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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아저씨 제르맹
마리 사빈 로제 지음, 이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내년이면 환갑이신 어머니께서 요새 컴퓨터를 배우신다고, 아버지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난리”라고 한다. 그동안 아버지와 내가 컴퓨터 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시길래 몇 번 가르쳐 드리려고 했지만 어렵다고 손사래를 치시더니 이번에 드디어 용기를 내셔서 동사무소에서 여는 무료 강좌에 등록을 하시고는 교육이 있거나 없거나 강의실에서 거의 살다 시피 하시고 집에 오셔서도 컴퓨터 앞을 떠날 겨를이 없으시다고 한다. 갑작스레 컴퓨터를 배우시려는 이유를 여쭸더니 며느리와 딸과 메일을 주고받는 아버지가 어찌나 부럽고 질투가 나는지 견디실 수 가 없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컴퓨터를 배워서 아들, 딸, 며느리에게 메일도 보내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도 사고, 최근 개설했다는 초등학교 동창생 모임 카페에 사진도 올리시겠다고 벌써 목표를 세우셨다고 한다. 어렵지 않으시냐고 여쭈니 할수록 더 재미있고 신기하다시며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후회가 된다고 그러신다. 대신 하루 종일 어머니께 컴퓨터를 뺏기시는 바람에 소일거리가 없어지셨다며, 하루에도 100번도 더 물어본다고 귀찮아 죽겠다고 아버지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컴퓨터 한 대 더 사드릴까요 하고 여쭤봤더니 냅둬라 저러다 말겠지 하시는데 저러다 말 기세가 아니어서 아버지 불평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컴퓨터 때문에 두 분 삶에 변화 -아버지한테는 곤욕이겠지만^^ - 가 찾아온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에 읽은 마리 사빈 로제의 <바보아저씨 제르맹(원제 La tete en friche/비채/2011년 4월)>에서 별 할 일 없이 반복되기만 하는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이 글을 깨우치고 책을 읽게 되면서 삶 자체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늦은 나이에 컴퓨터를 배우시며 즐거워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연상된 것이.
올해 마흔 다섯의 189 센티미터, 몸무게 110 킬로그램의 거구 제르맹 샤즈는 어머니와 대판 싸우고 가출한다는 것이 기껏 자기집 마당에 카라반(caravan. 이동식 주택)에 거주하며, 선술집, 공원, 여자 친구 집을 전전하는 참 하릴없는 남자다.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를 가까이 해 본 적이 없고 어머니하고는 안 좋은 일 빼고는 이렇다 할 것을 나눠본 적이 없는 제르맹은 초등학교 시절 자신에게 온갖 면박을 주던 선생님 때문에 공부에 영 흥미를 잃어버리고 글 또한 제대로 배우지 못해 책하고는 담을 쌓고 산다. 계절에 비해 날이 너무 더웠던 어느날 월요일 햇살 좋은 오후 3시쯤 자주 다니는 공원 연못 옆 커다란 참나무 아래 벤치에 잿빛과 보랏빛이 섞인 꽃무늬 원피스에 단추를 목까지 채운 카디건을 입고 거무튀튀한 신발을 신고 앉아 있던, 곧 여든 여섯 생일이 돌아오는 할머니 “마르게리트”를 만나게 된다. 작고 아담한 - 제르맹에 비하면 왜소하기까지 한 - 이 할머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종자학 박사 출신에 교양이 차고도 넘치는, 가방에는 항상 책 한 권을 넣어 다니는 인텔리 할머니이었다. 제르맹은 비둘기에게 빵 쪼가리를 던져 자기 앞으로 불러들이는 듯한 그 아담한 할머니를 보면서 “젠장, 오늘도 잡쳤군”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자신처럼 비둘기 숫자를 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벤치 옆 그녀의 옆자리에 앉게 된다. 비둘기 이름을 붙여준다는 자신의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는 할머니의 반응을 보면서 나라는 인간도 누군가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에 감동마저 느끼게 된 제르맹, 이때부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된다. 마르게리트는 머리 속에 근육으로만 꽉 차있을 것 같은 제르맹에게 카뮈의 <페스트>를 읽어주고, 책이라면 담을 쌓고 지냈던 제르맹, 웬걸 마르케리트가 읽어주는 <페스트> 구절 구절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공원에서의 마르게리트와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면서 문장 하나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던 제르맹은 점점 글을 깨우쳐 가기 시작하고 책을 빌려보기 위해 생전 처음 도서관을 찾아 가게 되질 않나, 선술집 친구들에게 카뮈의 <페스트>를 언급해 놀라게 만들지 않나, 난생 처음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는 등 차츰 차츰 삶이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제르맹은 책 읽기에 재미를 붙여 가는데 마르게리트는 점점 시력을 잃어간다. 그런 그녀에게 거꾸로 떠듬떠듬 책을 읽어주게 된 제르맹, 그녀를 입양(?)하기로 결심한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선생님, 친구들에게 상처만을 받아온 제르맹, 먹고 마시고 여자와의 섹스 등 기본적인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중년의 그가 어느날 우연히 만난 마르게리트를 통해서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 즉 “책” - 이 책에서는 카뮈의 <페스트>,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등이 나오는데 아쉽게도 <페스트>외엔 읽어보지 못한 책이다 - 을 알아가면서 삶에 변화를 갖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 이 책은 나이, 외모, 학벌 어느 하나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두 사람이 나누는 교감과 우정을 과장스럽지 않게 담담하게 그려내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절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잔잔한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즈음 여러 공공기관들과 사회단체들이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인문학 강좌인 “희망의 인문학”을 떠올렸다. 미국 빈민 교육 활동가 “얼 쇼리스”가 주창했던, 사회적 약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성찰적 사고 능력이 필요하며, 그 능력은 인문학 교육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이 프로젝트는 1995년 노숙인, 마약중독자, 전과자, 최하층 빈민 등을 대상으로 첫 인문학 교육을 시작한 이래 현재 4개 대륙에서 50여개의 강좌가 열릴 정도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절망 뿐이었던 삶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희망의 인문학” 교육 이수자들처럼 제르맹도 어쩌면 전혀 의미 없이 반복될 수 밖에 없던 삶에 있어 충격적인 “변화”를 넘어 삶의 새로운 어떤 “희망”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그 희망은 “책”을 통해 채워 나가게 될 지적 열망이나 교양일 수도 있고, 그저 하룻밤 잠자리 대상이기만 했던 여자 친구에게서 차츰 차츰 느끼게 되었던 “사랑”일 수 도 있으며, 갑작스레 돌아가신 엄마가 남긴, 그제서야 처음 보게 된 아버지 사진과 유품들에서 난생 처음 느껴본 묘한 감정 - 어머니의 “사랑”이라 부르기에는 제르맹에게는 왠지 어색하고 낯간지럽기만 - 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제르맹의 앞으로의 삶에 희망이 될 것임에는 분명할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께서 컴퓨터 교육 받으신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드디어 내게 메일을 보내오셨다. 두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누르는, 소위 “독수리 타법”으로 치시느라고 손가락이 다 아프셨다는, 그래봤자 스무 자도 채 안 되는 짧은 메일의 마지막 문장은 “아들, 사랑한다” 였다. 보내 주신 메일의 열배 스무배 분량으로 답장을 보냈지만 어머니의 마지막 한 문장만큼 가슴을 울리는 글을 담는 데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표절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