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
로렌 올리버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읽은 SF소설에서 “타임머신"이 “실재(實在)”한다면 과연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시간대(時間帶)가 어디냐는 질문에 “우리 삶에서 가장 불행했던 순간”이라고 말하는 대목을 읽은 적이 있다. 즉 과거로 돌아가 자신을 삶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보통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 또는 역사상 유명한 사건을 떠올릴 텐 데 일견 당황스러웠지만 뭔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런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딱 하루만 살 수 있다면?” 라는 질문 - 물론 “타임머신”처럼 자신의 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자신이 죽던 날, 하루가 반복된다면 - 에는 어떤 답변이 나올 수 있을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다가 하루의 끝자락에는 결국 내가 죽어버리고, 다음날에는 다시 반복되는 그런 날을 살고 있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로렌 올리버”의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원제 Before I Fall / 북폴리오 / 2011년 7월)>은 이처럼 자신이 죽는 날을 계속 반복해서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다.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 4학년인 17세 소녀 “사만사 킹스턴(약칭 “샘”)”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는 “큐피드 데이” 날인 2월 12일 금요일, 아침 6시 55분부터 입으로 자동차 경적 소리를 내는 친구 “린지”의 차를 타고 학교에 등교한다. 오늘은 자신의 첫 번째 진짜 짝사랑인 “롭 코크란”과 하룻밤을 같이 하기로 한 그녀에게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학교 수업이 진행 -샘이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여기 저기서 장미꽃을 받는다 - 되고, 샘는 첫키스 상대였던 “켄트 맥풀러”에게서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와달라고 초대를 받는다. 롭도 간다는 말에 친한 친구들과 함께 파티에 참석한 샘은 파티장에서 자신들이 “사이코”라고 놀리는 “줄리엣 사이크스”가 자신들에게 욕을 퍼붓고, 같이 밤을 보내기로 했던 롭 또한 술에 만취해 버리는 바람에 기분이 상한다. 그렇게 파티가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술에 취한 린지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어떤 사람이 갑작스레 차에 뛰어들면서 그만 사고가 나서 샘과 친구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어둠과 적막이 흐른 후 샘은 린지가 입으로 내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잠에서 깨고, 혀가 짧은 여덟 살 난 동생이 자기의 방문을 연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2월 12일 금요일 아침 6시 55분. 분명 어제 밤 사고로 죽었는데 바로 자신이 죽은 그 날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샘은 여섯 번의 큐피드 데이를 다시 살면서 이런 반복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학교 등교를 하지 않기도 하고, 파티에도 가지 않는 등 일종의 변화를 시도하지만 여전히 그날이 반복된다. 그러나 여섯 번을 반복하면서 멋있기만 했던 롭이 영 미덥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짝사랑했던 켄트가 정말 멋진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롭 대신 켄트와 하룻밤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 자신들의 차에 뛰어든 사람이 바로 왕따 시켰던 ”줄리엣“이라는 것을, 그리고 차에 뛰어 들지 않았더라도 권총 자살을 하는, 결국 줄리엣 또한 그날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곱 번째 반복되는 “내가 죽던 날” 아침 샘은 이 날을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다. 그렇다고 이 지루한 반복이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지난 날들과는 아주 다른 “특별한” 큐피드 데이가 시작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서도 언급했던 <사랑의 블랙홀(원제 Groundhog Day/1992)>라는 코메디 영화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지역 축제 - 원제목이기도 한 “Groundhog Day”가 바로 그 축제 이름이다. 우리말 번역 제목이 더 잘 어울린다 - 에 참석했던 방송 캐스터가 매일 아침 똑같은 날이 반복되는 일종의 타임 루프에 빠져들고, 이 반복 고리를 끊기 위해 온갖 짓들 - 자살, 착한 일, 나쁜 일, 악기 배우기, 기타 등등 - 을 벌이지만 악순환은 멈추지 않고, 결국 진실한 사랑으로 비로소 그 고리를 끊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그래서 이 책도 ”죽는 날“의 반복이라는 유사 소재이고 영화처럼 그 반복의 고리를 끊기 위해 - 자신의 삶을 바로 잡기 위해 - 주인공이 여러 일들을 연출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뻔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작가는 여성 특유의 필치로 영화와는 다르게 새롭게 구성해 내어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물론 긴장감이나 스릴 면에서는 다소 밋밋하고, 지루한 감도 없지 않은데 - 특히 책 초반에서 샘의 아침에서 사고가 나는 장면까지의 하루를 묘사한 부분은 이 책이 제목과는 달리 하이틴 로맨스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 반복되는 하루에서 벗어나려는 17세 소녀 ”샘“의 심리 변화와 그녀의 노력들을 쫓아가다 보면 재미와 함께 잔잔한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작가는 앞서 말한 “딱 하루만 살 수 있다면?” 이란 질문에 한번 뿐이기에 돌이킬 수 없는 삶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따라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어떤 것을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샘이 롭이 아닌 켄트에게서 진실한 사랑을 발견하고, 왕따의 대상이었던 줄리엣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면서 그녀를 이해하게 되고, 그녀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그런 노력들이 반복의 고리를 끊어 샘이 “여덟번 째날”을 살고 있는지 분명하게 결말 맺고 있진 않지만 샘은 계속 반복되는 날들을 살더라도 자신의 선택을, 자신의 삶을 좀 더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기꺼이 노력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해볼 수 있어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물론 누구나 일곱 번 거듭 살게 된다면 충분히 다른 삶을 발견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도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하루하루도 어쩌면 샘이 마주했던 일곱 번의 날들과 다름없는 “반복”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샘처럼 용기를 내보라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겉모습”이나 “소문”에만 얽매이지 않고 그들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자신 또한 그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보라고 충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좀 과한 해석일까? 

  나에게 샘과 같은 반복된 삶이 주어진다면 과연 샘처럼 그런 노력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인생이 한 번 뿐이라는 것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러기에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아직 “가슴”으로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 책, 인간으로서 가장 중죄(重罪)가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영화 <빠삐용(Papillon, 1973)>의 명대사처럼 우리에게 “하루”를 보다 소중하고 귀하게 살라고 이야기하는 지도 모르겠다. 소중하고 귀한 삶이라......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은 아니겠구나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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