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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노래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8-1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 1
발 맥더미드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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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범죄심리분석가”, 즉 “프로파일러(Profiler)”는 1972년 FBI가 이 수사 기법을 공식 도입하면서 시작했다고 하니 그 역사가 벌써 40여년 가까이 이르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0년 부산 여중생 살인 사건에서 국내 프로파일러 권위자가 용의자의 성격이나 행동반경 등을 추론해내는 방송을 보도할 정도이니 이미 국내에서도 실제 수사에서 활용되는 수사기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케이블 TV를 보다 보면 프로파일러를 소재로 한 미국 드라마들을 자주 만나게 되다 보니 나에게도 그리 낯설지는 않은데 몇 가지 작은 단서들만으로 범인의 성격과 행동유형, 심지어 신상 정보라 할 수 있는 성별· 연령· 직업· 취향· 콤플렉스 등을 추론해내는, 마치 “셜록 홈스”의 21세기 재림(再臨)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영 현실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발 맥더미드“의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인 <인어의 노래(원제 The Mermaids Singing/랜덤하우스 코리아/2011년 6월)>도 그런 거부감 때문이지 시작하기가 어려웠던 소설이었다.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니 그런 거부감을 느낄 겨를이 없이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긴장감과 재미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기존 추리소설과는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영국 남부지방에 자리 잡고 있는 소도시 브래드필드에 연속적으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처음 두 번의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부인하던 경찰은 네 번째로 발견된 시체의 신원이 경찰로 밝혀지자 연쇄살인사건으로 인정하고 내무부 소속 국가 범죄 프로파일링 태스크포스 가능성 연구팀을 맡고 있는 “토니 힐”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강력반 여형사 “캐롤 조던”과 함께 수사에 나선 토니 힐은 그동안 살인사건들의 여러 단서를 토대로 범죄자를 밝혀내기 위한 ‘프로파일링“을 시작하는데, 기존에 살인사건을 전담해 왔던 크로스 경감은 그가 영 못마땅하게만 여기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 토니 힐은 프로파일링 끝에 연쇄 살인범 "핸디 엔디” - 토니 힐이 붙인 가명 - 가 잘 정돈된 연쇄살인범으로서 살인 사이에 규칙적으로 8주라는 보기 드문 일관성을 가지고 있고, 이처럼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이유중 하나가 오랫동안 살해대상을 스토킹하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그리고 다음 목표, 즉 다섯 번째 살인 대상이 네 번째처럼 경찰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수사팀에서 일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추론해낸다. 이런 추론이 제대로 들어맞아서 범인은 다섯 번째 대상을 이번 수사팀에서 선정한다. 그것도 처음 언론 인터뷰에서 연쇄살인사건 가능성을 부정했던 바로 토니 힐을 말이다. 과연 토니 힐은 연쇄살인범의 손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작품의 출간이 1995년이었다니 수사 현장에서야 프로파일러가 활동하고 있었겠지만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그다지 다루지 않은 그런 소재 - 물론 16년 전 작품이라 몇몇 장면에서는 지금과 같은 첨단 과학 수사기법보다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소품들도 등장하지만 -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은 연쇄살인범이 자신의 살인과정을 그린 수기를 챕터마다 배치하고 토니 힐의 프로파일링 과정과 브래드필드 형사들의 수사과정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다. 특히 셜록 홈스 뺨치는 과장된 요즘 미드에서의 프로파일링이 아니라 사건의 증거들과 단서들을 토대로 범인의 윤곽을 완성해내는 토니 힐의 프로파일링 기법을 상당히 설득력있고 현실감있게 그리고 있는데, 의자 두 개를 마련해놓고 한 의자에 앉아 맞은 편 의자에 범인이 앉아 있다고 가정하고 범인에게 질문하면 토니 힐이 범인 의자에 가서 앉아 다시 답변하는 형식을 반복하는 장면들이나 실제 프로파일러들의 원고처럼 느껴질 정도로 범인의 심리와 또다른 범죄가능성을 세세하게 묘사한 토니 힐의 원고들이 그런 현실성을 더욱 뛰어나게 만든다. 다만 이런 프로파일링 과정이 이어지는 중반까지는 지루한 감이 없지 않은데 후반 부문에 이르러 토니 힐이 범인에게 납치되고 케롤 형사가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어 추적하는 장면부터는 다시 긴장감과 스릴이 배가되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숨 가쁘게 책장을 넘기게 만드니 좀 지루하더라도 책장을 덮지 말고 조금만 더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그런데, 국가 범죄 프로파일링 태스크포스를 이끌 정도로 전문가였던 토니 힐의 프로파일링은 이번 책에서는 실패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우선 자신이 범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범인이 자신의 주변 인물이었다는 것을 간과했고, 캐롤 형사가 제시했던 가능성인 “여장 남자”나 “성전환자”의 가능성 - 결말에 이르러 범인의 실제 모습으로 밝혀진다 - 도 막연히 뜬구름 잡는 수준의 이야기를 넣어서 자신이 가능성이 크다고 느끼는 다른 것들을 손상시키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프로파일링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는 실수를 범한다. 그렇다 보니 사건 해결도 그런 범인의 정체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했던 캐롤 형사의 제안에 의해 해결 - 그래서 그런지 토니 힐이 캐롤에게 여러번 자신의 테스크포스에 참여하라고 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 되는 어쩌면 다소 엉뚱한 결말을 맺는다. 물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토니 힐이 범인에게 납치되어 절대 절명의 위기를 겪는 장면이 이 책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이끄는 장치이자 오히려 현실감을 더욱 끌어올리는 설정이라 할 수 있고, 토니 힐 시리즈의 첫 번째 권으로서 처음 실제 프로파일링 수사에 나서는 토니 힐이 이어지는 시리즈들에서는 더 이상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는 베테랑이 되었을 거라는, 즉 좀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선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지만 말이다. 

지루한 면도 없진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범죄 소설이었다. 이번 권처럼 조금은 불완전하면서도 천재적인 프로파일링 수사를 펼칠 “토니 힐”과 그의 든든한 파트너이자 묘한 애정관계를 형성할 “캐롤 조던” 형사의 멋진 활약을 그려냈을 후속권들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이 작품이 영국에서 드라마화하여 크게 인기를 얻었고, 미국 CBS 텔레비전과 드림웍스 텔레비전이 판권을 사들여 CSI 제작진에 의해 미드로 곧 재탄생한다고 하니 조만간 드라마로도 만나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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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로 기차로 - 2011-2012 전국 기차여행 완벽 가이드
권다현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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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누구라도 꿈꿔봤을 “전국일주여행(全國一周旅行)”의 꿈을 이룬 건 대학을 졸업한 후였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1>을 들고 강원도 속초 통일전망대에서부터 경주, 포항, 부산, 전남 해남 땅끝마을(土末)까지 10일 간의 여행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련히 기억에 남는 소중하고 멋진 여행이었다. 다만 아쉽다면 주로 해안선을 따라 간 여행이라 버스로만 이동해서 내륙 지방을 둘러보지 못한 것인데, 언젠가는 기차로도 전국일주를 해보겠다고 다짐해보지만 만만치 않은 차비와 바쁜 일상에 치여 쉽게 여유 시간을 낼 수 없는 처지인지라 선뜻 나서지 못하고 기차여행은 아직도 이루지 못하고 계속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지금 당장이라도 배낭을 둘러메고 기차 여행에 나서고 싶을 만큼 강력한 유혹의 기차 여행 안내서를 만났다. 바로 여행 작가 “권다현”의 <내일로 기차로(테라/2011년 7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2007년 여름부터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 선보인 초저가 여행상품인 “내일로 티켓”을 모티브로 한 기차 여행 안내서이다. 이 티켓은 “54,700원”으로 일주일 동안 전 노선의 새마을호, 무궁화, 누리로, 통근열차(KTX는 2회에 한해 50% 할인된 운임에 이용할 수 있다)를 이용할 수 있는 티켓으로 여름(6.1.~9.6.)과 겨울(12.1.~12.28.) 두 시즌 동안만 운영되며 만 25세 이하의 청소년들만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몇 해 전 신혼여행으로 유럽을 갔을 때, 유럽 각국을 초저가로 마음껏 기차 여행할 수 있는 “유레일패스(Eurailpass)"나 하루 동안 전철, 버스 등 도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원데이 티켓(One-Day Ticket)" 등을 보고 참 부러워했었는데, 우리나라도 이런 상품이 있었다니 하는 반가움과 함께 25세 이하의 청소년만 대상이라는 문구에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나 이 티켓의 목적이 청소년들의 호연지기를 키워주고 기차여행의 즐거움을 홍보하기 위해서라니, 우리처럼 경제적 여유가 있는 기성세대들 보다는 치솟는 등록금에 취업문제에 갈수록 어깨가 처져가는 젊은 청년들에게 그나마 위로가 될 수 있는 혜택이니 아쉬움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내일로 티켓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 이 책은 기차여행에 대한 각종 궁금증에 대하여 “꼭 알아야 할 전국 기차 여행 FAQ 21”로 꼼꼼히 설명한 후 본격적인 여행 루트를 소개한다. 먼저 기본 여행 루트라 할 수 있는 “이대로 따라만 가면 OK! 테마별 루트(PART2)”를 소개하고, 본격적인 여행지 안내라 할 수 있는 “테마별로 나눈 최고의 기차 여행지(PART3)"를 주요 여행지별로 기본 정보와 여행지 사진, 간단한 안내글을 1~2 페이지 분량으로 소개한다. 예를 들어 ”04. 눈부신 태양은 뜨고 지고; 해돋이와 해넘이 여행“에서는 연말 연시 TV 해돋이 해넘이 장면 방송에서 한번쯤은 봤었을 명소인 “향일암(여수)”, “유달산(목포)”, “달아공원(통영)”, “모래시계공원(정동진)”, “호미곶 해맞이 광장(포항)”, “간절곶(울산)”을 소개하고, “14. 이야기를 간직한 공원산책; 한번쯤 들르고픈 아름다운 공원 여행”에서는 “외도 보타니아(거제)”, “뿌리공원(대전)”, “와인터널(청도)”, “함평엑스포공원(함평)”, “피나클랜드(아산)”을 소개한다. 그리고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등 각 노선별 가볼만한 기차 여행지와 맛집, 추천 숙소를 꼼꼼히 소개(PART4,5)하고 있어 대도시 기차역 외에 소규모 기차역에는 영 낯선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여기에 부록으로 “시티투어” - 셔틀버스 형태의 관광버스를 타고 해당 지역의 관광명소를 순환하며 운행하는 여행 상품으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마다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천안도 개설되어 있는데, 천안박물관, 독립기념관, 유관순생가, 병천 시장 등을 주요 코스로 한다. 저렴한 비용으로 도심 곳곳의 명소를 여행할 수 있는 알뜰 여행 상품이다 - 와 “내일로 티켓” 시즌에 열리는 여름·겨울 축제, 그리고 “비둘기호”가 없어진 후 더욱 가기 힘들어진 간이역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내일로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기차 여행을 위한 각종 유용한 정보와 유명 관광지를 꼼꼼히 담고 있는 책이어서 책 자체만으로도 활용성이 매우 큰 책이라 할 수 있겠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가볼만한 곳이 많다는 것을, 자동차 여행이 주는 한가로움과 편리함보다는 조금은 북적대고 시끄럽지만 어우러짐이라는 여행의 참 맛을 느껴볼 수 있는 기차 여행의 멋스러움과 낭만을 새삼 느껴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짧았던, 그리고 지겹기까지 한 장맛비와 태풍으로 집안에서 갇혀 지냈던 여름 휴가 마저 지나가버려 이제 올해는 기약하기가 힘들겠지만 내년 여름 휴가 때는 책에서 소개하는 여행 루트를 잘 참조해서 “기차 여행”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그때는 이 책이 잊지 말고 꼭 챙겨할 필수품 1순위로 제일 먼저 내 여행 가방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 옛날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가 내 여행의 길라잡이가 되어 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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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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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목록에 추리 소설 3~4권이 매월 빠지지 않고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추리소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가장 즐겨 읽는 그런 장르소설이라 할 수 있다. 언제 처음 읽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읽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Sherlock Holmes)” 시리즈가 처음 작품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어린 나이였지만 추리소설의 재미에 흠뻑 빠진 나는 자연스레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팡(Arsene Lupin)”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Hercule Poirot)”, "미스 마플(Jane Marple)"을 만난 것도 비슷한 시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그 당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에게 필독서라고 부를만한 책이 있었는데, 바로 <팬더 명탐정 시리즈(해문출판사)>였다. 추리소설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이끌어내기 위한 어린이용 기획도서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책이었던 <세계의 명탐정 44인>, <명탐정 대작전 21>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탐정들 중 가장 유명한 탐정들을 엄선하여 소개하는 일종의 “명탐정 백과사전”으로 “셜록 홈스”나 “에르큘 포와로” 정도만 알고 있던 나에게 “셜록 홈스” 못지않은 명탐정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추리소설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그런 책이었다. 그 후 로 책 속 명탐정들이 나오는 작품들을 읽고 싶어 찾아봤지만 국내에 출간된 작품이 별로 없어 줄곧 아쉬웠었는데, 이번에 그런 아쉬움을 한 번에 날려 버릴 “보물(寶物)”과도 같은 책을 만났다. 추리소설 작가이자 번역가로 큰 획을 그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이름인 故 정태원 작가의 마지막 번역 작품인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비채/2011년 7월)>이 바로 그 책이다. 드디어 어릴 적부터 줄곧 간직해온 소원을 이루게 된다는 설레임과 기쁨에 700쪽에 이르는 이 책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었다.  

책의 배경을 잠깐 살펴보면 1880년대 말부터 1890년대 초반까지 “코난도일”의 “셜록 홈스”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할 정도로 크게 성공을 거두자 영국에서는 셜록 홈스와 같은 명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들이 유행처럼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즉 이 책의 제목처럼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 셈이다. 책에는 이처럼 홈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홈스에 견주만할 천재적인 탐정들을 창조해낸 작가 10인의 작품들과 코난 도일의 미발표 작품들 포함해서 총 30편의 작품이 70여 컷의 삽화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작가들과 탐정들을 간단간단하게 살펴보자. 코난 도일의 미발표 작품 4편 다음에 제일 먼저 오늘날 남성 못지않게 멋지게 활약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 탐정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여탐정 “러브데이 브룩”를 창조해낸 “캐서린 루이자 퍼키스”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어 홈스의 전통을 가장 잘 이어받았다는, 그러나 괴벽(怪癖) 투성이의 문제적 인간 셜록 홈스보다는 좀 더 사회 친화적인 탐정인 “아서 모리슨”의 “마틴 휴이트”, 용의자와 증인들의 증언만으로도 사건을 추리해내는 대표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베로니카 에뮤스카 오르치”의 “구석의 노인”, 인간이 아닌 “생각하는 기계” - 체스를 한 번도 둬 본 적이 없었지만 단지 체스 규칙을 파악한 것 만으로도 체스 챔피언을 이겨버려 붙은 별명이다 - 불릴 정도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크 푸트렐”의 “밴 듀슨 교수”, 셜록 홈스의 철자를 변형하여 만든 “짝퉁”이지만 “최고의 홈스 패러디”라는 찬사를 받았다는 “브레드 하트”의 “햄록 존스” - “모리스 르블랑”도 자신의 작품에서 셜록 홈스(Sherlock Holmes)의 철자를 바꿔 “헐록 숌즈(Herlock Sholmes)”라는 이름으로 등장시킨다 - 등 그야말로 명탐정들의 지적(知的) 향연(饗宴)이 원 없이 펼쳐진다. 한편 추리소설 사상 가장 유명한 도적인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루팡”의 원형(原形)이라 할 수 있는 괴도(怪盜)들도 소개하고 있는데, 점토(클레이)를 이용해 자유자재로 변장하는“그랜트 앨런”의 “클레이 대령”, 코난 도일의 처남으로 겉으로는 말쑥한 신사이지만 속으로는 변장술이 기가 막힌 위트 만점의 멋진 도둑 “래플스”, 밴 듀슨 교수 못지않게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며 법의학을 최초로 탐정 수사에 도입시킨 탐정으로 셜록 홈스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평가받는 “손다이크 박사”를 창조했던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이 친구인 “피트케언”박사와 함께 “클리포드 애시다운”이라는 필명으로 창조해낸, 역시 겉과 속이 다른 괴도 “롬니 프링클” 등이 바로 그들이다. 여기에 <시간 관리론(How to Live on 24 Hours a Day)>이라는 자기계발서로 더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아놀드 베넷”의 단편 작품까지 포함되어 있어 19세기 말 당시 추리 소설 경향을 제대로 담아낸 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개인적으로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여러 탐정들과 괴도 들 중에서는 역시 앞에서 언급했던 책들로 만나본 적이 있는 “구석의 노인”과 “밴 듀슨 교수”, “러브데이 브룩”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가장 반가웠다. 그리고 비록 생소한 인물들이지만 다양한 개성들과 천재적인 추리 솜씨를 발휘하는 다른 작품들도 새로운 재미를 느껴볼 수 있었던 멋지고 소중한 작품들이었다. 

책의 재미만 놓고 말한다면 이미 백 년도 더 된, 말 그대로 추리소설 태동기에 나온 고전 작품들이라 현대 추리 소설에 입맛이 길들여진 분들이라면 밋밋하거나 싱거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셜록 홈스나 이 책에 나오는 작품들, 그리고 후대인 애거서 크리스티, 앨러리 퀸과 같은 고전 작품부터 추리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독자들이라면, 또한 나처럼 어릴 적 “명탐정 시리즈”를 읽어봤지만 실제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해 아쉬움을 느꼈던 독자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소중한 그런 책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 나로서는 최고의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 아직도 대전 본가(本家) 책장에 꽂혀 있는, 지금도 내려갈 때 마다 한번 씩은 꼭 펼쳐 보게 되는 <명탐정 대작전 21> - 표지가 너덜너덜 해지고 책 속 몇 몇 페이지는 찢겨나가기까지 했지만 - 과 함께 절대 누구 빌려 주거나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보물(寶物)”이 될 것이다. 아쉽다면 이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느 탐정 못지않은 명탐정들 - 대표적으로 "G.K.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와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손다이크 박사”를 들 수 있겠다 - 의 작품들이 이 책의 2부로 엮어 나왔으면 하는 것인데 저자이신 정태원 작가께서 돌아가셔서 이런 바램이 이루어지기가 더욱 요원(遼遠)해졌다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추리소설  독자들에게 있어 정말 소중하고 값진 선물을 남겨주신 故 정태원 작가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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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페어
하타 타케히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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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독자 간의 두뇌 싸움”이라고 정의(定意)할 수 있는 추리소설에는 몇 가지 정형화된 공식(公式)이 있다고 한다. 등장인물 모두가 범인일 가능성이 있지만, 그중 전혀 의외의 인물이 범인이어야 하며, 범인의 정체와 범행 수법이 “탐정” 역할을 하는 사건 해결의 주체에 의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즉 “완전범죄(完全犯罪)”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작가는 독자들이 추리할 수 있도록 충분한 단서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도 빠질 수 없는 공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종종 이런 룰을 깨는 “파격적인” 시도가 있어 왔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으로 범인의 정체를 전혀 눈치챌 수 없도록 만든 “어떤” 장치 - 스포일러 일 수 있어 생략한다 - 때문에 “공정성”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최근에는 작가가 아예 작심하고 등장인물의 말투, 이름, 성별, 연령 뿐만 아니라 사건의 교차 배치나 시간 순서를 바꿔 독자들을 오인시키는 “서술 트릭”이라는 장르까지 출현했으니 추리소설에서 "공정성“ 논쟁은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그런 논쟁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하타 타케히코”의 <언페어; 예고된 살인 불공정한 게임이 시작된다(원제 推理小說/북스토리/2011년 8월)>는 이런 틀에 박힌 추리소설의 공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예 제목을 “추리소설(원제)”이라고 붙이고는 “불공정한 것은 누구인가?”라고 독자들에게 대놓고 묻는다. 

 비가 내리는 6월 14일(월) 신주쿠 구, 통금 시간에 늦어 집 인근의 “도야마 공원”을 가로 질러 귀가하던 여고생 “다츠이 마도카”가 산책로에 놓여 있는 장애물을 미쳐 보지 못해 넘어지고 만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등 뒤의 수풀 속에서 괴한이 “이것이, 리얼리티, 그리고 독창성”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칼을 들고 마도카에게 다가온다. 겁에 질려 뒷걸음질 하던 마도카는 조금 전 걸려 넘어졌던 장애물이 바로 처참하게 살해된 중난 남자의 시체임을 알고 공포로 그만 작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처지에 처한다. 이 글 말미에 “T.H.『추리소설』상권, 제1장의 1에서 발췌.”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어느 추리소설에서 발췌한 글인 듯 한데, 추리 소설 속 살인사건이 도야마 공원에서 “실제로” 일어난다. 피해자의 신원은 “회사원, 스즈키 히로무, 42세”와 소설 속 여고생이었던 “도립고등학교 3학년생 다츠이 마도카 양, 17세”로 밝혀지고 시신 곁에서 “불공정한 것은, 누구인가?”라는 의문의 책갈피가 발견된다. 경시청 수사 1과 검거율 넘버원인 “쓸데없이” 미인 여형사 “유키히라 나츠미”와 신참 형사 “안도 가즈유키”가 수사에 나서지만 목격자 하나 없고 서로 연관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두 시신 때문에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진다. 그런데 며칠 후 “이와사키 출판사”의 “문학 신인상” 수상 파티에서 한 참석자가 독이 든 샴페인을 마시고 피를 토하며 죽는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는 경찰서와 각 출판사에 지금까지 일어난 살인 사건을 그대로 담고 있는, 즉 앞서 언급한 "T.H."라는 이니셜이 써 있는 추리소설 원고가 배달된다. 소설에는 다음 살인 사건을 예고하면서 살인을 막으려면 원고를 3 천만 엔이라는 고액에 낙찰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러한 범인의 요구가 묵살이 되고 원고에 예고한 대로 이번에는 W대학 문학부 학생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범인에게서 다시한번 추리 소설 원고와 함께 자신의 원고를 1억엔에 낙찰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7살 소녀를 죽이겠다는 살인 예고장이 날라온다. 유키하라 형사는 과연 자신의 명성에 걸맞게 이 연쇄 살인을 막아낼 수 있을까? 결말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여기서 줄인다.

실제 살인 사건을 그대로 담고 있는 책 속 추리소설, 예고 살인이라는 설정이 독특한 재미를 주는 이 책은 극작가이자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한 작가의 이력 탓인지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구성이 상당히 색다른데 실제로 11부작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었다고 하며, 올 하반기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개봉된다고 하니 아무래도 영상화(映像化)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난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명탐정 역할의 “유키히라 나츠미”라고 할 수 있는데, 수사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쓸데없이” 미인이라던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집안 풍경, 알몸(全裸)으로 잠들지 않나 남자 못지 않게 술고래에 터프한 성격이라는 설정 등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캐릭터 설정이라 할 수 있겠다. 책 중반에 유키히라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나지만 마지막 예고 살인의 대상이 유키히라의 딸일 수 있다는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연관성이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매력적일 수 도 있지만 뜬금없게까지 느껴지는 이런 주인공을 설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앞에서도 언급한 “추리소설의 공식”, 즉 “공정성”에 대한 작가의 조롱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작가는 추리소설의 공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추리소설'처럼 따분한 소설은 없다. 왜냐고? 읽기 전부터 결말이 드러나 있으니까. 사건은 반드시 해결된다. 범인은 반드시 밝혀진다. 게다가 진범은 반드시 초반부터 등장하고,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반드시 맡고 있다. 복선은 항상 그럴듯하게 적혀 있고, 조금이나마 소설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때부터 사건의 진상을 추리할 수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수상한 인물은 항상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기호거나, 제2, 제3의 피살자로 이미 정해져 있다. 독자는 보수적이라, 작가에게 항상 공정할 것을 요구한다. 공정하게 웃겨라. 공정하게 놀라게 하라. 예컨대 '반 다인의 20법칙'. 예컨대 '로널드 녹스의 10계'. 요구되는 것은 항상 예정 조화적 '대반전'. 그러면서 그것들을 동시에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독자는 말한다. 혹은 독자의 대리인인 편집자는 말한다." - P.89~90

이처럼 틀에 박힌 추리소설의 공식이 “따분하다”고까지 말하는 작가는 그동안의 추리소설 속 명탐정들이 일반인들과는 다른 천재성과 독특한 괴벽을 보여주는 것을 조롱이라도 하듯 추리소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상하기까지 한” 탐정 캐릭터를 선보인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야기의 전개는 철저하게 추리소설의 공식에 따라 전개한다. 즉 진범을 초반부터 등장시켜 나름 비중을 높게 하고, 몇 몇 힌트를 던져 주면서도 다른 등장인물로 오인하게끔 장치를 설정하면서 범인이 언급했던 "리얼리티”와 “독창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이외에도 문하생이라는 허울아래 실제로는 대필(代筆) 작가로 부려 먹는 기성 인기 작가나 문학상 시상식을 출판사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고, 고액의 가격으로 낙찰하라는 요구에 손익 계산부터 따지는 출판사들의 행태 등을 통해서 장르적 한계 뿐만 아니라 출판 현실까지도 싸잡아 비판하기도 한다. 공정성을 비판하면서도 스스로는 공정성을 지키는 반어법적인 묘사가 인상적인 책이지만, 공정성을 스스로 위반하는 몇 장면도 담겨 있다. 즉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범인의 정체 - 내가 추리력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범인을 짐작할 만한 단서들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 와 결말 부분에 이르러 유키히라가 범인에게 당신이 범인이냐고 묻자 부인하는 장면등이 그 예인데, 이 대목들도 작가의 계산된 설정 - 실제로 마지막 장면에서 범인이 자기 정체를 부인한 것은 의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 일 수 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추리소설의 공식을 조롱하고 비판한다고 “오해”하게 만드는 것도 작가의 의도일 수 도 있고 말이다. 

 독특하고 색다른 “추리소설”로 읽든 아니면 기존 추리소설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라는 “오해”로 읽든 어떤 식으로 읽어도 참 재미있는 이 책, 우선 “쓸데없이” 미인인 유키히라 역을 누가 맡고 있는지 궁금해서라도 이미 방영했다는 드라마부터 먼저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가을에 상영한다는 영화 또한 놓치지 않고 챙겨봐야겠다. 그래서 드라마, 영화로도 계속 만나게 될 이 책의 여운이 꽤나 오래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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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해 미치겠다 - 지구상에서 가장 무모한 남자의 9가지 기발한 인생 실험
A. J. 제이콥스 지음, 이수정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궁금해 미치겠다 ; 지구상에서 가장 무모한 남자의 9가지 기발한 인생 실험(원제 The Guinea PIG Diaries : My Life as an Experiment/살림/2011년 7월)>의 저자 “A.J. 제이콥스”의 이력을 살펴보다가 1년 동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는 대목에서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어렸을 때 백과사전 읽기에 “도전”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백과사전 그 이상의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인터넷이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백과사전이 유일한 정보의 원천이었고, 특히 숙제하는 데는 백과사전 만큼 유용한 책이 없었다. 그런데 워낙 고가(高價)인지라 구입할 형편이 안 되어 숙제 자료 조사를 위해 인근 도서관으로 백과사전을 읽으러 다녔는데, 나중에는 책에 담겨 있는 정보에 매료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자고 마음먹고 근 한 달 여를 백과사전을 읽어댔다. 결국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3/4 가까이 읽었었고, 이 백과사전 읽기에서부터 책 읽는 재미와 습관이 시작된 것으로 기억된다. 이처럼 엉뚱하면서도 누구나 한번쯤 시도해봤을 “백과사전 읽기”를 실제로 해내고 책까지 펴낸 사람이 쓴 책 이라니 반가운 마음과 함께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들어가는 글”에서 지난 15년 동안 인간 모르모트로 살아 보는 삶, 즉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일련의 실험 도구로 사용해왔으며 결과가 좋았던 반면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경우도 있었지만 범상치 않은 상황에 직접 뛰어들어 이 세상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숱한 실험 - 백과사전 읽기, 성경 계율을 문자 그대로 지키며 살기 등은 책으로도 엮어냈다 - 끝에 이런 실험들에 중독되었다는 작가는 어떤 주제에 대해 진실로 알고자 한다면 ‘현장 실습’을 해봐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경험들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으며, 이런 실험의 목적은 교훈이 되는 부분은 취하되 최소한 미치광이 소리를 듣지 않는 것과 실험하는 동안의 고통이 결국에는 ‘더 나은 삶’으로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항전신성 약물계의 토머스 에디슨”이라 할 수 있는 “사샤 설긴”의 말을 빌어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는 문들, 그 각각의 문 뒤에는 우리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 존재하는 그런 문들이 끝없이 늘어선 복도로 들어가는 또 다른 문을 여는 것이 자신이 바로 이 책을 통해서 의도한 바라고 밝힌다. 어이없고 황당하기까지 한 이런 실험들을 보통 사람이라면 하고 싶어도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이 뜯어 말릴 그런 실험들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동의 수준이 아니라 한 술 더 떠 자신이 하는 실험들이 무위로 끝나는 걸 눈 뜨고 못 보는 “성인군자”인 “아내”의 이해 덕분이라고 밝히고 있고 실제로 책 본문을 읽다 보면 작가의 실험을 양으로 음으로 도와주는 작가 아내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게 만든다. 

 본문에 들어가면 본격적인 실험을 소개하는 데, 첫 실험은 “온라인에서 아름다운 여성인 척하기(1장)”, 바로 두 살배기 자신의 아들의 보모인 매력적인 아가씨 “미셸”을 위해 인터넷 데이트 상대를 물색해주는 일이다. 미셸의 동의하에 괜찮은 데이트 사이트를 골라 미셸의 인적사항과 프로필을 등록시키고 자신이 미셸인 척 메일과 답신을 보내는 등 일종의 “여자인 척” 하는 일인데 50일 동안 6백 명도 넘는 남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해서 엄선(?)한 몇 몇 남자는 미셸과 실제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양한 남자들과의 대화들의 소개가 꽤 재미있긴 한데 실험 자체로는 그다지 기발하거나 새롭다고는 할 수 없겠다. 왜냐하면 예전 익명의 채팅 사이트 - “하늘사랑”이 대표적이다 - 가 인기 끌었던 시절 여자인 척 시치미 떼고 채팅하는 이런 류의 장난(?)은 다들 한 두 번씩 해봤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것을 아웃소싱하기(2장)”는 요새 온갖 심부름을 다해 주는 아웃소싱 업체들이 우후 죽순격으로 생기고 있고 한 두 번 쯤은 그런 심부름센터를 이용해 본 경험들이 있을 테고 - 아내에게 대신 사과 메일을 보내는 것은 색다르지만 -, “오디세우스 작전 -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8장)”도 식사하면서 잡지를 펼쳐보고 라디오에 TV까지 보는 나에게 종종 어머니께서 “제발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어라. 숟가락이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 모르겠다”라고 혀를 끌끌 차시면서 하시는 말씀의 “실천판”이라고 볼 수 있겠고, 이 세상 아내들이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을 실험 - 반대로 남편들은 절대로 해보고 싶지 않은 실험일 것이다 - 인 “한달동안 아내로 살기(9장)” 또한 역시나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하겠다. 이 외에도 해프닝이라 볼 수 있는 자신과 닮은 꼴 스타로 변장해 시상식(施賞式)에 참석하는 일(-> “4장 240분 동안의 명성_스타로 살아 보기”)이나 누드모델 되는 일(->“6장 알몸에 관한 진실 _누드모델 되기”) 등의 실험들과 자신이 이전에 했던 “성경 말씀 그대로 살아가기” 실험과 같은 맥락의 “획기적인 정직 실천하기(3장)” - “짐 캐리” 주연의 영화 <라이어 라이어(1997)>를 연상시킨다 -, “일상에서 모든 편견과 오류 몰아내기(5장)”, “조지 워싱턴의 원칙대로 살기(7장)” 등의 실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실험 하나하나가 기발하긴 하지만 “최소한 미치광이 소리를 듣지 않는”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사회적 통념이나 상식을 반(反)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수준 - 제목처럼 궁금해 미칠 정도까지는 아닌^^ - 이어서 뭔가 좀 더 자극적(?)인 실험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을 할 수 도 있겠지만 실험의 전개와 결말 과정을 꽤나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그리고 있어 “시트콤”이라는 출판사 홍보 문구가 딱 제격일 정도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힌다. 그렇다면 이런 실험들에게서 작가가 얻은 “교훈”들은 무엇일까? 작가야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자신과 다른 상대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을 꼽고 싶다. 처음에는 자신의 보모에게 애인을 만들어 주겠다는 다소 치기어린 장난처럼 시작한 실험이었지만 다른 성(性)의 관점에서 자신의 성(性)을 관찰해보는 것이나 한 달 간 아내의 입장에서 살아보면서 아내의 고충을 깨닫는 실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편견과 오류들을 따져보고 고쳐 보려는 시도들이 바로 그런 시각과 사고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그런 실험들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교훈은 작가가 얻으면 그만이지 독자까지 꼭 공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굳이 이런 교훈을 얻으려고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이 책, “재미”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실험 인생”은 자신을 믿어주는 든든한 후원자 아내가 계속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듯 하다. 다음 번에는 얼마나 기막히고 유쾌한 실험을 우리에게 선보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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