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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이름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7
루스 뉴먼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금발의 예쁜 소녀가 노란 불빛을 후광(後光)으로 드리우고 앞면을 바라보며 화사하게 웃고 있지만 피를 연상케 하는 붉은 빛이 허리 아래로 묽게 번져 있는 모습과 “거창한 도입부와 맥 빠지는 엔딩에 질린 당신에게 추천한다! 마지막 50페이지가 이토록 숨 가쁘게 넘어간 책은 없었다”라는 홍보 문구가 왠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게 하는 “루스 뉴먼”의 <일곱번째 이름(원제 TWISTED WING / 비채 / 2011년 3월)>을 받아들고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이 책처럼 표지 그림만으로는 전혀 추리소설이라고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충격적인 반전을 선보였던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댈 그리워하네)> - 워낙 상상도 못한 반전으로 심한 충격을 받았던 터라 “반전”이라는 문구가 들어가면 무조건 이 책과 비교하는 좋지 않은 버릇이 생겼다 - 이었다. <벚꽃 지는 ~> 과 비슷한 이미지에 이 책 또한 멋진 반전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미지만 비슷할 뿐 <벚꽃 지는~>을 능가할 반전이 있을 수 있겠어 하는 의심도 드는, 말 그대로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다 읽고 나니 <벚꽃 지는~> 만큼의 놀라움은 없었지만 기대 이상의 재미와 반전으로 단숨에 읽게 만드는 멋진 소설이었다.
캠브리지 대학 5월 무도회가 열리던 날 밤, 친구인 “스티븐 웨더스 경감”과 술을 마시던 법의학자 “매튜 데니슨” 박사는 캠브리지 대학 에어리얼 칼리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티븐과 급히 현장으로 향한다. 현장에는 피 묻은 약식 야회복을 입고, 손과 바지에 알 수 없는 것을 잔뜩 묻힌 청년 “닉 하드캐슬”과 피로 뒤덮여 온통 새빨간 채로 몸을 웅크리고 모로 누워 있는, 충격으로 커다란 동공에는 초점이 없는 여자 “올리비아”, 바삐 움직이는 의료진과 경찰, 검시관 너머로 피 웅덩이 속에 끔찍하게 죽어있는 시신이 있었다. 시신은 이 대학 여학생인 “준 오케웨노”로 밝혀지는데, 이런 끔찍한 살인사건이 이번 처음이 아니라 벌써 세 번째였고, 두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연쇄살인사건이라고 주장하다가 사건에서 물러난, 첫 번째 살인사건 수사 담당자 스티븐 경감이 이 사건을 다시 맡게 되면서 연쇄살인사건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술렁이기 시작하고 현장에서 쏟아져 나온 시신의 내장을 다시 밀어 넣고 있던 닉을 제 1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된다. 매튜 박사는 그 당시의 충격으로 기억 상실에 빠진 유일한 목격자 올리비아가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치료하기 시작하는데, 이 부분부터 책은 첫 번째 사건 희생자인 “아만다”, 그리고 두 번째 희생자인 “일라이저” 살인 사건을 올리비아의 증언 뿐만 아니라 당시 희생자 주변 학생들의 증언들과 사건 수사 결과를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재구성해서 우리에게 제시한다. 올리비아의 기억이 점점 되살아나면서 매튜는 그녀가 일곱 개의 다른 이름, 다른 자아를 가진 해리성 인격 장애 (dissociative indentity disorder), 즉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어렸을 때부터 계속되어온 아버지의 성적 학대 때문에 그런 장애가 생긴 것을 알게 되고는 그녀를 안쓰러워한다. 세 건의 끔찍한 살인사건이 올리비아의 또 다른 인격이 저지른 살인으로 결론지어질 무렵,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매튜는 그녀가 정말 다중 인격 장애자인지를 테스트해보고 결국 그녀가 자신의 애인 닉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으로 꾸민 것을 알아낸다. 다시 수사망은 올리비아가 거짓 연극을 하면서까지 보호하려 했던 닉에게로 집중되고, 결정적인 물증이 발견되면서 닉이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지게 된다. 사건은 과연 이렇게 종결되고 말 것인가? 결론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한다.
학생들의 증언을 직접 제시하는 한편 그런 증언들과 수사 기록을 토대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를 제시 - 책에서는 굵은 글씨체로 구별하여 표시한다 - 하는 시점 변화가 이채로운 이 책은 사실 중반 무렵 첫 번째 반전이라 할 수 있는 올리비아의 다중 인격 장애에 의한 살인으로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매튜 박사가 올리비아의 거짓 연극을 밝혀내는 두 번째 반전에서 마치 방심하다가 허를 찔리는 듯한 극적 재미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남은 범인은 올리비아가 그렇게 감싸려고 했던 “닉”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결정적인 물증과 함께 닉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장면에서 다시 한번 맥이 빠지고야 만다. 다 결론이 났는데도 아직 페이지가 남아 있어 남은 분량은 마무리를 위한 에필로그겠거니 하고 읽는데 여기에 앞에서 언급했던 “마지막 50페이지가 이토록 숨가쁘게 넘어간 책은 없었다!(스타매거진 UK)"라는 마지막 반전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다시 허를 찔리고 마는데, 이번 반전은 그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을 정도로 꽤나 단단하게 느껴진다. 그제서야 책 표지를 대할 때 느꼈던 심상치 않은 기운이 결코 잘못 느낀 것이 아닌, 화사한 표지 속 소녀의 모습이 그 무엇보다도 섬뜩한 그런 그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긴장의 완급을 조절해낸 이 작품이 작가의 처녀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고도 완벽한 구성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온다.
어쩌면 이런 반전은 표지 그림 뿐만 아니라 제목에도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의 원제목이기도 하며 다른 곤충의 몸에 침입하여 숙주의 몸을 매우 능숙하게 의태하는 기생 곤충이라고 하는 “비틀린 날개(Twisted Wing)"도 올리비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또 다른 자아(인격)가 바로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임을 암시하지만 결국 그 암시를 제대로 뒤집어 버리는 그런 반전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한국어 제목인 ”일곱번째 이름”도 어쩌면 같은 의미로 채택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첫 번째, 두 번째 살인사건들을 전지적인 시점으로 설명하는 부분들도 어떻게 보면 모두 올리비아의 다중 인격에 초점을 맞춘 설명들 - 올리비아가 종종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기억 못하는 상황들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다른 인격이 그녀를 지배했을 때 그런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암시하는 셈이다 - 로 여겨지는데, 마치 시점과 시간대를 교차 편집하고 독자의 생각을 의도적으로 한 방향으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마치 일본 추리소설의 신경향인 ”서술 트릭“적 요소가 다분하다고 느껴졌다. 물론 작가가 ”서술트릭“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자체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벚꽃 지는~>과 더불어 마지막 반전이 “특별”한 그런 책으로 오래 기억될 멋진 추리소설을 만났다. 이 책을 읽게 되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충고(?) 한마디, 결코 마지막 50 페이지를 먼저 펼쳐보지 말기 바란다. 궁금하더라도 꾹 참고 읽는다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충격적이고 멋진 반전을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