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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 지금 미국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 52
김광기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월가 점령' 시위, 미국판 촛불집회 되나; 노동조합 가세...대규모 행진 이어가”
- 노컷뉴스 2011.10.06.
“'월가 점령 시위' 미 전역으로…국경 넘어 확산 조짐”-MBN TV 2011.10.04.
“"1% 부자들 탐욕, 99%가 막자” 미국 대도시로 시위 확산” - 한겨레. 2011.10.02.
최근 미국 한복판 뉴욕에서 일어나고 있는 데모에 대해 금시초문인 분들, 또는 미국을 “민주주의의 신(神)”, “신(神)의 대리인” 쯤으로 신봉(信奉)하는 분들이라면 위의 뉴스나 기사들의 제목에서 “미국”이라는 단어가 오타(誤打) 일 것이라고 여기거나 또는 심지어 “반미좌파(反美左派)” 세력, 더 직접적으로 말해 “빨갱이”들의 왜곡 보도로 믿고 있는 분들도 쬐끔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들의 믿음에 찬물을 끼얹을 소리이지만 2011년 현재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최근 시간인 6일(한국시각)에 발생한 월가 점령시위에는 각종 노동조합원들이 가세하면서 최대 1만 3 천여 명으로 추산될 정도로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고 하고, 이제는 뉴욕 뿐만 아니라 워싱턴, LA, 신시내티 등 미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으며, 오는 10월 15일을 '전세계 항의의 날'로 정하고 캐나다, 유럽 도시, 아시아 등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일 계획이라고 하니 “그러다 말겠지” 하고 스쳐가는 유행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인 것 같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의 구호가 바로 “우리는 99%입니다”, “부유층 1%의 탐욕으로 나머지 국민 99%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자유와 평등이 절대 보장된다는 민주주의의 천국, 미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그런 문구이다. 도대체 이런 문구와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정도로 미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김광기” 교수는 그의 저서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지금 미국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 52(동아시아/2011년 9월>)에서 미국은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교육 등 사회 곳곳에서 이미 “몰락(沒落)”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작가는 먼저 지난 2008년 금융위기에서 초래된 경제 위기가 미국 곳곳에 남긴 처참한 상흔(傷痕)들을 하나 하나 짚어준다(1부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한때 인구의 60% 이상이 중산층이라고 할 정도 튼튼한 허리를 자랑했던 미국이 지금은 중산층이 무너져 버려 지금은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를, 하위 50%는 전체 소득의 1%를 나눠 갖는 양극화 사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 보니 미국 국민 개개인들의 삶이 고달프기 이를 때 없는데, 공공임대주택 신청서 배부 - 당첨권이 아니라 신청서 배부 - 에 한 도시의 인구 2/3가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62명의 부상자들이 발생하는 소동이 연출되고, 200 명 가운데 1명이 노숙자라고 할 정도로 노숙자들이 크게 증가해 자신의 주(州)에 있는 노숙자들을 항공권을 줘서 다른 주(州)로 쫓아내는가 하면 40% 넘는 미국인이 최저임금을 받는 단순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청년 실업률은 53.4%로 2차 대전 이래 최악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심지어 미국인들의 주식(主食)인 고기(肉類) 값이 치솟으면서 유사 고기라 할 수 있는 “스팸(SPAM)"의 소비가 급증하고, (고기가 너무 비싸 먹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집집마다 닭을 키우고 있다니 웃기조차 민망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주(州) 정부들의 재정 상태는 연방국가보다 더 심각해서 멀쩡한 아스팔트 고속도로를 “관리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자갈 도로로 교체하고, 공립학교들을 폐쇄하지 않나, 교과서 종이값이 아까워서 “디지털”화하질 않나, 교도소 운영 비용 절감을 위해 범죄자들을 조기 석방하기까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몰락은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 교육, 도덕 등 사회 전 분야에서도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2부 미국의 위기를 바라보는 사회학적 시선). 오늘날 미국을 있게 한 “아름다운” 정신들, 즉 정직, 신뢰, 관용, 정의로 대변되는 청교도적 윤리와 성실한 자본주의와 아메리칸 드림은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리고 정경유착, 승자독식, 부패 등 3류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추악한 모습들이 어느새 미국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야 한 두 번 위기도 겪고 실패할 수 도 있지만 이처럼 “도덕(道德)”이 타락한다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나락(奈落)의 지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이며, 학연, 혈연, 지연으로 끈끈하게 맺어지는 “확신”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피부색, 말, 밥 먹는 문화를 연결하는 고리이자 미국의 진정한 힘인 “신뢰”가 사라져 버린다면 과연 사회가 남아나겠느냐는 한탄인 셈이다. 이렇게 부도덕과 승자독식, 비윤리성의 만연으로 망해가는 미국 사회에 누구도 나서서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자유로운 비판과 저항으로 대변되었던 예전의 미국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더 놀랍다고 말하며 작가는 이런 비판의 실종이 예스맨들만 양산하는 공교육과 해바라기 짓만 해대는 언론 탓이라고 단언한다. 한마디로 정말 우리가 아는 “미국”은 이 책에는 없었다.
하나하나가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이지만 사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패망(敗亡)을 경고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온 터라 새삼스러운 그런 내용들은 아니었다. 특히 1부 경제 몰락은 그렇다 쳐도 2부 미국 도덕과 정신의 타락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학자들이 경고해왔던 사항이었고 미국의 힘이 “신뢰”에 있었다는 필자의 견해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세계 1위의 범죄국가라 일컬을 정도로 강도, 강간, 납치, 살인이 매 시간(時間) 매 분(分) 단위로 발생 - 이런 범죄들의 발생 빈도를 시간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범죄시계(犯罪時計)” 다 - 하고, 미국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인종차별과 도시 빈민 문제, 그리고 미국을 지배하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과 “유태 자본”이라는 “계급” 문제는 이미 수십 년 전 부터 단골로 등장하는 테마였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동안은 미국의 진정한 힘이었던 “군사력”과 “경제력”에 현혹되어 그런 불의와 부조리는 눈에 띄지 않거나 애써 무시(無視)해왔던 것이고, 최근 들어 “경제”가 무너져 버리면서 이제야 비로소 그런 추악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끊임 없이 비대(肥大)지기만 했던 몸의 거품이 빠지면서 썩어 들어가던 머리가 눈에 들어오듯이 말이다. 내가 미국의 몰락이 두려운 것은 우리의 든든한 우방(友邦)이라던가 또는 우리의 최대 교역국 - 최근에는 중국에게 그 자리를 내줬지만 - 이기 때문에 미국 경제 몰락이 가져올 우리의 막대한 손실 때문이 아니라 강력한 패권국이었던 미국이 그 지위를 상실하고 패망의 위기까지 몰리게 되면, 즉 벼랑 끝까지 몰리게 되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상상 때문이다. 몇몇 책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미국의 극단적인 행보는 막대한 재정적가와 국채(國債) 부담 때문에 “달러”화(貨)의 세계 기축 통화(基軸通貨, key currency)라는 위치를 스스로 포기하고 달러화 가치를 붕괴시키는 선택 - 여러 음모론(陰謀論)과 맞물려 그럴싸한 시나리오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 을 할 수 도 있으며, 경제 위기와 내부 불만이 있을 때마다 단골로 선택해온 “전쟁(戰爭)”이라는 카드 또한 언제 빼들지 불안하기만 하다. 설마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내가 죽게 생겼는데 도덕이며 정의가 무슨 소용일까? 그동안이야 속으로는 온갖 잇속을 다 챙겨왔지만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슈퍼맨”과 같은 정의(正義)의 수호자 가면(假面)을 써왔지만 이제는 죽을 지도 모르는 데 그런 가면이 무슨 소용일까?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그런 가면을 벗고 탐욕의 맨 얼굴을 그대로 드러낼 바로 그 날일 것이다.
처음 이 책을 대할 때는 혹 모 국회의원의 <~ 없다> 처럼 그저 피상적인 몇 몇 사건들을 가지고 미국을 감정적으로만 비난해대는 그런 책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었다. 그러나 다 읽고 나니 풍부한 사례와 통계들을 바탕으로 해서 꽤나 설득력이 있고 무엇보다도 반일(反日)감정이었던 그 국회의원처럼 반미(反美)가 아니라 미국을 “진심”으로 염려하고 걱정하는 “친미(親美)적인 작가의 성향으로 그런 염려는 기우(杞憂)였음을 알게 되었다. 친미라서 다행이란 뜻이 아니라 ”친미“이기 때문에 앞의 책처럼 감정적인 비난 일색이 아니라는 뜻이니 오해 없으시기를^^. 그렇다면 오래전 "소중화(小中華)"라 칭할 정도로 중국에 의존했던 것 보다 어쩌면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는, 미국이 콜록 기침만 해도 바로 중병(重病)에 걸려 자리보전하는 처지가 되버리는 작금의 우리나라에게 미국의 몰락은 어떤 결과 - 어쩌면 이 책을 쓴 작가의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를 가져올까? 생각만 해도 끔찍해 서둘러 책장을 덮고 말았다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