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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가득한 심장
알렉스 로비라 셀마.프란세스 미라예스 지음, 고인경 옮김 / 비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평생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 한번 들어보지 못해 못내 서운하시다는 어머니, 너만은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아내에게 보내는 메시지나 메일 끝 인사는 “사랑해요”이지만, 아침 출근길 집을 나설 때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배웅 나오는 아내에게 “사랑해요”고 말하며 손을 흔들어 주지만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다. 사랑은 가슴속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낼 때 비로소 시작된다고 했던가. 알렉스 로비라 셀마, 프란세스 미라예스 공저의 아름다운 동화 <별이 가득한 심장(원제 Un Corazon Lleno de Estrellas/비채/2011년 6월)>는 이처럼 사랑에 대한 표현이야말로 “사랑”의 마지막 비밀이라고 이야기한다.
1946년 프랑스 작은 도시 슬롱스빌 마을, 슬롱스빌 시립 고아원에 살고 있는 소년 “미셸”, 한 소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일본어로 '달빛'이라는 뜻의 이름인 “에리”, 그런데 어느 날 에리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원인불명의 “코마” 상태에 빠져 버린다. 상심한 미셸은 눈 덮인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다가 우연히 망토로 몸을 감싼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초라한 할머니 "에르미니아"를 만난다. 미셸이 에리가 끝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그날 아침에 일어났던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빠뜨리지 않고 모두 설명하자, 에르미니아 할머니는 에리가 아픈 이유는 고아원에 버려진 이후 내내 사랑이 부족해서 심장이 아픈 것이라며, 이러한 사랑 결핍을 치료하려면 아주 먼 남아메리카의 어느 곳, 할머니가 자란 마을에서 기적을 행하던 치료사가 알려준 치료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단순한 병원 치료가 아니라 사랑의 별이 가득한 심장만이 에리를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할머니는 미셸에게 앞으로 열흘 이내에 슬롱스빌에서 서로 다른 아홉 가지의 사랑을 지닌 사람들을 찾아 그 사람들 모르게 옷을 “별” 모양으로 오려 그 조각들을 자신에게 가져오면 그 별들을 꿰매서 별이 가득한 심장을 만들어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별이 완성되어도 마지막 열 번 째 별인 “비밀의 별”, 그게 있어야 다른 아홉 개의 별들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미셸이 마음의 비밀들을 배우게 되면 모든 걸 치료하는 사랑의 마지막 비밀이 뭔지는 스스로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셸은 할머니의 말대로 아홉 가지 사랑의 별을 찾기 시작한다. 먼저 신혼부부에게서 “낭만”적인 사랑의 비밀을 찾은 미셸은 회계사에게서 “오래 지속되는” 사랑의 비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듣는다.
"진정한 사랑은 이런 거란다. 사랑은 언제나 불 속에 나무를 집어넣는 거야. 이렇게 해야만 불길을 계속 살릴 수 있으니까. 당연한 말 같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단다. 그래서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 연인들도 많은 거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면 이 말을 명심해라. 애야.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불길을 살리기 위해서는 장작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느 날 아침 그저 한때 네 사랑이 흔적인 재만 덩그마니 남아 있게 될 테니까"
미셸은 그 후 “자식”, “우정”, “동물”, “자연”, “책”, “생명”, “자신”에 대한 사랑의 비밀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마침내 아홉 가지 조각을 모두 찾아 할머니에게 가져간다. 그 조각들을 꿰매어 만든 “별이 가득한 심장”을 들고 에리의 병원으로 찾아간 미셸, 잠들어 있는 에리를 보면서 마지막 비밀의 별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심장 박동이 결코 침묵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기 위해서는 행동하고 표현해야 된다는 것을.
마치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연상되는 아름다운 동화를 만났다. 한 고아 소년이 사랑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열흘 간의 여정을 아름다운 글과 일러스트로 그려낸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아홉 가지 사랑의 비밀이나 책 말미에 부록으로 실은 사랑에 대한 유명 인사들의 말들은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식상”한 소재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수 천 년 지속되는 동안 수도 없이 반복되어 왔음에도, 앞으로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어쩌면 인류가 그 역사의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고 계속 이야기될 “사랑”은 수없이 반복해도 질리지 않을 그런 테마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이야기가 “식상함”이 아니라 가슴 한 켠을 분홍빛으로 잔잔히 물들이는 감동이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위에서 잠깐 인용한 것처럼 사랑은 한번 불을 붙였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 불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계속 넣어 주는 것과 같은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종종 잊어버려 싸늘한 재만 남긴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랑의 완성이라는 “결혼”을 했으니 하며 아내에게 소홀해지는 나에게 너의 사랑이 어느새 식어버리고 재만 남은 것은 아닌지 지금 돌아보라는 충고일 수 도 있을 것이다. 또한 사랑의 마지막 비밀이 사랑을 간직하고만 있지 말고 소리 내어 표현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말도 아직도 어색하기만 한 “사랑한다”는 말에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진심을 담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대상 - 아내일 수 도 있겠고,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부모님, 자녀, 동물, 책 등 다양한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에게 말하라는 교훈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소개글을 보니 이제 막 태어난 작가의 딸이 심장 이상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퇴원했을 때 이 책에서의 “별이 가득한 심장”처럼 제각기 다른 천 조각들로 덧대 만든 곰 인형을 선물 받은 데에 크게 감동하여 이 글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작가는 결국 사랑의 결핍은 사랑으로 치유된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진심어린 말 한마디를 건네기를 자신의 경험과 이 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금세 답하기 어려운 “사랑이라는 별이 가득한 심장, 우리는 지금 가지고 있을까?”라는 작가의 물음이 며칠째 이어지는 장맛비처럼 괜한 상념에 빠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