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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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목록에 추리 소설 3~4권이 매월 빠지지 않고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추리소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가장 즐겨 읽는 그런 장르소설이라 할 수 있다. 언제 처음 읽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읽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Sherlock Holmes)” 시리즈가 처음 작품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어린 나이였지만 추리소설의 재미에 흠뻑 빠진 나는 자연스레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팡(Arsene Lupin)”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Hercule Poirot)”, "미스 마플(Jane Marple)"을 만난 것도 비슷한 시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그 당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에게 필독서라고 부를만한 책이 있었는데, 바로 <팬더 명탐정 시리즈(해문출판사)>였다. 추리소설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이끌어내기 위한 어린이용 기획도서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책이었던 <세계의 명탐정 44인>, <명탐정 대작전 21>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탐정들 중 가장 유명한 탐정들을 엄선하여 소개하는 일종의 “명탐정 백과사전”으로 “셜록 홈스”나 “에르큘 포와로” 정도만 알고 있던 나에게 “셜록 홈스” 못지않은 명탐정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추리소설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그런 책이었다. 그 후 로 책 속 명탐정들이 나오는 작품들을 읽고 싶어 찾아봤지만 국내에 출간된 작품이 별로 없어 줄곧 아쉬웠었는데, 이번에 그런 아쉬움을 한 번에 날려 버릴 “보물(寶物)”과도 같은 책을 만났다. 추리소설 작가이자 번역가로 큰 획을 그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이름인 故 정태원 작가의 마지막 번역 작품인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비채/2011년 7월)>이 바로 그 책이다. 드디어 어릴 적부터 줄곧 간직해온 소원을 이루게 된다는 설레임과 기쁨에 700쪽에 이르는 이 책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었다.  

책의 배경을 잠깐 살펴보면 1880년대 말부터 1890년대 초반까지 “코난도일”의 “셜록 홈스”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할 정도로 크게 성공을 거두자 영국에서는 셜록 홈스와 같은 명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들이 유행처럼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즉 이 책의 제목처럼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 셈이다. 책에는 이처럼 홈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홈스에 견주만할 천재적인 탐정들을 창조해낸 작가 10인의 작품들과 코난 도일의 미발표 작품들 포함해서 총 30편의 작품이 70여 컷의 삽화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작가들과 탐정들을 간단간단하게 살펴보자. 코난 도일의 미발표 작품 4편 다음에 제일 먼저 오늘날 남성 못지않게 멋지게 활약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 탐정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여탐정 “러브데이 브룩”를 창조해낸 “캐서린 루이자 퍼키스”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어 홈스의 전통을 가장 잘 이어받았다는, 그러나 괴벽(怪癖) 투성이의 문제적 인간 셜록 홈스보다는 좀 더 사회 친화적인 탐정인 “아서 모리슨”의 “마틴 휴이트”, 용의자와 증인들의 증언만으로도 사건을 추리해내는 대표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베로니카 에뮤스카 오르치”의 “구석의 노인”, 인간이 아닌 “생각하는 기계” - 체스를 한 번도 둬 본 적이 없었지만 단지 체스 규칙을 파악한 것 만으로도 체스 챔피언을 이겨버려 붙은 별명이다 - 불릴 정도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크 푸트렐”의 “밴 듀슨 교수”, 셜록 홈스의 철자를 변형하여 만든 “짝퉁”이지만 “최고의 홈스 패러디”라는 찬사를 받았다는 “브레드 하트”의 “햄록 존스” - “모리스 르블랑”도 자신의 작품에서 셜록 홈스(Sherlock Holmes)의 철자를 바꿔 “헐록 숌즈(Herlock Sholmes)”라는 이름으로 등장시킨다 - 등 그야말로 명탐정들의 지적(知的) 향연(饗宴)이 원 없이 펼쳐진다. 한편 추리소설 사상 가장 유명한 도적인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루팡”의 원형(原形)이라 할 수 있는 괴도(怪盜)들도 소개하고 있는데, 점토(클레이)를 이용해 자유자재로 변장하는“그랜트 앨런”의 “클레이 대령”, 코난 도일의 처남으로 겉으로는 말쑥한 신사이지만 속으로는 변장술이 기가 막힌 위트 만점의 멋진 도둑 “래플스”, 밴 듀슨 교수 못지않게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며 법의학을 최초로 탐정 수사에 도입시킨 탐정으로 셜록 홈스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평가받는 “손다이크 박사”를 창조했던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이 친구인 “피트케언”박사와 함께 “클리포드 애시다운”이라는 필명으로 창조해낸, 역시 겉과 속이 다른 괴도 “롬니 프링클” 등이 바로 그들이다. 여기에 <시간 관리론(How to Live on 24 Hours a Day)>이라는 자기계발서로 더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아놀드 베넷”의 단편 작품까지 포함되어 있어 19세기 말 당시 추리 소설 경향을 제대로 담아낸 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개인적으로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여러 탐정들과 괴도 들 중에서는 역시 앞에서 언급했던 책들로 만나본 적이 있는 “구석의 노인”과 “밴 듀슨 교수”, “러브데이 브룩”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가장 반가웠다. 그리고 비록 생소한 인물들이지만 다양한 개성들과 천재적인 추리 솜씨를 발휘하는 다른 작품들도 새로운 재미를 느껴볼 수 있었던 멋지고 소중한 작품들이었다. 

책의 재미만 놓고 말한다면 이미 백 년도 더 된, 말 그대로 추리소설 태동기에 나온 고전 작품들이라 현대 추리 소설에 입맛이 길들여진 분들이라면 밋밋하거나 싱거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셜록 홈스나 이 책에 나오는 작품들, 그리고 후대인 애거서 크리스티, 앨러리 퀸과 같은 고전 작품부터 추리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독자들이라면, 또한 나처럼 어릴 적 “명탐정 시리즈”를 읽어봤지만 실제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해 아쉬움을 느꼈던 독자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소중한 그런 책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 나로서는 최고의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 아직도 대전 본가(本家) 책장에 꽂혀 있는, 지금도 내려갈 때 마다 한번 씩은 꼭 펼쳐 보게 되는 <명탐정 대작전 21> - 표지가 너덜너덜 해지고 책 속 몇 몇 페이지는 찢겨나가기까지 했지만 - 과 함께 절대 누구 빌려 주거나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보물(寶物)”이 될 것이다. 아쉽다면 이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느 탐정 못지않은 명탐정들 - 대표적으로 "G.K.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와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손다이크 박사”를 들 수 있겠다 - 의 작품들이 이 책의 2부로 엮어 나왔으면 하는 것인데 저자이신 정태원 작가께서 돌아가셔서 이런 바램이 이루어지기가 더욱 요원(遼遠)해졌다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추리소설  독자들에게 있어 정말 소중하고 값진 선물을 남겨주신 故 정태원 작가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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