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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벌루션 No.0 ㅣ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재일교포로는 처음 일본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 작품은 그를 유명하게 했던 대표작들 - 이 글에서 소개하게 될 “더 좀비스”나 나오키 상의 영예를 안겨줬던 <GO>, 일본 드라마로도 유명한 <SP> 등 - 아직 읽어보지 못했었고, <연애소설(북폴리오/2006년 2월)>을 4~5년 전 쯤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모 미니홈피에 정리해놨던 짧은 감상글을 찾아보니 책 제목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연애소설이 아니라 독특한 내용의 소설이었던 그 작품은 중단편 3편의 모음이라 소설 전개도 빠르고 작가의 글 풀어가는 솜씨도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했던, 결론이 단편에 걸맞지 않게 진지해서 되새김할 만한 작품이어서 느낌이 좋았던, 그래서 나에게는 깔끔함, 그리고 탄탄함 두 단어로 기억될 작가라고 평가해 놓았다. 오래되어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꽤나 인상적이었던 작가였던 것 같다. 이번에 드디어 그의 대표작인 “더 좀비스” 시리즈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레벌루션 No.3>, 이문식, 이준기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한 <플라이 대디, 플라이>, <SPEED>로 이어지는 “더 좀비스” 연작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레벌루션 No.0(원제 レヴォリュ-ションno.0 /북폴리오/2011년 9월)>이 바로 그 책이다. 전 시리즈를 읽어보지 않아 소개글을 찾아보니
“삼류 고등학교의 꼴통 고등학생들이 이 엄격한 학력사회에 뇌사 상태 수준의 머리를 가졌다는 뜻으로 만든 ‘더 좀비스’ 클럽.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들이 세상을 향해 벌이는 작은 혁명극이자 모험극을 그리고 있는 ‘좀비스’ 시리즈(YES24 발췌)”
라고 한다. 언뜻 보면 어린 시절 읽었던 “조흔파” 선생의 <얄개전>이 연상되는데, 제목의 “레벌루션(Revolution)"이라는 단어의 뜻인 “혁명”이 말 그대로 “혁명(革命)”을 뜻하는 지 아니면 불량(?) 청소년들의 “반항(反抗)”을 뜻하는지 선뜻 감이 오질 않았다. 176 페이지로 불과 한 두 시간이면 읽어낼 수 있는 이 책을 직접 읽고 나서야 감이 잡힐 것 같아 익살스러운 청소년 남자의 그림이 만화(漫畵)을 연상시키는 책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순도 100퍼센트의 찌질이들”이 모여 있는, 근처에 있는 명문 여고 아씨들이 눈조차 마누치려 하지 않는, 심지어 학교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조류 인플루엔자의 발생 근원지라고까지 소문이 날 정도 - 주인공은 조류 정도의 지능밖에 없는 얼간이들이 모여 있으니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 로 3류 남고(男高)에 입학하게 된 “나”와 친구들은 열흘전 학교 옥상에서 교내 최강자를 가리는 “쌈질”을 벌인 후 모여서 담배를 피웠다가 그만 정학을 당했다가 정학이 풀리고 등교한 첫날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접한다. 바로 일주일 후 1학년의 풍기가 심각하게 문란해서 3박 4일 동안 군마 현의 아카기 산에서 1학년 전체 합숙 훈련을 실시한다는 소식이었다. 다른 어느해보다 200명이나 신입생을 더 뽑아서 콩나물 시루같았지만 입학하고 몇 개월 만에 수십명이 학교를 그만둬버리는 마당에 무슨 합숙 훈련이라니, 거기에 최악의 폭력 선생 “사루지마”가 지휘한다니 사상 최악의 지옥 훈련이 될 것이 뻔한 그런 훈련이 될 것만 같다. 이혼한 아버지가 지금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이 다녔던 학교로 전학가지 않겠냐는 제의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어쩌면 언제라도 그만두고 갈 곳이 있다는 보험 같은 생각이 든 나는 학교 합숙 훈련에 참가하게 된다. 그런데 합숙 훈련은 역시나 기대(?) 이상으로 최악의 그런 것이었다. 고립된 터에 자리 잡은 수련장에 죄수처럼 갇혀 주변 높은 산을 4시간에 주파해야 하는, 시간 안에 들지 못하면 선생들의 무지막지한 욕설과 폭력이 춤을 추는 그런 지옥 같은 상황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합숙 훈련이면에 숨겨진 학교 재단 측의 음모를 알게 된 나와 친구 일행들은 이 지옥 같은 합숙소를 탈출하기로 모의하기에 이른다. 드디어 결행의 그날 밤, 나와 같은 조 일행 12명은 탈출을 감행한다. 수련원에 싸이렌이 울리고 선생들이 쫓아오는 긴박한 상황, 과연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과연 “나”와 일행들이 벌인 이 “혁명”은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교육계에도 “체벌(體罰) 금지”, “학생인권조례 제정”등으로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내가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냈던 불과 십 수 년 전 만 해도 이 책에서의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인 행위를 실제로 고스란히 겪었던 그런 일들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면 정말 어떻게 어린 학생들을 그렇게 때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무자비했던 “폭력” 선생님들이 학교마다 꼭 한 두 명씩 있었고 -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美化)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나중에 두고 보자 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게 했던 그런 선생님들이었다 - , 극기(克己)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야간 행군, 교내 마라톤, 해병대 캠프 훈련 등에 강제로 참가해야 했으며,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그 어떤 과제보다도 최우선인 대학 진학을 위해 0 교시 수업 뿐만 아니라 새벽 1~2시까지 자율 학습에 내몰렸지 않았는가. 이 책에서 등장하는 “나”가 다니는 학교가 바로 우리 세대가 겪었던 수 십 년 전 그 학교 그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대학 진학의 대오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절대 권력자인 학교와 선생님들께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졸업하고 말았지만 이 책에서 “나”와 일행들은 과감하게 “혁명”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 혁명이 우리가 아는 민주투사들의 비장하고 절박한 그런 외침이나 투쟁이 아니고 “유쾌”하고 “통쾌”하게, 그리고 멋있기까지 하다. 수련원을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일행들은 자신들이 도망가기에도 바쁜 판에 공원에서 희롱을 당하는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폭주족 불량배들과 일대 활극을 벌이고 그녀를 구해낸 다음 다시 탈주극을 계속한다. 수 km의 밤길을 내처 달려 도착한 역(驛)에서 일행들은 이민가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한 친구에게 수중에 가진 돈을 다 몰아주고 자신들은 광장에서 자신들을 잡으러 오는 선생님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이 얼마나 “쿨(Cool)"하고 멋진가. 그리고 당장 때려치워도 시원찮을 학교를 그들은 계속 다니기로 결심한다. 재단과 선생님들의 음모에 순순히 따라줄 수 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시 한번 학교를 옮기라는 아버지께 ”나“는 학교를 옮길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얘기한다.
지금 학교에 다니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 무슨 잘못이 있는데, 그걸 사람들이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긴다고 해서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잘못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거나, 잘못을 인식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인간이 필요해. 나는 그 때문에 지금 학교에 있고 싶어. 내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 P.155
깨진 앞니를 보고도 그 이유를 묻지 않는 아버지께 반항심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멋진 이유가 아닌가. 아직 성인이 되기에는 이른 청소년이 그릇된 일을 피하거나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에서 잘못된 일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행동하겠다는 당찬 각오가 느껴지는 말일테다. 그리고 사회 모순에 분노할 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의 가슴 뜨끔하게 하는 그런 일침이다. 그래서 어쩌면 불량 청소년들의 일대 소란에 불과할 수 도 있었던 이 책의 이야기가 유쾌하고 통쾌하고 너무나도 멋진 “혁명”으로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덕분에 “가네시로 가즈키”는 나에게 깔끔함과 탄탄함과 함께 통쾌하고 멋들어진 그런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완결편부터 읽었지만 “더 좀비스” 시리즈를 처음부터 제대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가 선보이는 찌질한 “좀비”들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혁명”의 목소리로 잃어 버렸던 내 젊은 날의 열정을 기억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 말미에 적혀 있는 한 문장을 꽤나 오랫동안 - 적어도 그의 좀비 시리즈를 다 읽을 때 까지라도 -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모순을 바꾸고자 했던 내 젊었던 시절, 그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가물가물한 기억을 다시금 되살리는 바로 그 문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