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성은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세요”- 일설에는 케이크가 아닌 고기라는 말도 있다. - 라는 말 때문에 프랑스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어 결국 남편 루이 16세와 함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는 만화, 소설, 영화 등의 단골 소재로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사치, 낭비, 향락의 대명사로, 고국(오스트리아)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한 프랑스의 배신자로, 아들과 근친상간까지 저지른 온갖 추문의 주인공으로까지 폄하되는가 하면, 정치적 모략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비로 동정 받기도 한다(네이버 캐스트 “혁명의 불길 속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2009.5.16. 발췌). 이처럼 그녀는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지만 루이 16세와의 사이에 4명을 두었다는 그녀의 자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장녀였던 공주 마리 테레즈는 혁명의 혼란 속에서도 살아남아 성인이 되어 훗날 앙굴렘 공작 부인(公妃)이 되었지만, 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세자가 되었던 차남 루이 17세 “루이 샤를”은 “탕플 탑(Tour du Temple)”에 유폐되어 힘든 감옥생활과 부모의 죽음에 대한 충격 등으로 건강이 나빠져 1795년 겨우 10살의 나이로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루이 17세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죽기 몇 달 전 부터 죽은 당일까지의 행적이 기록되거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루이 17세가 프랑스 귀족이나 왕당파의 도움을 받아 감옥을 탈출해 도피해 무사히 살아있으며, 그날 죽은 아이는 루이 17세와 닮은 대역이었다는 등 온갖 추측과 소문이 무성했다고 하며, 루이 17세 사후 수십 년 동안 자신이 루이 17세라고 주장한 남성이 30 여명이 넘을 정도였다고 한다(위키디피아 백과사전 발췌). “루이스 베이어드”의 <검은 계단(원제 THE BLACK TOWER/비채/2011년 4월)>는 바로 이런 루이 17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소재로 한 흥미롭고 재미있는 팩션 미스터리 소설이다. 

나폴레옹이 물러가고 루이 18세가 즉위한지 23년째가 되는 해인 1818년 3월 23일 프랑스 파리, 의대에서 성병학(性病學)을 가르치는 “나(엑토르 카르팡티에)”는 산책길 낡은 우물 옆자리에서 구걸하던 걸인 “바르두”가 무례하게도 빵을 달라며 자신의 집으로 쳐들어 오는 불쾌한 일을 당한다. 알고 봤더니 경찰 비스무리한 일을 하는, 신문 지상에도 여러 번 이름이 오르내린 “비도크”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나에게 길거리에서 살해당한 “크레티앵 르블랑”이라는 사람의 옷에서 나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쪽지가 발견되었다면서 나를 용의자로 수사하기 위해 방문했다는 것이다. 비도크와 함께 검시소에 가서 르블랑의 시체를 확인해봤지만 전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의 옷에서 왜 “카르팡티에 박사”라는 이름이 나왔을까? 이렇게 우연찮은 기회로 드보크와 함께 수사해 나선 나는 쪽지에 적힌 자신의 이름이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한때 의사였던 아버지를 지칭하는 것임을, 또한 아버지가 “검은탑”이라고 불리우던 “탕플탑”에 유폐되었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자녀들인 왕세자 루이 17세와 마리 테레즈의 주치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드보크는 주변을 탐문 수사하던 중 르블랑에게 편지와 소포를 보냈던 인물인 “테팍”의 소재를 알게 되고는 나와 함께 그곳을 찾아가지만 괴한들에 의해 테팍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급하게 범인들의 뒤를 쫓지만 그만 놓치고야 만다. 현장을 수습하고 테팍의 집에 방문한 드보크와 나는 그 집에서 정원 일을 하던 한 청년을 만나게 된다. 그 청년의 이름은 바로 탕플탑에서 죽었다고 알려진 루이 17세와 같은 이름인 “루이 샤를”이었다. 이 청년이 바로 루이 17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나는 그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와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한때는 궁전이었지만 지금은 공원이 되어 버린 “뤽상부르” 공원 및 이곳저곳을 산책하지만 청년은 전혀 기억을 해내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누군가의 방화(放火)로 자신의 집에 화재가 발생하여 어머니까지 잃게 된다. 아버지가 남긴 루이 17세와 마리 테레즈에 대한 기록과 서서히 돌아오는 루이 샤를의 기억으로 그가 루이 17세라고 확신한 나와 드보크는 그를 확인받기 위해 역시 탕플 탑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그의 친누나이자 앙굴렘 공작 부인, 즉 마리 테레즈 앞에 데려가게 된다. 과연 그는 죽었다고 알려진 루이 17세일까 아니면 30여명이나 등장했다는 가짜 중의 하나일까? 

루이 17세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실(Fact)”을 실제로는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소설적 허구(Fiction)”로 풀어내는 전형적인 팩션(Faction) 소설인 이 책은 루이 17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라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식상할 법도 한 이야기를 추리 소설적 플롯으로 절묘하게 풀어내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서사(敍事)를 훌륭하게 창조해냈다. 이러한 서사도 참 탁월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이 책의 주인공인 “비도크”에 대한 설정에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 물론 경찰 비스무리한 일이라는 표현으로 어느 정도 경찰의 틀에 벗어난 인물임을 사전에 짐작케 하지만 - 전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고 안하무인까지 한 성격에 용의자를 윽박지르는 것은 물론 때론 고문과 폭력도 서슴치 않는 범죄자의 면면과 날카로운 직관력과 추리력이라는 탐정의 면면 또한 갖추고 있는, 즉 범죄자와 탐정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갖추고 있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비도크가 작가가 창조해낸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한번 놀라게 만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프랑수아 외젠 비도크(1775~1857)는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셜록 홈즈”와 “아르센 루팡”의 모델이며 에드거 앨런 포, 애거서 크리스티,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찰스 디킨스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작품의 모델로 삼았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라고 한다. 원래 악명 높은 범죄자이자 탈옥의 명수로도 이름났던 그는 자신에게 자유를 보장해주는 대가로 범죄사회의 숨은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경찰이 받아들여 사법경찰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1817년 한 해 동안 단 12명의 보좌관만으로 800명 이상의 범죄자를 검거했을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며, 오늘날에는 프랑스의 치안경찰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인물이라고 한다. 이처럼 19세기 초에 실존했던 유명 인물이 그 당시 가장 유명하고 미스터리한 사건을 직접 해결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절로 구미가 당기는 흥미 있는 설정이라 할 수 있지만, 때로는 독이 될 수 도 있는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이미 다 아는 내용과 인물”이라는 설정이 안전한 성공을 가져오는 장점이 될 수 있겠지만, 같은 소재와 인물이 등장하는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이 없다면 오히려 치명적인 단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데, 종종 유명 영화의 “리메이크” 작품이 실패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익숙한 소재와 인물을 선택했음에도 전혀 식상함이 혀 느껴지지 않는, 기존 작품과는 차별화된 색다르고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해내는 작가의 능력에 절로 경탄이 터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렉산더 뒤마의 <철가면>이 줄곧 연상되었는데, 책 뒤 표지에 있는 “19세기 독자들이 알렉산더 뒤마의 작품을 만났을 때의 충격이 이러했을까? <월스트리트저널>” 이라는 문구를 보니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뒤마의 <삼총사>나 <철가면>처럼 흥미와 재미, 그리고 고전소설과 같은 품격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수준 높은 팩션 소설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과연 루이 17세는 이 책처럼 죽지 않고 살아 있었을까?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루이 17세가 죽고 난 뒤 수많은 가짜 루이 17세가 등장했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진짜 루이 17세로 인정받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루이 17세의 심장이 우연찮게 등장하는데, 부검의 중 한 명이 몰래 보관해오던 심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파리 대주교 등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프랑스 왕실의 묘지와 예배당으로 사용되어온 생 드니 기념회로 전해져 그곳에서 지금까지 보관해왔다고 한다. 이 심장도 오랫동안 수많은 음모설과 구설수를 낳으며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마침내 2001년 DNA 분석 결과 심장의 주인공이 마리 테레즈의 모계 혈통, 즉 마리 앙투아네트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즉 루이 17세는 실제 역사대로 10세의 어린 나이에 탕플 탑에서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실제가 소설보다 싱겁게 결말이 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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