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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을 샀어요
벤저민 미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지금은 지방에도 동물원들이 많이 생겼지만 - 네이버로 “동물원”을 검색해보니 10곳이 검색된다 - 내 어린 시절에는 동물원이라고는 서울 "창경궁 동물원"이 유일했었다. 지방(대전)에 살았던 터라 서울 창경궁 동물원 한번 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1984년 지금의 과천 서울 대공원으로 이사를 가면서, 결국 가보지 못했다. 처음 가본 동물원은 고등학교 때 아는 친척 병문안 갔다가 잠시 들려본, 지금 세종대 옆에 있는 "서울대공원"- 지금은 과천 서울대공원과 구별하기 위해 이름을 "서울어린이대공원"으로 바꿨다고 한다. - 이었는데, 동물들이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은 그런 나이가 되다 보니 별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래서인지 “동물원”은 그저 “어린이들이나 가는 곳”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 그런데 구경의 대상이기만 한 이런 "동물원"을 운영해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해온다면 어떨까? 생식지도 먹이도 천차만별인 동물들 하나하나 먹이고 관리하랴, 공원 시설 개보수하고 관리하랴, 사육사들이며 관리인이며 그 많은 인원들 관리하랴, 동물원도 어쨌든 관람객이 많아야 유지할 수 있는 일종의 “서비스업”이라 할 수 있으니 각종 홍보, 마케팅 전략 수립하랴 등등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거린다. “No Thank YOU!!!" - 한국식으로는 ”됐네요!!!“ - 라는 말부터 나오며 손사래 절래 절래 흔들 동물원 운영을 ”진짜로“ 해낸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망하기 일보 직전의 동물원을 사들여 멋지게 부활시킨 "벤저민 미" 가족이 바로 그들이며, <동물원을 샀어요(원제 We bought a Zoo / 노블마인 / 2011년 4월)>은 그들의 동물원 인수 성공기를 담아낸 책이다.
책은 먼저 2004년 6월 런던의 아파트를 팔고 남부 프랑스 중심부에 있는 아름다운 헛간 두 채를 사들여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아내의 뇌종양 수술(교모세포종) 등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전원생활을 만끽하던 “나”(벤저민 미)는 우연히 영국 데번에 있는 야생 공원인 “다트무어 야생공원”이 재정난에 몰리면서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이 담겨 있는 누이가 보낸 소책자를 보게 된다. 이 일이야말로 전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일, 즉 “꿈의 시나리오”이겠다고 직감한 나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렸고, 누구 하나 반대도 할 법 한데 나이 드신 어머니에서부터 형제들까지 모두 적극 찬성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꿈의 시나리오” - 작가 가족들이야 그렇게 부르겠지만 나같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계획일 것이다^^ - 수행에 착수한 가족들, 몇 달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집을 팔아 어찌 어찌 매각 가격을 맞추고 입찰 경쟁에 나서 결국 동물원 매입에 성공하고, 드디어 2006년 10월 20일 저녁 6시, 자욱하게 안개가 낀 어둠을 헤치고 동물원에 입성한다. 꿈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제부터 행복 끝 고생 시작이다. 매입에 톡톡 털어 돈을 쏟아 부어 남은 돈이라고는 4천 파운드, 열흘 치 유지비 밖에 남지 않았고, 200여 마리나 되는 각종 동물들 건강과 먹이를 챙기는 일, 낡은 건물과 시설을 보수해야 하는 일, 사육사를 모집하는 일 등등 갈수록 첩첩 산중이다. 그러던 와중에 프랑스에서부터 뇌종양 투병 중인 아내는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는 슬픔을 겪게 되지만, 그런 슬픔도 잊고 동물원 살리기에 온 가족이 나선다. 그렇지만 워낙 재정이 부실했던 터라 은행 대출도 얻기 힘들고, 재규어가 우리를 탈출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는 등 정말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일들이 연속으로 터진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도 이 가족을 단념시키진 못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2007년 7월 7일 다트무어 동물원을 개장하고야 만 것이다! 밀려 드는 관람객들을 바라보는 벤저민 미 가족의 감격이야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거짓말 같은 “꿈의 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들어 버린 벤저민 미와 가족들은 힘들고 고된 여정이었지만 이 일은 자신에게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바로 자신의 소명이라고 그 소회를 밝힌다.
도대체 이 믿기 힘든 이야기가 “실화”라니 읽는 내내 믿겨지지가 않아 실화를 가장한 “픽션(fiction)"이 아닐까 하는 괜한 의심 - 전문 칼럼니스트라고 들었는데 두서없는 ”평범한“ 글솜씨가 오히려 평범함을 가장해서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더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 을 했다. 사실 어느 누가 이런 “터무니 없는 공상”을 “잘 풀리기만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덤벼들 수 가 있을까? 이미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고 아내 또한 투병 중인 상황에서 선뜻 시작하기 어려웠을 이 일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가족들의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장인 벤저민의 결정에 전폭적인 신뢰는 물론 직접 팔을 걷어 붙이고 “동물원 살리기”에 앞장서는, 일흔 다섯의 어머니부터 형제들, 아내, 그리고 어린 두 아이들까지 모든 가족의 믿음은 벤저민에게는 동물원 입성 첫날 자신들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는 호랑이들도, 우리를 탈출한 재규어조차도 까다롭게 만 굴던 은행 대출조차도 거뜬히 이겨내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다. 어이없다시피 한 기막힌 상황에 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눈물겨운 가족들의 분투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굳게 쥐기도 하고, 아내를 잃는 슬픔마저 극복하고 마침내 동물원을 개장하고 몰려드는 손님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잔잔한 감동마저 맛보게 한다. 이처럼 가족들의 고군 분투 동물원 살리기에 푹 빠지다 보니 나 또한 그들 가족의 일원이 되어 동물원에서 일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로 강력한 몰입감과 재미를 선사하는 이 책, 때로는 그 어떤 상상 속에서도 불가능했던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오래된 격언을 새삼 실감케 하는 그런 책이다.
이 책, 영국 BBC TV에 <벤의 동물원>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방송되었고, 이 작품을 소재로 한 헐리우드 영화 - 맷 데이먼과 스칼렛 요한슨 주연. 올해 12월 개봉 예정이란다 - 가 제작되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로 만나게 될 그들의 이야기, 책 못지 않은 재미와 감동을 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