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미트리스
앨런 글린 지음, 이은선 옮김 / 스크린셀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어 릴 적 시험 때만 되면 “머리 좋아지는 약”이라도 먹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다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지금도 홈쇼핑 채널을 돌리다 보면 “총명탕(聰明湯)” 이니 “DHA" 라느니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약과 식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뇌파 제어 기계며 호흡법, 기공술(氣功術), 명상(冥想), 암기법 등등 수많은 방법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보면 주변에서 머리 좋아져서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을 법도 한데 아직 한 명도 만난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세상에 머리 좋아지는 약이란 정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이런 약이 있다면 어떨까? 무협지(武俠誌) 주인공처럼 수 천 권의 책을 하룻밤 사이에 다 읽고 모두 외우며, 각각 1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다는 “세계 7대 수학 난제(難題)” - 미국 클레이 수학연구소(CMI)가 지난 2000년 선정한 수학분야에서 중요한 미해결 문제 7개를 일컫는 말로 '밀레니엄 문제(Millennium Problems)'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소수(素數)의 규칙성에 대한 가설인 '리만 가설(Riemann Hypothesis)' 이다 - 쯤은 몇 십 분 만에 거뜬히 해결하고, 지난 2002년 일본 도쿄대 연구팀이 슈퍼컴퓨터를 4 백 시간 동안 돌려 1조2천4백억 자리까지 계산했다는 “π”값을 암산(暗算)으로 해내게 만드는 그런 약 말이다. 물론 이런 “절대지(絶對知)”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에 보면 저승으로 가는 7단계 중에 “절대지” 단계가 있는데 그 어느 유혹보다도 극복하기 어렵다고 묘사하고 있다 - 가 과연 행복과 불행, 어떤 것을 야기할 지 서로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을 차치(且置)하고 나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신나고 즐거운 일일 것이다. 이미 영화화되어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는 “앨런 글린”의 <리미트리스(원제 The Dark Fields / 스크린셀러 / 2011년 6월)>은 바로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 실재(實在) 한다면” 이라는 상상을 소재로 한 SF 소설이다. 

출판사 외주 편집자인 “에디 스피놀라”, 출판사에서 큰 건을 의뢰받지만 석 달이 넘도록 글 한 줄 못 쓰고 허송세월을 하던 중, 9년 만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전처 “멜리사”의 오빠 “버넌 갠트”를 만난다. 이런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갠트는 고민을 해결해주겠다며 정체모를 알약을 내민다. 전직 마약 중개인인지라 마약이 아닐까 의심스러워하지만 우선 먹어보라는 겐트의 권유에 에디는 마지못해 알약을 삼킨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한 줄 도 제대로 쓰지 못했던 서문을 하룻밤 사이에 완벽하게 - 이 외에도 거지 소굴 같던 집을 말끔히 치우는 기적(?)도 일어난다 - 써내고야 만 것이다! 한 순간에 뇌의 기능을 100% 까지 끌어 올리는 이 기적의 약 "MDT-48", 그러나 약효는 단 하 룻 뿐. 이 약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던 에디는 갠트를 찾아가지만 갠트의 심부름을 다녀온 사이 그만 싸늘한 시체로 변한 갠트를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갠트의 집을 뒤져 약을 찾아낸 에디의 인생은 그때부터 180도 달라지게 된다. 사채업자 “겐나디”에게 자금을 빌려 주식 시장에 뛰어든 에디는 천재적인 두뇌 회전을 자랑하며 금세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 들여 신문에까지 그 이름이 오르내리게 된다. 이런 명성에 힘입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인수합병을 추진 중인 “칼 반 룬”이 제의를 해오고 에디의 인생은 절정에 치닫는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갠트의 동생이자 전처 멜리사가 찾아와 MDT-48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고, 그 부작용 때문에 이미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경고를 한다. 몇 시간 동안의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는 “블랙 아웃(Black Out)" 현상을 경험한 에디는 갠트의 수첩을 통해 이 약을 먼저 복용한 사람들이 전처의 말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질주하는 열차를 멈춰 세울 수는 없을뿐더러 설상가상으로 사채업자인 “겐나디” 또한 우연찮게 MDT-48을 효능을 알게 되고는 에디에게 약을 구해내라고 협박을 해온다. 겐트의 죽음으로 더 이상 약을 조달할 수 없는 에디, 과연 그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낼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참 뻔한 스토리라인이라 할 수 있는, 즉 머리 좋아지는 약이 있고 그 약으로 일생의 행운을 맞게 된 주인공, 그러나 좋은 일에 마(魔)가 당연히 끼는 법, 주인공을 위협해오는 세력 등등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상투(常套)적인 이야기 전개인데다가 “폐이퍼북”- 갱지 등 값싼 종이로 값싸게 찍어내는 도서. 물론 이 책이 갱지로 만든 책이라는 뜻이 아니고 판형이 일반 책보다는 작다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 - 형식의 작은 판형에다 작은 글씨체, 5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데도 전혀 식상함이나 지루함 없이 푹 빠져 읽게 되는 것을 보면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글솜씨가 여간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처음 약을 복용하고 말 그대로 “천재”가 되어버린 에디 - 이 글 첫 머리에 언급한 그런 “신(神)” 경지는 아니지만, 단 하루 만에 외국어 뿐만 아니라 악기에 능통해지고, 단 몇 분 만에 모든 사람들을 홀딱 반하게 만드는 놀라운 언변(言辯), 증권사 직원들이라면 바라마지 않을 단숨에 주식 패턴을 읽어내는 능력 등을 보여준다 - 의 모습에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신이 나게 만들더니, 어느새 에디를 엄습하는 약의 심각한 부작용과 사채업자의 협박과 위협에는 과연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까 가슴이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과연 내가 에디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약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아는 순간 바로 약을 끊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미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그리고 그 어떤 마약(魔藥)보다도 더 중독성이 강하다는 “성공”이라는 이름을 “맛” 본 사람이 그걸 포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기에 이 책의 결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뻔한” 스토리였지만, 그 “뻔함”을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재미와 스릴을 보여주는 이 책, 읽는 내내 책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미국과 영국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브래들리 쿠퍼”와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영화 <리미트리스>는 이 책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궁금증을 견딜 수 가 없어 영화 소개를 찾아 보았다. 마침 영화 내용을 아주 상세하게 소개한 블로그를 찾을 수 있어 책과 영화를 쉽게 비교해 볼 수 있었는데, 책과 영화의 전체 이야기 구조는 같지만 몇 가지 설정이 다르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이름이 “에디 스피놀라”가 아닌 “에디 모라”로, “버넌 갠트”가 전처의 오빠가 아니라 동생으로 나온다고 하며, 약 이름도 “NZT-48"라고 한다. 역시 헐리우드 영화답게 책보다 좀 더 과격한 액션과 사랑 장면, 그리고 아슬아슬한 스릴이 더해진다고 하는데, 결말도 영화와 책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책과 영화의 결말을 밝힐 수 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결말이 훨씬 나은 것 같다. 영화, 꼭 챙겨봐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이 가득한 심장
알렉스 로비라 셀마.프란세스 미라예스 지음, 고인경 옮김 / 비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평생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 한번 들어보지 못해 못내 서운하시다는 어머니, 너만은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아내에게 보내는 메시지나 메일 끝 인사는 “사랑해요”이지만, 아침 출근길 집을 나설 때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배웅 나오는 아내에게 “사랑해요”고 말하며 손을 흔들어 주지만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다. 사랑은 가슴속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낼 때 비로소 시작된다고 했던가. 알렉스 로비라 셀마, 프란세스 미라예스 공저의 아름다운 동화 <별이 가득한 심장(원제 Un Corazon Lleno de Estrellas/비채/2011년 6월)>는 이처럼 사랑에 대한 표현이야말로 “사랑”의 마지막 비밀이라고 이야기한다. 

1946년 프랑스 작은 도시 슬롱스빌 마을, 슬롱스빌 시립 고아원에 살고 있는 소년 “미셸”, 한 소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일본어로 '달빛'이라는 뜻의 이름인 “에리”, 그런데 어느 날 에리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원인불명의 “코마” 상태에 빠져 버린다. 상심한 미셸은 눈 덮인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다가 우연히 망토로 몸을 감싼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초라한 할머니 "에르미니아"를 만난다. 미셸이 에리가 끝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그날 아침에 일어났던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빠뜨리지 않고 모두 설명하자, 에르미니아 할머니는 에리가 아픈 이유는 고아원에 버려진 이후 내내 사랑이 부족해서 심장이 아픈 것이라며, 이러한 사랑 결핍을 치료하려면 아주 먼 남아메리카의 어느 곳, 할머니가 자란 마을에서 기적을 행하던 치료사가 알려준 치료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단순한 병원 치료가 아니라 사랑의 별이 가득한 심장만이 에리를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할머니는 미셸에게 앞으로 열흘 이내에 슬롱스빌에서 서로 다른 아홉 가지의 사랑을 지닌 사람들을 찾아 그 사람들 모르게 옷을 “별” 모양으로 오려 그 조각들을 자신에게 가져오면 그 별들을 꿰매서 별이 가득한 심장을 만들어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별이 완성되어도 마지막 열 번 째 별인 “비밀의 별”, 그게 있어야 다른 아홉 개의 별들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미셸이 마음의 비밀들을 배우게 되면 모든 걸 치료하는 사랑의 마지막 비밀이 뭔지는 스스로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셸은 할머니의 말대로 아홉 가지 사랑의 별을 찾기 시작한다. 먼저 신혼부부에게서 “낭만”적인 사랑의 비밀을 찾은 미셸은 회계사에게서 “오래 지속되는” 사랑의 비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듣는다. 

"진정한 사랑은 이런 거란다. 사랑은 언제나 불 속에 나무를 집어넣는 거야. 이렇게 해야만 불길을 계속 살릴 수 있으니까. 당연한 말 같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단다. 그래서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 연인들도 많은 거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면 이 말을 명심해라. 애야.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불길을 살리기 위해서는 장작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느 날 아침 그저 한때 네 사랑이 흔적인 재만 덩그마니 남아 있게 될 테니까" 

미셸은 그 후 “자식”, “우정”, “동물”, “자연”, “책”, “생명”, “자신”에 대한 사랑의 비밀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마침내 아홉 가지 조각을 모두 찾아 할머니에게 가져간다. 그 조각들을 꿰매어 만든 “별이 가득한 심장”을 들고 에리의 병원으로 찾아간 미셸, 잠들어 있는 에리를 보면서 마지막 비밀의 별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심장 박동이 결코 침묵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기 위해서는 행동하고 표현해야 된다는 것을.  

마치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연상되는 아름다운 동화를 만났다. 한 고아 소년이 사랑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열흘 간의 여정을 아름다운 글과 일러스트로 그려낸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아홉 가지 사랑의 비밀이나 책 말미에 부록으로 실은 사랑에 대한 유명 인사들의 말들은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식상”한 소재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수 천 년 지속되는 동안 수도 없이 반복되어 왔음에도, 앞으로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어쩌면 인류가 그 역사의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고 계속 이야기될 “사랑”은 수없이 반복해도 질리지 않을 그런 테마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이야기가 “식상함”이 아니라 가슴 한 켠을 분홍빛으로 잔잔히 물들이는 감동이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위에서 잠깐 인용한 것처럼 사랑은 한번 불을 붙였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 불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계속 넣어 주는 것과 같은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종종 잊어버려 싸늘한 재만 남긴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랑의 완성이라는 “결혼”을 했으니 하며 아내에게 소홀해지는 나에게 너의 사랑이 어느새 식어버리고 재만 남은 것은 아닌지 지금 돌아보라는 충고일 수 도 있을 것이다. 또한 사랑의 마지막 비밀이 사랑을 간직하고만 있지 말고 소리 내어 표현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말도 아직도 어색하기만 한 “사랑한다”는 말에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진심을 담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대상 - 아내일 수 도 있겠고,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부모님, 자녀, 동물, 책 등 다양한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에게 말하라는 교훈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소개글을 보니 이제 막 태어난 작가의 딸이 심장 이상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퇴원했을 때 이 책에서의 “별이 가득한 심장”처럼 제각기 다른 천 조각들로 덧대 만든 곰 인형을 선물 받은 데에 크게 감동하여 이 글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작가는 결국 사랑의 결핍은 사랑으로 치유된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진심어린 말 한마디를 건네기를 자신의 경험과 이 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금세 답하기 어려운 “사랑이라는 별이 가득한 심장, 우리는 지금 가지고 있을까?”라는 작가의 물음이 며칠째 이어지는 장맛비처럼 괜한 상념에 빠지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식객, 팔도를 간다 : 강원편 - 방방곡곡을 누비며 신토불이 산해진미를 찾아 그린 대한민국 맛 지도! 식객 팔도를 간다
허영만 글.그림 / 김영사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2003년 1권이 출간된 이래로 2011년 시리즈 완결편 27권에 이르기까지 9년 여 동안 우리의 눈과 입을 즐겁게 했던 허영만 화백의 <식객(食客)>. 100권 이상 계속 나와 주었으면 바랐지만 소재 발굴과 취재에 들인 엄청난 수고와 노력, 그리고 척박한 만화 시장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서운함과 아쉬움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아쉬움을 달랠 만한 희소식을 접했다. <식객>이 다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비록 기존에 출간된 이야기들을 지역별로 묶은 일종의 “베스트 컬렉션(Best Collection)"이지만 그래도 <식객>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팬 입장으로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이미 <식객, 팔도를 간다>라는 이름으로 “서울편”과 “경기편”이 출간되었고, 내가 이번에 만난 책은 세 번째 편인 <식객, 팔도를 간다; 강원편(김영사/2011년 6월)>이다.  

책에서는 먼저 <식객>의 주인공인 “성찬”과 “허영만” 화백의 가상 형식을 빌어 강원도의 맛이 “도시인에게 과거 향수를 되살려주는 투박하지만 가공되지 않은 청정한 맛”이라고 소개한다. 강원도의 음식의 특징을 “양념이 넉넉지 않고 재료의 원래 맛을 살린다”로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가 아무래도 산지가 많다 보니 양념이 부족해서가 아닐까라고 추정한다. 본 “강원편”과는 관련이 없지만 재미있는 질문을 몇 가지 꼽자면 “성찬”이 과거의 슬림하고 날카로운 “이강토”와는 달리 약간은 후덕한 스타일이 된 이유에 대한 질문에는 아무래도 음식 얘기를 하는데 풍채가 약간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무당거미> 주인공처럼 삐적 마른 친구가 요리를 하고 음식에 대해 얘기하면 보는 독자들도 별로 맛있을 것이라고 느끼지 못할 것 같다고 답한다. 그리고 다른 화백들과 달리 딱 떠오르는 여주인공 상이 없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는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이상하게 중간에 존재가 희미해진다며 자신도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답한다. 그리고 보니 허영만 화백 작품 중 여 주인공이 기억나는 건 <식객>의 “진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작품 속 남성들이 너무 강렬한 이미지여서 여 주인공들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데 - 몇몇 작품 들 중에는 남성의 인생을 망칠 정도로 “악녀(惡女)”가 등장하지만 - 작가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시니 정답은 아무도 모를 것 같다. 이런 가상 인터뷰가 끝나면 강원도 주요 식재료인 “명태”와 “해삼”, “감자”, “쑥”, “송이버섯”의 특징과 이 재료들을 사용한 강원도 대표 요리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에는 <두부의 모든 것(초당두부)>, <남새와 푸새(산나물)>, <봄, 봄, 봄(진달래와 쑥)>, <올챙이국수(올챙이국수와 콧등치기)>, <하루 세 가지 맛(회무침)> 등 총 다섯 개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새롭게 선보이는 에피소드가 아니라 식객 전 시리즈에서 강원도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골라 실은 거라 식객 전 권을 읽는 나로서는 모두 알고 있는 에피소드이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록새록하기만 하다. 다섯 개의 에피소드 중 식객의 영원한 라이벌 “봉주”와 “성찬”이 미모의 방송 작가의 교묘한 술수(?)로 요리 대결을 벌이는 <두부의 모든 것> 편과 영어를 잘하게 하기 위해 혀를 잡아 늘이는 수술을 하게 될 처지에 놓인 소년 “지민”이 가출하여 성찬의 차를 타고 강원도로 가서 풀 냄새나서 싫기만 했던 자연산 산나물들을 먹고 아토피를 치료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남새와 푸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기서 “남새”와 “푸새”는 무슨 뜻일까? “남새”는 집 뜰이나 들밭에서 가꿔 먹는 풀이고 “푸새”는 산과 들에 스스로 나서 자라는 풀을 말한다고 한다. 간단하게 자연산(푸새)이냐 아니냐(남새)로 구분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남새는 아무래도 인공적으로 재배하다 보니 농약이나 비료를 사용해서 효능, 특히 아토피에 대해서는 별반 소용이 없지만 자연에서 나고 자란 푸새는 그 약효를 올곧이 가지고 있어 지민의 아토피를 진정시키는 그런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사족(蛇足)하나. 그렇다면 “푸성귀”는 무슨 뜻일까? 이 역시 “사람이 가꾼 채소나 저절로 난 나물 따위”, 즉 “남새”와 “푸새”를 총칭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에는 책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강원의 또 다른 맛”, 즉 “순두부탕”, “올챙이묵”, “오징어순대” 등을 소개하는 데 강원도 요리하면 그저 “생선회”나 “감자” 요리 정도만 알고 있는 터라 하나 같이 제대로 맛본 적이 없는 그런 음식들이다. 여행의 참 멋은 멋진 풍광을 구경하는 데도 있지만 뭐니 뭐니해도 역시 그 지역 “음식”을 맛보는 것 아닐까? 다음 강원도 여행에는 반드시 챙겨가야 할 그런 책이다. 

<식객>을 아직까지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이 <팔도를 간다> 시리즈로 <식객>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식객>을 읽어본 독자들은 새로운 에피소드가 없어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식객>을 이렇게 각 지역별 대표 음식에 대한 에피소드들로 다시 읽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와 감회를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실망감보다는 <식객>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운 그런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식객>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처음 읽는 분들을 위해 경고 한 마디를 해야겠다^^ 

“식전독서불가(食前讀書不可; 공복에는 절대 독서 금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물원을 샀어요
벤저민 미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지금은 지방에도 동물원들이 많이 생겼지만 - 네이버로 “동물원”을 검색해보니 10곳이 검색된다 - 내 어린 시절에는 동물원이라고는 서울 "창경궁 동물원"이 유일했었다. 지방(대전)에 살았던 터라 서울 창경궁 동물원 한번 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1984년 지금의 과천 서울 대공원으로 이사를 가면서, 결국 가보지 못했다. 처음 가본 동물원은 고등학교 때 아는 친척 병문안 갔다가 잠시 들려본, 지금 세종대 옆에 있는 "서울대공원"- 지금은 과천 서울대공원과 구별하기 위해 이름을 "서울어린이대공원"으로 바꿨다고 한다. - 이었는데, 동물들이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은 그런 나이가 되다 보니 별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래서인지 “동물원”은 그저 “어린이들이나 가는 곳”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 그런데 구경의 대상이기만 한 이런 "동물원"을 운영해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해온다면 어떨까? 생식지도 먹이도 천차만별인 동물들 하나하나 먹이고 관리하랴, 공원 시설 개보수하고 관리하랴, 사육사들이며 관리인이며 그 많은 인원들 관리하랴, 동물원도 어쨌든 관람객이 많아야 유지할 수 있는 일종의 “서비스업”이라 할 수 있으니 각종 홍보, 마케팅 전략 수립하랴 등등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거린다. “No Thank YOU!!!" - 한국식으로는 ”됐네요!!!“ - 라는 말부터 나오며 손사래 절래 절래 흔들 동물원 운영을 ”진짜로“ 해낸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망하기 일보 직전의 동물원을 사들여 멋지게 부활시킨 "벤저민 미" 가족이 바로 그들이며, <동물원을 샀어요(원제 We bought a Zoo / 노블마인 / 2011년 4월)>은 그들의 동물원 인수 성공기를 담아낸 책이다.   

책은 먼저 2004년 6월 런던의 아파트를 팔고 남부 프랑스 중심부에 있는 아름다운 헛간 두 채를 사들여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아내의 뇌종양 수술(교모세포종) 등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전원생활을 만끽하던 “나”(벤저민 미)는 우연히 영국 데번에 있는 야생 공원인 “다트무어 야생공원”이 재정난에 몰리면서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이 담겨 있는 누이가 보낸 소책자를 보게 된다. 이 일이야말로 전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일, 즉 “꿈의 시나리오”이겠다고 직감한 나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렸고, 누구 하나 반대도 할 법 한데 나이 드신 어머니에서부터 형제들까지 모두 적극 찬성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꿈의 시나리오” - 작가 가족들이야 그렇게 부르겠지만 나같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계획일 것이다^^ - 수행에 착수한 가족들, 몇 달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집을 팔아 어찌 어찌 매각 가격을 맞추고 입찰 경쟁에 나서 결국 동물원 매입에 성공하고, 드디어 2006년 10월 20일 저녁 6시, 자욱하게 안개가 낀 어둠을 헤치고 동물원에 입성한다. 꿈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제부터 행복 끝 고생 시작이다. 매입에 톡톡 털어 돈을 쏟아 부어 남은 돈이라고는 4천 파운드, 열흘 치 유지비 밖에 남지 않았고, 200여 마리나 되는 각종 동물들 건강과 먹이를 챙기는 일, 낡은 건물과 시설을 보수해야 하는 일, 사육사를 모집하는 일 등등 갈수록 첩첩 산중이다. 그러던 와중에 프랑스에서부터 뇌종양 투병 중인 아내는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는 슬픔을 겪게 되지만, 그런 슬픔도 잊고 동물원 살리기에 온 가족이 나선다. 그렇지만 워낙 재정이 부실했던 터라 은행 대출도 얻기 힘들고, 재규어가 우리를 탈출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는 등 정말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일들이 연속으로 터진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도 이 가족을 단념시키진 못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2007년 7월 7일 다트무어 동물원을 개장하고야 만 것이다! 밀려 드는 관람객들을 바라보는 벤저민 미 가족의 감격이야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거짓말 같은 “꿈의 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들어 버린 벤저민 미와 가족들은 힘들고 고된 여정이었지만 이 일은 자신에게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바로 자신의 소명이라고 그 소회를 밝힌다. 

도대체 이 믿기 힘든 이야기가 “실화”라니 읽는 내내 믿겨지지가 않아 실화를 가장한 “픽션(fiction)"이 아닐까 하는 괜한 의심 - 전문 칼럼니스트라고 들었는데 두서없는 ”평범한“ 글솜씨가 오히려 평범함을 가장해서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더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 을 했다. 사실 어느 누가 이런 “터무니 없는 공상”을 “잘 풀리기만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덤벼들 수 가 있을까? 이미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고 아내 또한 투병 중인 상황에서 선뜻 시작하기 어려웠을 이 일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가족들의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장인 벤저민의 결정에 전폭적인 신뢰는 물론 직접 팔을 걷어 붙이고 “동물원 살리기”에 앞장서는, 일흔 다섯의 어머니부터 형제들, 아내, 그리고 어린 두 아이들까지 모든 가족의 믿음은 벤저민에게는 동물원 입성 첫날 자신들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는 호랑이들도, 우리를 탈출한 재규어조차도 까다롭게 만 굴던 은행 대출조차도 거뜬히 이겨내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다. 어이없다시피 한 기막힌 상황에 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눈물겨운 가족들의 분투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굳게 쥐기도 하고, 아내를 잃는 슬픔마저 극복하고 마침내 동물원을 개장하고 몰려드는 손님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잔잔한 감동마저 맛보게 한다. 이처럼 가족들의 고군 분투 동물원 살리기에 푹 빠지다 보니 나 또한 그들 가족의 일원이 되어 동물원에서 일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로 강력한 몰입감과 재미를 선사하는 이 책, 때로는 그 어떤 상상 속에서도 불가능했던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오래된 격언을 새삼 실감케 하는 그런 책이다.  

이 책, 영국 BBC TV에 <벤의 동물원>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방송되었고, 이 작품을 소재로 한 헐리우드 영화 - 맷 데이먼과 스칼렛 요한슨 주연. 올해 12월 개봉 예정이란다 - 가 제작되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로 만나게 될 그들의 이야기, 책 못지 않은 재미와 감동을 주기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교 밖 선생님 365 -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세상의 모든 것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단어에 새롭고 기발한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하는 책은 이전에 이외수님의 <감성사전(동숭동/2006년 8월)>을 통해서 한번 접해본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연극, 영화, 소설 따위에서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라는 사전적 뜻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主人公)”을 “작중 인물 중에서 가장 목숨이 끈질긴 존재”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어떤 단어는 키득키득 웃음이 나고, 어떤 단어는 작가의 감성을 오롯이 느껴지기도 하며, 어떤 단어는 삶에 대한 성찰(省察)까지도 해보게 하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해석에 매료되어 몇 몇 단어들은 연습장 한 귀퉁이에 적어 놓고 외웠었고, 나도 그걸 흉내 내서 몇 몇 단어들은 내 식으로 바꿔 해석해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날 때 마다 펼쳐 읽던 책이었는데, 이사를 하면서 분실해서 참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단어들에 대한 참신하고 색다른 해석을 담은 또 다른 멋진 책을 만났다. 카피라이터로 유명한 “정철” -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때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선 한명숙 후보의 메인 슬러건이었던 “사람 특별시”가 바로 이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 의 <학교밖 선생님(리더스북/2011년 4월)>이 바로 그 책이다. 다른 책들과 비교하면 참 오랜 시간에 걸쳐 읽은 이 책, 이번만큼은 <감성사전>처럼 잃어버리지 말고 오랫동안 간직하며 자주자주 꺼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책 속에 길이 있다”로 시작한다. 모든 여백과 행간이 길이며 작가의 생각 곁에 자신의 생각을 적으며 걸어가다 보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그 책은 작가의 생각 한권, 자신의 생각 한권 두 권의 책이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다른 책보다 길이 넓어 더 많은 발자국을 찍을 수 있다는 작가의 말, 아무래도 이 책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본문 첫 장부터 그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책은 <학교밖 선생님>이라는 제목처럼 학교 수업처럼 총 “6교시(校時)”로 나누어 총 365개의 단어를 싣고 있다. 각 교시에는 “부제(副題)” 붙는데 예를 들어 “1교시. 삶의 이론과 실제 - 보통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법”, “6교시. 마음 교육학 - 인생에도 과속방지턱이 필요하다”처럼 말이다. 물론 작가는 이런 부제에 맞게 단어들을 고르고 해석을 했겠지만 굳이 부제에 얽매이지 않고 단어들을 읽는다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맨 처음으로 소개하는 단어인 “나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해석한다.

 나이 001: 인생 뒤집어 보기
나이가 몇이세요?
우리는 이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해왔다.
스물이라고, 서른이라고, 벌써 마흔이라고.
같은 질문을 조금만 뒤집어보자.
남은 나이가 몇이세요?
과연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이 글에서 멈칫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부담”이 되어 밝히기 꺼려지는 그런 나이가 되었는데 그런 부담이 아마도 그동안 살아온 “시간”에 대한 부담 - 엄밀히는 그런 시간동안 제대로 성취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여기는, 인생에 대한 부끄러움일 것이다 -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남은 나이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생각에 스무살까지는 이제 몇 년 남았구나 헤아려 보곤 했는데 - 어른이 돼서야 “빨리 어른이 되길”이 얼마나 무서운 주문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 지금은 남은 날보다 지나온 날들을 더 떠올리게 되었다. 과연 나에게 남은 나이는 몇이나 될까? 30년? 40년? 작가의 말대로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할 수 없는 그런 질문이다. 지나온 “나이”를 부끄러워하고 남은 “나이”를 쉽게 답하지 못하는 지금의 나에 대한 생각에 다음 페이지를 열지 못하고 한참을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책은 이처럼 쉽게 넘어가지 못하고 한번씩 생각이 머무르는 많은 단어들을 담고 있다. 서평을 쓰기 위해 연습장에 메모를 해가면서 읽어 갔는데, 반도 읽기 전에 벌써 여러 페이지의 연습장에 빼곡히 기록하게 되는지라, 그리고 책읽기가 너무 더뎌져 그만 메모를 포기하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소개하고 싶은 단어가 너무 많아 몇 개를 골라내기가 참 어려워 그냥 무작위로 몇 단어만 소개해본다. 

노인 005: 새벽잠이 없는 이유
노인이 새벽잠이 없는 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시작하는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 화장실 거울에 붙여 놓을 것 

기침 040: 관계의 소중함
기침소리라는 말을 듣고 아무런 흔들림이 없는 사람도 
아버지의 기침소리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흔들린다.
세상 모든 말은 나와 관계를 맺는 순간 전혀 다른 뜻이 된다. 

칼 060: 중요한 건 방향
의사의 손에 들려있으면 긴장.
강도의 손에 들려있으면 공포.
주부의 손에 들려있으면 기대.
중요한 건 성능이 아니라 칼끝이 향하는 방향.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느냐. 

“작가의 생각” 한권은 분명 다 읽었지만 이 책을 “완전히” 읽었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생각이 아니라 모든 여백과 행간에 적어나가야 할 “나의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책 읽는 시간 자체도 다른 책보다 훨씬 오래 걸린, 다 읽고 나서도 쉽게 책을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페이지를 펼쳐 들게 하는 그런 책이다. 그리고 “내 자신의 생각” 한 권을 완성하기까지는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래서 이 책, 앞으로도 계속 읽어야 하는 그런 책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