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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피었다 - 2011 올해의 추리소설 ㅣ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강형원 외 지음 / 청어람 / 2011년 8월
평점 :
추리소설 붐”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요즘 추리 소설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하니 추리소설 마니아인 나로서는 참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가슴 한 켠으로는 이런 추리소설 붐이 일본과 미국, 유럽 등 외국 소설들의 인기 때문이라는 점은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금 당장 추리소설 작가하면 떠오르는 이름 -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 등 고전 작가를 제외하고 - 이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미나토 가나에”, “시마다 소지” 등 일본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거기에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 “파트리샤 콘웰”, “로버트 해리스” 등 서양 작가들과 심지어 낯선 나라인 스웨덴의 “스티크 라그손” - <밀레니엄 시리즈> - 까지 떠오르는 데 “우리” 작가는 딱히 떠오르는 작가나 작품이 없다. 물론 최근 몇 몇 신인 작가들 작품을 읽어보긴 했지만 금세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 추리소설은 겨우 명맥을 잇는 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작가들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없을까? 시간을 좀 더 과거로 돌려 보면 바로 한국 추리소설의 대부(代父)라 할 수 있는 “김성종” 작가서부터 “유우제”, “이상우”, “유명우”, “김상헌”, “한대희”, “권경희”, “황세연” 등 이름만 들어도 “아, 그 작가”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반가운 작가들의 이름이 여럿 떠오른다. “추리소설은 청소년들이나 읽는 책이다” 또는 “우리 추리소설은 너무 수준이 낮다”는 등 온갖 야유와 냉소 속에서도 꿋꿋이 한국 추리소설의 명맥을 이어왔던 이 분들이 그토록 바라던 추리소설 붐이 왔는데도 오히려 과거보다 더 위축되어 이름조차 찾아보기 힘들다니 참 아쉽기 그지 없다.그런데 이런 아쉬움을 달래줄 우리 추리소설을 만났다. 바로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중견 작가들과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인 작가들 작품 11편이 수록된 <목련이 피었다; 2011년 올해의 추리소설(강형원, 김재성 등 저/청어람/2011년 8월)>이 바로 그 책이다.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받자마자 표지부터 우선 한번 쓸어보고는 책 표지를 열어 들었다.
먼저 목차를 살펴보니 앞에서 언급한 몇 몇 중견 작가들의 이름이 빠져 있어 아쉽지만 “강형원”, “이상우”, “황세연” 작가의 이름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참 반가웠다. 여기에 이미 데뷔한지 15년이 되었지만 2009년 <인형의 정원>으로 한국추리문학대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신인 아닌 신인 작가 “서미애” 작가와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에서 만나 뵐 수 있었던 “손선영” 작가 또한 반가운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다섯 분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분의 작가들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나본 생소한 작가들이다. 작품 경력을 보니 이미 여러 권을 발표한 분들인데 처음이라니, 그만큼 작가들이 활동할 기회와 공간이 매우 적다는 우리 추리소설의 한계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추리소설 마니아를 자청하면서 우리 추리소설들은 애써 외면해온 나의 독서 편식증 또한 반성해볼 대목인 것 같다. 이처럼 반가움과 낯섦이 교차하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먼저 첫 번째 작품인 강형원 작가의 <살아있는 전설>부터 눈길을 확 끌기 시작한다. 1979년 10월, 모 신문사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어 온다. 곧 대통령이 시해된다는 내용이 담긴 그 편지를 편집국은 장난 편지로 무시해버리지만 “10.26 사태”라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계속해서 “12.12.사태”, “아웅산 테러 사건” 등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에 어김없이 편지가 배달되어 온다. 과연 이 편지를 보내온 “수”란 인물은 누구일까? 이야기는 “9.11.테러”를 거쳐 최근 시점까지 이어지다가 의외의 반전으로 끝을 맺는데 이 작품을 트릭과 플롯, 반전을 특징으로 하는 추리소설로 볼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몰입감과 재미만큼은 탁월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셜록 홈스”의 오마주 쯤으로 여겨지는 김재성의 <노끈>과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강박관념을 치유하기 위해 요양하러 내려 왔다가 아들 또래의 소년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인 김주동의 <강박관념>, 5년 전 갑자기 실종된 친구의 비밀에 접근하는 교생 선생님의 이야기가 영화 “여고 괴담”을 연상시키는 서미애의 <목련꽃이 피었다> 또한 꽤나 재미있게 읽힌다. 공포 소설에 가까운 설인효의 <ZOMBIE, 2011 in seoul>와 불륜 아내의 일기장 속 남자들을 살해하는 남편 이야기인 손선영의 <그녀는 알고 있다>는 의외의 반전이 주는 재미를 느껴볼 수 있고, 정말 오랜만에 만난 “추경감”은 마치 오래전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 이상우의 <섬머 킬러는 슬프다>는 여기 실린 11편 중 가장 반가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제목 그대로 “독거미”를 연상시키는 악처(惡妻)들이 등장하는 최종철의 <독거미의 거미줄>, 밀실 트릭과 아마추어 탐정이 등장하는 현구의 <포인트>, 뉴욕 브로드웨이가 배경 할로윈 데이 살인사건을 그린 황미영의 <브로드웨이의 비명>이 그 뒤를 잇고, 마지막에는 인터넷 악플을 소재로 한 살인사건인 황세연의 <개티즌>이 실려 있다. 특히 이상우 작가와 함께 가장 반가운 이름인 황세연 작가는 북한과 미국의 전쟁을 그린 <조미전쟁(1999)>과 2000년대 전후 큰 선풍을 일으켰던 리듬액션게임 “DDR(Dance Dance Revolution)"을 소재로 한 공포소설 <디디알(2000)> - 작가 사망 논란이 기사화될 정도로 당시에는 큰 화제를 낳았었다 - 을 참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근황이 궁금했었던 터였는데 10 여 년 만에 비록 짧은 단편이지만 다시 만나니 정말 반갑고 즐거웠던 그런 작품이었다.
사실 몇 몇 작품은 추리소설로 보기 어려운 장르 혼합 작품들이고, 몇 몇 작품은 앞에서 언급한 일본이나 서양 작가들 작품과 비교하면 재미 면에서 다소 아쉬운 작품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에 만점 - 우리 작가라고 너무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각오하고 - 을 주고 싶다.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하는 중견 작가들, 그리고 낯설지만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신진 작가들이 어우러진 이 작품이야말로 아직 한국 추리소설은 죽지 않았다는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외침으로 들려 그들의 목소리를 결코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디 앞으로도 이런 작품들이 계속 나와 주기를, 그래서 서점 추리소설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외국 소설들을 한 켠으로 밀어내고 당당히 자리 잡아주기를, 다음번 이런 서평을 쓸 때는 외국 작가 이름보다 우리 작가들 이름이 먼저 떠오르기를, 그리고 그 때는 열 손가락 뿐만 아니라 열 발가락까지 헤아려도 부족할 만큼 많은 작가들이 떠오르기를 바래본다. “우리 추리 소설 파이팅!”이라는 응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이 작품,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