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일본에서 가장 촉망받는 차세대 작가로 일컬어진다는 “이사카 고타로”, 읽은 작품을 꼽아 보니 <사신 치바>, <종말의 바보>, <골든 슬럼버> 이렇게 세 권이었다. 세 작품 모두 장르가 다른데, <사신 치바>가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면 <종말의 바보>는 “지구 종말”을 3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로 SF와 휴머니즘이 결합한 소설이라고 볼 수 있고, 일본 총리 암살 사건에 휘말린 한 남자의 탈주기를 다룬 <골든 슬럼버>는 액션 스릴러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소설들에 대한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가볍되 무거운’이라고 한단다. 영화와 소설에 바탕을 둔, 요즘 세대들에게 ‘먹히는’ 유머와 군더더기 없는 단문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나 미스터리적 구성을 선호하는 면은 분명 가볍지만 주제는 의외로 묵직한 중량감을 자랑하고 있어 이렇게 정의한다고 하는데, 앞서 읽은 3권 모두 뛰어난 가독성과 몰입감, 재미 뿐만 아니라 잔잔한 감동까지 느꼈었던 지라 참 적절한 평가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어떤 것을 읽어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그의 신작 <바이바이 블랙버드(원제 バイバイ,ブラックバ-ド /랜덤하우스코리아/2011년 6월)>도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평범한 청년 “호시노 가즈히코”, 연애에 있어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런 청년이다. 양다리도 아니고 무려 다섯 명의 여성과 동시에 연애하고 있으니 말이다. 모든 여성들에게는 “공공의 적”이겠지만 남성들에게는 하염없이 부러움을 받을 이 청년, 빚에 쪼들려 사채를 썼다가 그만 갚지 못해 2주 후에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야 할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이 청년, “사채 회사”에 그동안 사귀었던 다섯 명의 애인들에게 이별을 고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흥미를 느낀 회사는 흔쾌히 허락한다. 단 도주의 염려가 있으니 한 사람을 동행하라는 조건을 단다. 바로 180 cm의 키에 180 kg나 나가는 “마유미”라는 여성을 말이다. 이렇게 해서 기묘한 이별 통보식이 시작된다. 마유미와 결혼하기로 해서 이별을 통보하러 왔다는 그에게 다섯 명의 애인들은 첫마디가 그들과 처음 만나게 된 사건들 또한 거짓말이었냐고 물어온다. 처음 만나러 갔을 때 이야기 만큼은 진실이라고 강변하는 그의 말을 좀처럼 믿지 않는 그녀들이지만 대체적으로 이별 통보를 쿨(Cool) - 마지막으로 찾아간 유명 여배우 애인은 이별을 거부하지만 - 하게 받아들인다. 그냥 이별만 통보하고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이 친구, 오지랖 꽤나 넓다 - 그래서 여러 여인들을 애인으로 두고 있는 것이겠지만 -. 이별 조건으로 먹기 시작한 “점보 라면”- 세숫 대야만큼 커다란 그릇에 가득 담겨진, 다 먹으면 공짜, 못 먹으면 비싼 돈을 치러야 하는 라면. 종종 음식 프로그램에 나오는 바로 그런 라면이다 - , 온 몸이 라면으로 가득찬 것 같다면서도 옆 좌석에서 애인과 영화 보러 가는 조건으로 먹고 있는 남자의 라면을 거들지 않나, 애 딸린 이혼녀에게는 선물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는 명품 백을 선물하고,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와 인사하고 싶다는 그녀의 아들을 위해 명함을 제작해서 선물하기도 하고, 로프를 타고 남의 집에 침입(?)하려는 애인을 위해 그 집에 가서 대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녀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도움까지 주면서 모든 이별 통보를 마친 호시노, 드디어 “그 버스”에 오른다. 그런데 괴물같기만 하던 마유미도 그에게 반한 걸까?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빼앗은 마유미, 시동이 잘 걸리지 않자 “열번만”이라고 말하며 시동을 계속 건다. 

미워할 래야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바람둥이” 호시노 가즈히코, 비록 애인은 다섯 명이나 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캐릭터 설정이 참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다. 이런 류의 인물을 다른 소설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데, 바로 “김용(金鏞)”의 무협 소설 <천룡팔부(天龍八部)>에 등장하는 천하의 바람둥이 “대리국왕”이다. 중국 전역에 애인을 두고 연애 여행을 다니는 이 남자도 자신을 비난하는 여인에게 “당신을 만났을 때는 다른 여인들을 떠올린 적이 한번도 없었고 당신만을 진실로 사랑했다”라고 변명하는데, 그저 성적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각 애인들을 만날 때만큼은 몸과 마음을 바쳐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그런 말이다. 역시 같은 말을 하는 호시노, 바람둥이 말 하나도 믿을 것 못된다고 하지만 그런 그의 진정성을 아는 여성들은 이별을 받아들이고, 이별을 했으면서도 그녀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려고 동분서주하는 호시노의 모습이 재미 뿐만 아니라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며, 마음 한 켠으로는 나도 저런 연애해보고 싶다는 부러움(?)까지 들게 한다. “연예인처럼 아주 멋진 건 아니라서 모두가 환호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어쩐지 끌리는, 천진난만하며 모든 행동에 계산이 없는” 그런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 그대로인, 여느 소설에서 만나기 힘든 흔하지 않은 매력을 가진 성공적인 캐릭터라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작가는 “불합리한 이별이지만, 억지로 웃고 바이바이, 라고 말해버리는, 그러한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고 말하는 데 억지스러움보다는 기발함과 재미만 느꼈으니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이런 이해 부족이라면 기분 좋게 웃어 넘길 수 있는 유쾌하고 즐거운 것이 될 것 같다.

다 읽고 나서도 계속 궁금함으로 남아 있는 건 바로 마지막에 호시노가 타게 되는 “그 버스” 이다. 작가는 호시노와 마유미와의 대화를 통해 몇 번 언급은 하지만 “그 버스”를 타면 어디로 가는지, 그 “어디”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겪는지 - 장기 밀매 또는 강제 노동 등 여러 가지가 생각나지만 -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 올라와 있는 작가 인터뷰 글도 찾아 봤지만 “그 버스”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가 없다. 일본에서 발간되었다는 ‘바이바이, 블랙버드 참고서’ 격의 책이라는<‘바이바이, 블랙버드’를 즐기는 법>에는 “그 버스”의 정체를 언급하고 있을까? 이 책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열혈 팬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다자이의 작품을 읽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켜왔지만 결국 속편격인 <바이바이, 블랙버드>를 쓰게 만들었다는 다자이 오사무의 미완성작 <굿바이> 전문을 수록하고 있다니 이 책 또한 국내에 출간되기를 바래본다. 

읽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은 “재미있다”라는 생각을 “확신”으로 바꿔 준, 그리고 그런 확신이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게 한 작품이었다. 이미 여러 작품들이 출간되어 있고, 이제 40대에 접어든 작가이니 앞으로도 많은 작품들을 선보일 것 같은데 그런 확신을 결코 져버리지 않는 멋진 작품들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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