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04년 일본 각종 추리문학상을 휩쓸었고, 국내 모 인터넷 서점에 서평 글들이 90 여 편이 올라와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식스센스 이후로 최고의 반전”이라는 극찬까지 받았던 화제작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원제 葉櫻の季節に君を想うということ/한스미디어/2005년 12월)>를 “드디어” 읽었다. “드디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일본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지라 작가의 명성과 이 책의 유명세를 수없이 들어왔지만 좀처럼 이 책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가 두 달 전 지인에게서 이 책을 선물 받고서도 다른 책 읽느라고 한동안 책꽂이에 꼽아두고 애써 모른 척하다가 이제야 결국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급하게 읽어야 할 책들이 있었기도 하지만 내가 올린 몇몇 서평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남들이 좋다고 하면 “얼마나 대단하길래” 하며 괜히 의심부터 해보는 고질병 탓도 있을 테고 추리소설이라 하기에는 너무 멋 부린 제목과 순정만화 같은 표지 그림 때문에 왠지 꺼려진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선물해주신 분께는 미안하지만 읽다가 재미없으면 바로 덮어두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요일 오전부터 읽기 시작한 이 책, 500 여 페이지가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을 졸린 눈을 비비면서 밤늦게 까지 다 읽고야 말았고, 다 읽고 나서도 많은 분들이 찬사를 보냈던 마지막 반전의 충격과 가시지 않는 여운 때문에 결국 밤잠을 설치고야 말았다.  

 책의 줄거리는 단순한 편이다. 경비원, 컴퓨터 강사, 엑스트라 배우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프리터(Freeter) - 자유(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를 합성한 신조어로 1987년 일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네이버 발췌) - 독신남이자 자유분망한 성생활을 즐기는 “나루세 마사토”는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자살을 하려고 선로에 뛰어내린 여인 “사쿠라”를 구해준다. 전형적인 일본인 얼굴이라 할 정도로 평범한 미모인지라 금세 까먹은 그에게 며칠 후 그녀에게서 사례를 하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 오면서 그녀와 인연이 시작되고 둘은 어느새 연인관계가 된다. 한편 같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고등학교 후배 “기요시”가 짝사랑하는 여자인 “아이코”에게서 할아버지의 뺑소니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요즘 우리 언론에서도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노인대상 물품 사기 업체인 “호라이 클럽”을 조사하게 된다. 학교 졸업하고 잠시 몸담았던 탐정사무소 경력을 살려 조사를 시작하면서 단순한 물품 사기가 아니라 노인 명의로 보험을 가입해서 살인을 저질러 보험금을 수령하는 “보험 살인”임을 알게 된 나루세는 후배 기요시와 함께 청소부로 위장하여 사무실에 잠입했다가 정체가 탄로나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그를 미행했던 사쿠라의 기지로 간신히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홀로 수사에 나선 나루세, 우연찮게 러브호텔에서 남자와 팔짱을 끼고 나오는 것을 목격하고는 배신감에 사쿠라를 다그치지만 막대한 빚 때문에 매춘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그녀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그녀의 빚을 대신 갚아주기로 마음을 먹고는 호라이 클럽 사무실에 다시 잠입하여 증거 서류를 찾다가 그만 놀라운 사실을 알아내고야 만다. 다시금 일당에게 붙잡혀 사건의 내막을 들은 나루세는 간신히 탈출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알아낸 놀라운 사실을 자신의 여동생과 사쿠라에게 털어놓게 되고, 이 대목에서 읽는 내내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충격적인 반전을 선보인다.  

  워낙 소문을 많이 들었던 터라 단단히 마음먹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전개될 수 록 반전이 등장할 만한 대목이 없을 정도로 단순한 내용이고 추리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사건 전개나 트릭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서 혹시 낚인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글 솜씨 - 나루세의 탐정시절 회상 장면과 그가 겪은 두 건의 자살 사건과 그에 얽힌 애달픈 사연 등 기본 골격 외에 별도의 이야기들을 배치하여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하고 있다. 물론 이런 회상 장면이 줄거리 흐름을 방해한다는 평도 만만치 않다 - 가 꽤나 재미있어서 내처 읽게 만든다. 그런데 남은 페이지가 갈수록 얇아지는 데도 요란한 소문의 반전은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지지부진했던 보험살인사건이 갑작스레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면서 몰입감이 점점 높아지더니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사무실 잠입 장면에서 긴장감을 최고조로 이끌어낸다. 사건의 내막을 범인들에게서 직접 듣고 위기 순간에서 극적으로 탈출하는 장면에서 이제 경찰에 신고하고 사건이 마무리 되겠구나 하는 순간에 그 “유명한” 반전이 드디어 등장한다. 처음에는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기야 잘 못 읽은 거 아냐 하고 어리둥절하다 못해 허망하기까지 한 반전 대목을 몇 번을 다시 읽다가 “이건 사기다!” 라는 말과 함께 나루세가 등장하는 앞 장면들을 다시 펼쳐 읽었더니 결론 - 다 읽고 나서 다른 분들의 서평을 읽어보니 반전의 정체를 밝힌 글들도 제법 많았다는 걸 알았다. 결국 반전을 미리 알지 않고 본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 을 미리 알았으면 눈치 챘을 만한 단서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한방 얻어 맞은 충격에 한동안 멍한 상태에 빠졌고 어느새 졸음도 싹 달아나버렸다. 다시 정신 차려 마저 읽고 나니 어느새 늦은 시간이어서 서둘러 누운 잠자리,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반전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떠올라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계속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이르러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이 책의 장르를 일본 추리소설식으로 분류한다면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역자는 옮긴이의 말에서 신본격파와 사회파의 결합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일본의 노인문제와 복지 재정 고갈 등을 언급하는 대목을 보면 “사회파” 추리소설 범주에는 들어갈 수 있지만 사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의 플롯이나 트릭은 그다지 절묘하게 느껴지지 않아 고전 추리소설을 지향한다는 신본격파로 분류하기에는 어려울 듯 하다.  대신 작가가 작심하고 독자들을 철저히 속이는 사기극(?)의 절정이라는 면에서는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의 암묵적인 전제나 편견을 이용한 트릭'으로 등장인물의 말투, 이름, 성별이나 연령을 오인시키거나, 작품 내에 또 다른 작품을 교차 배치하거나 시간 순서를 바꾸거나 해서 오인시키는 방법인 “서술 트릭”으로 분류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물론 작가가 독자들이 추리 가능하도록 충분한 단서를 제공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도 있을 것이다. 몇 번을 언급하고 있는 반전, 사실 이 리뷰를 쓰면서 속 시원히 밝히고 싶어 근질근질 거리는 것을 꾹 참았다. “남자에게 정말 좋은데,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모 회사 사장님의 답답한 심정이 절로 공감이 간다고나 할까?^^ 절대 반전을 미리 알지 말고 읽기를 권하고 싶다.  

책 읽느라고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고 다 읽고 나서도 책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쉽게 잠을 못 이룬 경험이나 며칠이 지나 서평을 쓰면서도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가 않는 경험을 참 오랜만에 해보는 것 같다. 괜한 선입견에 계속 읽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이 책, 많은 독자들의 찬사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멋진 선물을 해준 이웃에게 이 글을 빌어 고맙다는 인사 말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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