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주)북이십일 출판그룹 b공식 블로그 | 21세기북스
원문 http://blog.naver.com/book_21/20132098800



마리아비틀_킬러들의 광시곡




출간 기념 이벤트

 

 

 

[골든슬럼버] 이후 3년만의 대형 신작 장편!

이사카 고타로의 데뷔 15주년 결산, 혼신의 작품!

 

신칸센 안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사활을 건 추격전!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리는 대형 블록버스터!

 

 



 

 

기무라 | 전직 킬러 지금은 알콜중독자

불량소년이 그대로 나이를 먹은 듯한 외모에 품위가 없고 직선적인 사고 밖에 못한다.

 

왕자 | 인간에 대한 끝없는 악의

머릿결이 부드럽고 체구가 가냘픈, 행실 바른 중학생처럼 보이지만, 악마의 화신

"저어, 형,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돼요?"

 

나나오 | 전형적인 머피의 법칙 해당자

불운에는 익숙하다. "배우 이름? 에디 머피?"

 

 

시속 2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열차에 위험한 이들이 모두 모였다!

 

 

[추천평]

설명이 필요 없는 완벽한 엔터테인먼트._요미우리신문

한번 손에 들면 놓질 못한다._아사히 신문


 



 

<마리아비틀> 도서 증정 '나만의 캐스팅' 이벤트

 

1. 위 이벤트를 퍼가기 한 후, 댓글에 퍼간 URL을 적는다.

 

2. <마리아비틀> 주요인물 3명에 대한 소개를 보고

영화화 한다면 어울릴만한 배우의 이름과 그 이유를 적는다

 

이벤트 기간 : 2011년 7월 6일(수) ~ 2011년 7월 17일(일)

당첨자 발표 : 2011년 7월 18일(월)

 

추첨을 통하여 10분께 도서를 보내드립니다.

 

 

당첨되어 도서를 받아보시고

인터넷 서점(교보문고/예스24/인터파크/알라딘)에 서평을 남겨주신 후,

그 url을 제 메일(hyunyoo82@book21.co.kr)로 주시면

저희 베스트셀러를 한 권 선물로 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
로렌 올리버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읽은 SF소설에서 “타임머신"이 “실재(實在)”한다면 과연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시간대(時間帶)가 어디냐는 질문에 “우리 삶에서 가장 불행했던 순간”이라고 말하는 대목을 읽은 적이 있다. 즉 과거로 돌아가 자신을 삶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보통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 또는 역사상 유명한 사건을 떠올릴 텐 데 일견 당황스러웠지만 뭔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런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딱 하루만 살 수 있다면?” 라는 질문 - 물론 “타임머신”처럼 자신의 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자신이 죽던 날, 하루가 반복된다면 - 에는 어떤 답변이 나올 수 있을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다가 하루의 끝자락에는 결국 내가 죽어버리고, 다음날에는 다시 반복되는 그런 날을 살고 있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로렌 올리버”의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원제 Before I Fall / 북폴리오 / 2011년 7월)>은 이처럼 자신이 죽는 날을 계속 반복해서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다.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 4학년인 17세 소녀 “사만사 킹스턴(약칭 “샘”)”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는 “큐피드 데이” 날인 2월 12일 금요일, 아침 6시 55분부터 입으로 자동차 경적 소리를 내는 친구 “린지”의 차를 타고 학교에 등교한다. 오늘은 자신의 첫 번째 진짜 짝사랑인 “롭 코크란”과 하룻밤을 같이 하기로 한 그녀에게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학교 수업이 진행 -샘이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여기 저기서 장미꽃을 받는다 - 되고, 샘는 첫키스 상대였던 “켄트 맥풀러”에게서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와달라고 초대를 받는다. 롭도 간다는 말에 친한 친구들과 함께 파티에 참석한 샘은 파티장에서 자신들이 “사이코”라고 놀리는 “줄리엣 사이크스”가 자신들에게 욕을 퍼붓고, 같이 밤을 보내기로 했던 롭 또한 술에 만취해 버리는 바람에 기분이 상한다. 그렇게 파티가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술에 취한 린지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어떤 사람이 갑작스레 차에 뛰어들면서 그만 사고가 나서 샘과 친구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어둠과 적막이 흐른 후 샘은 린지가 입으로 내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잠에서 깨고, 혀가 짧은 여덟 살 난 동생이 자기의 방문을 연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2월 12일 금요일 아침 6시 55분. 분명 어제 밤 사고로 죽었는데 바로 자신이 죽은 그 날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샘은 여섯 번의 큐피드 데이를 다시 살면서 이런 반복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학교 등교를 하지 않기도 하고, 파티에도 가지 않는 등 일종의 변화를 시도하지만 여전히 그날이 반복된다. 그러나 여섯 번을 반복하면서 멋있기만 했던 롭이 영 미덥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짝사랑했던 켄트가 정말 멋진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롭 대신 켄트와 하룻밤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 자신들의 차에 뛰어든 사람이 바로 왕따 시켰던 ”줄리엣“이라는 것을, 그리고 차에 뛰어 들지 않았더라도 권총 자살을 하는, 결국 줄리엣 또한 그날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곱 번째 반복되는 “내가 죽던 날” 아침 샘은 이 날을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다. 그렇다고 이 지루한 반복이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지난 날들과는 아주 다른 “특별한” 큐피드 데이가 시작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서도 언급했던 <사랑의 블랙홀(원제 Groundhog Day/1992)>라는 코메디 영화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지역 축제 - 원제목이기도 한 “Groundhog Day”가 바로 그 축제 이름이다. 우리말 번역 제목이 더 잘 어울린다 - 에 참석했던 방송 캐스터가 매일 아침 똑같은 날이 반복되는 일종의 타임 루프에 빠져들고, 이 반복 고리를 끊기 위해 온갖 짓들 - 자살, 착한 일, 나쁜 일, 악기 배우기, 기타 등등 - 을 벌이지만 악순환은 멈추지 않고, 결국 진실한 사랑으로 비로소 그 고리를 끊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그래서 이 책도 ”죽는 날“의 반복이라는 유사 소재이고 영화처럼 그 반복의 고리를 끊기 위해 - 자신의 삶을 바로 잡기 위해 - 주인공이 여러 일들을 연출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뻔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작가는 여성 특유의 필치로 영화와는 다르게 새롭게 구성해 내어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물론 긴장감이나 스릴 면에서는 다소 밋밋하고, 지루한 감도 없지 않은데 - 특히 책 초반에서 샘의 아침에서 사고가 나는 장면까지의 하루를 묘사한 부분은 이 책이 제목과는 달리 하이틴 로맨스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 반복되는 하루에서 벗어나려는 17세 소녀 ”샘“의 심리 변화와 그녀의 노력들을 쫓아가다 보면 재미와 함께 잔잔한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작가는 앞서 말한 “딱 하루만 살 수 있다면?” 이란 질문에 한번 뿐이기에 돌이킬 수 없는 삶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따라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어떤 것을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샘이 롭이 아닌 켄트에게서 진실한 사랑을 발견하고, 왕따의 대상이었던 줄리엣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면서 그녀를 이해하게 되고, 그녀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그런 노력들이 반복의 고리를 끊어 샘이 “여덟번 째날”을 살고 있는지 분명하게 결말 맺고 있진 않지만 샘은 계속 반복되는 날들을 살더라도 자신의 선택을, 자신의 삶을 좀 더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기꺼이 노력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해볼 수 있어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물론 누구나 일곱 번 거듭 살게 된다면 충분히 다른 삶을 발견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도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하루하루도 어쩌면 샘이 마주했던 일곱 번의 날들과 다름없는 “반복”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샘처럼 용기를 내보라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겉모습”이나 “소문”에만 얽매이지 않고 그들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자신 또한 그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보라고 충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좀 과한 해석일까? 

  나에게 샘과 같은 반복된 삶이 주어진다면 과연 샘처럼 그런 노력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인생이 한 번 뿐이라는 것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러기에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아직 “가슴”으로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 책, 인간으로서 가장 중죄(重罪)가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영화 <빠삐용(Papillon, 1973)>의 명대사처럼 우리에게 “하루”를 보다 소중하고 귀하게 살라고 이야기하는 지도 모르겠다. 소중하고 귀한 삶이라......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은 아니겠구나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발론을 여는 주문, 스펠스 윙스 시리즈 2
에이프릴린 파이크 지음, 이지선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식물에서 인간형으로 진화한 “요정(妖精)”이라는 색다른 소재가 인상적인 "에이프릴린 파이크“의 <윙스> 시리즈를 1권 <잃어버린 날개, 윙스(원제 WINGS/북폴리오/2011년 5월)에 이어 2권인 <아발론을 여는 주문; 스펠스(원제 Spells/북폴리오/2011년 6월)로 한 달 여 만에 다시 만났다. 1 권을 즐겨하지 않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 임에도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읽었었고, 1 권이 설정 설명 위주의 도입부였다면 사실상 2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책읽기를 시작하였다. 다 읽고 난 느낌은 전편 못지않은 재미와 함께 아직도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도 함께 들었다.

전편에서 자신이 인간이 아닌 “요정(妖精)”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했던 “로렐”. 트롤과의 싸움이 끝난 지 반년 후 아버지는 딸이 요정이라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 일부러 요정이 나오는 판타지 소설을 반복해 읽을 정도로 - 어머니는 못내 받아들일 수 없는지 냉랭하기만 하다. 그런 그녀에게 요정들의 도시인 “아발론”에서 편지가 날아온다. 아발론 아카데미로 8주간의 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것. 요정 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린 로렐로서는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 언제 있을 지 모를 트롤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교육이다. 방학을 맞아 아발론에 입성한 로렐을 관문 파수꾼이자 로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타마니”와 전체 요정을 통틀어서 3명 밖에 없다는 겨울 요정의 수장이 맞이한다. 로렐은 아카데미에서 인간세계에 나와 있게 되면서 너무 늦어 버린 “가을 요정”으로서의 기초 소양 교육들, 즉 수많은 책들과 함께 온갖 약초들의 효능들과 약물 제조법 등을 익히기 위해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타마니와 함께 시장과 공원, 요정들의 주거지와 타마니의 집에 이르기까지 아발론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8주가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로렐, 아직도 어머니와는 서먹서먹하기만 하고, 로렐의 등에는 다시 날개와 같은 꽃잎이 돋아난다. 그때 전편에서 달아났던 트롤인 “반스” 일당이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난다. 트롤에게 쫓기던 데이빗과 로렐은 트롤과 같은 이생명체를 추적하는 국가 비밀기관 요원 “클리” 일행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고 트롤을 물리칠 권총까지 건네받지만, 그들을 신뢰하는 데이빗과는 달리 로렐은 요정인 자신 또한 그들의 추적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들을 미더워하지 하지 않는다. 다시 시작된 반스 일당의 집요한 공격을 로렐은 막아낼 수 있을까? 책 후반부에서는 반스와 로렐의 본격적인 대결이 펼쳐지며 이야기가 휘몰아친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볼 것은 역시 요정들의 도시인 “아발론”에 대한 묘사일 것이다. 겨울 요정의 주문에 의해서만 열리는 강력한 관문 너머 자리 잡고 있는 아발론, 우리가 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가득한 그런 “별세계(別世界)”이다. 자신이 태어난 계절에 의해 신분이 갈라지는 요정의 세계, 귀족이라 볼 수 있는 “가을 요정”인 로렐과 평민 계급이라 할 수 있는 “봄 요정” 타마니의 사랑은 둘 사이를 가로막는 신분이라는 벽 때문에 서글프기까지 하다. 타마니에게 자기도 모르게 끌리면서도 인간 세계의 데이빗 때문에 괴로워하는 로렐, 종잡을 수 없어 데이빗과 타마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로렐의 심리 묘사가 참 탁월해서 로맨스 소설 특유의 달콤함을 잘 느끼게 해준다. 또한 인류 역사와 아발론 요정과의 관계에 대한 설정이 참 재미있는데, 1편에서 아서왕이 잠들었다는 아발론이 바로 요정들의 도시 “아발론”이며, 세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서 요정들의 세계에 대한 묘사가 그렇게 자세하고 탁월했던 이유가 바로 아발론에서 세익스피어와 교류를 했기 때문 - <로미오와 줄리엣>도 요정들의 영향을 받은 책이란다. 그 이후 좋았던 관계가 단절되면서 세익스피어 작품 속에 더 이상 요정들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 이고, 심지어 창세기(創世記) 속의 최초의 여성 “이브”도 아발론과 관계가 있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즉 인류의 역사 속에 아발론이 알게 모르게 공존해있다는 설정이다. “참으로 비현실적인 소재를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과 깔끔하게 조화시켰다는 점이 이 소설의 매력” 이딱 제격이라고 할까? 다만 좀 더 구체적이지 않고 스리슬쩍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앞으로 이어질 3, 4 권에서 본격적인 설명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 외에도 요정들 스스로가 나무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그래서 요정들의 역사와 지혜를 보존하는 “세계수”에 대한 이야기나 앞서 말한 <한 여름 밤의 꿈>을 연상시키는 요정들의 공연 등 흥미롭고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가득 담고 있다. 

그러나 주요 갈등 관계를 형성하는 “요정”과 “트롤”의 전쟁은 이번 책에서도 밋밋하다 할 정도로 비중이 작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1편에서 로렐을 위협했던 “반스”는 이렇다 할 활약(?)- 그저 길거리에서 로렐을 추격하고 로렐을 지키는 수호 요정들을 따돌리고 로렐의 친구를 납치해서 로렐을 끌어들이는 정도 - 을 펼치지 못하고 새롭게 등장한 “클리” 일행에게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물론 2권도 요정들의 세계에 대한 “설정” 요소가 많았고, 로렐의 로맨스를 비중 있게 다루다 보니 상대적으로 트롤의 비중이 적게 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만큼 극적인 긴장감이나 재미는 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출간될 3권에서는 로렐의 숙적이었던 “반스”를 하수인으로 부릴 만큼 거대한 적들이 등장하고,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제 3세력인 국가비밀기관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그려지길 기대해본다. 

아쉬움도 들지만 신비로운 요정들의 세계가 색다른 재미를 준 책 이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에 대한 해답들과 본격적인 갈등이 전개될 3권이 기다려진다. 사실 내가 무덤덤한 남자라서 그런지 재미는 있었지만 푹 빠져들 정도까지는 아닌데, 아내는 1권을 읽고 나서 빨리 2권을 읽고 싶다고 성화를 부리고, 2권이 도착하기가 무섭게 뺏어들고 자기가 먼저 읽는 것을 보면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그 무언가의 “매력”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풋풋하기만 한 로렐의 로맨스 때문인지, 아니면 신비롭고 아름다운 요정들의 세계에 대한 환상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칠 수 있겠니]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 문학상,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중견 여성 작가 김인숙의 신작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한겨레출판/2011년 5월)>, 제목만 보면 참 도발적이다. “워커홀릭(Workaholic)"라고까지 평가받는 한국인 - 파이낸셜 타임스(FT) 독일판은 지난 7월 11일, 한국의 장시간 노동, 업무의 비효율성, 일 중독, 휴가를 꺼리는 문화 등을 지적하는 기사를 게재했다고 한다 - 이니만큼 “일”에 미칠 수 있냐는 뜻인지, 아니면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인 “사랑”에 미칠 수 있냐는 뜻인지 “무엇” 이라는 단어가 빠지다 보니 여러 상상이 든다. 그러나 낡은 집과 꽃나무 가지 표지 그림을 보면, 그리고 “미칠 수 있겠니, 이 삶에”라는 표지 문구를 보면 이 책이 “남녀의 사랑”을 그린 책이겠구나 하고 지레 짐작을 하게 한다. 그녀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인지라 새로운 작가를 만난다는 기대감과 함께 한편으로는 낯선 작가에 대한 저어함도 같이 느끼면서 읽기를 시작했다.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부부 “진”- 구분하기 위해 남편의 이름은 성(姓)을 붙여 “유진”이라고 부른다 - “진”. 7년 전 동남아 어느 섬 - 인도네시아 발리로 짐작되는 데 정확한 명칭은 언급하지 않는다 - 으로 건너와 가구공장을 운영하던 유진의 집 현지인 가정부( Servant)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살인이 발생한다. 범인은 정신이상자이자 가정부의 남자 친구로 밝혀지지만, 가정부가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던 터라 진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스러운 눈총을 받는다. 그 사건 이후 유진 또한 실종되어 버리고, 진은 그런 그를 찾아 7년 동안 매번 섬을 찾아온다. 관광객을 안내하는 현지 드라이버 “이야나”는 차를 타고 가다가 개 한 마리를 치었다.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사고를 내기는 처음이었던 그는 차를 그대로 크게 꺾어 죽은 개를 지나쳐간다. 얼마 후에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왔을 때, 개 대신에 택시를 기다리는 외국인 여자가 서있었다. 바로 섬을 찾아온 “진”이었다. 이야나의 소개로 힐러를 찾아가 치료를 받은 진은 잊고만 싶었던 7년 전 살인사건을 다시 기억에 떠올리게 된다. 남편을 잃은 진과 사랑하는 약혼녀 수니와 헤어진 이야나, 둘 다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가까워지고 급기야 하룻밤 사랑을 나눈다. 그 후 섬에 지진이 일어나고 섬은 일대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다. 약혼녀 수니를 찾으러 가는 이야나에게 진은 구해달라는 문자를 보내오고, 거대한 쓰나미가 둘을 덮쳐 버리지만 둘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다시 해후한 둘은 7년 전 살인 사건에 서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은 유진을 찾으러 7년 전 과거의 집으로 찾아가고 가정부를 죽였다고 알려진 청년을 교도소에 찾아가 만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진 앞에 유진이 나타난다. 

과연 이 소설의 주인공인 “진”과 “이야나”는 무엇에 미쳐있는 걸까? 유진이 섬에 이주해오면서 둘의 사랑에 불안감을 느낀 진은 유진의 아이를 임신한 가정부가 자신의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심한 배신감을 느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사라져 버린 유진을 찾아 섬을 7년 동안이나 헤맨다. 즉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사랑에 아직도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야나는 사랑하는 약혼녀 수니가 자신보다 나은 조건의 남자에게 떠나버린, 즉 자신을 배신한 그 사랑을 못 잊어 아직도 괴로워한다. 진과 이야나의 시계는 각각 7년 전과 약혼녀와 헤어진 그 시간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서 버린 것이다. 어쩌면 둘은 바로 “과거의 사랑”이 남기고 간 씻을 수 없는 화인(火印)에 미쳐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드라이버와 관광객으로 만난 둘의 인연이 하룻밤 사랑을 나눌 정도로 급속히 가까워진 이유도 같은 아픔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서로의 상처가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를 금세 알아볼 수 있었던 일종의 “동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이 잊지 못했던 유진과의 사랑은 여느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서로에게 열광하는 “미친” 사랑이었을까? 한국에서 유진과 진이 어느 공원에서 만난 노부부의 모습을 보고 나누는 다음 이야기를 보면 그런 “미친” 사랑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부부로 보이는 나이 든 두 사람이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 과일을 깎아 먹고 있는 게 보였다. 잔디밭은 입장 금지 구역이었음에도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평화롭게 보여 관리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내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늙은 남자가 자리에 눕자 늙은 여인이 양산을 기울여 남자의 얼굴에 내려앉은 햇살을 가려주었다. 

언젠가 우리도 저렇게 늙어가겠지. 

진이 말했을 때, 또 한 사람의 진이 가만히 손을 잡았다. 세상이 언제나 그 오후처럼 평화롭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며, 그중의 어떤 일은 감당하기 어렵게 가혹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진과 진은 나이가 들어 있었다. 그렇더라도 닥쳐오지 않은 삶 앞에서, 진과 진은 소망했던 것이다. 가급적이면 그 어떤 일이라도 순하게 지나가기를....... 혹, 그 어떤 가혹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서로가 서로의 등을 바라보는 일만큼은 없기를.......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누군가 먼저 그 등을 건드려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그리하여 그러한 모든 시간들이 지나면 저 노부부처럼 고궁의 잔디밭에서 고요히 가을 햇살을 쬘 수 있게 되기를.......-p.262~263

진이 바라던 사랑은 여느 부부처럼 함께 늙어가는 그런 평범하고 소박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랑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순간, 더 이상 평온함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순간 진의 손에는 어느새 칼이 쥐어지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7년을 찾아 헤맨 진이 유진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저렇게 평온한 사랑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을까? 아닐 것이다. 진은 유진과의 사랑을 다시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유진과 나누었던 사랑의 기억에 집착한 것일테다.

그렇게 과거에 머물러 있는 그들의 시계 바늘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 바로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재앙을 겪고 나서라는 점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을 겪고 나서야 진은 회피하고만 싶었던 7년 전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약혼녀의 생사를 찾아 헤매던 이야나는 드디어 이제 그녀를 놓아줄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리고 하룻밤 풋사랑인 줄 알았던 둘은 국적과 신분을 떠나 진심으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음을, 그것이 “사랑”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과거의 집착을 놓아 버리니 나이까지 붙들어 매고 7년 전 얼굴로 살아가던 진은 늙지 못한 7년의 세월까지 더해 늙어버리고, 7년 만에 다시 나타난 유진을 이제는 떠나보낼 수 있었으며, 이야나 또한 돈이 아닌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수니를 보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찾은 진과 이야나, 그래서 그들이 엮어나갈 사랑을 머릿 속에 그리며 나 또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작가가 말하는 “미칠 수 있겠니, 이 삶에”라는 물음에 정확한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주인공의 삶과 사랑이 그 누구보다 처연하고 아픈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미칠 것 같은 그런 사랑이었는지 금세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읽고 나서 가슴 속에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그 여운이 두 주인공의 아픈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앞으로 이어나갈 둘의 사랑 때문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끝으로 작가의 어느 인터뷰 기사 글을 옮긴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삶은 늘 흔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언제나 그 순간에는 그게 최악의 흔들림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처음 같은 설렘도 지나가면 옛사랑이고, 마지막 같은 절망도 지나고 나면 옛 상처다. 행여 매혹 때문에 겪은 흔들림이라고 해도, 굳이 과거의 상처를 꺼내보고 싶지 않다. 항상 과거에 겪은 것보다 더 대단한 일들이 앞으로 올 거라고 믿고 산다. 소설 속에서 지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지만, 내가 전달하고자 한 지진은 이런 것이다. 자기 삶을 뒤흔드는 상처이기도 하지만, 극복해낸 사랑. 독자들도 그렇게 봐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최인호” 이름 석 자만 보고 책을 집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가슴 벅차 오르는 감동에 불면(不眠)의 밤을 보낸 적이 참 많았던, 어쩌면 그는 내 젊은 날을 올곧이 지배했던 “군주(君主)”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이제 나도 젊음이 지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그를 띄엄띄엄 만나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의 이름 석 자는 젊은 시절 그에게 열광했던 시간들이 떠올리게 하며 아련한 추억에 젖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다. 그런데 그가 암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최근 들어 많은 문인(文人)들의 부고(訃告) 소식을 들어 그 또한 우리 곁을 떠나려고 서두르는 것은 아닌지, 내 젊음 또한 그와 함께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슬픔마저 느꼈었는데, 최근 “사람은 병(病)으로 죽지 않는다. 명(命)으로 죽는다”며 손톱 발톱이 빠지는 고통과 싸우며 골무를 끼고 소설 한 편을 완성했다는 기사를 읽고는 그의 건재를 확인할 수 있어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래서 그런 고통 속에서 완성해낸 신간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여백미디어/2011년 5월)>은 그가 이때까지 선보이는 그 어떤 작품들보다 반가웠던,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가슴 두근 거리는 설레임을 다시 한번 맛보게 한 그런 소설이었다. 

느닷없는 소음에 잠을 깬 “K", 그 소음이 머리맡 탁자 위에 놓인 자명종 소리임을 깨닫고는 버튼을 누르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회사에 출근할 필요가 없는 토요일, 도대체 누가 토요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7시에 자명종이 울리도록 미리 버튼을 눌러놓았을까? 기계치인 아내가 그랬을 리도 없고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늦게 돌아오긴 했지만 술김에 자명종의 버튼을 누를 만큼 정신이 없거나 기억을 잃을 만큼 과음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한번도 잠옷을 걸치지 않은 나체로 잠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잠자리에서 일어난 K의 모습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한 나신(裸身)이었고, 거기에 미혼의 청년시절부터 사용해온 "V"라는 브랜드의 스킨이 "Y"로 바뀌어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휴일 전날이면 사랑을 나누는 아내도 어제는 마치 몸이 얼음처럼 차가웠던 그런 냉기가 느껴졌었을 정도로 낯설었었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도 착각도 아니며, 가상의 무대 위에 세워진 연극 세트도 아니며 가상현실도 아니라며 애써 자위하던 K, 누가 잠옷을 벗겼냐는 질문에 웃으면서 답하며 자신의 손등을 때리는 아내의 손에서 섬뜩함을 느낀다. 지금까지의 친숙하고 정겹고 익숙하고 다정했던 아내의 손이 아니라 살기와 같은 적의와 함께 겨우내 동면을 하는 변온동물의 살갗처럼 차가움과 예리함, 날카로움이 느껴진 것이다. 이때부터 K에게 그동안 익숙했던 가족과 사람들이 모두 낯설게만 느껴지는 ”특별한“ 시간이 시작된다.  

청탁으로 쓴 연재소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쓴 최초의 전작소설이자 원래의 본령인 “현대소설”로의 회귀한 “제 3기의 문학”의 첫 출발이라는 이 작품, 솔직히 그동안 보여준 그의 작품과는 다른 경향에 낯설음을 먼저 느꼈다. 질투가 날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체, 벅찬 감동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가 그의 본 모습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런 그의 글에 반해 열광했던 것인데 이 작품은 그런 그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과연 이 책이 그의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첫 시작이 낯설었다. 그러나 책 읽기가 계속되면서 그런 낯설음은 금세 잊게 되고 독자들의 시선을 꼼짝없이 붙들어 놓는 이야기의 “힘”에 나또한 푹 빠져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읽게 만들고는 다 읽고 나서 “역시 최인호!” 라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남에게 읽히기 위한 문학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나중에는 단 하나의 독자인 나마저도 사라져버리는 본지풍광(本地風光)과 본래면목(本來面目) - 둘 다 근원의 모습을 뜻하는 불교 용어다 - 의 창세기를 향해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한때 인기에 영합하는 대중소설 작가라는 폄하를 이제는 당당히 벗어버리고 새로운 문학을 출발하겠다는 그의 각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주제를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에서도 등장하는 “도플갱어”와 “매트릭스”처럼 실재(實在)라고 여겼던 현실이 사실은 가상현실과도 같은 그런 부질없는 허상(虛像) - 이 때문에 SF소설이나 판타지 소설 쯤으로 여기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 임을 말한다고 여길 수 도 있겠고, 수많은 사람들 - 여기에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친구, 직장동료,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혼자일 수 밖에 없다는 현대인의 “고독(孤獨)”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으며, 안정된 삶이라는 것이 사실은 언제든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삶의 불안함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 도 있겠다. 즉 독자의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이 마냥 낯설기만 할 수 도 있을 것이고, 월요일 아침 출근 길에 지난 이틀 동안 등장했던 등장인물과 인사를 나누는 결말 - 김연수 작가는 “현실이 붕괴된 뒤 K 자신과 함께 사라질 현실의 꼭두각시들과 작별하는 의식이라고 말하면서, 이 모든 것과 작별한 뒤에야 우리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힌다. -이 영 분명치 않아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 도 있을 것이며, 기존의 최인호가 아닌 새로운 “최인호”를 만나는 신선한 충격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르게 읽혀지고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틀에 박힌 정형화된 느낌이 아니라 진동으로 인해 사물이 두 겹 세 겹으로 겹쳐 보이는 , 그래서 눈에 더 힘을 주어 한 글자 한 글자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그러나 끝에 이르러서는 불안함이 아닌 어느새 명확한 이미지를 완성해 낼 수 있었던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다시 읽게 된다면 또 다른 이미지를 그려낼 수 도 있겠지만.

원래 남의 글을 비판할 만한 능력과 재주도 없을 뿐더러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작가의 책이다 보니 평가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후할 수 밖에 없음을 이 서평을 읽고 책을 선택하는 혹시 모를 분들께 미리 양해를 구해야겠다. 끝으로 작가에게 바라는 것으로 이 부끄러운 서평을 끝내야겠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이라는 작가의 믿음이 부디 몇 십 년 후에나 이루어지길, 그래서 새로운 문학의 출발점에 선 그의 작품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