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이름 모중석 스릴러 클럽 27
루스 뉴먼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금발의 예쁜 소녀가 노란 불빛을 후광(後光)으로 드리우고 앞면을 바라보며 화사하게 웃고 있지만 피를 연상케 하는 붉은 빛이 허리 아래로 묽게 번져 있는 모습과 “거창한 도입부와 맥 빠지는 엔딩에 질린 당신에게 추천한다! 마지막 50페이지가 이토록 숨 가쁘게 넘어간 책은 없었다”라는 홍보 문구가 왠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게 하는 “루스 뉴먼”의 <일곱번째 이름(원제 TWISTED WING / 비채 / 2011년 3월)>을 받아들고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이 책처럼 표지 그림만으로는 전혀 추리소설이라고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충격적인 반전을 선보였던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댈 그리워하네)> - 워낙 상상도 못한 반전으로 심한 충격을 받았던 터라 “반전”이라는 문구가 들어가면 무조건 이 책과 비교하는 좋지 않은 버릇이 생겼다 - 이었다. <벚꽃 지는 ~> 과 비슷한 이미지에 이 책 또한 멋진 반전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미지만 비슷할 뿐 <벚꽃 지는~>을 능가할 반전이 있을 수 있겠어 하는 의심도 드는, 말 그대로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다 읽고 나니 <벚꽃 지는~> 만큼의 놀라움은 없었지만 기대 이상의 재미와 반전으로 단숨에 읽게 만드는 멋진 소설이었다. 

캠브리지 대학 5월 무도회가 열리던 날 밤, 친구인 “스티븐 웨더스 경감”과 술을 마시던 법의학자 “매튜 데니슨” 박사는 캠브리지 대학 에어리얼 칼리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티븐과 급히 현장으로 향한다. 현장에는 피 묻은 약식 야회복을 입고, 손과 바지에 알 수 없는 것을 잔뜩 묻힌 청년 “닉 하드캐슬”과 피로 뒤덮여 온통 새빨간 채로 몸을 웅크리고 모로 누워 있는, 충격으로 커다란 동공에는 초점이 없는 여자 “올리비아”, 바삐 움직이는 의료진과 경찰, 검시관 너머로 피 웅덩이 속에 끔찍하게 죽어있는 시신이 있었다. 시신은 이 대학 여학생인 “준 오케웨노”로 밝혀지는데, 이런 끔찍한 살인사건이 이번 처음이 아니라 벌써 세 번째였고, 두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연쇄살인사건이라고 주장하다가 사건에서 물러난, 첫 번째 살인사건 수사 담당자 스티븐 경감이 이 사건을 다시 맡게 되면서 연쇄살인사건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술렁이기 시작하고 현장에서 쏟아져 나온 시신의 내장을 다시 밀어 넣고 있던 닉을 제 1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된다. 매튜 박사는 그 당시의 충격으로 기억 상실에 빠진 유일한 목격자 올리비아가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치료하기 시작하는데, 이 부분부터 책은 첫 번째 사건 희생자인 “아만다”, 그리고 두 번째 희생자인 “일라이저” 살인 사건을 올리비아의 증언 뿐만 아니라 당시 희생자 주변 학생들의 증언들과 사건 수사 결과를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재구성해서 우리에게 제시한다. 올리비아의 기억이 점점 되살아나면서 매튜는 그녀가 일곱 개의 다른 이름, 다른 자아를 가진 해리성 인격 장애 (dissociative indentity disorder), 즉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어렸을 때부터 계속되어온 아버지의 성적 학대 때문에 그런 장애가 생긴 것을 알게 되고는 그녀를 안쓰러워한다. 세 건의 끔찍한 살인사건이 올리비아의 또 다른 인격이 저지른 살인으로 결론지어질 무렵,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매튜는 그녀가 정말 다중 인격 장애자인지를 테스트해보고 결국 그녀가 자신의 애인 닉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으로 꾸민 것을 알아낸다. 다시 수사망은 올리비아가 거짓 연극을 하면서까지 보호하려 했던 닉에게로 집중되고, 결정적인 물증이 발견되면서 닉이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지게 된다. 사건은 과연 이렇게 종결되고 말 것인가? 결론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한다.  

학생들의 증언을 직접 제시하는 한편 그런 증언들과 수사 기록을 토대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를 제시 - 책에서는 굵은 글씨체로 구별하여 표시한다 - 하는 시점 변화가 이채로운 이 책은 사실 중반 무렵 첫 번째 반전이라 할 수 있는 올리비아의 다중 인격 장애에 의한 살인으로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매튜 박사가 올리비아의 거짓 연극을 밝혀내는 두 번째 반전에서 마치 방심하다가 허를 찔리는 듯한 극적 재미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남은 범인은 올리비아가 그렇게 감싸려고 했던 “닉”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결정적인 물증과 함께 닉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장면에서 다시 한번 맥이 빠지고야 만다. 다 결론이 났는데도 아직 페이지가 남아 있어 남은 분량은 마무리를 위한 에필로그겠거니 하고 읽는데 여기에 앞에서 언급했던 “마지막 50페이지가 이토록 숨가쁘게 넘어간 책은 없었다!(스타매거진 UK)"라는 마지막 반전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다시 허를 찔리고 마는데, 이번 반전은 그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을 정도로 꽤나 단단하게 느껴진다. 그제서야 책 표지를 대할 때 느꼈던 심상치 않은 기운이 결코 잘못 느낀 것이 아닌, 화사한 표지 속 소녀의 모습이 그 무엇보다도 섬뜩한 그런 그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긴장의 완급을 조절해낸 이 작품이 작가의 처녀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고도 완벽한 구성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온다.  

어쩌면 이런 반전은 표지 그림 뿐만 아니라 제목에도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의 원제목이기도 하며 다른 곤충의 몸에 침입하여 숙주의 몸을 매우 능숙하게 의태하는 기생 곤충이라고 하는 “비틀린 날개(Twisted Wing)"도 올리비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또 다른 자아(인격)가 바로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임을 암시하지만 결국 그 암시를 제대로 뒤집어 버리는 그런 반전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한국어 제목인 ”일곱번째 이름”도 어쩌면 같은 의미로 채택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첫 번째, 두 번째 살인사건들을 전지적인 시점으로 설명하는 부분들도 어떻게 보면 모두 올리비아의 다중 인격에 초점을 맞춘 설명들 - 올리비아가 종종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기억 못하는 상황들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다른 인격이 그녀를 지배했을 때 그런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암시하는 셈이다 - 로 여겨지는데, 마치 시점과 시간대를 교차 편집하고 독자의 생각을 의도적으로 한 방향으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마치 일본 추리소설의 신경향인 ”서술 트릭“적 요소가 다분하다고 느껴졌다. 물론 작가가 ”서술트릭“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자체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벚꽃 지는~>과 더불어 마지막 반전이 “특별”한 그런 책으로 오래 기억될 멋진 추리소설을 만났다. 이 책을 읽게 되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충고(?) 한마디, 결코 마지막 50 페이지를 먼저 펼쳐보지 말기 바란다. 궁금하더라도 꾹 참고 읽는다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충격적이고 멋진 반전을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벌집을 발로 찬 소녀 1 밀레니엄 (뿔)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드디어 새롭게 출간된 “스티그 라그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러면서 이 신판본이 나오기 전이었던 지난 2009년 구판본 총 6권, 2,400 여 페이지를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책을 읽었던 일주일 내내 “밀레니엄”이라는 단어는 내 머리 속에서 가득 들어차 떠날 줄을 몰랐었고, 밤 10시 너머 잠자리에 들던 내가 한 페이지만 더 하면서 졸린 눈을 비벼 가면서 읽다 보면 어느새 새벽 2시를 훌쩍 넘기고는 자야지 하고 책을 덮다가도 아쉬움에 쉬이 잠을 못 이루던 그 일주일, 책 읽는 재미가 어떤 것인지를 다시금 깨달았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신판본의 마지막 권인 <밀레니엄 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 1 (원제 Luftslottet Som Sprangdes / 문학에디션 뿔 / 2011년 4월)>을 한참 전에 받아 들고서도 읽기를 오랫동안 망설였던 이유는 이 책을 마저 읽으면 다시는 밀레니엄을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에 쉽게 시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 책 애써 외면하다가 결국 일요일 오후 늦게 꺼내 들고만 이 책, 이미 읽어봤음에도 순식간에 내 시선을 사로잡더니 결국 5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을 다 읽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시간은 밤 11시가 넘어서였고, 2권을 마저 읽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2권이 옆에 없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밤을 꼬박 샜었을 거라는, 그랬다면 구판본 광고 문구처럼 뜬눈으로 월요일을 맞을 뻔 했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함께 들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이 책에 대한 여운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으니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을까?

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에서 자신의 아버지 “살라첸코”와 괴물 의붓오빠 “니더만”과의 혈전을 치루고 머리에 총을 맞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지만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에게 가까스로 발견되어 병원에 입원했던 “리스베트 살란데르”에 닥친 위기는 지난 2부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였지만 3부에서는 새로운, 그리고 좀 더 치명적인 위기가 다시 시작된다. KGB 출신 망명자인 리스베트의 아버지 살라첸코가 몸담았던 조직인 스웨덴 비밀 경찰 “사포”, 그 조직 내에서도 베일에 가려져 있던 특별조사분과(SAS) “섹션”이 모든 비밀을 은폐하고자 나선 것이다. 그들은 2부에서 자신의 예전 동료이자 망명한 살라첸코를 전담했던 “군나르 비에르크”가 빼돌렸던 리스베트에 관한 기밀보고서가 미카엘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그 보고서를 훔쳐내고, “엑스트룀” 검사를 매수해서 리스베트를 폭행 상해와 살인미수 등 죄명으로 기소하고 그녀를 이참에 아예 영원히 매장시켜 버리기로 음모를 꾸민다. 한편 미카엘은 자신의 여동생인 아니카에게 리스베트의 변호를 맡기고, 병원에 갖혀 있을 수 밖에 없는 리스베트를 대신하여 본격적으로 조사에 나선다. 2권에서는 병원에 같이 입원했던 살라첸코를 죽이고 시시각각 죄여오는 섹션의 음모에 맞선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해커 동료들의 멋진 활약이 펼쳐진다. 

1부가 수십 년 전 미궁 속에 빠진 과거의 살인사건을 밝혀내는 정통 추리소설에 가까웠다면, 2,3부는 여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과거사와 스웨덴 근현대사가 얽히고 설킨 마치 예전 시드니 셀던 소설처럼 음모, 서스펜스, 액션류의 복합적 장르소설의 재미를 한껏 선사한다. 2부에서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에게 처절한 복수를 했던 리스베트가 3부에서는 치명적인 부상으로 병원에 잡혀 있어 그리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해 아쉬움이 없지 않은데, 마지막에 이르러 1부에 잠깐 등장했던 그녀의 해커 동료들과 함께 섹션의 음모를 멋지게 물리치는 장면에서는 스릴과 재미 뿐만 아니라 통쾌함마저 맛볼 수 있어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3부작 하나 하나가 여느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을 능가하는 멋진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들이었음에는 틀림없지만 개인적으로 시리즈를 평가해본다면 1부<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가장 낫고, 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 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순으로 점수를 주고 싶다.  

입에 잘 붙지 않는 스웨덴식 이름, 지명, 정치, 사회 등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이야기에 푹 빠져 들어 그런 낯섬과 어색함은 까맣게 잊어버리게 만드는, 그리고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한마디로 마약(魔藥)의 중독성에 견줄만한 그런 소설로 평가하고 싶다. 아직 책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나의 호들갑스러운 이 서평이나 날밤을 샐 것이니 밤에 읽지 말고, 치질이 생길 것이니 화장실에 들고 가서 읽지 말라는 지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한 책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는 소설가 “백영옥”의 평, 흥분에 휩싸여 이 책을 읽었던 일이 생생하다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바르가스 요사”의 평들이 요란스럽고 호들갑스럽게 들리겠지만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저 평들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로운 판형과 멋진 표지로 재출간된 것은 참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계속될 "밀레니엄" 시리즈가 없다고 생각하니 못내 아쉽기만 하다. 나에게 "밀레니엄" 시리즈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그런 작품이 될 것 같다. 끝으로 헐리우드에서 대니얼 크레이그 주연으로 영화가 제작 중이라고 하는데, 원작의 재미를 다 보여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는 하고 있지 않지만, 적어도 원작의 재미를 훼손시키는 그런 졸작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NFF (New Face of Fiction)
찰스 유 지음, 조호근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수많은 SF 만화, 소설, 영화 등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타임머신(Time Machine)"이 “실재(實在)”한다면 과연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시간대(時間帶)가 어디일까?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그런 생각일 것이다. 보통은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나 또는 역사 속 유명 사건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그런데 2007년 전미도서재단에 서 선정하는 ‘35세 이하 5인’ 중 한 명으로 선발될 정도로 촉망받는 젊은 작가라는 “찰스 유”는 그의 SF 장편 소설인 <SF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남는 방법(원제 How to Live Safely in a Science Fictional Universe/시공사/2011년 4월)> 초반부(P.76)에서 이러한 물음에 대해 우리 삶에서 가장 불행했던 순간이라고 답한다. 작가는 예상할 필요가 없는, 누구나 답을 알고 있을 거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라 일견 당혹스럽까지 했지만 한번쯤 곱씹어 볼만한 답변이어서 적어도 이 책 제목만 보고 떠올렸던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원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영국식 허무 개그 때문에 읽다가 포기하고 말았었다 - 처럼 난감하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작가와 같은 이름의 주인공 “찰스 유”는 “SF세계”에서 타임머신 수리공으로 살고 있는 평범한 청년이다. 간신히 한 명의 사람이 영구적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타임머신, “TM-31 재창조 시간여행기구”에서 우주 활극물에서 구출해 낸 로봇개인 “에드”와 TM-31의 컴퓨터 유저 인터페이스의 두 가지 형태의 인격 스킨 중 하나인 여성형 “태미(TAMMY)"를 벗 삼아 10년 가까운 세월을 홀로 지내온 그는 타임머신 이용고객들의 기계가 고장나면 시공간으로 출동하여 기계를 수리하거나 또는 그들을 구해오는 한편, 역사를 바꾸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하는 고객들에게 얼마나 처절하게 노력하든,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일을 한다. 그에게는 어렸을 적 타임머신을 개발했던, 결국 어느 시공간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던 아버지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조차 멈춰버린 좁디 좁은 타임머신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마저 앗아가고 만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그립지 않다. 보통은 그렇다. 나도 그리워하고 싶다. 그리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해준다는 말은 진실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은 사실이며,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조심하지 않으면, 시간은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리고, 그 자리에 이해만을 채워 넣는다. 시간은 기계이다. 시간은 고통을 경험으로 바꿔놓는다. 순순한 정보를 가져다 편집하고, 보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번역해놓는다. 우리 삶의 사건들은 기억이라고 불리는 다른 물질로 변형되며, 이 과정에서 손실되는 것들은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다시는 편집되지 않은, 가공되기 전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로 인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선택권이 없다. - P.88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자신이 머물고 있던 타임머신이 고장나게 되자 타임머신을 수리하기 위해 자신의 시공간을 벗어나 현실 세계이자 자신의 고향인 “루프” 시티에 돌아온다. 잠시 어머니의 집에 방문하지만 어머니는 홀로그램으로 된 가족과 행복한 1시간의 저녁 식사를 무한 반복하면서 살고 있는 모습 - 상품명은 ‘폴친스키 650 1시간 형 강화 타임 루프’라고 한다 - 을 목격하고 잠시 이야기 나눈 후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다. 다음날 늦잠을 자버려 정비 완료 시간에 간신히 도착한 그는 자신이 타고온 타임머신과 똑같은 기계에서 내리는 또 다른 자신, 즉 미래의 “나”와 마주친다. 당황한 그는 엉겁결에 미래의 “나”를 총으로 쏘고 미래의 “나”가 타고 온 타임머신에 급히 올라 출발하게 된다. 현재의 “나”가 미래의 “나”를 죽이는 현상이 무한 반복하게 되는 “타임 루프(Time Loop)” 현상에 빠져 버린 그는 타임머신에서 미래의 “나” 쓴 책인 <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법>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써야 할, 또는 미래의 “나”가 쓴 이 책을 완성해나가면서 타임 루프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 여행에 나선다. 

이 책의 주요 설정인 “타임머신”과 “타임루프” - 이제는 고전 게임이 되어 버린 국산 유명 RPG “창세기전3(2001)”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하는 타임 루프를 주요 설정으로 하고 있다 - 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이미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사용되었던, 이제는 식상하다 느낄 정도로 익숙한 소재이고, 타임머신에 대한 SF 설정과 이론들, 즉 “시간시제 변환 기술”, “일반 양자 상대성”, “노비 캐비안 개체 일관성 이론” 등은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 물론 작가도 구체적인 설명은 피하고 있다 - 굳이 이해하지 않더라도 이야기(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할 것이다.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익숙한 설정과 딱히 설명이 필요 없는 이해불가의 과학적 설정들을 토대로 “시간”에 대한 범상치 않은 철학적 해석을 가미하여 전혀 색다르고 독특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시간”은 절대 바뀔 수 없는 일종의 “숙명(宿命)”과도 같은 개념으로 이해된다. 주인공은 무한 반복될 수 밖에 없는 타임루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버지와 타임머신을 개발하던 자신의 어린 시절 시간들로 더듬어 올라가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보려고 하지만 결국 아버지를 찾는 것을 포기한 채 자신이 과거의 “나”에게 총을 맞게 되는 그 시간대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셈이다. 어쩌면 아버지를 찾아내더라도 그의 삶이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앞에서 잠깐 인용한대로 시간이 흘러 손실되어버린 과거는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과거의 아버지를 찾는 것을 포기한 채 그대로 결정되어진 미래를 받아들이고야 마는 것으로 이해된다. 결정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밖에 없는 “나”의 선택, 숙명과도 같은 이런 타임 루프는 말 그대로 무한반복하기만 할까? 어쩌면 이런 반복될 상황을 경험할 또 다른 “나” 중 하나는 언젠가는 다른 선택으로 벗어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방법은 스스로 자살해버리는 수도, 아버지를 기어코 찾아내어 그 고리를 끊어버릴 수 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시공간 속으로 자신을 격리시켜 과거와 미래의 “나”가 만나는 그 접점을 무기한 연기시킬 수 도 있을 것이다. 그 단초가 주인공처럼 타임 루프 시간대에서 살고 있는 어머니 - 물론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점은 다르지만 - 가 잠시 잠깐 타임 루프를 해제하고 아들과 만나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런 멋대로의 상상이 작가의 의도는 결코 아니겠지만 타임 루프를 “불행”이 아닌 “희망”으로 바꿀 수도 있는, 숙명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국 벗어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지루하지만은 않은, 참 독특한 재미를 느끼게 해준 책이었지만 올곧이 이해하기 어려워 내 멋대로 이해해버린 그런 책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그저 SF 상상 속에서의 “시간”이 아닌 현실에서의 “시간”의 의미를 한번쯤 곱씹어 보게 만드는 점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책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종종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타임머신 존재를 부지불식간에 인지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데, 나에게도 아주 가끔은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을 보면 어쩌면 또다른 시간대의 어떤 존재가 “타임머신”을 타고 내 주변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괜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물론 말도 안되는 그런 상상이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상상, 이것이 SF 소설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2
박동선 글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혈액형 성격 감별법”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한국은 인구 분포로 보면 A형 37%, O형 28%, B형 27%, AB형 8% 순이라고 하는데, 5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성격이 이 혈액형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나와 같은 혈액형을 가지고 있는 A형 1,800 만여 명이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종종 뜬금없이 A형이냐고 물어오는 여사원에게 맞다고 그러면 “거봐, 거봐” 하면서 쑥덕쑥덕(?)대는 여사원들이나 검색 사이트에서 “혈액형”이라고 검색어를 입력하면 수백 수천 개 쏟아져 나오는 각종 게시글이나 웹툰 등을 보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 내 성격을 족집게처럼 맞추지 하며 깜짝 놀랄 때가 종종 있어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재미로 한번쯤은 알아 두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쳐돌았군맨”이라는 재미있는 필명을 가진 박동선의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2(소담출판사/2011년 5월)>을 읽게 된 이유가 바로 그런 “재미”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 혈액형을 검색하면 자주 만나게 되는 만화 캐릭터, 즉 동글동글한 머리와 짧은 팔다리, 얼굴에 혈액형을 크게 그려 넣은 귀여운 이미지의 캐릭터가 바로 이 만화의 주인공들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이미 이 만화의 캐릭터에 친숙해져 있는 셈이다. 책 첫 페이지부터 이 책의 캐릭터, 즉 혈액형별 성격 유형에 대해 설명한다. 내 혈액형인 “A"형은 

친절, 섬세, 온화
자신이 만든 삶의 규칙이나 틀에 맞춰 생활하려 노력한다. 상대방을 잘 배려하고 주위 환경의 급격한 변화나 인간관계의 갈등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굉장히 신중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완벽주의자가 많다. 인내심이 강하고 감정 절제가 뛰어나다. 

으로 설명한다. 신중한 편이긴 해도 “완벽주의자”까진 아닌 것 같지만 대체적으로 내 성격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본문에 들어가면 “유치원”, “학교”, “회사”, “사생활” 네 PART로 나누어 총 87가지 혈액형별 특징과 심리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한편 한편 읽다 보니 내 성격 그대로의 에피소드들이 눈에 띄는 데, 예를 들어  

- “혈액형별 상처 받는 순위”에서 A형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큰 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인간관계에서 자주 상처를 받는 내 성격 그대로다. 

- “충동구매가 심할 것 같은 혈액형”에서는 A형이 돈을 공적으로 쓸 때는 꼼꼼하지만 사적으로 쓸 때는 180도 달라진다고 설명하는데 회사 공금이나 예산을 사용할 때는 내역 하나하나 기록하고 영수증을 꼼꼼히 챙기다가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지갑에서 돈이 줄줄 새나가는 것 같으니 이것도 맞는 것 같다. 

-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인 “혈액형별 솔로들의 크리스마스 보내기” 편에서 A형은 함께 보낼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른이들의 시선 때문에 태연한 척, 약속이 있는 척, 크리스마스 날의 척척 박사님이 되며 크리스마스 나홀로 집에서 집의 케빈의 성장과정을 함께 하는 일이 수두룩하게 발생하고 나홀로 트리를 만들기도 하고, 나홀로 치킨을 시켜 먹기도 한다고 설명하는데 이럴수가........트리 만드는 것 말고는 다 크리스마스 때 혼자 해본 일이다! 

물론 나하고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에피소드들도 많은데, 

- “학교에 귀신이 나타난다면” 편에서 A형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귀신의 존재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오히려 나는 신비한 것을 좋아하고 초자연적인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AB형이 내게 맞는다. 

- “책상정리”편에서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라벨까지 붙여 관리한다는 A형보다는 잡동사니를 한 구석에 다 담아놓고 신기하게도 물건을 바로 찾아내는 AB형이 나에 더 가깝다 

- “교복입는 법” 편도 마찬가지이다. A형은 교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교복을 단정히 입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오히려 패션 감각이 좋은 편(이 부분은 나랑 전혀 안 맞지만)이지만 사사롭게 교복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AB형이 더 가깝다. 

이처럼 책을 읽다 보니 내 성격이 A형보다는 AB형에 가까운 것들이 많아 혹 혈액형 검사를 다시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면서 책장을 덮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혈액형별 에피소드들은 말 그대로 “과학적”인 것이 아닌 그저 “재미”를 위한 것일 테다. 또한 "사람을 알아가는 데 애정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인간관계에 있어 중요한 것은 혈액형이나 궁합(宮合), 관상(觀相) 등 미리 정해져 있는 운명이나 선입견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한 시간과 경험일 것이다. 그래도  유치하다거나 비과학적이라고 해서 이 책을 멀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책의 캐릭터 하나하나가 내 블로그에 퍼담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앙증맞으며, 에피소드들도  주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눠볼 만한 가볍고 재미있는 화제꺼리로는 충분히 가치가 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성은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세요”- 일설에는 케이크가 아닌 고기라는 말도 있다. - 라는 말 때문에 프랑스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어 결국 남편 루이 16세와 함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는 만화, 소설, 영화 등의 단골 소재로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사치, 낭비, 향락의 대명사로, 고국(오스트리아)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한 프랑스의 배신자로, 아들과 근친상간까지 저지른 온갖 추문의 주인공으로까지 폄하되는가 하면, 정치적 모략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비로 동정 받기도 한다(네이버 캐스트 “혁명의 불길 속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2009.5.16. 발췌). 이처럼 그녀는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지만 루이 16세와의 사이에 4명을 두었다는 그녀의 자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장녀였던 공주 마리 테레즈는 혁명의 혼란 속에서도 살아남아 성인이 되어 훗날 앙굴렘 공작 부인(公妃)이 되었지만, 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세자가 되었던 차남 루이 17세 “루이 샤를”은 “탕플 탑(Tour du Temple)”에 유폐되어 힘든 감옥생활과 부모의 죽음에 대한 충격 등으로 건강이 나빠져 1795년 겨우 10살의 나이로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루이 17세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죽기 몇 달 전 부터 죽은 당일까지의 행적이 기록되거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루이 17세가 프랑스 귀족이나 왕당파의 도움을 받아 감옥을 탈출해 도피해 무사히 살아있으며, 그날 죽은 아이는 루이 17세와 닮은 대역이었다는 등 온갖 추측과 소문이 무성했다고 하며, 루이 17세 사후 수십 년 동안 자신이 루이 17세라고 주장한 남성이 30 여명이 넘을 정도였다고 한다(위키디피아 백과사전 발췌). “루이스 베이어드”의 <검은 계단(원제 THE BLACK TOWER/비채/2011년 4월)>는 바로 이런 루이 17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소재로 한 흥미롭고 재미있는 팩션 미스터리 소설이다. 

나폴레옹이 물러가고 루이 18세가 즉위한지 23년째가 되는 해인 1818년 3월 23일 프랑스 파리, 의대에서 성병학(性病學)을 가르치는 “나(엑토르 카르팡티에)”는 산책길 낡은 우물 옆자리에서 구걸하던 걸인 “바르두”가 무례하게도 빵을 달라며 자신의 집으로 쳐들어 오는 불쾌한 일을 당한다. 알고 봤더니 경찰 비스무리한 일을 하는, 신문 지상에도 여러 번 이름이 오르내린 “비도크”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나에게 길거리에서 살해당한 “크레티앵 르블랑”이라는 사람의 옷에서 나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쪽지가 발견되었다면서 나를 용의자로 수사하기 위해 방문했다는 것이다. 비도크와 함께 검시소에 가서 르블랑의 시체를 확인해봤지만 전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의 옷에서 왜 “카르팡티에 박사”라는 이름이 나왔을까? 이렇게 우연찮은 기회로 드보크와 함께 수사해 나선 나는 쪽지에 적힌 자신의 이름이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한때 의사였던 아버지를 지칭하는 것임을, 또한 아버지가 “검은탑”이라고 불리우던 “탕플탑”에 유폐되었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자녀들인 왕세자 루이 17세와 마리 테레즈의 주치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드보크는 주변을 탐문 수사하던 중 르블랑에게 편지와 소포를 보냈던 인물인 “테팍”의 소재를 알게 되고는 나와 함께 그곳을 찾아가지만 괴한들에 의해 테팍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급하게 범인들의 뒤를 쫓지만 그만 놓치고야 만다. 현장을 수습하고 테팍의 집에 방문한 드보크와 나는 그 집에서 정원 일을 하던 한 청년을 만나게 된다. 그 청년의 이름은 바로 탕플탑에서 죽었다고 알려진 루이 17세와 같은 이름인 “루이 샤를”이었다. 이 청년이 바로 루이 17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나는 그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와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한때는 궁전이었지만 지금은 공원이 되어 버린 “뤽상부르” 공원 및 이곳저곳을 산책하지만 청년은 전혀 기억을 해내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누군가의 방화(放火)로 자신의 집에 화재가 발생하여 어머니까지 잃게 된다. 아버지가 남긴 루이 17세와 마리 테레즈에 대한 기록과 서서히 돌아오는 루이 샤를의 기억으로 그가 루이 17세라고 확신한 나와 드보크는 그를 확인받기 위해 역시 탕플 탑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그의 친누나이자 앙굴렘 공작 부인, 즉 마리 테레즈 앞에 데려가게 된다. 과연 그는 죽었다고 알려진 루이 17세일까 아니면 30여명이나 등장했다는 가짜 중의 하나일까? 

루이 17세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실(Fact)”을 실제로는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소설적 허구(Fiction)”로 풀어내는 전형적인 팩션(Faction) 소설인 이 책은 루이 17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라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식상할 법도 한 이야기를 추리 소설적 플롯으로 절묘하게 풀어내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서사(敍事)를 훌륭하게 창조해냈다. 이러한 서사도 참 탁월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이 책의 주인공인 “비도크”에 대한 설정에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 물론 경찰 비스무리한 일이라는 표현으로 어느 정도 경찰의 틀에 벗어난 인물임을 사전에 짐작케 하지만 - 전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고 안하무인까지 한 성격에 용의자를 윽박지르는 것은 물론 때론 고문과 폭력도 서슴치 않는 범죄자의 면면과 날카로운 직관력과 추리력이라는 탐정의 면면 또한 갖추고 있는, 즉 범죄자와 탐정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갖추고 있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비도크가 작가가 창조해낸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한번 놀라게 만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프랑수아 외젠 비도크(1775~1857)는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셜록 홈즈”와 “아르센 루팡”의 모델이며 에드거 앨런 포, 애거서 크리스티,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찰스 디킨스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작품의 모델로 삼았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라고 한다. 원래 악명 높은 범죄자이자 탈옥의 명수로도 이름났던 그는 자신에게 자유를 보장해주는 대가로 범죄사회의 숨은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경찰이 받아들여 사법경찰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1817년 한 해 동안 단 12명의 보좌관만으로 800명 이상의 범죄자를 검거했을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며, 오늘날에는 프랑스의 치안경찰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인물이라고 한다. 이처럼 19세기 초에 실존했던 유명 인물이 그 당시 가장 유명하고 미스터리한 사건을 직접 해결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절로 구미가 당기는 흥미 있는 설정이라 할 수 있지만, 때로는 독이 될 수 도 있는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이미 다 아는 내용과 인물”이라는 설정이 안전한 성공을 가져오는 장점이 될 수 있겠지만, 같은 소재와 인물이 등장하는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이 없다면 오히려 치명적인 단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데, 종종 유명 영화의 “리메이크” 작품이 실패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익숙한 소재와 인물을 선택했음에도 전혀 식상함이 혀 느껴지지 않는, 기존 작품과는 차별화된 색다르고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해내는 작가의 능력에 절로 경탄이 터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렉산더 뒤마의 <철가면>이 줄곧 연상되었는데, 책 뒤 표지에 있는 “19세기 독자들이 알렉산더 뒤마의 작품을 만났을 때의 충격이 이러했을까? <월스트리트저널>” 이라는 문구를 보니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뒤마의 <삼총사>나 <철가면>처럼 흥미와 재미, 그리고 고전소설과 같은 품격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수준 높은 팩션 소설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과연 루이 17세는 이 책처럼 죽지 않고 살아 있었을까?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루이 17세가 죽고 난 뒤 수많은 가짜 루이 17세가 등장했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진짜 루이 17세로 인정받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루이 17세의 심장이 우연찮게 등장하는데, 부검의 중 한 명이 몰래 보관해오던 심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파리 대주교 등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프랑스 왕실의 묘지와 예배당으로 사용되어온 생 드니 기념회로 전해져 그곳에서 지금까지 보관해왔다고 한다. 이 심장도 오랫동안 수많은 음모설과 구설수를 낳으며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마침내 2001년 DNA 분석 결과 심장의 주인공이 마리 테레즈의 모계 혈통, 즉 마리 앙투아네트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즉 루이 17세는 실제 역사대로 10세의 어린 나이에 탕플 탑에서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실제가 소설보다 싱겁게 결말이 난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