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더십 iLeadership - 애플을 움직이는 혁명적인 운영체제
제이 엘리엇 & 윌리엄 사이먼 지음, 권오열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경영의 신(神)”, “비즈니스의 베토벤”,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리젠테이션 귀재” “마키아벨리” - 공급업체와 협력업체, 심지어 산업까지도 마음대로 주무른다고 해서 붙은 별명 -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만 해도 수십 개에 달하는, 이 시대 최고의 기업인이라고 칭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사람이 바로 애플 CEO "스티브 잡스(Steve Jobs)"일 것이다. 그의 말, 옷차림, 행동, 심지어 건강상태 - 그가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애플 주가가 곤두박질쳤다고 한다 - 에 이르기까지 연일 화제가 되다 보니 그의 삶이나 경영 철학, 성공사례에 관한 책들도 인터넷에서 "애플"이나 "스티브 잡스"로 검색해보면 수십 권이 검색될 정도로 참 많은 책들이 나와 있고, 이런 자기계발서나 경영서적을 잘 읽지 않는 나도 그 중 몇 권을 읽어본 경험이 있을 정도이니 그 인기를 과히 짐작할 만 하다. 그런데 대부분 그를 신격화하거나 또는 과장된 칭찬 일색의 책들이 대부분이어서 딱히 그 책들을 읽고 감동을 받은 기억이 없는 그저 그런 책들이었던 걸로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이번에 읽게 된 <아이리더십(원제 The Steve Jobs Way : iLeadership for a New Generation /웅진지식하우스/2011년 4월)>도 그다지 끌리지 않아 시작하기가 어려웠던 책이다.  

이 책은 “제이 엘리엇(Jay Elliot)” 전 애플 부사장이 애플의 리더십에 대해서 쓴 책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IBM, 인텔 등 세계 굴지의 IT 업체에 책임자로 근무하다가 1980년 25살의 스티브 잡스를 우연히 식당에서 만나 애플로 옮기게 된 그는 20년 동안 제품 개발, 인재 채용, 조직 문화, 브랜딩 등 애플의 전반적인 경영을 책임졌고, 수석부사장으로서 애플을 진두지휘했던, 왼손잡이 잡스가 “나의 왼팔”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믿고 기댄 정신적 멘토이자, 잡스의 괴팍한 천재성을 애플의 성과로 번역해낸 철저한 경영인이라고 한다(한겨레 2011.4.15. 발췌). 즉 이 책이 그를 20년 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 실제 경험을 쓴 책이라는 점에서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 칭찬 일색으로 늘어놓는 여타의 책들과는 다른 성격의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책에서는 스티브 잡스에 대해 그동안 잘 못 알려진 이야기들에 대해서 바로 잡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잡스가 자신이 채용했던 펩시콜라 사장 존 스컬리에게 밀려 쫓겨났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었다고 부인하는 점을 들 수 있다.  

책은 1980년 어느날, 한 식당 대기실에서 엘리엇이 잡스를 우연찮게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직하기로 예정된 이글 컴퓨터의 비극적 몰락 기사를 읽고 있던 엘리엇과 같은 기사를 읽고 있던 잡스는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고, 엘리엇의 사연을 전해들은 잡스는 선뜻 엘리엇에게 같이 일하자고 제의를 해온다. 2주 뒤 금요일에 애플에서 일을 시작한 엘리엇은 다음날 토요일 아침 잡스와 함께 제록스 팰러앨토 연구소(PARC)를 방문해서 “마우스”,“컴퓨터 프린터”, 마우스로 선택하는 컴퓨터 메뉴 항목 등을 보게 된 잡스와 엘리엇은 바로 그 곳에서 컴퓨터의 미래를 보았다고 확신하게 된다. 엘리엇은 가능성에 활짝 열려 있는 잡스의 자세, 새로운 아이디어를 알아보고 그 가치를 꿰뚫어보며 그것을 열정적으로 포용하는 그의 흥분한 모습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느끼게 되었고, 잡스는 엘리엇에게서 비즈니스에 대한 탄탄한 기초지식으로 무장한 한 선배이자 동료, 멘토의 임무를 부여하게 되면서 그들의 동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훗날 “계시적”이었다고 표현했던 PARC를 방문 이후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바꾸는 행로에 나서게 되고, 그는 바로 그 일을 해냈다고 말하며 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본문에 들어가면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PARC 방문이후부터 2007년 아이폰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의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역정과 일화들을 예로 들면서 스티브 잡스의 경영철학과 리더십을 4개의 챕터, 14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사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경영 철학들은 여러 책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내용이라 역시 감흥은 크게 일지 않는다. 오히려 한 편의 자서전처럼, 또는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애플 성장사, 즉 애플의 공동 창업주인 스티브 위즈니악, 매킨토시 탄생 이야기 - 윙윙 거리는 팬 소음이 시끄러워 제거했다가 과열문제로 ‘베이지색 토스터’로 불리운 일화 등 -, “해군이 아니라 해적이 돼라!(Pirates! Not the Navy!)”라는 문구로 유명했던 애플 직원 티셔츠, 지금까지도 희자되고 있는 1984년 슈퍼볼 중계방송에 등장한 60초짜리 매킨토시 TV 광고 이야기, 1985년 애플에서 떠나 12년간 야인(野人)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과 숨겨진 비화, 최종적으로 3천만 달러가 투입되어 미국에서 1억 9천만 달러,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총 3억 달러라는 엄청난 수익을 거둔, CG 장편 만화영화 <토이스토리> 이야기, IBM, 인텔, GE 등 세계 유수의 IT 기업들을 제치고 오늘날 애플을 세계 최고의 IT 기업으로 만들어준 아이튠즈, 아이팟, 아이폰의 탄생 등 애플 30년 성공사를 연대기 순으로 읽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엘리엇이 말하려고 한 “아이리더십(iLeadership)"이란 무엇일까? 운영체계라고 이름 붙인 각 챕터가 바로 그 답이라 할 수 있는데, 세계 최고의 소비자 입장이 되어 개발하는 ”제품 개발(Product Czar)",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끼를 한껏 발산해주길 바라는 의미인 ‘해군이 아닌 해적이 돼라 - 인재 채용(Talent Rules)', 기능 중심이 아닌 제품 기반으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통합적 관점의 “조직문화(Team Sports)", 모든 소비자가 열광하는 갖고 싶은 제품을 만드는 ”브랜딩(Differnet View of Selling)"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이 책 본문 내용 이상으로 우리나라 언론에 주목받았던 “한국어판 서문 삼성의 CEO들에게”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엘리엇은 왜 다른 브랜드와는 달리 애플이 수많은 ‘마니아’들을 가질 수 있었는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 앞서 말한 것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완전한 통합”, “한가지 소프트웨어의 우산아래 모든 제품을 완전히 통합하는 생태계”, “브랜딩”,“애플의 생태계 창조” 네가지를 들며, 아이팟이 나오기 전에는 워크맨이 가장 잘 나가는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던 소니가 밀린 이유는 사용자들의 니즈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며 삼성이 과거의 소니와 아주 흡사하다고 꼬집는다. 또한 휴대용 기기는 안드로이드, PC는 윈도우즈, TV와 카메라는 또 다른 운영체제로 움직이는 삼성이 똑같은 플랫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개발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이며, 한때 최고의 IT기업이던 IBM이 생태계 관리에 실패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그 밖의 모방자들에게 시장을 넘겨주고 만 사례를 예의주시하라고 충고한다. 이처럼 삼성에게 지극히 불편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자 삼성도 그냥 무시할 수 만은 없었는지 “삼성은 하드웨어 개발을 바탕으로 소프트웨어도 함께 발전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라고 반박했다고 알려진다. 최근 아이폰의 위치 추적 문제가 불거지면서 스티브 잡스가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결국 아이폰은 위치 추적을 하지 않는다고 억지 반박을 해서 한때 '최고경청자(top listener)'란 별명을 얻었던 잡스가 ‘소통부재병’에 걸렸다고 비난을 받자 공교롭게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최근 발간한 'CEO가 주목해야 할 4대 리스크'란 보고서에서 "위험이 닥쳤을 때 회사 존망을 가르는 것은 CEO와 고객 간의 소통 여부"라고 지적했다고 하니 이 책 서문에 대한 장군 멍군인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인지 모를 일이다.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을 애플 성장사와 함께 읽어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다. 췌장암에 걸렸다고 하더니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하는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는 한, 또한 아이폰이 스마트폰의 지존 자리에서 내려올 가능성이 당분간은 요원한 이상 스티브 잡스와 애플은 더 유효할 듯 하다. 마찬가지로 한 몸이나 다름없는 “잡스 +애플” 이야기는 앞으로도 과장된 성공신화로 포장되어 우리들에게 계속 선보일 듯 한데 점점 지겨워지고 식상해지는 것은 통신비 부담 때문에 아직도 고물 폰을 들고 다니는, 아이폰을 위협하는 심각한 경쟁자가 나와서 서로 치고 받는 치열한 경쟁으로 하루 빨리 스마트폰 기기 값과 요금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나의 사심(私心) 때문일까 아니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전쟁터와 같은 IT업계에서 애플과 잡스를 능가하는 새로운 스타가 출현하기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의 바람 때문일까? 둘 다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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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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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지루해서 읽는 내내 하품을 하다가 건성건성 읽고 책장을 서둘러 덮어 버리는 책이 있는가 하면, 너무 재미가 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내처 읽게 만드는, 읽고 나서도 그 여운 때문에 도저히 다른 책을 읽기 어렵게 만드는, 그리고 주변에게 소개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게 만드는 그런 책들이 있다. 사실 정유정 작가의 신작인 <7년의 밤(은행나무/2011년 3월)>은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 페이지 당 24줄이나 되는 빽빽한 줄 간격 - 괜한 트집 같지만 요새는 줄 간격이 20줄 미만의 책들이 대세인지라 줄 간격이 빽빽하면 읽기에 부담스러워진다 - , 거기에 여성 작가 - 평소에 여성 특유의 감상적(感傷的)인 문체와 미시적인 접근이 나하고는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해 즐겨 읽지 않는다 - 라는, 내가 싫어하는 삼박자를 모두 갖춘 책이어서 처음 시작하기가 여간 만만치가 않았던 책이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읽기를 주저하게 만든 세가지 모두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재미와 몰입감을 선사해 준 멋진 책이었다. 

7년 전 <세령호의 재앙>이라 기록되었던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지른 <미치광이 살인마>의 아들 서원(“나”)은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결국 그당시 아버지의 부하직원이자 같은 방을 썼던 승환을 만나 세상의 눈을 피해 네비게이션 지도에서 나오지 않는 외진 해변가 마을인 “등대 마을”에 정착하여 살아간다. 야간 스쿠버다이빙을 하다가 조난을 당한 청년들을 구조하게 되어 다시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진 서원에게 누군가가 택배를 보내온다. 택배에는 7년 전 사건이 상세하게 실려 있는, 서원이 전학 가는 학교마다 배달되어 온 잡지와 글들, 음성화일이 담긴 USB 등이 이 실려 있었는데, 그 글들은 바로 7년 전 세령호 사건을 재구성해낸 승환의 소설이었다. 서원은 소설을 통해 끔찍한 살인사건 이면에 숨겨졌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7년 전 전직 프로야구 포수 출신이자 댐 신임 보안팀장으로 발령받은 서원의 아버지 “최수현”은 며칠 후 이사 오기로 한 세령호 수목원 사택(舍宅)을 둘러보고자 세령 마을에 내려오던 중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게 된다. 음주 상태로 운전하여 밤늦게 마을 근처까지 오다가 그만 차로 아버지의 폭행을 피해 달아나던 소녀, “오세령”을 우연찮게 치게 된다. 현수는 죽은 줄 알았던 소녀가 신음 소리를 내자 놀라서 그만 소녀를 목졸라 죽여 호수에 버리고는 달아나버리고, 마침 호수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던 승환은 소녀의 시체를 발견하지만 그대로 둔 채 물 밖으로 나온다. 소녀의 아버지 “오영제”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세령호 인근을 수색하지만 소녀의 종적은 찾을 수 가 없고, 며칠 전 세령과 함께 있던 승환을 의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수현네 가족이 세령호로 이사 오게 되고, 소녀의 시체가 호수에서 발견된다. 경찰은 세령을 “교정”이라는 명목 하에 상습 폭행했던 아버지 영제를 제일 용의자로 보고 심문하지만 별다른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다. 영제는 수현의 차를 사건 당일 날 밤 봤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수현이 자신의 딸을 죽였다고 여기고는 수현과 그의 아들 서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한편 자책감에 시달려 프로야구 선수를 그만두게 만든 왼팔 마비 증상이 재발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던 수현은 영제가 설치해 놓은 덫에 걸려 다리를 심하게 다치게 된다. 주변의 만류에도 야간 당직에 나선 수현은 영제 일행에 의해 포박 당하게 되고, 영제는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수현에게 댐의 관문을 막아 호수 한복판에서 서원이 서서히 물에 잠기는 과정을 보여주며 복수를 즐긴다. 한편 역시 영제 일행에게 약물을 투입당해 마취되었던 승환은 가까스로 깨어나 서원을 구해내고, 분노한 수현은 포박을 풀고 영제와 결투를 벌인 후 댐 관문을 열게 되지만 결국 댐 수로 하류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는 참혹한 사고를 일으키게 된다. 수현은 세령과 영제, 자신의 아내 “은주”를 죽이고 마을 사람들까지 수장(水葬)시켜 버린 살인마로 현장에서 체포되어 살인을 언도받는다.

이렇게 7년 전 사건의 진실을 소설을 통해 알아가던 서원에게 아버지 수현의 사형이 집행되었으니 시신을 인수해가라는 전보가 날아온다. 시간이 지나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승환에게 사고가 벌어졌음을 짐작한 서원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맞춰 영제가 7년 전 이루지 못한 복수를 자신과 승환에게 하려는 것임을 깨닫고 영제가 기다리고 있을 폐쇄된 등대로 향한다. 과연 7년 동안 이어져 온 복수는 어떻게 결말을 맺을까?

프롤로그 첫 시작을 “나는 내 아버지의 사행집행인이었다.”라는 충격적인 문구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읽는 내내 자리를 쉬이 떠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재미와 몰입감을 느끼게 해준다. 7년 전 세령호 사건을 재연해내는 승환의 소설 부문에서는 여성작가 특유의 지나치게 세밀한 설정과 심리묘사가 지루하다 싶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탁월한 완급 조절로 긴장감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글 솜씨에 절로 경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또한 이 소설의 무대가 되고 있는 “세령호”나 “등대마을”, 그리고 끔찍했던 “세령호 사건”과 등장인물 모두 실재(實在)가 아닌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구성해낸 허구(虛構)라는 것이 도대체 믿겨지지 않는 치밀하고 사실적인 서사는 출판사 홍보문구인 “압도적이다”이란 말이 딱 제격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읽는 내내 숨 막히는 스릴과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며, 특히 어린 소녀 세령을 사고로 숨지게 한 후 그 죄책감과 스트레스에 스스로 무너져 버리는 수현의 심리 상태 묘사는 나라도 저런 상황이었다면 저렇게 괴로워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공감이 절로 들 정도로 그 생생함과 사실감이 압권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7년간 계속되어 온 복수극이 종지부를 찍는 장면을 읽고 나서야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가 있었고,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과 아쉬움에 책장을 덮지 못하고 앞 페이지들을 다시금 펼쳐보게 만든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 작품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작가는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에서 “사실(事實)”과 “진실(眞實)” 사이에는 “그러나”가 있다고 말한다. (진실의 세계는) 이야기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 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한사코 들여다봐야 하는 세계이며, 우리는 모두 (사실과 진실 사이의 괴리감을 나타내는)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사실 이면에 감춰진 진실인)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로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며,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기도 한다고 소설을 설명한다. 작가는 소설을 끝내던 날, '그러나' 우리들이 빅터 프랭클의 유명한 말인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털어놓는데, 과연 현실은 작가의 바람대로 “예스”가 가능할까. 최근에 범죄 자체만 보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 질 만한 끔찍한 살인 사건이지만 그 이면에는 절로 동정이 가는 애달프고 기가 막힌 사연이 있으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살인자들의 사연에 한번쯤은 귀 기울여 달라는 책(<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을 읽은 적이 있는데, 공감을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사건의 당사자나 가족이 아닌 이상, 또한 그 사건을 조사하고 취재하는 형사나 변호사, 기자(記者)가 아닌 이상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사실”일 뿐 사건 이면의 “진실”에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것처럼, 작가의 말대로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앞으로도 “그러나”가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이처럼 현실에서 “사실”과 “진실”이 얼마나 큰 괴리가 존재할 수 있는지, 그 괴리가 얼마나 큰 충격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 다른 책 이상의 충격과 재미를 느끼게 해준 이유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감상을 호들갑으로 시작해서 호들갑으로 마무리할 수 밖에 없게 만든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은 여성 작가에 대한 나의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것과 “정유정”이라는 작가를 새롭게 알게 해준 것을 꼽을 수 있겠다. 그녀에게 세계문학상을 수상시켜준 전작 <내 심장을 쏴라>와 앞으로 이어질 그녀의 신작들을 계속 주목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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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아저씨 제르맹
마리 사빈 로제 지음, 이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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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환갑이신 어머니께서 요새 컴퓨터를 배우신다고, 아버지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난리”라고 한다. 그동안 아버지와 내가 컴퓨터 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시길래 몇 번 가르쳐 드리려고 했지만 어렵다고 손사래를 치시더니 이번에 드디어 용기를 내셔서 동사무소에서 여는 무료 강좌에 등록을 하시고는 교육이 있거나 없거나 강의실에서 거의 살다 시피 하시고 집에 오셔서도 컴퓨터 앞을 떠날 겨를이 없으시다고 한다. 갑작스레 컴퓨터를 배우시려는 이유를 여쭸더니 며느리와 딸과 메일을 주고받는 아버지가 어찌나 부럽고 질투가 나는지 견디실 수 가 없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컴퓨터를 배워서 아들, 딸, 며느리에게 메일도 보내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도 사고, 최근 개설했다는 초등학교 동창생 모임 카페에 사진도 올리시겠다고 벌써 목표를 세우셨다고 한다. 어렵지 않으시냐고 여쭈니 할수록 더 재미있고 신기하다시며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후회가 된다고 그러신다. 대신 하루 종일 어머니께 컴퓨터를 뺏기시는 바람에 소일거리가 없어지셨다며, 하루에도 100번도 더 물어본다고 귀찮아 죽겠다고 아버지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컴퓨터 한 대 더 사드릴까요 하고 여쭤봤더니 냅둬라 저러다 말겠지 하시는데 저러다 말 기세가 아니어서 아버지 불평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컴퓨터 때문에 두 분 삶에 변화 -아버지한테는 곤욕이겠지만^^ - 가 찾아온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에 읽은 마리 사빈 로제의 <바보아저씨 제르맹(원제 La tete en friche/비채/2011년 4월)>에서 별 할 일 없이 반복되기만 하는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이 글을 깨우치고 책을 읽게 되면서 삶 자체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늦은 나이에 컴퓨터를 배우시며 즐거워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연상된 것이.  

올해 마흔 다섯의 189 센티미터, 몸무게 110 킬로그램의 거구 제르맹 샤즈는 어머니와 대판 싸우고 가출한다는 것이 기껏 자기집 마당에 카라반(caravan. 이동식 주택)에 거주하며, 선술집, 공원, 여자 친구 집을 전전하는 참 하릴없는 남자다.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를 가까이 해 본 적이 없고 어머니하고는 안 좋은 일 빼고는 이렇다 할 것을 나눠본 적이 없는 제르맹은 초등학교 시절 자신에게 온갖 면박을 주던 선생님 때문에 공부에 영 흥미를 잃어버리고 글 또한 제대로 배우지 못해 책하고는 담을 쌓고 산다. 계절에 비해 날이 너무 더웠던 어느날 월요일 햇살 좋은 오후 3시쯤 자주 다니는 공원 연못 옆 커다란 참나무 아래 벤치에 잿빛과 보랏빛이 섞인 꽃무늬 원피스에 단추를 목까지 채운 카디건을 입고 거무튀튀한 신발을 신고 앉아 있던, 곧 여든 여섯 생일이 돌아오는 할머니 “마르게리트”를 만나게 된다. 작고 아담한 - 제르맹에 비하면 왜소하기까지 한 - 이 할머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종자학 박사 출신에 교양이 차고도 넘치는, 가방에는 항상 책 한 권을 넣어 다니는 인텔리 할머니이었다. 제르맹은 비둘기에게 빵 쪼가리를 던져 자기 앞으로 불러들이는 듯한 그 아담한 할머니를 보면서 “젠장, 오늘도 잡쳤군”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자신처럼 비둘기 숫자를 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벤치 옆 그녀의 옆자리에 앉게 된다. 비둘기 이름을 붙여준다는 자신의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는 할머니의 반응을 보면서 나라는 인간도 누군가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에 감동마저 느끼게 된 제르맹, 이때부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된다. 마르게리트는 머리 속에 근육으로만 꽉 차있을 것 같은 제르맹에게 카뮈의 <페스트>를 읽어주고, 책이라면 담을 쌓고 지냈던 제르맹, 웬걸 마르케리트가 읽어주는 <페스트> 구절 구절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공원에서의 마르게리트와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면서 문장 하나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던 제르맹은 점점 글을 깨우쳐 가기 시작하고 책을 빌려보기 위해 생전 처음 도서관을 찾아 가게 되질 않나, 선술집 친구들에게 카뮈의 <페스트>를 언급해 놀라게 만들지 않나, 난생 처음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는 등 차츰 차츰 삶이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제르맹은 책 읽기에 재미를 붙여 가는데 마르게리트는 점점 시력을 잃어간다. 그런 그녀에게 거꾸로 떠듬떠듬 책을 읽어주게 된 제르맹, 그녀를 입양(?)하기로 결심한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선생님, 친구들에게 상처만을 받아온 제르맹, 먹고 마시고 여자와의 섹스 등 기본적인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중년의 그가 어느날 우연히 만난 마르게리트를 통해서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 즉 “책” - 이 책에서는 카뮈의 <페스트>,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등이 나오는데 아쉽게도 <페스트>외엔 읽어보지 못한 책이다 - 을 알아가면서 삶에 변화를 갖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 이 책은 나이, 외모, 학벌 어느 하나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두 사람이 나누는 교감과 우정을 과장스럽지 않게 담담하게 그려내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절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잔잔한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즈음 여러 공공기관들과 사회단체들이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인문학 강좌인 “희망의 인문학”을 떠올렸다. 미국 빈민 교육 활동가 “얼 쇼리스”가 주창했던, 사회적 약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성찰적 사고 능력이 필요하며, 그 능력은 인문학 교육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이 프로젝트는 1995년 노숙인, 마약중독자, 전과자, 최하층 빈민 등을 대상으로 첫 인문학 교육을 시작한 이래 현재 4개 대륙에서 50여개의 강좌가 열릴 정도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절망 뿐이었던 삶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희망의 인문학” 교육 이수자들처럼 제르맹도 어쩌면 전혀 의미 없이 반복될 수 밖에 없던 삶에 있어 충격적인 “변화”를 넘어 삶의 새로운 어떤 “희망”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그 희망은 “책”을 통해 채워 나가게 될 지적 열망이나 교양일 수도 있고, 그저 하룻밤 잠자리 대상이기만 했던 여자 친구에게서 차츰 차츰 느끼게 되었던 “사랑”일 수 도 있으며, 갑작스레 돌아가신 엄마가 남긴, 그제서야 처음 보게 된 아버지 사진과 유품들에서 난생 처음 느껴본 묘한 감정 - 어머니의 “사랑”이라 부르기에는 제르맹에게는 왠지 어색하고 낯간지럽기만 - 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제르맹의 앞으로의 삶에 희망이 될 것임에는 분명할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께서 컴퓨터 교육 받으신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드디어 내게 메일을 보내오셨다. 두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누르는, 소위 “독수리 타법”으로 치시느라고 손가락이 다 아프셨다는, 그래봤자 스무 자도 채 안 되는 짧은 메일의 마지막 문장은 “아들, 사랑한다” 였다. 보내 주신 메일의 열배 스무배 분량으로 답장을 보냈지만 어머니의 마지막 한 문장만큼 가슴을 울리는 글을 담는 데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표절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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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에드 멕베인/강/2011-04-26

 

「앨프리드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통상 AHMM으로 부른다)은 1956년부터 발간된 미스터리 문학잡지(월간)로 「앨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과 함께 미국 미스터리 문학잡지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미스터리의 대가 앨프리드 히치콕의 명성이 많은 미스터리 작가들과 미스터리 매니아들의 관심을 이끌어낸 기폭제가 되었다.

2006년 창간 50주년을 맞은 AHMM은 독자들에게 지난 50년간 AHMM에 수록된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골라달라는 공고를 냈고 독자들의 열띤 반응 속에 50주년을 기념하는 대표 작품들(단편)이 선정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 잡지의 빛나는 역사를 말해주는 50주년 기념 선집이 출간되었다. 이번에 번역 소개되는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이 바로 그 책이다. -알라딘 소개 

스릴러 영화의 거장인 "히치콕" 이름을 딴 미스터리 매거진이라니, 지난 50년간 수록된 작품들 중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들을 수록했다니 하니 가히 미스터리 백과사전이자 종합선물세트가 될만한 멋진 책이다. 

2.  조던의 아이들/로버트 A.하인라인/기적의책/2011-04-18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와 함께 SF의 황금시대를 이끈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 세대우주선 SF의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으로, 국내에서 처음 발간되는 정식 한국어판 완역본이다.

고대의 성스러운 기록에 따르면, 탐험선은 머나먼 켄타우루스를 향해 가고 있다고 했다. 탐험선은 우주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은 창조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탐험선 위쪽, 중력이 약한 곳에는 뮤티들이 숨어 있었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기괴하게 변형된 모습을 한, 인간들을 잡아먹는다는 괴물들. 그들은 악의 화신일까, 아니면 인간의 개체 수를 유지하기 위한 신의 안배일까? - 알라딘 

SF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SF 3대 거장인 하인라인의 국내 첫 정식 한국어판 완역본이라니 SF 매니아라면 그 희소성만으로도 선뜻 손이 갈 만한 그런 책이다. 요즈음 장르가 불분명한 퓨전 SF가 아닌 정통 SF의 멋과 흥취를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길 기대해본다

3. 라운드/마커스 주삭/우리교육/2011-04-11 


<책도둑>으로 전 세계 독자들을 매혹시킨 작가 마커스 주삭은 이 작품에서 '싸우는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리는 것은 물론,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만 하는 이들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 내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현실은 그러한 것'임을 그려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싸움에서 이겨야만 하는 현실의 논리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알라딘 소개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을 워낙 재미있게 봤던 터라 그의 신작이라니 반가움이 앞선다.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두 형제의 성장기가 얼마나 가슴 뭉클하게 할지 기대가 된다.
 

4. 속삭이는 자 / 도나토 카리시/시공사/2011-04-08



이탈리아의 유명한 범죄학자 도나토 카리시의 스릴러소설. 2009년 이탈리아의 가장 유력한 문학상인 프레미오 반카렐라 상(1953년 1회 수상자는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 1989년 <푸코의 진자>의 움베르토 에코, 그 외 존 그리샴, 마이클 코넬리 등 외국 작품이 수상하기도 하였다.)을 비롯하여 총 4개의 문학상을 수상, 흥행성과 동시에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역작이다. - 알라딘 소개 

아마도 지난 4월 가장 화제가 되었던 책이 이 책이 아닐까 싶다. 두 권이라 읽기에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겠지만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갖춘 보기드문 수작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결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몰입감을 보여준다니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책이다. 

5. 나가사키/에릭파이/21세기북스/2011-04-04 

 

2010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2008년 5월 「아사히 신문」을 비롯한 여러 신문에 보도된 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 부분은 집주인의 시점에서, 두 번째 부분은 불법으로 주거 침입을 한 여자의 시점에서 이야기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여자가 집주인에게 쓴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 알라딘 소개 

집주인 몰래 이불 벽장 속에 숨어 산 한 일본 여인의 충격 실화를 소재로 했다니 과연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 여자는 남의 집 벽장에 1년이나 숨어 살았을까 하고 궁금증이 든다.


이번 5월에도 제 맘대로 다섯 권 선택해봤습니다. 다른 분들 추천 도서를 읽어보니 별로 겹치지가 않아서 제가 선택한 책들은 이번에는 당첨되기 어려울 것 같군요^^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들과 가득 만나시는 행복한 5월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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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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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로망(Roman)일 것이다. 여행 방법은 제각각이어서 누구는 크루즈(Cruise)를 타고 호화스럽고 안락한 여행을 즐기기도 하고, 누구는 배낭 하나 둘러매고 유명 관광지가 아닌 세계 오지(奧地)를 누비기도 하며, 누구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미개발 국가를 찾아다니며 봉사(奉仕)하는 의미있는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좀 엉뚱한 세계 일주 여행을 이뤄낸 사람이 있다. 영국 유수의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에서 애널리스트와 트레이더로 일하며 하루에 100만 원을 넘게 벌었던, 누구도 부럽지 않을 고액 연봉자였던 한 젊은 청년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때려치우고 세계 일주에 나선 것이다. 여기까지라면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세계 여행” 이라는 시중(市中)에 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여행에세이나 그다지 다를 바 없는데, 이 청년은 전 세계 상인들을 상대로 자신이 돈을 벌어, 집을 처분하여 마련한 2만 5000 파운드(5000만원)을 5만 파운드(1억원)으로 만들어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길을 떠난 것이다. 전문 무역업자라면 모를까 애널리스트, 즉 책상에서 숫자 놀음 밖에 해보지 않았던, 무역은 학교에서 배운게 전부였을 무역 문외한(門外漢)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고 팔아 가지고 간 돈보다 2배의 돈을 벌어온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코너 우드먼”은 자신의 좌충우돌 여행을 담은 <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원제 Around the World in 80 Trades / 갤리온 / 2011년 3월)>에서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며, 모니터 앞에서 수백억 원을 거래할 때는 몰랐던 경제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된 소중한 여행이었다고 말한다.  

2004년 여름,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웬만한 젊은이들이 꿈에 그리는 연봉을 받으며 런던 중심가의 호화 아파트에 살고 있던 서른살 독신남, 즉 남부럽지 않은 화려한 싱글이었던 작가는 미국 대형 회계사에 소속된 애널리스트로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를 정리하여 최대한 비싸게 넘기는 일을 하다가 구조조정대상 회사 직원들에게 “해고 선언”을 하는 일에 환멸을 느끼고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네팔로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네팔의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경제 전문가로, 애널리스트로 일하면서 얻은 지식과 노하우를 이곳 전통시장에서도 써먹을 수 가 있을지. 그래서 돈을 벌 수 있을지 궁금했던 작가는 자신이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협상과 거래를 해보면 경제와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겁도 없이” 덤벼보기로 결심한다.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들른 모로코에서 투자액 500파운드(90만원), 거래 시한 사흘 한 이라는 원칙으로 시작한 작가는 경영관련 서적에 자주 등장하는 세 단계 협상의 기술, 즉 첫째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한계선을 정해 그 밑으로는 절대 양보하지 말고, 둘째 협상의 결과를 미리 예측해 봐서 협상 결과를 판단할 기준을 마련하며, 셋째 가격은 물론이고 무려 배송이나 화려한 포장 등 기타 계약 사항까지 포함된 ‘최상의 시나리오’를 미리 제시하는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모로코의 대표 상품인 카펫을 사고 팔아 첫 수익을 남기게 된다. 이에 용기를 얻은 작가는 본격적으로 세계 여행을 시작한다. 그런데 처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수단에서 낙타를 사서 이집트 팔겠다던 계획은 싣지도 않은 운송비만 날려 먹게 된다. 그러나 첫 실패 후 작가는 수단에서 산 커피를 남아공에서 팔고, 남아공에서 칠리소스를 사들고 인도에 가서 팔아 수익을 거두게 된다. 그렇지만 그 다음 여행지인 키르기스스탄에서의 말(馬)거래에서는 자신이 산 원가 이하로 팔게 되어 손실을 보게 된다. 이처럼 때로는 수익을 보기도 하고, 손실을 보면서 수단에서 시작한 이 여행은 남아공, 인도, 키르키스탄, 중국, 대만, 일본 등을 거쳐 멕시코까지 6개월간의 4대륙 15개국 세계 일주 여행이 계속된다. 그렇다면 작가는 자신이 목표했던 이익을 거두었을까? 결과를 얘기하면 작가는 멋지게 성공을 해냈고 이러한 흥미진진한 여행은 TV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어 영국 3대 방송사 중 하나인 채널4에서 방영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작가는 책의 말미에서 런던 금융가 사무실에서 일했던 5년보다 직접 세계를 돌아다니며 돈을 벌었던 지난 여섯 달 동안 더 많은 도전, 더 많은 성공과 실패, 그리고 더 많은 삶을 만났다고 이야기한다. 앞에서 잠깐 소개했던 것처럼 계획이 틀어졌을 때에는 실패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고, 계획이 맞아 떨어졌을 때에는 달콤한 성취감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고, 더군다나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돈이었기에 그 기분은 더욱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짧다면 짧을 6개월 간의 세계 여행이 앞으로 그의 인생에서 그가 두 배로 벌어들였다는 돈의 가치보다 수백 수천 배의 자산이 될 것이라는 고백일 것이다.  

여느 여행기와는 다른 색다른 이 책, 참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자신의 전 재산인 집까지 팔아치우고 시작한, 무모할 수 밖에 없는 여행을 과감히 도전한 작가의 용기가, 그리고 그의 젊음이 그 성공 여부를 떠나 참 부러웠다. 책으로야 작가가 워낙 재미있게 써서 나도 한번 해 볼만 하다 싶은 생각도 들지만 실제로 작가처럼 “무역”을 하면서 여행을 한다 생각해보니 무역에 “무(貿)”자도 모르는 나로서는 영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사전에 준비만 잘한다면 그렇게 불가능하지는 않지 않을까, 한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겠다 하는 생각이 스물 스물 피어난다. 아이템만 잘 찾으면 하고 나만의 여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괜한 웃음이 나왔다. 한때 유명 여행가들 책만 보기만 하면 지도를 보면서 해외 여행 계획을 세웠던, 결국 그렇게 세웠던 수많은 해외 여행 계획을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되어 버린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미있지 않은가, 이런 나이가 되어도 꿈꿔볼 수 있다는 것이. 이처럼 꿈이라는 건 다 잊어 버린 줄 만 알았던 중년의 나조차도 꿈꿔볼 수 있게 만드는 이 책이 청년 실업 문제로 갈수록 어깨가 쳐지는 우리 청년들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멋진 책이 되어 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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