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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해 미치겠다 - 지구상에서 가장 무모한 남자의 9가지 기발한 인생 실험
A. J. 제이콥스 지음, 이수정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궁금해 미치겠다 ; 지구상에서 가장 무모한 남자의 9가지 기발한 인생 실험(원제 The Guinea PIG Diaries : My Life as an Experiment/살림/2011년 7월)>의 저자 “A.J. 제이콥스”의 이력을 살펴보다가 1년 동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는 대목에서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어렸을 때 백과사전 읽기에 “도전”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백과사전 그 이상의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인터넷이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백과사전이 유일한 정보의 원천이었고, 특히 숙제하는 데는 백과사전 만큼 유용한 책이 없었다. 그런데 워낙 고가(高價)인지라 구입할 형편이 안 되어 숙제 자료 조사를 위해 인근 도서관으로 백과사전을 읽으러 다녔는데, 나중에는 책에 담겨 있는 정보에 매료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자고 마음먹고 근 한 달 여를 백과사전을 읽어댔다. 결국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3/4 가까이 읽었었고, 이 백과사전 읽기에서부터 책 읽는 재미와 습관이 시작된 것으로 기억된다. 이처럼 엉뚱하면서도 누구나 한번쯤 시도해봤을 “백과사전 읽기”를 실제로 해내고 책까지 펴낸 사람이 쓴 책 이라니 반가운 마음과 함께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들어가는 글”에서 지난 15년 동안 인간 모르모트로 살아 보는 삶, 즉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일련의 실험 도구로 사용해왔으며 결과가 좋았던 반면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경우도 있었지만 범상치 않은 상황에 직접 뛰어들어 이 세상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숱한 실험 - 백과사전 읽기, 성경 계율을 문자 그대로 지키며 살기 등은 책으로도 엮어냈다 - 끝에 이런 실험들에 중독되었다는 작가는 어떤 주제에 대해 진실로 알고자 한다면 ‘현장 실습’을 해봐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경험들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으며, 이런 실험의 목적은 교훈이 되는 부분은 취하되 최소한 미치광이 소리를 듣지 않는 것과 실험하는 동안의 고통이 결국에는 ‘더 나은 삶’으로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항전신성 약물계의 토머스 에디슨”이라 할 수 있는 “사샤 설긴”의 말을 빌어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는 문들, 그 각각의 문 뒤에는 우리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 존재하는 그런 문들이 끝없이 늘어선 복도로 들어가는 또 다른 문을 여는 것이 자신이 바로 이 책을 통해서 의도한 바라고 밝힌다. 어이없고 황당하기까지 한 이런 실험들을 보통 사람이라면 하고 싶어도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이 뜯어 말릴 그런 실험들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동의 수준이 아니라 한 술 더 떠 자신이 하는 실험들이 무위로 끝나는 걸 눈 뜨고 못 보는 “성인군자”인 “아내”의 이해 덕분이라고 밝히고 있고 실제로 책 본문을 읽다 보면 작가의 실험을 양으로 음으로 도와주는 작가 아내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게 만든다.
본문에 들어가면 본격적인 실험을 소개하는 데, 첫 실험은 “온라인에서 아름다운 여성인 척하기(1장)”, 바로 두 살배기 자신의 아들의 보모인 매력적인 아가씨 “미셸”을 위해 인터넷 데이트 상대를 물색해주는 일이다. 미셸의 동의하에 괜찮은 데이트 사이트를 골라 미셸의 인적사항과 프로필을 등록시키고 자신이 미셸인 척 메일과 답신을 보내는 등 일종의 “여자인 척” 하는 일인데 50일 동안 6백 명도 넘는 남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해서 엄선(?)한 몇 몇 남자는 미셸과 실제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양한 남자들과의 대화들의 소개가 꽤 재미있긴 한데 실험 자체로는 그다지 기발하거나 새롭다고는 할 수 없겠다. 왜냐하면 예전 익명의 채팅 사이트 - “하늘사랑”이 대표적이다 - 가 인기 끌었던 시절 여자인 척 시치미 떼고 채팅하는 이런 류의 장난(?)은 다들 한 두 번씩 해봤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것을 아웃소싱하기(2장)”는 요새 온갖 심부름을 다해 주는 아웃소싱 업체들이 우후 죽순격으로 생기고 있고 한 두 번 쯤은 그런 심부름센터를 이용해 본 경험들이 있을 테고 - 아내에게 대신 사과 메일을 보내는 것은 색다르지만 -, “오디세우스 작전 -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8장)”도 식사하면서 잡지를 펼쳐보고 라디오에 TV까지 보는 나에게 종종 어머니께서 “제발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어라. 숟가락이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 모르겠다”라고 혀를 끌끌 차시면서 하시는 말씀의 “실천판”이라고 볼 수 있겠고, 이 세상 아내들이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을 실험 - 반대로 남편들은 절대로 해보고 싶지 않은 실험일 것이다 - 인 “한달동안 아내로 살기(9장)” 또한 역시나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하겠다. 이 외에도 해프닝이라 볼 수 있는 자신과 닮은 꼴 스타로 변장해 시상식(施賞式)에 참석하는 일(-> “4장 240분 동안의 명성_스타로 살아 보기”)이나 누드모델 되는 일(->“6장 알몸에 관한 진실 _누드모델 되기”) 등의 실험들과 자신이 이전에 했던 “성경 말씀 그대로 살아가기” 실험과 같은 맥락의 “획기적인 정직 실천하기(3장)” - “짐 캐리” 주연의 영화 <라이어 라이어(1997)>를 연상시킨다 -, “일상에서 모든 편견과 오류 몰아내기(5장)”, “조지 워싱턴의 원칙대로 살기(7장)” 등의 실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실험 하나하나가 기발하긴 하지만 “최소한 미치광이 소리를 듣지 않는”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사회적 통념이나 상식을 반(反)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수준 - 제목처럼 궁금해 미칠 정도까지는 아닌^^ - 이어서 뭔가 좀 더 자극적(?)인 실험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을 할 수 도 있겠지만 실험의 전개와 결말 과정을 꽤나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그리고 있어 “시트콤”이라는 출판사 홍보 문구가 딱 제격일 정도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힌다. 그렇다면 이런 실험들에게서 작가가 얻은 “교훈”들은 무엇일까? 작가야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자신과 다른 상대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을 꼽고 싶다. 처음에는 자신의 보모에게 애인을 만들어 주겠다는 다소 치기어린 장난처럼 시작한 실험이었지만 다른 성(性)의 관점에서 자신의 성(性)을 관찰해보는 것이나 한 달 간 아내의 입장에서 살아보면서 아내의 고충을 깨닫는 실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편견과 오류들을 따져보고 고쳐 보려는 시도들이 바로 그런 시각과 사고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그런 실험들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교훈은 작가가 얻으면 그만이지 독자까지 꼭 공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굳이 이런 교훈을 얻으려고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이 책, “재미”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실험 인생”은 자신을 믿어주는 든든한 후원자 아내가 계속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듯 하다. 다음 번에는 얼마나 기막히고 유쾌한 실험을 우리에게 선보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