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과 기도
시자키 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추리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참 많은 일본 작가들을 만나게 되는데, “시자키 유(梓崎優)”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그의 작품인 <외침과 기도(원제 叫びと祈り/북홀릭/2011년 8월)>을 검색해보니 1983년 출생에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2010 아마존 에디터가 뽑은 문학 1위”를 비롯한 수상 경력들과 추천평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데뷔작에 이 정도로 찬사가 붙다니 꽤나 성공적인 데뷔인 셈이다. 아직 30대도 되지 않은 젊은 작가의 작품에 너무 과한 칭찬인 것 아냐 하는, 호평(好評)이 많으면 괜히 삐딱해지는 나쁜 버릇이 스물 스물 피어오른다. 낯선 작가가 의외의 즐거움을 줄지 말만 무성한 빈 수레일지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마음에 표지를 열고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사막을 달리는 뱃길>, <하얀 거인 gigante blanco>, <얼어붙은 루시>, <외침>, <기도> 이렇게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주인공은 해외 동향을 분석하는 잡지의 입사 3년차 기자(記者)로 취재를 위해 한 해에 백 일 가까이 자기 집이 아닌 해외에서 보내는, 외국어 대학을 졸업해 7개 국어를 구사하는 “사이키”다. 학창 시절도 해외에서 보낸 터라 세계 각지에서 그가 겪은 사건들을 각 단편의 소재로 삼고 있는데, 먼저 <사막을 달리는 뱃길> 편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의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있는 소금을 채굴하는 촌락과 도시 사이를 오가며 소금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대상(隊商) 행렬에 동참한 사이키가 겪게 되는 살인 사건 -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이 나오는데 스포일러라 생략한다^^ - 을 다룬다. <하얀 거인 gigante blanco> 편에서는 스페인 지방 풍차에 얽힌 전설의 수수께끼와 사이키 친구의 로맨스가, <얼어붙은 루시> 편에서는 죽은 지 백 여 년이 흘렀음에도 부패하지 않는 러시아 수녀원의 성인(聖人) 시신(屍身)에 얽힌 불가사의한 사건을, <외침>에서는 아마존 밀림 한복판에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원시 부족에 불어 닥친 끔찍한 전염병과 그런 와중에서도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마지막 <기도>에서는 사고로 기억 상실증에 걸려 동남아시아 몰루카 제도의 이름 없는 섬의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사이키 본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처럼 사하라 사막, 스페인, 러시아, 아마존, 동남아 등 세계 각지에서 마주하게 되는 기이(奇異)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책, 추리소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기발한 트릭이나 플롯을 찾기 어렵고 주인공 “사이키”가 탐정 역할을 하긴 하지만 우연찮게 그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사건을 해석하고 추리해내는 정도의 피동적인 모습 - <하얀 거인> 편과 <기도> 편을 제외하고 모두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이 친구도 <김전일>처럼 살인을 몰고 다닌다고 볼 수 도 있겠지만 너무 과한 해석 같다^^ - 을 보여주고 있어 추리 소설적 재미로는 밋밋하다고까지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책 느낌이 참 묘하다. 각 편 마다 세계 각지의 풍광이 주는 색다른 재미와 함께 사건 이면에 숨겨져 있는 반전(反轉)이 허를 찌르는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막을 달리는 뱃길>에서 사이키 포함하여 불과 4명의 등장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살인 - 주인공을 제외하면 3명 사이에서 살인이 벌어지는 셈인데 결국 그들이 한 명씩 죽어나가는 소거법에 의해 주인공과 범인 둘 만 남는다 - 의 이유도 꽤나 그럴싸하지만, 사이키와 주인공이 대치하는 절대 절명의 순간 벌어지는 반전의 의외성에 내가 앞부분을 읽으면서 뭔가 놓친 것은 없는지 처음부터 다시 읽게 만들 정도로 기발한 반전이었다. 또한 세 번째 작품인 <얼어붙은 루시>는 지 않는 시체라는 괴이(怪異)스러움이 공포를 불러일으키다가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이 밝혀지면서 일단락되는 듯 하다가도 마지막 장면에서 불가사의한 결말을 제시하면서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렇다고 뒤통수를 후려치는 그런 강한 충격은 아니지만 읽고 나서도 묘한 여운이 남는 그런 수준이라고 할까? 그 외 단편들도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어 한 편 한 편이 읽는 재미가 쏠쏠한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이 정도라면 이제 막 데뷔한 신인으로서는 꽤나 성공작이었다고 평가해도 좋을 듯 싶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품었던 의심이 눈 녹듯 사라지고 의외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작가의 첫 작품인데다가 단편 모음집이었으니 평가는 그의 본격적인 장편을 읽고 난 후로 미뤄야겠다. 그만큼 그의 장편이 기다려지는데, 그래도 낯설면서도 의외의 즐거움을 준 이 작가, 눈여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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