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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승리자들 - 콜럼버스에서 마릴린 먼로까지 거꾸로 보는 인간 승리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8월
평점 :
어린이를 위한 추천 도서로 “위인전기(偉人傳記)”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텐데, 그 이유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위대한 업적을 쌓은 위인들의 삶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교훈(敎訓)”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위인전기 속 위인들이 실제로 삶의 표상(表象)으로 삼을 만한, 즉 “존경”할 만한 그런 인물들인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온 유럽을 전화(戰火)로 이끌었던 “나폴레옹”이나 정복 군주로서 명성을 날린 “징키스칸”과 “알렉산더 대왕”은 과연 위인인가? 최초로 신(新) 대륙을 발견한 날을 기념해서 10월 둘째주를 “콜럼버스 데이”로 기념한다는 신대륙의 아버지 “콜럼버스”의 발견은 정말 최초였을까? “정직(正直)”의 대표 아이콘으로 유명하지만 모든 것이 날조된 것으로 드러난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그럼에도 그의 정직이 계속 존경받아야 할까? 수많은 발명으로 “발명왕”으로까지 불리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라이벌들을 철저하게 짓밟아온 “에디슨”은 어떤가? 이처럼 위인 전집들의 단골 손님들이라 할 수 있는 위인들의 진면목을 들여다 보면 수많은 위선과 거짓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어의 교황”으로 불릴 정도로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언론인이자 문화사 전문가로 평가받는다는 “볼프 슈나이더(Wolf Schneider)”의 <만들어진 승리자들(원제 Die Sieger / 을유문화사 / 2011년 8월)>은 이처럼 자의에 의해 또는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승리자”들의 이중성과 위선을 철저히 파헤치는 역사 교양서이다.
작가는 첫 장 "1.누가, 어떤 인간들에게 ‘천재’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일까“에서 이 책에서는 명성을 얻기까지 혹독한 대가를 치룬 “위대한 유명인”- 넬슨 제독, 요한 스트라우스 - 과 태어나면서부터 유산을 물려받아 별다른 시련을 겪지 않은 “위대하지 않은 유명인” - 칭기즈 칸, 스탈린, 장 자크 루소 - , 그리고 재능은 특출했지만 이름 없이 세상을 떠난 “유명하지는 않지만 위대한 인물” - 한 사람의 나폴레옹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수백명의 이름없는 군인들 -, 이렇게 세 종류의 인간을 다룬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인물들의 업적과 삶에 대한 “진실”의 추적을 통해 우리가 예찬해야 할 인물은 누구이고, 그 인물을 어떤 사람으로 묘사할지 결정하는 그 골방 - 백과사전이나 교과서 편찬 위원회라는 익명의 조직이 숨어 들어가 수록될 인물들을 결정하는 그 골방 - 안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한 인물이 전쟁터나 첫 공연의 무대를 거쳐 백과사전이나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걸어갔던 길을 생생하게 추적하는 것이라고, 또한 우상 숭배와 비슷한 점이 많을 뿐 아니라 지도자 숭배로 변질되기도 하는 기존의 “천재 숭배”를 무너뜨리기 위함이라고 이 책의 의도를 밝힌다. 그러면서 첫 타겟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지목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처럼 콜럼버스에서부터 시작하여 위인으로 칭송받는 사람들이 사실은 인격적으로는 참 문제적인 인간이었다는 사실들 - 전쟁광이었던 “처칠”, 사소한 부문까지 오만하기 그지없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베토벤”, 천재와 정신질환자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니체” 등 이 사람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람 맞아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유명 위인들 - 과 자신들의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패배자”가 되어 버린 딱한 위인들 - 전화기 발명자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안토니오 메우치였다고 한다. 벨은 이 전화기 발명 건으로 수많은 특허 소송을 당했지만 미국 법원은 번번이 그의 손을 들어줘 그는 역사의 “승리자”가 된 것이다 -, 때로는 자신이 한 짓이 전혀 아닌데도 오명을 뒤집어 쓴 억울한 사람들 - “기요틴(단두대)”의 발명가로 알려진 “조제프 기요탱”은 단두대를 만들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박애주지의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 또는 지나치게 업적이 과장된 사람들 - 수학 사상 가장 위대한 공식이라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피타고라스”가 만든 것이 아닌데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 등 세계사 교과서나 위인전기에서 익숙히 들어봤던 참 많은 위인들의 숨겨진 면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하나같이 “백인”들 일색이다. 작가는 그런 비난을 미리 의식했는지 이 책은 DWEMs(dead white European meals: 죽은 백인 유럽계 남자들)만 다룬다는 비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지독히 피부가 하얀 유럽계 남자들을 위주로 다루고 있다고 인정한다.
하드커버 양장본에 701쪽에 이르는 분량으로 대학 교재를 연상케 하여 처음 읽을 때는 부담이 되었지만 하나같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라 부담 없이 쉽게 읽힌다. 방대한 자료조사를 이렇게 수많은 위인들의 진면목을 속속들이 밝혀낸 점은 참 놀랍다고 할 수 있는데, 편집 문제 - 이 책을 먼저 읽은 많은 분들이 편집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셔서 굳이 중언부언하지 않겠다 - 와 함께 아쉬운 점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익숙한” 내용들을 들 수 있겠다.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다 보니 이 책처럼 위인들의 뒷이야기들이나 역사 이면에 감춰져 각종 음모론들을 엮어낸 역사 교양서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이 책의 내용들도 이미 그런 책들을 통해서 대체적으로 한번 씩은 접해본 그런 이야기로 느껴진다. 물론 그런 책들은 그저 흥미위주의 가벼운 읽을 꺼리들이 대부분으로 체계적인 조사와 방대한 자료는 이 책이 단연 압권이고, 이 책을 기본 텍스트로 하여 요약해놓은 책이 교양서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일 수 도 있어 - 사실 확인은 되지 않아 단정할 수 는 없지만 - 이 책 내용이 익숙하다고 해서 폄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들에 대해 삐딱하게 봐야할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든, 아니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단순 오류에 의해 그렇게 알려졌던 이미 “승리자”로서 위치를 공고히 한 그들의 명성은 그다지 흔들림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신문에 나왔대” 라는 말로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줬던 신문 기사가 100%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오히려 신문사 이권이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오히려 왜곡과 거짓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 “진실”인 것처럼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이라도 한번쯤은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은 없는지 한번쯤은 의심해보는 계기로는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굳이 이런 가치를 떠나서 재미있는 이야기꺼리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