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벌루션 No.0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재일교포로는 처음 일본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 작품은 그를 유명하게 했던 대표작들 - 이 글에서 소개하게 될 “더 좀비스”나 나오키 상의 영예를 안겨줬던 <GO>, 일본 드라마로도 유명한 <SP> 등 - 아직 읽어보지 못했었고, <연애소설(북폴리오/2006년 2월)>을 4~5년 전 쯤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모 미니홈피에 정리해놨던 짧은 감상글을 찾아보니 책 제목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연애소설이 아니라 독특한 내용의 소설이었던 그 작품은 중단편 3편의 모음이라 소설 전개도 빠르고 작가의 글 풀어가는 솜씨도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했던, 결론이 단편에 걸맞지 않게 진지해서 되새김할 만한 작품이어서 느낌이 좋았던, 그래서 나에게는 깔끔함, 그리고 탄탄함 두 단어로 기억될 작가라고 평가해 놓았다. 오래되어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꽤나 인상적이었던 작가였던 것 같다. 이번에 드디어 그의 대표작인 “더 좀비스” 시리즈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레벌루션 No.3>, 이문식, 이준기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한 <플라이 대디, 플라이>, <SPEED>로 이어지는 “더 좀비스” 연작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레벌루션 No.0(원제 レヴォリュ-ションno.0 /북폴리오/2011년 9월)>이 바로 그 책이다. 전 시리즈를 읽어보지 않아 소개글을 찾아보니 

“삼류 고등학교의 꼴통 고등학생들이 이 엄격한 학력사회에 뇌사 상태 수준의 머리를 가졌다는 뜻으로 만든 ‘더 좀비스’ 클럽.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들이 세상을 향해 벌이는 작은 혁명극이자 모험극을 그리고 있는 ‘좀비스’ 시리즈(YES24 발췌)”
 

라고 한다. 언뜻 보면 어린 시절 읽었던 “조흔파” 선생의 <얄개전>이 연상되는데, 제목의 “레벌루션(Revolution)"이라는 단어의 뜻인 “혁명”이 말 그대로 “혁명(革命)”을 뜻하는 지 아니면 불량(?) 청소년들의 “반항(反抗)”을 뜻하는지 선뜻 감이 오질 않았다. 176 페이지로 불과 한 두 시간이면 읽어낼 수 있는 이 책을 직접 읽고 나서야 감이 잡힐 것 같아 익살스러운 청소년 남자의 그림이 만화(漫畵)을 연상시키는 책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순도 100퍼센트의 찌질이들”이 모여 있는, 근처에 있는 명문 여고 아씨들이 눈조차 마누치려 하지 않는, 심지어 학교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조류 인플루엔자의 발생 근원지라고까지 소문이 날 정도 - 주인공은 조류 정도의 지능밖에 없는 얼간이들이 모여 있으니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 로 3류 남고(男高)에 입학하게 된 “나”와 친구들은 열흘전 학교 옥상에서 교내 최강자를 가리는 “쌈질”을 벌인 후 모여서 담배를 피웠다가 그만 정학을 당했다가 정학이 풀리고 등교한 첫날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접한다. 바로 일주일 후 1학년의 풍기가 심각하게 문란해서 3박 4일 동안 군마 현의 아카기 산에서 1학년 전체 합숙 훈련을 실시한다는 소식이었다. 다른 어느해보다 200명이나 신입생을 더 뽑아서 콩나물 시루같았지만 입학하고 몇 개월 만에 수십명이 학교를 그만둬버리는 마당에 무슨 합숙 훈련이라니, 거기에 최악의 폭력 선생 “사루지마”가 지휘한다니 사상 최악의 지옥 훈련이 될 것이 뻔한 그런 훈련이 될 것만 같다. 이혼한 아버지가 지금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이 다녔던 학교로 전학가지 않겠냐는 제의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어쩌면 언제라도 그만두고 갈 곳이 있다는 보험 같은 생각이 든 나는 학교 합숙 훈련에 참가하게 된다. 그런데 합숙 훈련은 역시나 기대(?) 이상으로 최악의 그런 것이었다. 고립된 터에 자리 잡은 수련장에 죄수처럼 갇혀 주변 높은 산을 4시간에 주파해야 하는, 시간 안에 들지 못하면 선생들의 무지막지한 욕설과 폭력이 춤을 추는 그런 지옥 같은 상황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합숙 훈련이면에 숨겨진 학교 재단 측의 음모를 알게 된 나와 친구 일행들은 이 지옥 같은 합숙소를 탈출하기로 모의하기에 이른다. 드디어 결행의 그날 밤, 나와 같은 조 일행 12명은 탈출을 감행한다. 수련원에 싸이렌이 울리고 선생들이 쫓아오는 긴박한 상황, 과연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과연 “나”와 일행들이 벌인 이 “혁명”은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교육계에도 “체벌(體罰) 금지”, “학생인권조례 제정”등으로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내가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냈던 불과 십 수 년 전 만 해도 이 책에서의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인 행위를 실제로 고스란히 겪었던 그런 일들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면 정말 어떻게 어린 학생들을 그렇게 때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무자비했던 “폭력” 선생님들이 학교마다 꼭 한 두 명씩 있었고 -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美化)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나중에 두고 보자 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게 했던 그런 선생님들이었다 - , 극기(克己)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야간 행군, 교내 마라톤, 해병대 캠프 훈련 등에 강제로 참가해야 했으며,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그 어떤 과제보다도 최우선인 대학 진학을 위해 0 교시 수업 뿐만 아니라 새벽 1~2시까지 자율 학습에 내몰렸지 않았는가. 이 책에서 등장하는 “나”가 다니는 학교가 바로 우리 세대가 겪었던 수 십 년 전 그 학교 그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대학 진학의 대오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절대 권력자인 학교와 선생님들께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졸업하고 말았지만 이 책에서 “나”와 일행들은 과감하게 “혁명”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 혁명이 우리가 아는 민주투사들의 비장하고 절박한 그런 외침이나 투쟁이 아니고 “유쾌”하고 “통쾌”하게, 그리고 멋있기까지 하다. 수련원을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일행들은 자신들이 도망가기에도 바쁜 판에 공원에서 희롱을 당하는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폭주족 불량배들과 일대 활극을 벌이고 그녀를 구해낸 다음 다시 탈주극을 계속한다. 수 km의 밤길을 내처 달려 도착한 역(驛)에서 일행들은 이민가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한 친구에게 수중에 가진 돈을 다 몰아주고 자신들은 광장에서 자신들을 잡으러 오는 선생님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이 얼마나 “쿨(Cool)"하고 멋진가. 그리고 당장 때려치워도 시원찮을 학교를 그들은 계속 다니기로 결심한다. 재단과 선생님들의 음모에 순순히 따라줄 수 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시 한번 학교를 옮기라는 아버지께 ”나“는 학교를 옮길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얘기한다. 

지금 학교에 다니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 무슨 잘못이 있는데, 그걸 사람들이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긴다고 해서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잘못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거나, 잘못을 인식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인간이 필요해. 나는 그 때문에 지금 학교에 있고 싶어. 내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 P.155
 

깨진 앞니를 보고도 그 이유를 묻지 않는 아버지께 반항심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멋진 이유가 아닌가. 아직 성인이 되기에는 이른 청소년이 그릇된 일을 피하거나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에서 잘못된 일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행동하겠다는 당찬 각오가 느껴지는 말일테다. 그리고 사회 모순에 분노할 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의 가슴 뜨끔하게 하는 그런 일침이다. 그래서 어쩌면 불량 청소년들의 일대 소란에 불과할 수 도 있었던 이 책의 이야기가 유쾌하고 통쾌하고 너무나도 멋진 “혁명”으로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덕분에 “가네시로 가즈키”는 나에게 깔끔함과 탄탄함과 함께 통쾌하고 멋들어진 그런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완결편부터 읽었지만 “더 좀비스” 시리즈를 처음부터 제대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가 선보이는 찌질한 “좀비”들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혁명”의 목소리로 잃어 버렸던 내 젊은 날의 열정을 기억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 말미에 적혀 있는 한 문장을 꽤나 오랫동안 - 적어도 그의 좀비 시리즈를 다 읽을 때 까지라도 -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모순을 바꾸고자 했던 내 젊었던 시절, 그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가물가물한 기억을 다시금 되살리는 바로 그 문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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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행성 샘터 외국소설선 6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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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존 스칼지(John Scalzi)”의 “노인의 우주” 3부작 중 2부 <유령여단(샘터 / 2010년 7월)>을 읽은 게 지난 2010년 9월이었으니 시리즈의 완결편 3부 <마지막 행성(원제 The Last Colony / 샘터 / 2011년 7월)>을 근 1년 여 만에 만난 셈이다. 전편이 SF 소설에 대한 부담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뛰어난 몰입감과 재미를 보여줬던 터라 반가움과 기대감을 들게 하였다. 다만 아직 읽어보지 않은 1부 <노인의 전쟁(샘터 / 2009년 1월)>의 주인공이었던 “존 페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니 1부와 이어지는 스토리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그러나 2부도 전편을 읽지 않아도 전혀 무리가 없었던 만큼 걱정은 잠시 접어둔 채 책장을 펼쳐 들었다.

먼저 전편 <유령여단> 줄거리를 소개하고 본편에 들어서면 1부의 주인공 “존 페리”가 자신이 남겨두고 떠나온 세상, 즉 인생 역정을 털어놓는 데서 시작한다. 75년간 지구에서 살다가 아내와 사별(死別)하고 "우주개척방위군(CDF, Colonical Defense Forces)"으로 선발 - 의식과 DNA 일부분을 젊고 강한 육체에 이식시킨 것 - 되어 6년 동안 적대적 외계 종족들과 전쟁을 치른 “나(존 페리)”는 세 번 째이자 마지막 몸을 이식 받아 평범한 인간이 되어 “허클베리” 행성에 정착하여 전 특수부대원이자 나의 전 아내의 유전자를 이식받은 아내 “제인 세이건”과 수양 딸 “조이” - 두 명 다 2부인 <유령여단>의 등장인물들이다 - 와 함께 마을 민정관으로서 동네 주민들의 사소한 분쟁들을 해결하면서 8년 여를 한가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보낸다. 그런데 이런 평화로움을 깨뜨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새로운 식민 행성인 “로이노크”를 개척하라는 명령이었다. 고심 끝에 수락한 나는 가족들과 2,500 명의 개척 이주민들을 이끌고 “로이노크” 행성으로 떠나는 데, 공간 이동 후 도착한 행성은 우주개척연맹에서 말하는 그 행성이 아니라 전혀 다른 행성이었다. 우주개척연맹의 반대 세력이자 인류의 개척 활동을 반대하는 범우주연맹 “콘클라베”를 철저히 속이기 위한 작전 - 연맹이 개척한 행성을 수백 대의 함선을 동원하여 말 그대로 절멸(絶滅)시키는 그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작전이기도 하다 - 임을 알게 된 나와 일행들은 무선 통신을 제한한 구시대 방식으로 행성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1년 후 연맹에서 제공한 콘클라베의 식민 행성 파괴 영상이 편집되어 있고, 복원하여 살펴본 영상에는 알려진 것과는 다른 진실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때맞춰 우주선을 타고 나타난 연맹 측 장군은 로이노크 행성을 이용하여 미끼로 콘클라베 함대를 격멸시킬 계획을 밝히고 나에게 작전에 따를 것을 지시한다. 마침내 로이노크 행성 상공에 콘클라베 대함대가 나타나고, 함대 사령관 “타셈가우” 장군은 나에게 행성에서의 철수를 하든지 아니면 콘클라베 동맹에 가입하라고 권유한다. 장군의 권유를 거부하고 오히려 장군에게 연맹의 작전을 사전에 암시하는 함대의 철수를 부탁하지만 장군은 거절하고 행성 초토화에 착수하려는 찰나 개척연맹의 함대가 나타나 콘클라베 함선들을 몰살시키고 가우 장군은 개척 연맹 측이 의도적으로 남겨놓은 자신의 함선을 타고 탈출하게 된다. 당초 콘클라베 동맹의 분열을 의도한 이 작전은 오히려 연맹이 개척한 전 행성에 동맹의 파상 공격이 거세게 몰아닥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동맹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로이노크 행성 또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나는 인류의 멸종이라는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을 지키기 위해 정착민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수양딸인 “조이”를 가우 장군에게 보내어 장군의 암살 시도를 알리게 한다. 과연 나의 이러한 시도는 로이노크 행성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이야기는 더욱 긴박하게 흘러간다.

<은하영웅전설>처럼 우주적 규모의 함대전(艦隊戰)이나 특수 부대원들의 거칠고 위험스러운 백병전(白兵戰)과 같은 밀리터리 액션 장면들도 없고, “뇌 도우미”, “통합(커뮤니케이션)”. “똑똑한 피(인공 피)” 등 2부에서처럼 SF 특유의 설정들도 딱히 찾아볼 수 없음에도 읽는 내내 눈길을 쉽게 떼지 못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바로 “이야기”의 재미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시뮬레이션 게임을 연상시키는 도입부 “행성 개척” 부문에서 연맹의 음모로 인해 정착해야될 행성이 바뀌어 버리고 무선 시스템을 작동할 수 없는 일종의 “페널티(Panalty)"의 상황에서 주인공일행이 어떻게 적응하여 개척해낼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켜 계속 읽게 하더니, 중반부 2부에서 언급했던 콘클라베 동맹과 우주개척연맹의 범 우주적 전쟁에 휘말리는 장면에서부터 호흡이 점점 가빠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작들에서 멋진 활약을 펼쳤다고 하지만 일개 개척 행성 대표에 불과한 존 페리 일행이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하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 혹 배가 산으로 가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황당함과 함께 - 마저 들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걱정도 잠시 사건에 뛰어들고 해결하는 과정이 전혀 과장되거나 황당스럽지 않게 전개되면서 다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어 결말까지 내처 읽게 만든다 (결말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더 소개하지 않는다).

다른 서양 SF 소설들과 달리 이 책이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은 무엇일까? 이처럼 독자 호흡의 완급을 조절할 줄 아는 작가의 능수능란한 글솜씨 - 이야기 구성력과 함께 책 곳곳에 등장하는 유머 코드 또한 잠시나마 긴장감을 늦추고 웃음 지을 수 있는 매력적인 장치라 할 수 있겠다 - 가 가장 컸다고 할 수 있으며, 이외에도 너무 이론적이거나 복잡한 과학적인 설정이 아닌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기발하고 독특한 매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과학적인 설정들, 그리고 지나치게 현대 사회, 문화, 정치, 종교에 대한 모순들을 투영한 묵직한 주제의식에서 벗어나 분명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으면서도 이야기에 적절히 녹여내어 부담스럽지 않게 한 점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평가가 SF 소설에 그다지 조예가 없는, 말 그대로 문외한으로서의 철저한 주관적 평가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2부에서 역자는 존 스칼지의 3부작에서 2부가 가장 뛰어나다고 말했었는데, 3부 또한 2부 못지 않은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있고, 또한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나는 3부에 좀 더 나은 점수를 주고 싶다. 2, 3부를 읽고 나니 이제 이 시리즈의 첫 시작인 1부인 <노인의 전쟁>이 더욱 궁금해진다. 이야기의 연계성이 적어 각 권마다 독립적이라 할 수 있지만 1부를 읽고 나서 2, 3 부를 다시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SF 소설이 재미있다” 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존 스칼지”의 다른 작품들, 특히 이 시리즈의 외전(外傳) 격인 <조이의 이야기>와 심각한 판타지 SF 소설이라는 <신의 엔진> 만큼은 꼭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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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 1 : 사라진 도시 다른 세상 1
막심 샤탕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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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영혼>, <악의 심연>, <악의 주술> 등 “악(惡)의 3부작”으로 유명한 “막심 사탕(Maxime Chattam)”은 이름은 익히 들어왔지만 아직 그의 책 -<악의 주술>은 가지고 있는데 책꽂이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다 - 은 읽어보지 않은, 이번에 읽은 <다른 세상 1; 사라진 도시(원제 Autre-Monde, Tome/소담출판사/2011년 7월)>이 처음이다. 종말적인 재앙이 닥친 후 살아남은 아이들이 생존 투쟁을 벌인다는 스토리가 왠지 낯익은 이 책, 처음 만나는 막심 사탕은 어떤 재미와 스릴을 선사할까 하는 궁금증과 기대감에 책 표지를 열었다.

열 네 살 소년 “맷 카터”는 난생 처음으로 세상이 더는 잘 돌아가지 않고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만 같은, ‘기이한 기운’을 감지하지만 두려움을 느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환상을 목격한 것은 성탄절 방학 이틀전이었다. 친구들과 “담력 게임”의 일종으로 뉴욕 파크 에비뉴 너머 지저분한 구역에 있는 가게 ‘발타자 골동품’에 물건을 훔쳐오기 위해 들어가지만 서점 주인인 “발타자” 영감에게 들켜 쫓기듯 도망나온다. 맷은 발타자 영감의 몸을 타고 오르는 뱀과 노인의 입술 사이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뱀 혓바닥을 목격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두 번째 환상은 폭풍설(暴風雪)이 몰아치기 전 성탄절날이었다. 친구 집에 성탄 선물을 보여주러 가던 맷은 거리에 파란 섬광들이 사람을 덮쳐 옷더미만 남긴 채 사라져버리는 사건을 목격한다. 다음날 오후에나 올 거라는 폭풍설이 그날 밤에 불어 닥치고 전화와 인터넷, 전기가 일순 끊겨져 버리고 도시는 암흑에 휩싸인다. 함박눈이 온 도시를 뒤덮은 다음날, 맷은 전날 봤던 푸른 섬광들과 섬광의 촉수들이 건물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이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자신 또한 섬광에 맞아 기절한다. 깨어나 보니 부모님과 이웃 주민들이 옷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고, 거리의 자동차 또한 온데간데 없이 없어져 버렸음을 알게 된다. 친구들을 찾아 나선 맷은 “토비어스”를 만나게 되지만 토비어스의 아버지로 짐작되는, 이상하게 변한 “변조 인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거리에는 이처럼 변조 인간들과 변종 동물들, 그리고 두 눈에서 섬광을 뿜어대는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괴물 “에샤시”들이 넘쳐 나는 이상한 곳으로 변해버렸다. 맷과 토비어스는 자신들처럼 살아남은 아이들이 남긴 메시지를 따라 뉴욕을 벗어나 남쪽으로 향한다. 맷은 또 다른 버려진 도시에서 살아있는 어른을 만나게 되지만 자신들을 위협하는 어른에 맞서 칼로 찔러 버리고 그만 기절하고 만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후 깨어난 맷은 낯선 주변 환경에 어리둥절해한다. 그가 눈 뜬 곳은 열 살부터 열곱살까지 소년, 소녀들이 만든 공동체였고,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상하게 변한 어른들인 “시니크”와 변종인간 “글루통”, 변종 생물들에 맞서 공동체를 구성해서 싸우고 있었다. 차츰 차츰 적응해가는 맷은 그곳에서 자신을 돌봤던 금발 소녀 “앙브르”와 공동체의 리더인 “더그” 형제, 그리고 숨어 살고 있던 유일한 정상적인 어른인 “카마이클”을 만나는 한편 혼수 상태 속에서 만났던 미지의 소녀 “로페로덴”- 맷을 추적하던 존재라는 것이 후반부에서 밝혀진다 - 이 마음에 걸려 하며, 공동체에 불어 닥친 음모와 배신에 휩싸이게 된다.  

그동안 접해왔던 종교적인 종말론이나 혜성 충돌 등과 같은 “종말론”과는 다른 설정으로 독특하고 색다른 재미를 주지만 한편으로는 낯설게 느껴진다. 책에서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 사건인 폭풍설과 섬광의 정체를 아직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의 추측은 인간의 환경오염에 대한 “지구의 복수”라고 생각한다. 즉 사람들의 파괴와 오염에 분노한 지구 -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 즉 스스로 조절되는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과 같은 맥락으로 보여진다 - 가 정화(淨化)를 목적으로 폭풍설을 일으키고 인간들과 동물들을 변형시킨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왜 어른들만 실종 - 죽은 것으로 짐작되는 - 되거나 변형되었는지, 아이들은 왜 무사했는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염동력(念動力) 등 초능력이 왜 생기는 지 등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단지 “추측”할 뿐이다. 시리즈물이니 권수가 거듭되면서 이런 의문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겠지만 사실 1권만 읽고서 납득하기는 힘든 설정이라 낯설게만 느껴졌다. 특히 지구가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 같다는, 어린이들이 좀 더 지구를 소중히 여기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라는 의미라는 대화가 왠지 너무 교훈적이고 상투적이기까지 하다. 차라리 이런 교훈적 이야기가 아니라 스티븐 킹의 소설들처럼 절대 악(惡)이 등장하고 감히 대적할 엄두가 나지 않는 초자연적인 악에 맞서는 소년들의 투쟁으로 그렸다면 좀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까지 했다. 이렇게 낯선 설정과 이야기 전개에 쉽게 몰입이 되지 않다 보니 중반까지는 읽는 속도가 꽤나 더디었다가 아이들의 공동체 “팬”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음모와 배신, 사건들에서부터 흥미로워져 속도가 점점 붙지만 권말까지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의문에 그만 읽다가 만 느낌이 들게 한다. 2권에서는 어떻게 전개될 지 절로 궁금해지게 만드는 그런 전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왠지 개운치 않은 그런 느낌이다. 또한 편집에서 하나 지적하자면 대화 중간에 괄호로 지문을 표시하는 방식이 가끔씩 등장하는데, 원작(原作)에도 이런 형식인지 아니면 번역하면서 이렇게 바꾼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낯설고 거슬리는 표현이었다. 처음에는 뭔가 복선(複線)을 제시하는 그런 도구인줄 알았는데 그냥 대화가 아닌 지문이 맞았다. 원작이 그렇더라도 따옴표로 대화를 구분하고 지문을 기술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색다른 재미와 아쉬움이 함께 느껴지는 이 시리즈의 첫 권만 읽고 전체를 평가하기에는, 그리고 막심 사탕이 어떻다고 평가하기에는 너무 이르니 만큼 평가는 이어지는 후속권들과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고 나서 해야 할 것 같다. 지루하거나 나쁜 느낌은 아니었으니 이어질 2권에서는 보다 많은 의문이 해결되기를, 그리고 좀 더 멋진 활약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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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플레임 이모탈 시리즈 4
앨리슨 노엘 지음, 김은경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권수가 거듭될 때마다 이색적인 설정과 매력적인 인물들을 새롭게 선보여 점점 흥미를 더해가는 불멸의 사랑 “이모탈 시리즈” 제 4권 <다크 플레임(원제 Dark Flame / 북폴리오 / 2011년 6월)>을 3권 <섀도우 랜드>에 이어 읽었다. 지난 권에서 데이먼과 에버의 사랑을 위협하는 강력한 라이벌 “주드”의 등장으로 갈수록 멀어져만 가는 그들의 사랑이 이번 권에서는 또 어떤 시련이 닥칠지, 절친이었던 “헤이븐”이 에버에 의해 “불사자(不死者)”가 되어 또 어떤 분란이 일어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번개가 번쩍여 검은 밤하늘을 잠시나마 밝은 빛을 드리우고 하단에는 하얀 꽃 - 워낙 꽃에는 문외한이라 어떤 꽃인지는 잘 모르겠다 - 이 크게 그려져 있는 표지 - 그러고 보니 이 시리즈 표지들은 하나같이 멋있었다 - 를 넘겨 바로 읽기 시작했다.

로만의 음모에 의해 헤이븐을 불사자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자책하는 에버는 헤이븐에게 불사자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섀도우 랜드”의 존재와 로만을 믿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헤이븐은 자신이 불사자가 된 사실을 마냥 즐거워하며 데이먼 못지 않게 멋있는 남자인 로만에게 푹 빠져 버린다. 에버는 데이먼에게 걸려 있는 로만의 저주를 풀기 위해 자신이 보모 역할을 하는 쌍둥이 마녀에게 마법을 배우는데, 쌍둥이들은 이기적이고 사악한 의도로 마법을 사용하게 되면 그 “업”이 세 번에 걸쳐 그녀에게 돌아올 거라고 충고를 한다. 그러나 에버는 그런 충고를 귓등으로 흘리고 마법을 실행하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난다. 바로 에버의 영혼이 로만에게 묶여 버리는, 에버의 또 다른 자아가 로만의 푸른 눈과 금발에 끌리고 그의 부름을 거부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해버린 것이다. 데이먼에게 차마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에버는 환생을 거듭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주드”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편 서머랜드에서 돌아온 영매 에바 아줌마는 쌍둥이 마녀들의 숙모로 밝혀지고, 에바는 에버에게 명상 훈련을 통해 자신의 부정적인 자아를 극복하는 방법을 깨닫게 하고, 에버는 마침내 극복하고 다시 로만에게로 가서 데이먼에게 걸린 저주의 해독제를 요구한다. 그런데 에버가 다시 로만의 유혹에 빠진 것으로 오해한 주드가 로만을 죽이게 되고, 해독제 또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이를 지켜본 헤이븐은 주드와 헤이븐에게 분노를 터뜨리며 전쟁을 선포한다. 

4권에서는 서머랜드에서 사라졌던 에바 아줌마가 다시 등장하는 것 외에는 새로운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점점 “성인(聖人)”이 되는 것 같은 데이먼과 “개과천선”한 것 같은 에바 아줌마, 불사자가 되면서 허영과 욕망에 들떴던, 절친에서 이제 원수가 되어버린 헤이븐, 불사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지만 아직도 그 정체가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주드, 악당인줄 만 알았지만 그 또한 씻기 힘든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던,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로만 등 등장인물들의 상황들이 변화하며 겪는 갈등이 깊어지면서 점점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진다. 다만 에버의 좌충우돌은 더욱 심해져 쌍둥이 마녀들의 만류에도 마법을 시전하다가 로만에게 영혼이 묶여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아직도 데이먼과 주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등 답답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 보니 그런 에버를 기다려주고 감싸 앉으려는 데이먼의 모습에서 성스러움까지 느껴질 정도로 극명하게 대비를 이룬다. 

이 책에서는 불순한 의도로 시전하는 마법에는 반드시 댓가 - 여기서는 “업”으로 표현한다 - 가 따른다는 설정 - 판타지 소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다 - 과 함께 눈여겨 볼만한 내용이 하나 더 등장하는 데, 바로 2007년 베스트셀러였던 “론다 번”의 <시크릿; 수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에 나오는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에버가 로만에게 끌리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주드는 그녀가 로만에게 끌리는 이유가 누구나 어두운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데, 같은 것을 끌어당긴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에 따라 로만에게 끌린다는, 즉 에버의 자아 한곳에 웅크리고 있던 어두움이 영혼이 묶여버리는 마법 때문에 깨어나고 같은 어둠이라 할 수 있는 로만에게 저절로 이끌린다는 설명인데 이 대목을 읽으면서 왠지 익숙한데 싶었더니 출판사 소개글에 <시크릿>의 “끌어당김의 법칙”을 응용한 것이라는 글을 보고 익숙함의 이유를 알았다.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지만 <시크릿>은 하도 유명세가 있어 우연찮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 <시크릿>에서 끌어당김의 법칙이란 전 세계 인구의 1퍼센트 밖에 안되는 사람들이 전 세계 돈의 96%를 벌어들인 이유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한 생각은 “부(富)”였고, “부”에 대한 이들의 생각이 그 사람들에게 부를 끌어당겼다는 데 있다고 “끌어당김의 법칙”을 설명하는데, 즉 긍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얘기를, 영 비밀 같지 않은 비밀을 자신의 소설에 적절히 응용하여 인간관계의 설정과 에버가 로만에 이끌리는 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사용 - 에바 아줌마가 에버에게 한 충고 “로만 생각을 떨쳐 버리고 자기 인생을 살라”는 말이 바로 이 법칙의 효과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 한다는 작가의 설정이 엉뚱하면서도 꽤나 재미있다.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로만이 죽어 버리고 절친이었던 헤이븐이 적으로 돌아서 더욱 사면초가에 빠진 에버는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5권인 <나이트 스타>가 궁금해서 잠깐 소개글과 서평들을 읽어보니 데이먼이 감췄던 비밀이 드러나고, 위기는 갈수록 점입가경에 이른다고 하니 더욱 궁금해진다. 그리고 올해 11월에 출간 예정이라는 시리즈의 완결편 <에버래스팅>에서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맺게 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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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우 랜드 이모탈 시리즈 3
앨리슨 노엘 지음, 김경순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엘리슨 노엘”의 판타지 로맨스 소설 “이모탈(Immortal) 시리즈”를 읽기 시작해서 어느덧 3권 <섀도우 랜드(원제 Shadow Land/북폴리오/2010년 11월)>에 이르렀다. 이런 시리즈물은 한 권 한 권 출간을 기다리면서 읽는 재미도 있겠지만 전권 - 아직 완결은 되지 않았지만 - 을 쌓아놓고 스토리와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차례대로 읽는 맛도 꽤나 쏠쏠하다. 불사자(不死者)와 인도 신화라는 독특하고 색다른 소재, 매 권 비밀의 베일이 하나씩 둘씩 벗겨지는 재미로 나의 “판타지 로맨스”에 대한 거부감을 무색하게 만든 이모탈 시리즈, 이번 권에서는 또 어떤 비밀이 밝혀질지, 그리고 어떤 인물이 등장해서 데이먼과 에버의 불멸(不滅)의 사랑을 훼방 놓을지 궁금함과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에버는 데이먼에게 자신의 피가 섞인 해독제를 마시게 해서 구해내지만 데이먼과 에버는 서로 만질 수 도 키스도 할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되고 만다. 바로 또다른 불사자이자 악당인 로만이 데이먼에게 에버와의 DNA가 섞이게 되면 바로 죽게 되는 저주를 걸어뒀기 때문이다. 데이먼을 또 위기에 빠뜨렸다는 상실감에 빠진 에버는 로만에게서 어떻게든 치료약을 얻으려고 애를 써보지만 계속 실패하게 된다. 한편 데이먼은 불사자들의 영혼이 가는 곳인 “새도우 랜드”를 가보고는 사랑하면서도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지금 상황이 바로 둘 사이의 “업(Karma)"에 의한 것이라고, 환생을 거듭하면서 반복되는 에버와의 사랑과 이별의 고리를 끊기 위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서까지 에버를 불사자로 만들어 버렸던 것을 자책하고, 그 업을 끊어내기 위해 지난 600 년 간의 방탕했던 삶을 바로 잡으려 한다. 에버는 데이먼을 로만의 저주에서 구해내는 방법을 찾기 위해 오래된 서점에 일자리를 구하는데, “주드”라는 서점 주인이 영 낯설지가 않고 왠지 모를 설레임까지 느끼게 된다. 그는 바로 전생(前生)에서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줬었던, 그리고 그녀를 사랑했지만 데이먼 때문에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화가가 환생(還生)한 것이었다. 마음을 다 잡으려고 하지만 에버의 마음은 갈수록 흔들리고, 데이먼은 전생과 현생에서 주드와 에버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은 자신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잠시 에버와의 이별을 선택한다. 종잡을 수 없는 마음에 괴로워하는 에버에게 로만의 마수가 다시 한번 드리운다. 헤이븐이 위험에 처했다는 로만의 전화를 받은 에버는 로만의 집으로 달려가 거실에서 죽어가는 헤이븐을 보게 된다. 헤이븐을 살리려면 그녀를 불사자로 만들라는 로만의 속임수에 의해 선택의 기로에 선 에버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번 권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은 바로 제목이기도 한 “섀도우 랜드”라 할 수 있겠다. 모든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서머 랜드”와는 달리 시작도 끝도 없는 암흑의 공간이자 모든 것이 멈춰선 절대 고독의 공간인 “섀도우 랜드”는 데이먼과 에버와 같은 불사자들이 죽으면 가는 그런 공간이다.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현생에서의 불사자들의 행복 저편에는 이처럼 “지옥(地獄)”이 존재했던 것이다. 데이먼은 섀도우 랜드를 경험하고서 자신이 에버를 불사자로 만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또한 세상의 부와 환락을 맘껏 누려왔던 무절제한 삶이 바로 그들을 섀도우 랜드로 이끄는 “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사후 세계, 즉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기에 선한 삶을 살고자 하는 종교인들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까? 영원한 삶에 대한 반대 급부로 주어지는 절대 고독의 세계, 섬뜩하고 무서운 섀도우 랜드가 불사의 삶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이끌어 낸 셈이다. 

또한 데이먼과 에버의 불멸의 사랑을 위협하는 강력한 존재인 “주드” 또한 꽤나 흥미로운 인물이다. 뱀이 꼬리를 물고 있는 문신인 오로보로스 문신을 하고 있어 드리나나 로만처럼 악당으로 의심되지만 이번 권에서는 그 정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낸다. 환생을 거듭하면서 계속 에버를 사랑하지만 데이먼 때문에 번번히 사랑을 이루는데 실패했던 그가 환생의 고리를 끊고 불사자가 되어 버린 에버와의 사랑은 어떻게 전개될 지 다음권이 기대된다. 또한 줄거리 소개에서는 생략했지만 섀도우 랜드에서 알게 되어 졸지에 데이먼과 에버에게 부모 노릇을 하게 만든 쌍둥이 아이들도 이야기의 한 축으로서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그런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전편보다는 그 활약이 줄어들었지만 사악함은 더욱 강력해진 로만 또한 앞으로 얼마나 더 교묘하고 그들을 괴롭힐 지, 또는 2권에서 언급했던 또다른 불사자들이 등장해서 훼방 놓을지 계속 이어질 이야기가 절로 기대가 된다. 

하는 일마다 치명적이기까지 한 실수를 저지르고, 굳건하기만 한 불멸의 사랑인 줄 알았더니 새로운 등장인물에 금세 마음이 흔들려 버리는 에버가 못내 답답하고 짜증이 나긴 하지만 새로운 등장인물과 사건들로 더욱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던 3권이었다. 다음권인 <다크플레임>에서는 데이먼과 에버에게 또 어떤 위기가 닥칠지, 그들은 그런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고 불멸의 사랑을 지켜낼 지 계속해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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