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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간
데이비드 폴레이 지음, 신예경 옮김 / 알키 / 2011년 5월
평점 :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갈수록 인간관계에 있어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성격이 남들과 싸우는 걸 싫어해서 다툼이 일어날라 치면 자리를 먼저 피하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것도 있어 맞닥뜨려야 할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대부분은 참고 넘어가지만 정말 어떤 때는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과 사람을 비꼬는 인신공격에 울컥해서 대판 싸우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고 나서는 아무리 화가 나도 내가 좀 참을 걸 하며 후회를 하곤 한다. “참을 인(忍)자 석자면 살인(殺人)도 면한다”고 하지만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아닌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다툼을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는 어떤 묘수(妙手)는 없을까? 인기 칼럼니스트이자 연설가, 세미나지도자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데이비드 폴레이(David J. Pollay)”는 그의 저서 <3초간:눈 깜짝할 사이에 분노와 짜증을 잠재우는 감정조절의 원리(원제 The Law of the Garbage Truck /알키/2011년 5월)>에서 딱 “3초”만 참아낼 수 있다면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내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제안한다.
작가는 <들어가는 글>에서 남이 나에게 쏟아내는 무심하고, 짜증나고, 분노 섞인 말들을 씨익 웃어넘기며 깔끔하게 무시해버리는 방법을 말해주고 싶다고 말하며 이 책은 우리들이 언젠가 만날지도 모를 온갖 어려운 상황에 대비한 맞춤 답안을 제시하는 “백과사전”은 아니지만 평생 동안 활용할 수 있는 인생지침인 "3초 법칙"을 알려줄 것이며, 이 지침을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유일한 지침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일러주는 하나의 나침반으로 인식하고 활용한다면 대단히 유용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다음장을 펼쳐보니 먼저 <마음 근육 테스트>가 나온다. <1. 당신은 타인의 분노, 화, 짜증에 얼마나 휘둘리는가?>, <2. 당신은 타인에게 분노, 화, 짜증을 얼마나 쏟아내는가?> 두 가지로 나누어 각 문항에 대한 답의 정도에 따라 점수를 매겨 합산하는 형식인데 이 테스트를 해보니 나는 “타인의 감정 공격을 그런대로 잘 막아내고”는 있지만 “타인의 감정에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결과가 나온다. 둘 다 정상치보다는 한 단계 높은 수위다. 3초 법칙을 배워 타인과 소통을 잘하기 위한 기본 토대를 마련하고,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와 참아야 할 때를 구분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는 충고를 읽고서는 바로 본문에 들어갔다.
작가는 먼저 20년 전 택시를 타고 가던 중 사고가 날 뻔 한 아찔한 경험이 계기가 되어 “3초 법칙”이 탄생했다고 그 유례를 소개한다. 갑작스레 끼어 들었으면서도 먼저 화를 내는 앞 차의 운전자에게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손을 흔들어보였던 택시운전사는 의아해하는 작가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감, 분노, 짜증, 우울함 같은 쓰레기 감정을 가득 담고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쏟아버릴 때가 있으니 누군가가 얼토당토않게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더라도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고 그냥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어주고는 다른 일로 주의를 돌리면 전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이 바로 작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3초 법칙”을 만들어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3초 법칙”이란 무엇일까? 마음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몰아내는 3단계로 작가는 첫 번째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두 번째 미소를 지은 다음, 세 번째 다른 일로 주의를 돌리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계가 바로 첫 단계를 잘 이행하느냐 못하느냐 인데 이 1단계를 실행하는 데 약 3초의 시간이 소요되며, 그래서 “3초 법칙”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3초 법칙의 핵심은 '성질부리는 상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는 게 아니라, 즉 분석하지도 심사숙고하지도 토론하지도 곱씹지도 말고 그저 철저히 무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뜻 들으면 미련하게 꾹 참으라는 말로도, 또는 그냥 “X무시” 하라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작가는 사회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례들을 예로 들면서 3초 법칙 실행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중 두 가지만 예로 들어 보자.
사사건건 나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팀장을 상사로 모시고 있다면 어떨까? 하루에도 열 두 번도 더 때려치고 싶겠지만 작가는 바로 맞상대하지 말고 먼저 “자존감노트”를 만들어 보라고 말한다. 자신의 장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고, 또한 감정공격을 하는 상대가 주로 나의 어떤 면을 꼬집는지 생각하여, 그 부분에서의 내 감정을 적어 소지하고 다니면서 나를 지켜주는 주문처럼 외우라는 충고다. 그리고 상사에게 처음 감정 공격을 받았을 때는 첫 3초간 "그의 말이 맞나"를 먼저 생각해서, 자기가 잘못한 게 있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2단계인 미소 짓기로 넘어가라고 말한다. 이후 상대의 감정 공격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때에는 첫 3초간 앞서 준비했던 자존감 노트의 내용을 떠올려 이겨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구제불능 수준으로 끊임없이 신경을 건드리고 상처를 주는, 그저 무시해 버리기에는 너무 사태가 심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처할까? 작가는 먼저 그 사람이 언제 조금이라도 부드러워지는 지 관찰해보라고 말한다. 상대의 마음이 풀어진 순간을 잘 포착하여 그때 진지한 대화를 나눠 보는데, 단 그 사람에 대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그의 장점이 무엇인지 등 긍정적인 느낌에 대해 말하라는 것이다. 나의 칭찬을 들은 후 상대가 나타내는 반응에 따라 좀 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평소 나에게 나쁘게 대했던 부분에 대해 먼저 인정을 하고 사과를 한다면 이것을 받아들여 그에 대해 바라는 점을 말하고, 상대가 요새 본인이 좀 힘들다며 속마음을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이해해 주는 한편 내가 언제나 그의 지지자라는 점을 확실히 해주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여기서 “3초 법칙”의 방법은 3초간 '지금 내가 이 말을 한다고 해서 먹힐까?'를 고민해 본 후 상대가 기분이 좋아 보이면 괜찮은 징조이니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상대 표정이 어둡거나 바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으면 다른 타이밍을 노리기로 마음먹고 2단계 미소 짓기로 넘어 가라는 것이다. 역시 첫 “3초”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외에도 <나쁜 사람은 아닌데 무능하니까 답답하네요>, <너무 무기력한 사람이라 저까지 힘이 빠집니다>, <이 일을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러면 그렇지, 소문은 틀린 적이 없어요>, <제가 너무 불평이 심하다네요> 등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하여 작가가 직접 상담한 실제 사례들을 곁들여 쉽고 재미있게 대처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3초” 법칙이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우리도 이와 유사한 방법을 익히 알고 있는데, 예를 들어 화가 치밀어 오르면 심호흡을 길게 세 번 하라던가,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법이라고 잠시 그 자리를 피하고 감정 정리가 되고 난 후 차분히 대화해보라는 어른들의 충고, 또는 학창시절 종종 애용(?)했던 선생님 말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내기 신공(神功) - 종종 부작용으로 매를 맞기도 했지만 - 등등이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방법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상대방이 심한 비난과 감정 공격을 해오더라도 즉각 반응하지 말고 잠시라도 말미 - 여기서는 3초 - 를 두어 지금 상황을 판단해보고 난 후 이야기가 되는 상대라면 문제해결을 위해 대화에 나서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막무가내인 상대라면 바로 미소를 보여주고,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라는, 즉 “무시(無視)”해버리는 방법을 일러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렇게 한다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수 도 있겠지만, 가끔은 내 웃음과 화제 바꿈이 상대방을 자극 - “내 말이 웃겨?”라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주먹질을 해댈 수 도 있다 - 해 큰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설사 싸움이 나지 않더라도 구겨져 버린 내 자존심 - 그걸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이 저 친구 자존심도 없구만 하고 무시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 은 어디서 회복해야 할 지 좀 난감할 수 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3초 법칙을 시행하기 전에 미리 고려해야 하는 것들, 즉 “자존감 노트”나 대화의 “타이밍”을 잡는 방법, 내 앞에 떨어진 고통이 지상 최대의 크기로 보이더라도 실상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되뇌면서 남들도 나만큼 힘들다고 생각하라든가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뉘앙스의 대화는 시작도 하지 마라는 충고들은 비록 뻔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 번 쯤 귀담아 들을 만한 충고로 여겨진다.
이런 “자기계발류” 서적들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옳은 말들만 씌여 있어 흠잡을 만한 곳이 없는, 말 그대로 “교훈” 적인 책이지만 읽는 사람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공염불(空念佛)”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갈수록 지쳐가고 짜증만 나는 인간관계, 이 책에서 일러주는 것처럼 딱 “3초”만 더 생각해보고 행동하면 어떨까? 여기에 공감할 수 있다면 이 책, "공염불"로 끝나지 않는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