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인의 항아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1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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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不知 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莊子 齊物論篇) 

내(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에 내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구나(장자 제물론편) 
 

범인(凡人)인 나로서는 위의 글귀처럼 피아(彼我)의 구별이 없고 다만 만물의 변화에 불과 하다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가 쉽게 이해될 리가 없겠지만 굳이 미뤄 짐작한다면 “가상현실(假想現實, Virtual Reality)”이 그나마 비슷할 것 같다. 이런 가상현실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로는 어린 시절 보았던 <트론(1982)> - 최근 <트론;새로운 시작(2010)>으로 리메이크되었다 -과 아놀드 슈왈츠제너거 주연의 <토탈 리콜(1990)>, 그리고 가장 유명한 영화라 할 수 있는 <매트릭스 3부작(1999)>와 최근 큰 인기를 얻은 <인셉션(2010)> 등 많은 영화들이 있어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로는 접해본 작품이 드문데, 온라인 게임을 소재로 한 게임 판타지 소설 몇 편과 제1회 한국판타지문학상을 수상했던 “임정”의 <샴발라 전기(북하우스/2000년)> 정도만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이번에 가상현실을 본격적으로 다룬 멋진 SF 미스터리 소설 한 편을 만났다. “오카지마 후타리”의 <클라인의 항아리(원제 クラインの壺 /비채/2011년 8월)>이 바로 그 책이다. 책을 받고서 이제는 흔한 소재인데 뭐 새로운 것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이 씌여진 시점이 아직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조차 정립되기 전인 1989년이라는 점에 놀랐고, 다 읽고 나서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작품인데도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오히려 앞서 언급한 소설이나 영화들 - 위에서 언급한 연도에 발표한 작품으로만 한정한다. 왜냐 하면 영화 <토탈 리콜>의 원작 소설은 1966년에 발표했으니 - 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작품 수준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대학 4학년이면서 취직한 가망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대학생이었던 “나(우에스기)”는 새롭게 창간한 잡지사에서 주최한 어드벤처 게임북 원작 공모에 “브레인 신드롬”이라는 작품을 응모하지만 400자 원고지 200매 응모 공고를 잘못 읽어서 워드프로세스로 친 원고 200매라는 너무 긴 분량을 보내는 바람에 탈락을 하고 만다. 그런데 이 작품을 토대로 “입실론 프로젝트”라는 게임 회사가 가상현실 게임을 제작하고, 나에게 프로토 타입 "K-Ⅰ(클라인 1)"을 테스트해보게 한 후 200만 엔에 계약을 제의하고, 보잘 것 없는 내가 줄곧 원했던 찬란한 미래라는 미끼를 눈 앞에서 흔드는 데 저항할 길 없는 나는 계약을 하고 만다. 그로부터 1년 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게임 개발 완료되기를 기다린 끝에 “K-Ⅱ(클라인 2)" 개발이 끝나고 나에게 게임 테스트 제안이 들어온다. 자신이 스토리를 제공한 게임이 어떤 게임으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한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게임 테스트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 게임, 가상현실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극한의 현실감이 느껴지는 한마디로 ”물건“이었다. 흥분을 감출 수 없던 나는 점점 게임에 몰입하게 되는데, 테스트가 진행되면서 몇 가지 의문스러운 일들이 벌어진다. 보안 때문이라고 하지만 최첨단 테스트 장소의 위치는 철저하게 통제되고, 게임 진행 과정에서 게임에서 빠져나가라는 알 수 없는 경고와 함께 강제로 게임에서 튕겨 나오는 일이 잦아진다. 거기에 같이 테스트에 참여했던 여학생이 갑자기 테스트를 포기하고 자취를 감춰버리고, 그녀의 친구가 나에게 그녀의 행방을 물어오는 일이 벌어진다. 나는 단순한 게임인줄만 알았던 “K-Ⅱ”와 입실론 프로젝트 사(社)에 뭔가 숨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이 책은 여러모로 참 화제가 많은 책이다. 우선 작가인 “오카지마 후타리”가 한 명이 아니라 플롯과 스토리를 각각 담당하는 2인 공동 필명 - 이처럼 공동 필명으로 유명한 작가가 바로 “엘러리 퀸”이다 - 이고, 둘이 불화를 일으켜 이 작품을 끝으로 결별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제목이자 가상현실 게임 이름인 “클라인”도 뫼비우스 띠와 같은 초입체인 “클라인의 항아리” - 책에는 구체적인 개념 설명이 나오는데 과학의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저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그런 입체 모형 정도로만 이해가 된다 - 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이 책의 내용과 주제에 딱 걸 맞는 그런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당시에는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을, 그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법 했을 “가상현실”에 대해 지금 봐도 전혀 유치하거나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게 개념 정립해서 제시했다는 점도 충분한 화제꺼리 - 누가 봐도 이 책이 20년 전에 나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재나 제목, 작가에 대한 화제성 뿐만 아니라 이야기 또한 상당히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게임 테스트에 들어가면서 하나 둘씩 의문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고, 동료가 실종되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비밀을 밝혀내는 과정이 눈길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몰입감을 선사하고, 위기가 절정에 치달았다가 해소되어 일견 마무리되는 듯 하지만 놀라운 반전으로 그 여운이 책장을 덮고 나서도 꽤나 오래 지속되게 만드는 추리소설의 전형(典型)을 그대로 보여줘 SF 소설이 아닌 추리소설로도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와 재미를 보여준다. 물론 이런 류의 소설과 영화가 지금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어 신선함이나 색다름은 느낄 수 없는 평범한 수준이라고 말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SF와 미스터리(추리)의 절묘하게 결합되어 “1+1=2”라는 단순 결합을 뛰어넘는 재미를 선보이고 있어 즐겨 읽는 두 장르를 한 번에 만나는 재미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던 “선물”과도 같은 책이었다.
 

다 읽고 나서 결말이 주는 여운에 쉽게 책장을 덮지 못하며 앞서 언급한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의 경지가 이러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장을 덮고 책꽂이에 꼽아 두면서 저절로 목 뒷덜미를 만져봤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목 뒷덜미에 전선(電線)이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전선이 손에 잡혀지고 힘주어 뽑으면 갑자기 “페이드 아웃(Fade-Out)" 되버리고 이상한 캡슐에서 누워 있는 채로 다시 ”페이드 인(Fade-In)" 되버릴지도 모른다는, 그리고는 누군가가 다가와서 게임 어땠냐고 물어볼 것만 같은 그런 상상이 자꾸 들어서였다. 아니면 몇 십 년 후 병상에서 가족들과 인사하고 마지막 눈을 감을 때, 잠시 후 다시 눈을 떠 보니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가상현실게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허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 또한 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게임 속의 캐릭터에 불과한 걸까? 아니면 게임 캡슐에 누워있을지도 모르는 “그”가 내가 꾸는 꿈 속 캐릭터일까? 어쩌면 21세기식 장자의 호접지몽이 바로 이 “가상현실게임”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외계인 문명 기원설과 같은 음모론(陰謀論)처럼 몇 천 년 전 장자(莊子)가 UFO에 납치되어 가상현실게임을 접해 보고 호접지몽, 물아일체의 경지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까지 비약되자 헛웃음과 함께 생각을 서둘러 지워버리고 책장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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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피었다 - 2011 올해의 추리소설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강형원 외 지음 / 청어람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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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붐”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요즘 추리 소설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하니 추리소설 마니아인 나로서는 참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가슴 한 켠으로는 이런 추리소설 붐이 일본과 미국, 유럽 등 외국 소설들의 인기 때문이라는 점은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금 당장 추리소설 작가하면 떠오르는 이름 -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 등 고전 작가를 제외하고 - 이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미나토 가나에”, “시마다 소지” 등 일본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거기에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 “파트리샤 콘웰”, “로버트 해리스” 등 서양 작가들과 심지어 낯선 나라인 스웨덴의 “스티크 라그손” - <밀레니엄 시리즈> - 까지 떠오르는 데 “우리” 작가는 딱히 떠오르는 작가나 작품이 없다. 물론 최근 몇 몇 신인 작가들 작품을 읽어보긴 했지만 금세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 추리소설은 겨우 명맥을 잇는 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작가들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없을까? 시간을 좀 더 과거로 돌려 보면 바로 한국 추리소설의 대부(代父)라 할 수 있는 “김성종” 작가서부터 “유우제”, “이상우”, “유명우”, “김상헌”, “한대희”, “권경희”, “황세연” 등 이름만 들어도 “아, 그 작가”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반가운 작가들의 이름이 여럿 떠오른다. “추리소설은 청소년들이나 읽는 책이다” 또는 “우리 추리소설은 너무 수준이 낮다”는 등 온갖 야유와 냉소 속에서도 꿋꿋이 한국 추리소설의 명맥을 이어왔던 이 분들이 그토록 바라던 추리소설 붐이 왔는데도 오히려 과거보다 더 위축되어 이름조차 찾아보기 힘들다니 참 아쉽기 그지 없다.그런데 이런 아쉬움을 달래줄 우리 추리소설을 만났다. 바로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중견 작가들과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인 작가들 작품 11편이 수록된 <목련이 피었다; 2011년 올해의 추리소설(강형원, 김재성 등 저/청어람/2011년 8월)>이 바로 그 책이다.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받자마자 표지부터 우선 한번 쓸어보고는 책 표지를 열어 들었다.

먼저 목차를 살펴보니 앞에서 언급한 몇 몇 중견 작가들의 이름이 빠져 있어 아쉽지만 “강형원”, “이상우”, “황세연” 작가의 이름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참 반가웠다. 여기에 이미 데뷔한지 15년이 되었지만 2009년 <인형의 정원>으로 한국추리문학대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신인 아닌 신인 작가 “서미애” 작가와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에서 만나 뵐 수 있었던 “손선영” 작가 또한 반가운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다섯 분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분의 작가들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나본 생소한 작가들이다. 작품 경력을 보니 이미 여러 권을 발표한 분들인데 처음이라니, 그만큼 작가들이 활동할 기회와 공간이 매우 적다는 우리 추리소설의 한계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추리소설 마니아를 자청하면서 우리 추리소설들은 애써 외면해온 나의 독서 편식증 또한 반성해볼 대목인 것 같다. 이처럼 반가움과 낯섦이 교차하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먼저 첫 번째 작품인 강형원 작가의 <살아있는 전설>부터 눈길을 확 끌기 시작한다. 1979년 10월, 모 신문사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어 온다. 곧 대통령이 시해된다는 내용이 담긴 그 편지를 편집국은 장난 편지로 무시해버리지만 “10.26 사태”라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계속해서 “12.12.사태”, “아웅산 테러 사건” 등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에 어김없이 편지가 배달되어 온다. 과연 이 편지를 보내온 “수”란 인물은 누구일까? 이야기는 “9.11.테러”를 거쳐 최근 시점까지 이어지다가 의외의 반전으로 끝을 맺는데 이 작품을 트릭과 플롯, 반전을 특징으로 하는 추리소설로 볼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몰입감과 재미만큼은 탁월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셜록 홈스”의 오마주 쯤으로 여겨지는 김재성의 <노끈>과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강박관념을 치유하기 위해 요양하러 내려 왔다가 아들 또래의 소년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인 김주동의 <강박관념>, 5년 전 갑자기 실종된 친구의 비밀에 접근하는 교생 선생님의 이야기가 영화 “여고 괴담”을 연상시키는 서미애의 <목련꽃이 피었다> 또한 꽤나 재미있게 읽힌다. 공포 소설에 가까운 설인효의 <ZOMBIE, 2011 in seoul>와 불륜 아내의 일기장 속 남자들을 살해하는 남편 이야기인 손선영의 <그녀는 알고 있다>는 의외의 반전이 주는 재미를 느껴볼 수 있고, 정말 오랜만에 만난 “추경감”은 마치 오래전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 이상우의 <섬머 킬러는 슬프다>는 여기 실린 11편 중 가장 반가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제목 그대로 “독거미”를 연상시키는 악처(惡妻)들이 등장하는 최종철의 <독거미의 거미줄>, 밀실 트릭과 아마추어 탐정이 등장하는 현구의 <포인트>, 뉴욕 브로드웨이가 배경 할로윈 데이 살인사건을 그린 황미영의 <브로드웨이의 비명>이 그 뒤를 잇고, 마지막에는 인터넷 악플을 소재로 한 살인사건인 황세연의 <개티즌>이 실려 있다. 특히 이상우 작가와 함께 가장 반가운 이름인 황세연 작가는 북한과 미국의 전쟁을 그린 <조미전쟁(1999)>과 2000년대 전후 큰 선풍을 일으켰던 리듬액션게임 “DDR(Dance Dance Revolution)"을 소재로 한 공포소설 <디디알(2000)> - 작가 사망 논란이 기사화될 정도로 당시에는 큰 화제를 낳았었다 - 을 참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근황이 궁금했었던 터였는데 10 여 년 만에 비록 짧은 단편이지만 다시 만나니 정말 반갑고 즐거웠던 그런 작품이었다.

사실 몇 몇 작품은 추리소설로 보기 어려운 장르 혼합 작품들이고, 몇 몇 작품은 앞에서 언급한 일본이나 서양 작가들 작품과 비교하면 재미 면에서 다소 아쉬운 작품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에 만점 - 우리 작가라고 너무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각오하고 - 을 주고 싶다.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하는 중견 작가들, 그리고 낯설지만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신진 작가들이 어우러진 이 작품이야말로 아직 한국 추리소설은 죽지 않았다는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외침으로 들려 그들의 목소리를 결코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디 앞으로도 이런 작품들이 계속 나와 주기를, 그래서 서점 추리소설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외국 소설들을 한 켠으로 밀어내고 당당히 자리 잡아주기를, 다음번 이런 서평을 쓸 때는 외국 작가 이름보다 우리 작가들 이름이 먼저 떠오르기를, 그리고 그 때는 열 손가락 뿐만 아니라 열 발가락까지 헤아려도 부족할 만큼 많은 작가들이 떠오르기를 바래본다. “우리 추리 소설 파이팅!”이라는 응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이 작품,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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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승리자들 - 콜럼버스에서 마릴린 먼로까지 거꾸로 보는 인간 승리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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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추천 도서로 “위인전기(偉人傳記)”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텐데, 그 이유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위대한 업적을 쌓은 위인들의 삶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교훈(敎訓)”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위인전기 속 위인들이 실제로 삶의 표상(表象)으로 삼을 만한, 즉 “존경”할 만한 그런 인물들인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온 유럽을 전화(戰火)로 이끌었던 “나폴레옹”이나 정복 군주로서 명성을 날린 “징키스칸”과 “알렉산더 대왕”은 과연 위인인가? 최초로 신(新) 대륙을 발견한 날을 기념해서 10월 둘째주를 “콜럼버스 데이”로 기념한다는 신대륙의 아버지 “콜럼버스”의 발견은 정말 최초였을까? “정직(正直)”의 대표 아이콘으로 유명하지만 모든 것이 날조된 것으로 드러난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그럼에도 그의 정직이 계속 존경받아야 할까? 수많은 발명으로 “발명왕”으로까지 불리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라이벌들을 철저하게 짓밟아온 “에디슨”은 어떤가? 이처럼 위인 전집들의 단골 손님들이라 할 수 있는 위인들의 진면목을 들여다 보면 수많은 위선과 거짓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어의 교황”으로 불릴 정도로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언론인이자 문화사 전문가로 평가받는다는 “볼프 슈나이더(Wolf Schneider)”의 <만들어진 승리자들(원제 Die Sieger / 을유문화사 / 2011년 8월)>은 이처럼 자의에 의해 또는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승리자”들의 이중성과 위선을 철저히 파헤치는 역사 교양서이다.

작가는 첫 장 "1.누가, 어떤 인간들에게 ‘천재’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일까“에서 이 책에서는 명성을 얻기까지 혹독한 대가를 치룬 “위대한 유명인”- 넬슨 제독, 요한 스트라우스 - 과 태어나면서부터 유산을 물려받아 별다른 시련을 겪지 않은 “위대하지 않은 유명인” - 칭기즈 칸, 스탈린, 장 자크 루소 - , 그리고 재능은 특출했지만 이름 없이 세상을 떠난 “유명하지는 않지만 위대한 인물” - 한 사람의 나폴레옹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수백명의 이름없는 군인들 -, 이렇게 세 종류의 인간을 다룬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인물들의 업적과 삶에 대한 “진실”의 추적을 통해 우리가 예찬해야 할 인물은 누구이고, 그 인물을 어떤 사람으로 묘사할지 결정하는 그 골방 - 백과사전이나 교과서 편찬 위원회라는 익명의 조직이 숨어 들어가 수록될 인물들을 결정하는 그 골방 - 안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한 인물이 전쟁터나 첫 공연의 무대를 거쳐 백과사전이나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걸어갔던 길을 생생하게 추적하는 것이라고, 또한 우상 숭배와 비슷한 점이 많을 뿐 아니라 지도자 숭배로 변질되기도 하는 기존의 “천재 숭배”를 무너뜨리기 위함이라고 이 책의 의도를 밝힌다. 그러면서 첫 타겟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지목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처럼 콜럼버스에서부터 시작하여 위인으로 칭송받는 사람들이 사실은 인격적으로는 참 문제적인 인간이었다는 사실들 - 전쟁광이었던 “처칠”, 사소한 부문까지 오만하기 그지없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베토벤”, 천재와 정신질환자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니체” 등 이 사람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람 맞아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유명 위인들 - 과 자신들의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패배자”가 되어 버린 딱한 위인들 - 전화기 발명자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안토니오 메우치였다고 한다. 벨은 이 전화기 발명 건으로 수많은 특허 소송을 당했지만 미국 법원은 번번이 그의 손을 들어줘 그는 역사의 “승리자”가 된 것이다 -, 때로는 자신이 한 짓이 전혀 아닌데도 오명을 뒤집어 쓴 억울한 사람들 - “기요틴(단두대)”의 발명가로 알려진 “조제프 기요탱”은 단두대를 만들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박애주지의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 또는 지나치게 업적이 과장된 사람들 - 수학 사상 가장 위대한 공식이라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피타고라스”가 만든 것이 아닌데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 등 세계사 교과서나 위인전기에서 익숙히 들어봤던 참 많은 위인들의 숨겨진 면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하나같이 “백인”들 일색이다. 작가는 그런 비난을 미리 의식했는지 이 책은 DWEMs(dead white European meals: 죽은 백인 유럽계 남자들)만 다룬다는 비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지독히 피부가 하얀 유럽계 남자들을 위주로 다루고 있다고 인정한다. 

하드커버 양장본에 701쪽에 이르는 분량으로 대학 교재를 연상케 하여 처음 읽을 때는 부담이 되었지만 하나같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라 부담 없이 쉽게 읽힌다. 방대한 자료조사를 이렇게 수많은 위인들의 진면목을 속속들이 밝혀낸 점은 참 놀랍다고 할 수 있는데, 편집 문제 - 이 책을 먼저 읽은 많은 분들이 편집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셔서 굳이 중언부언하지 않겠다 - 와 함께 아쉬운 점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익숙한” 내용들을 들 수 있겠다.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다 보니 이 책처럼 위인들의 뒷이야기들이나 역사 이면에 감춰져 각종 음모론들을 엮어낸 역사 교양서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이 책의 내용들도 이미 그런 책들을 통해서 대체적으로 한번 씩은 접해본 그런 이야기로 느껴진다. 물론 그런 책들은 그저 흥미위주의 가벼운 읽을 꺼리들이 대부분으로 체계적인 조사와 방대한 자료는 이 책이 단연 압권이고, 이 책을 기본 텍스트로 하여 요약해놓은 책이 교양서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일 수 도 있어 - 사실 확인은 되지 않아 단정할 수 는 없지만 - 이 책 내용이 익숙하다고 해서 폄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들에 대해 삐딱하게 봐야할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든, 아니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단순 오류에 의해 그렇게 알려졌던 이미 “승리자”로서 위치를 공고히 한 그들의 명성은 그다지 흔들림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신문에 나왔대” 라는 말로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줬던 신문 기사가 100%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오히려 신문사 이권이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오히려 왜곡과 거짓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 “진실”인 것처럼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이라도 한번쯤은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은 없는지 한번쯤은 의심해보는 계기로는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굳이 이런 가치를 떠나서 재미있는 이야기꺼리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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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의 백인신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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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의 책받침과 연습장 표지, 그리고 방안 벽면을 줄곧 차지했었던 여배우 “피비 케이츠(Phoebe Cates)”가 영화 <파라다이스(1982)>에 출연할 당시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했던 베드윈 족장이 낙타 25두와 양 100마리로 여주인공 피비 케이츠를 사겠다는 제안을 했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내를 돈이나 가축으로 사는 일이 중동과 아프리카 유목 부족에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하니 문화적인 차이 면을 감안한다면 그런 제안을 영 이해 못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 어린 마음에 이 기사를 읽고 나도 피비 케이츠를 사기 위해 돈을 모아볼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 도 이겠지만. 그런데 미국 서부 개척 시절 한 인디언 부족이 백인 정부에 천명의 백인 신부들을 말 천 필과 평화를 댓가로 달라고 요구했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요구는 거절되고 아메리카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대학살로 이제는 보호 구역에 갇혀 지내는 소수 민족들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그 당시 인디언들의 요구대로 백인 신부들이 인디언들에게 보내졌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참 말도 안 되는 그런 상상이겠지만 소설적 허구로는 충분히 이야기꺼리가 될 만한 그런 재미있는 상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상이 실제로 소설로 만들어졌다. 바로 “짐 퍼거슨”의 <천명의 백인 신부(원제 One Thousand White Women /바다출판사/2011년 7월)>이 그 책이다. 

작가는 “저자의 말”에서 이 책은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만들어진 전적으로 허구의 산물이라고 전제하며 이 소설의 씨앗이 1854년 포트 래러미에서 열린 평화 회담에서 북부 샤이엔 족의 족장이 미국 군 당국에게 천명의 백인 신부를 선물로 달라고 요청해왔고, 말할 필요도 없이 백인 당국은 요청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는, 평화회담은 결렬되고 샤이엔 족은 돌아갔으며 “당연히” 백인 신부는 가지 않았던 실제 역사적 사건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당연히” 안가는 것이 아니라 백인 신부들이 가는 데서 출발한다. 다만 시대적 설정과 등장인물들은 허구로 설정해서 말이다. 

실제 사건보다는 20년이 지난 1874년 9월, 샤이엔 족의 ‘온화한 주술 대족장’ 리틀 울프는 백인들과 영원한 평화를 이루겠다는 목적으로 부족 대표단을 이끌고 수도 워싱턴까지 기나긴 육로 여행을 했다. 국회 의사당 건물에서 열린 회담에서 족장은 말 천 마리와 평화를 댓가로 천명의 백인 신부를 선물로 달라고 요구한다. 당연히 회의장은 난장판이 되었고, 양쪽 진영은 일촉 즉발의 상황에까지 치닫게 된다. 간신히 수습되어 질서를 되찾은 후 샤이엔 족 대표들은 퇴장 - 위대한 족장은 그 선두에서 당당하게 걸었다 - 하고, 그날 밤 워싱턴에 이 불경한 제안이 퍼지면서 시민들은 문을 꽁꽁 잠그고, 아내와 딸들의 외출을 금지했으며 도덕적 분노가 가득한 선언을 한 하원과 이교도에게 팔려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행정부의 재빠른 반응이 이어지고 이틀 뒤 분노한 시민들의 조롱과 야유를 뒤로 한 채 리틀 울프 일행은 수도를 떠난다. 실제 역사라면 이 시점에서 해프닝으로 끝났을 텐데, 흥미로운 - 실제였다면 말도 안 되는 - 현상이 전국에서 일어난다. 전국 각지의 여성들이 샤이엔 족의 신부가 되겠다고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대통령과 자문위원들이 실용적 의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각의 다른 장관들 또한 이런 계획이 ‘인디언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옹호하면서 결혼 계획이 은밀히 추진된다. 리틀 울프 족장이 방문한 지 6개월이 지난 1875년 3월 초 샤이엔 족의 신부가 되겠다고 자원한 백인 여성 1차 지원단 48명은 기차에 몸을 싣고 철저한 비밀에 싸인 채 북부 대평원을 향해 워싱턴을 떠났다. 이렇게 “사건”의 진행과정을 설명하는 “프롤로그”가 끝나고 시작되는 본문에서는 백인 신부단의 일원인 25세 “메이 도드”가 쓴 일기 형식으로 기차를 타고 인디언 마을로 떠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미천한 신분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자식을 낳았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던 메이는 자유 - 아이 한 명을 낳아주면 자유의 몸이 된다는 조건 - 를 위해 샤이엔족에게 가기로 결심하고 기차에 오른다. 여행 중 인솔자인 버크 대위에게 연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인디언 마을에 다다른 메이는 신부 선택에서 대족장 리틀 울프에게 선택되어 그의 부인이 된다. 이미 두 명의 부인이 있던 울프 족장은 메이에게 둘째 아내의 시중과 문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맡기게 되고, 메이는 행복한 시간들과 때론 위기의 시간들도 겪으면서 서서히 인디언 사회에 동화(同化)한다. 그러나 평화와 두 문명의 연결이라는 목적으로 시작된 이 인디언 신부계획은 인디언들의 캠프 근처에서 금(金)이 발견되자 인디언들을 보호구역으로 내몰기 위한 군대가 파견되면서 양 진영의 평화협정은 깨져 버리고, 계획 또한 1차에서 끝나버리게 된다. 진정으로 “인디언”들의 신부가 된 메이와 백인 여성들은 이런 현실에 가슴 아파한다. 과연 메이와 백인 신부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의 장르를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역사 속의 어느 사건이 실제와는 다른 결말을 낳게 되면서 역사가 바뀌는 형식이라고 볼 수 있어 일종의 “가상역사소설(假想歷史小說, 또는 대체역사소설)로 볼 수 있겠다. 역사적 사실(Fact)에 허구(Fiction)를 결합한 "팩션(Faction)" 소설로도 볼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일어났다면 하는 가정을 전제로 했으니 엄밀히는 가상역사소설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종종 팩션 소설들도 허구가 지나친 나머지 역사적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경우 - 예를 들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 않고 탈출해 유럽으로 건너와 특정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는 어느 소설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과는 거리가 멀겠다. 물론 예수의 부활(復活)을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신앙의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 도 있으니 팩션 소설로 분류할 수도 있겠다. 장르 구분이야 어떻든 첫 시작인 <프롤로그>부터 기상천외한 이야기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 책은 주인공 “메이 도드”의 일기가 시작되는 본문에서는 도대체 인디언에게 시집을 간 백인 여성들이 어떻게 적응할까 하는 궁금증에 마지막까지 눈길을 결코 떼지 못하고 내처 읽게 만드는 참 재미있는 소설임에는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너무나도 이질적인 문명(文明)에서 살다온 백인 처녀들이 인디언 부족과 결혼하여 동화하는 과정은 실제 역사가 아닌 이상 작가의 상상력과 가치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텐데, 예컨대 서구 문명의 우월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던가 아니면 인디언 문화의 신비로움만을 부각시키는 형식에 치우치기가 쉽고,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또는 억지스럽게 그려내기가 십상이었을 텐데 실제였더라도 책 속에서 묘사하는 여러 갈등과 위기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적응했겠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개연성이 느껴진다. 그렇다 보니 작가가 분명 허구임을 밝히고 시작했음에도 혹시 미국 정부가 애써 감춰온 실제 역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 - 인디언 사회에 동화되는 과정이 꽤나 사실적이고 개연성이 있지만 첫 시작에서 메이 도드의 증손자 "J.윌 도드”의 <들어가는 글>에서 시작되고 본문이 3인칭 시점이 아니라 메이 도드의 일기 형식의 1인칭 시점으로 이뤄진, 소설의 “형식”적인 면 또한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 이 들 정도인데,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독자들이 메이 도드가 실재 인물이냐는 물음에 작가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실망했다고 하니 이런 착각을 나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학살이라고 불러도 전혀 지나침이 없는 인디언에 대한 박해를 고발하는 것일 수 도 있겠고, 세계화라는 명목하에 이제는 “지구촌(地球村)”이라는 명칭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국가 간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지만 아직도 정치, 경제, 종교 등의 차이로 인해 분명한 “차별(差別)”이 존재하는 현실을 과거 서부 개척 시절 인디언에 대한 박해와 무엇이 다르냐는 냉소로 해석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해 굳이 어떤 “의미”를 찾을 수고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미 작가인 “짐 퍼거스” 는 이런 확대 해석을 경계한 듯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고 하니 말이다. 아뭏튼 이 책, 실제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 그래도 혹시 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 그런 상상이겠지만 소설적 허구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또한 작가의 당부대로 굳이 어떤 의미나 감동 포인트를 찾을 필요 없이 이야기만으로도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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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구병모” 작가의 전작 <아가미(자음과 모음/2011년 3월)>에서 신비롭고 애처로운 이야기의 흐름에 취해 금세 읽어 버렸지만 작가가 주인공 “곤”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아 다소 아쉬워서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첫 소설집인 <고의는 아니지만(자음과 모음/2011년 8월)>로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만큼은 그녀의 메시지를 올곧이 이해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읽는 속도를 조절하면서 천천히 읽었다. 그런데 오히려 전작 <아가미>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메시지에 다시 한번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이번 책은 그녀의 첫 등단작품이자 성공적인 데뷔로 평가받고 있는 2009년 <위저드 베이커리(창비/2009년 3월)> 이후로 각종 지면에 발표한 단편 5편과 새롭게 집필한 2편을 함께 묶은 단편 소설집이다. 제일 먼저 내전으로 인하여 인명과 물자 손실 뿐만 아니라 무역 관계망도 훼손되는 극심한 피해를 입은 한 도시가 신임 시장이 급속도의 경제 회복 기조로 여러 정책을 펼치면서 화려하고 웅장한 수식을 덜어낸 명료하고 단도직입적인 말, 정확한 수치로만 보고하게 하는, 즉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매체에 대해 직유와 은유 등 “비유(譬喩)”를 금지하게 된 이야기를 그린 <마치 ……같은 이야기> 를 싣고 있다. 이어 6년째 공무원 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한 남자가 만취(漫醉)하여 필름이 끊겼다가 눈을 떠보니 땅 속 주물에 갇혀 버리고, 구조대, 기차, 경찰, 금속 전문가가 연이어 오지만 구출 기미는 커녕 온 세상의 구경꺼리가 되어버린 이야기 <타자의 탄생>,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어쩔 수 없이 기준으로 분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유치원 교사가 치명적인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살인을 당하는 이야기 <고의는 아니지만>,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새”처럼 어느날 새떼들이 돌연 사람을 공격하여 뜯어먹는 엽기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이런 끔찍한 일의 원인이 절망의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는 설에 죽지 않기 위해 ‘긍정운동’에 나선 한 여자 이야기 <조장기>, 밤이 되도 자지 않는 아이를 억지로 재우려고 하지만 끝내 말을 듣지 않자 아이를 세탁기와 냉장고에 넣고 오븐에 구워버리는 엄마 이야기 <어떤 자장가>, 담임선생님에게 운다고 더 두들겨 맞은 소년이 재봉틀 가게에서 감각을 느끼게 하는 모든 세포들을 꿰맨 후 벌어지는 이야기 <재봉틀 여인>, 나를 강간한 남자가 성호르몬이 분비되는 순간 몸 속 곤충이 급성장하여 숙주인 남자의 몸을 찢고 나오는 새로운 형벌을 받게 되고, 이제 성인이 된 내 앞에 다시 나타난다는 이야기 <곤충도감> 등 총 7편의 단편들을 차례로 선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가미>에서는 처연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잔잔한 감동 - 물론 메시지는 명확하게 이해를 못했지만 - 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 작품에서는 색다른 재미라고 정의내리기에는 영 낯설게만 느껴지는, “기괴(奇怪)”함마저 느껴지는 상상들을 선보여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물론 일견 이해하려고 들고자 한다면 <마치 ……같은 이야기>에서는 경제적 가치에 의해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것만 집착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비난으로 볼 수 도 있겠고, <고의는 아니지만>은 현 사회의 본령이 공평하고 평등한 세상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특정된 범주의 기준으로 차별할 수 밖에 없는 모순을 꼬집는 것으로 이해할 수 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이해가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의도에 부합하는지 도 모르겠고, 단편들을 읽고 금세 느껴지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굳이 이 책에서 뭔가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즉 “억지 춘향” 식 해석일 수 밖에 없다고 느껴진다. 그녀 스스로가 굉장히 현실주의자여서, 현재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 책에서 보여주는 기괴한 상상들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말 그대로 “공상(空想)”이 아니라 현실성에 기반을 둔 사회 비판적 그런 상상이 맞을 텐데 이 7편의 이야기에서 그런 현실 비판적 느낌보다는 섬뜩함과 공포스러움, 그리고 다시 쳐다보기 힘든 기괴스러움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작가의 필력을 탓하기 보다는 나의 이해력과 문학적 소양의 부족을 다시 한번 탓하는 것이 맞을 듯 싶다. 

작품마다 신선한 충격과 매력을 선보였다는 작가이지만 나에게는 영 어렵기만 한 - 정확히는 내 취향에는 맞지 않는 이라는 표현이 맞겠지만 -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그녀가 앞으로 선보이게 될 날이 시퍼렇게 선 상상력에 내 마음이 다시 베어질 때, 그런 베임이 기분 좋은 그런 것이 될지 아니면 다시 한번 낯설기만 하고 당황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그녀의 작품들을 만날 때는 미리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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