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SF 만화, 소설, 영화 등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타임머신(Time Machine)"이 “실재(實在)”한다면 과연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시간대(時間帶)가 어디일까?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그런 생각일 것이다. 보통은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나 또는 역사 속 유명 사건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그런데 2007년 전미도서재단에 서 선정하는 ‘35세 이하 5인’ 중 한 명으로 선발될 정도로 촉망받는 젊은 작가라는 “찰스 유”는 그의 SF 장편 소설인 <SF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남는 방법(원제 How to Live Safely in a Science Fictional Universe/시공사/2011년 4월)> 초반부(P.76)에서 이러한 물음에 대해 우리 삶에서 가장 불행했던 순간이라고 답한다. 작가는 예상할 필요가 없는, 누구나 답을 알고 있을 거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라 일견 당혹스럽까지 했지만 한번쯤 곱씹어 볼만한 답변이어서 적어도 이 책 제목만 보고 떠올렸던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원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영국식 허무 개그 때문에 읽다가 포기하고 말았었다 - 처럼 난감하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작가와 같은 이름의 주인공 “찰스 유”는 “SF세계”에서 타임머신 수리공으로 살고 있는 평범한 청년이다. 간신히 한 명의 사람이 영구적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타임머신, “TM-31 재창조 시간여행기구”에서 우주 활극물에서 구출해 낸 로봇개인 “에드”와 TM-31의 컴퓨터 유저 인터페이스의 두 가지 형태의 인격 스킨 중 하나인 여성형 “태미(TAMMY)"를 벗 삼아 10년 가까운 세월을 홀로 지내온 그는 타임머신 이용고객들의 기계가 고장나면 시공간으로 출동하여 기계를 수리하거나 또는 그들을 구해오는 한편, 역사를 바꾸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하는 고객들에게 얼마나 처절하게 노력하든,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일을 한다. 그에게는 어렸을 적 타임머신을 개발했던, 결국 어느 시공간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던 아버지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조차 멈춰버린 좁디 좁은 타임머신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마저 앗아가고 만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그립지 않다. 보통은 그렇다. 나도 그리워하고 싶다. 그리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해준다는 말은 진실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은 사실이며,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조심하지 않으면, 시간은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리고, 그 자리에 이해만을 채워 넣는다. 시간은 기계이다. 시간은 고통을 경험으로 바꿔놓는다. 순순한 정보를 가져다 편집하고, 보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번역해놓는다. 우리 삶의 사건들은 기억이라고 불리는 다른 물질로 변형되며, 이 과정에서 손실되는 것들은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다시는 편집되지 않은, 가공되기 전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로 인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선택권이 없다. - P.88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자신이 머물고 있던 타임머신이 고장나게 되자 타임머신을 수리하기 위해 자신의 시공간을 벗어나 현실 세계이자 자신의 고향인 “루프” 시티에 돌아온다. 잠시 어머니의 집에 방문하지만 어머니는 홀로그램으로 된 가족과 행복한 1시간의 저녁 식사를 무한 반복하면서 살고 있는 모습 - 상품명은 ‘폴친스키 650 1시간 형 강화 타임 루프’라고 한다 - 을 목격하고 잠시 이야기 나눈 후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다. 다음날 늦잠을 자버려 정비 완료 시간에 간신히 도착한 그는 자신이 타고온 타임머신과 똑같은 기계에서 내리는 또 다른 자신, 즉 미래의 “나”와 마주친다. 당황한 그는 엉겁결에 미래의 “나”를 총으로 쏘고 미래의 “나”가 타고 온 타임머신에 급히 올라 출발하게 된다. 현재의 “나”가 미래의 “나”를 죽이는 현상이 무한 반복하게 되는 “타임 루프(Time Loop)” 현상에 빠져 버린 그는 타임머신에서 미래의 “나” 쓴 책인 <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법>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써야 할, 또는 미래의 “나”가 쓴 이 책을 완성해나가면서 타임 루프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 여행에 나선다.
이 책의 주요 설정인 “타임머신”과 “타임루프” - 이제는 고전 게임이 되어 버린 국산 유명 RPG “창세기전3(2001)”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하는 타임 루프를 주요 설정으로 하고 있다 - 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이미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사용되었던, 이제는 식상하다 느낄 정도로 익숙한 소재이고, 타임머신에 대한 SF 설정과 이론들, 즉 “시간시제 변환 기술”, “일반 양자 상대성”, “노비 캐비안 개체 일관성 이론” 등은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 물론 작가도 구체적인 설명은 피하고 있다 - 굳이 이해하지 않더라도 이야기(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할 것이다.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익숙한 설정과 딱히 설명이 필요 없는 이해불가의 과학적 설정들을 토대로 “시간”에 대한 범상치 않은 철학적 해석을 가미하여 전혀 색다르고 독특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시간”은 절대 바뀔 수 없는 일종의 “숙명(宿命)”과도 같은 개념으로 이해된다. 주인공은 무한 반복될 수 밖에 없는 타임루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버지와 타임머신을 개발하던 자신의 어린 시절 시간들로 더듬어 올라가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보려고 하지만 결국 아버지를 찾는 것을 포기한 채 자신이 과거의 “나”에게 총을 맞게 되는 그 시간대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셈이다. 어쩌면 아버지를 찾아내더라도 그의 삶이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앞에서 잠깐 인용한대로 시간이 흘러 손실되어버린 과거는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과거의 아버지를 찾는 것을 포기한 채 그대로 결정되어진 미래를 받아들이고야 마는 것으로 이해된다. 결정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밖에 없는 “나”의 선택, 숙명과도 같은 이런 타임 루프는 말 그대로 무한반복하기만 할까? 어쩌면 이런 반복될 상황을 경험할 또 다른 “나” 중 하나는 언젠가는 다른 선택으로 벗어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방법은 스스로 자살해버리는 수도, 아버지를 기어코 찾아내어 그 고리를 끊어버릴 수 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시공간 속으로 자신을 격리시켜 과거와 미래의 “나”가 만나는 그 접점을 무기한 연기시킬 수 도 있을 것이다. 그 단초가 주인공처럼 타임 루프 시간대에서 살고 있는 어머니 - 물론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점은 다르지만 - 가 잠시 잠깐 타임 루프를 해제하고 아들과 만나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런 멋대로의 상상이 작가의 의도는 결코 아니겠지만 타임 루프를 “불행”이 아닌 “희망”으로 바꿀 수도 있는, 숙명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국 벗어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지루하지만은 않은, 참 독특한 재미를 느끼게 해준 책이었지만 올곧이 이해하기 어려워 내 멋대로 이해해버린 그런 책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그저 SF 상상 속에서의 “시간”이 아닌 현실에서의 “시간”의 의미를 한번쯤 곱씹어 보게 만드는 점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책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종종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타임머신 존재를 부지불식간에 인지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데, 나에게도 아주 가끔은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을 보면 어쩌면 또다른 시간대의 어떤 존재가 “타임머신”을 타고 내 주변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괜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물론 말도 안되는 그런 상상이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상상, 이것이 SF 소설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