼고 결국 그녀를 내쫓게 된다. 그녀는 결국 자살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오고 우스키는 그녀가 전에 다닌 병원 원장이자 자신의 대학 선배에게 그녀에 대한 장문의 보고서를 보낸다. 책에는 이 외에도 자신의 친구를 죽인 연쇄살인범에 사랑을 느끼지만 결국 그를 죽여 버리는 버스 차장 이야기(-><살인릴레이>), 고매한 인품의 교장 선생님이 알고 보니 학교 돈을 횡령하고 죽은 아내를 못 잊어 정절을 지킨다는 것은 허울 뿐 자신 뿐만 아니라 여러 여자들의 순결을 빼앗은 파렴치한이었다는 사실을 자신의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고발하는 여학생 이야기(-><화성의 여자>),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고 도주한 여인인 “루리코”가 처음에는 천사처럼 아름답게 느껴지다가 결국에는 지극히 추한 여인으로 느껴지는 이야기(-><동정>), 영국 군함과 수에즈 운하를 폭파하겠다며 다이너마이트를 지원해달라고 하지만 사실 공산당 당원인 남자를 고발하며 자신 스스로를 “부르주아 투사”라고 일컫는 여성(->여갱주), 정숙한 백작 부인이 사실은 어린 청소년들을 죽여온 끔찍한 마녀였다는 이야기(-><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굴뚝>) 등 한결같이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스터리 소설 일색이다.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역자 후기로 알 수 있듯이 1930년대 일본 - 이 책이 출간된 년도가 1936년이다 - 주변국들과 중국 대륙을 침탈하던 제국주의 시절로 모든 것이 남성 중심으로 재편되던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회적 통념 - 여자가 버스 운전사나 사진기자가 되겠다는 것이나 남자들 못지 않게 키가 큰 여학생이 “화성인”이라고 놀림을 받는 것 등 지금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그 당시에는 금기(禁忌)처럼 여겨진다 - 에 가로막혀 여러 가지 핍박과 압박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던 여인들이 결국 기괴함마저 느껴지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남성과 사회적 통념에 대한 복수를 그린 작품으로, 기괴한 복수 방식 뿐만 아니라 <여갱주>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자살하거나 떠난다는 편지를 남기지만 실제로 그녀들이 죽었는지 아무도 모를 그러한 결말 자체 또한 미스터리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을 문체적 실험도 엿볼 수 있는데, 편지글과 보고서로 구성된 <아무것도 아닌>과 편지글로만 구성된 <살인 릴레이>, 신문보도 기사와 편지글로만 구성된 <화성의 여자>와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독특하고 이색적인 형식의 글이라 할 수 있다.  

  출간된 지 60년도 넘은 지금에 읽어도 결코 위화감이나 어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참신한 소재와 이색적인 문체 형식이 인상적이며 단숨에 읽게 만드는 재미와 몰입감 또한 상당한 소설이라 평가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시대를 앞서간 그런 소설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소재들이나 형식 모두 이제는 쉽게 접해볼 수 있는 것들이어서 출간 당시 느꼈을 파격적인 재미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유메노 큐사쿠가 왜 일본 미스터리계의 이단이자 원류로 추앙받는 작가이며 현대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를 받는지를 증명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정신이상까지 불러일으킨다는 <도구라 마구라>가 더욱 궁금해진다. 내가 알고 있는 일본 작가 중에서 가장 기괴(?)한 작가라 할 수 있는 “츠츠이 야스타카” -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자로 그의 작품인 <최악의 외계인>, <인구조절구역>은 개인적으로는 기상천외를 넘어 기괴망측하기 까지 한 소설들이었다 - 가 자신의 소설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할 정도니 그 기괴함은 이미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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