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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조명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아르헨티나 작가로는 <식인종의 요리책>, <서른 살, 최고의 날>의 작가인 “카를로스 발마세다”를 만나본 적이 있는데, 입에 잘 붙지 않는 스페인식 이름과 지명으로 낯설기는 했지만 소재와 이야기 전개에서 독특하고 이색적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그런 작가였다. 최근 또 한 명의 아르헨티나 작가 작품을 만났는데, 바로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이다. 작가이자 번역가, 편집자로 <독서의 역사>, <밤의 도서관>으로 책과 세상에 관한 깊이 있는 에세이를 선보였던 작가라고 하는데, 이번에 만난 작품은 에세이가 아니라 지난 2008년에 발표했던 소설인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원제 Todos los Hombres son Mentirosos / All Men Are Liars/세종서적/2011년 8월)>이었다. 30 년 전 불의의 죽음을 당한 한 남자를 네 명의 진술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성한다고 하니 꽤나 흥미로운 소재여서 이번에는 어떤 색다른 재미를 줄지 기대감을 가지고 책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에스파냐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신예작가 “알레한드로 베빌라쿠아”로 그의 첫 작품 <거짓말 예찬> 출판기념회가 있은 지 이틀이 지난 후 였다. 그로부터 30년 후 프랑스인 기자 “ 장 뤽 테라디요스”는 베빌라쿠아 주변 인물 네 명의 증언을 통해서 그의 죽음을 재조명해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들 네 명의 증언이 서로 제각각이다. 이 책은 그들의 증언을 하나하나 담아내고 마지막에 테라디요스의 코멘트를 싣고 있다.  

먼저 베빌라쿠아의 친구 “알베르토 망구엘(작가 본인이 화자(話者)로 등장한다)”은 베빌라쿠아의 생애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엄하기만 했던 외할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란 어린 시절과 독재에 저항했던 아내와의 만남과 그녀의 죽음, 감옥에서의 고문과 에스파냐로의 추방 등을 겪으면서 우울하고 연약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며, 그가 죽은 이유는 애인인 “안드레아”가 그의 작품인 <거짓말 예찬>을 몰래 출간하자,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그걸 이기지 못해 결국 자살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장의 화자이자 망구엘이 베빌라쿠아의 죽음을 가져오게 한 장본인이라 칭하는 “안드레아”는 베빌라쿠아가 매력적이고 섬세하고 현명한 “천재 작가”라고 부르며 망구엘과는 전혀 다른 시점으로 베빌라쿠아의 어린 시절을 그려내고 그의 감옥살이 시절 - 세 번째 화자로 등장하는 “돼지”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 을 좀 더 상세하게 들려준다. 세 번째 화자이자 베빌라쿠아의 감방 동료였던 쿠바인 “돼지” - 용모 때문에 이렇게 별명으로 불리운다 - 는 감옥 시절의 베빌라쿠아와의 일화를 회상하면서 <거짓말 예찬>의 실제 저자는 사실 자신이었으며 그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 그 작품이 베빌라쿠아의 이름을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출판기념회로 그를 찾아가지만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결국 그의 숙소로 찾아가 그에게 따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즉 작품의 실제 저자와 죽음의 원인이 비로소 밝혀지게 된다. 네 번째 화자는 에스파냐로 추방된 베빌라쿠아가 마드리드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으로 이미 죽은 사람인 “티토 고로스티사”의 유령이 테라디요스의 꿈에 나타나 베빌라쿠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자신의 애인이었던 여인이 그를 떠나 베빌라쿠아의 아내가 되자 베빌라쿠아의 적(適)이 되어 버린다. 그에게 있어 베빌라쿠아는 겉모습은 순결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비열함이 감춰져 있는 그런 남자였던 것이다. 네 명의 증언이 끝나면 마지막에 필자인 테라디요스가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네 명의 증언을 통해서 베빌라쿠아의 생애와 죽음을 복원해내려고 했지만 관점에 따라 너무나도 다른 평가로 그의 진정한 실체와 죽음의 진실을 알아낼 수 없었다며 베빌라쿠아의 이야기를 쓰지 않겠다고 밝히며 끝을 맺는다. 

종종 신문들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나의 사건 - 예를 들어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 시위나 4대강 개발에 대한 각 언론사의 기사들만 검색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 을 가지고 이렇게 극명하게 상반된 분석과 평가가 내릴 수 있는지 놀랄 때가 있다. 즉 사건을 입체적으로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전체의 모습과 진실을 구성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또는 자신에게 유리할 것 같은 한 면(面)만 들여다보고 전체를 평가하기 때문에 이런 오류가 발생하는 것일테다.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말이다. 이 책에서 베빌라쿠아의 지인(知人) 네 명도 자신들의 관점과 시각에 따라 그를 연약한 사람으로, 또는 천재적인 작가로, 또는 작품과 연인을 훔쳐간 비열한 남자로 그리는데, 어느 것이 진짜 베빌라쿠아의 모습인지 영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어쩌면 그들이 진술한 모든 모습이 베빌라쿠아가 가지고 있는 진짜 모습일 수 도 있겠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그들 모두가 “거짓말쟁이”, 즉 진실과 거짓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버려 그에 대한 “진실”은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저 너머로 깊숙이 감춰져 버린 듯한 그런 느낌이다. 작가는 어쩌면 이 세상에 알려진 모든 사실은 저마다의 해석에 따라 달리 평가되는, 사실과 진실에는 깊고도 넓은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간극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책의 필자처럼 진실을 밝히는 것을 포기해버릴 수도, 또는 어느 한사람의 진술에 의거하여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작가는 어떤 결론이 맞는지를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어쩌면 “진짜” 진실은 있을 수 없다는 작가의 허무적이고 냉소적 시각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참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기이지만 단순하다 싶은 사건에 대하여 그걸 마주하는 사람의 관점과 시각에 따라 너무나도 달라지는 이야기가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일견 혼란스럽기까지 해서 전체 얼개를 머릿 속에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던, 읽는데 꽤나 애를 먹어 더디게 읽혔던 책이었다. 다 읽고 나서 그저 이야기를 복잡하게 꼬아 놓은, 일종의 구성적 유희(遊戱)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아 다시 한번 읽게 된다 해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카를로스 발마세다”도 그렇고 이 작품의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도 그렇고 남미, 정확히는 아르헨티나 작품들이 기존 서구권 작품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하고 색다른 구성과 재미를 준다는 점 만큼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재미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알베르토 망구엘, 내 취향은 아니지만 “묘한” 느낌의 작가로 앞으로도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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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구(西歐)권 미스터리·스릴러 작가들 작품을 즐겨 읽지 않다 보니 이름은 들어 알고 있는데 작품은 만나 보지 않은 작가들이 참 많다. 미국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이라는 에드거상, 셰이머스상, 앤서니상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작가이자 “스릴러의 제왕”으로 불린다는 “할런 코벤(Harlan Coben)"이 바로 그 대표적인 작가일 것이다. 그의 국내 출간작들인 <결백>, <단 한 번의 시선>, <영원히 사라지다>에 대한 독자들의 서평들을 읽어 보니 호평(好評)들이 대부분이어서 이미 재미는 검증된 작가일 텐 데 나에게는 영 낯설기만 한 작가인지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그런 작가였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신작인 <아들의 방(원제 Hold Tight/비채/2011년 10월)>로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되었다. 첫 만남의 결과는 역시 그의 명성이 결코 허명(虛名)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첫 장에는 술집에서 두 남녀가 뜬금없는 천지창조와 진화론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매리앤은 우연찮게 그들의 이야기에 말려들게 된다. 술이 올라 당장이라도 목구멍에서 뭔가가 밀고 올라올 것 같자 매리앤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나고 옆의 여자는 그녀를 데려다 준다고 하면서 일어나더니 그녀를 화장실이 아닌 술집 뒷문으로 안내한다. 뒷 문을 열고 나서자 흰색 밴 한 대가 서있고, 술집에 있는 줄 알았던 남자가 나타나 매리앤을 밴 안으로 밀어 넣는다. 매리앤을 태운 밴이 움직이고 남자는 매리앤에게 테이프는 어디 있냐고 물으며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 두 남녀의 정체와 사건의 연유는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책 중반 이후에나 나온다. 잊고 있다가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남녀가 누구였지 하며 의아해하다가 첫 장을 다시 읽고 나서야 그들이 이들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 장면이 바뀌어 리빙스턴 교외에 있는 웅장한 복층식 맥맨션을 소유하고 있는 의사 “마이크”와 변호사 “티아” 부부에게 걱정이 생겼다. 이제 열여섯 살로 어른이 되는 길을 따라 무섭게 질주하고 있던 아들 “애덤”이 어딘가 이상해진 것이다. 학창시절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아버지 마이크가 아이스하키에 대한 사랑을 고스란히 물려준 덕분에 세 살 때부터 스케이트를 타고, 10대가 되자 주니어 아이스하키 팀 골키퍼가 되어 톱클래스의 뛰어난 대학 선수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애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무런 변명도 없이 여섯 달 전에 그만두고 만 것이다. 사람들을 기피하고 홀로 방안에 틀어박혀 허구한 날 판타지 게임을 하거나 인스턴트 메시지를 주고받는 애덤이 넉 달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애덤의 같은 반 친구 스펜서 힐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봐 걱정한 나머지 부부는 애덤이 자신들 곁을 떠날 때까지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게 하고 싶다고 애써 합리화하고는 애덤의 PC에 감시 장치를 설치하게 된다. 감시를 시작한 후 처음에는 해롭거나 뭔가를 암시하는 메시지나 이메일이 눈에 띄지 않았는데 3주 후 상황이 돌변한다. 한편 자살한 스펜서의 엄마 벳시는 죽은 아들의 추모 사이트에서 아들이 죽던 날 밤의 사진을 발견하고 혼자였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여러 친구들과 어울렸다는, 즉 아들의 자살에 뭔가 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이야기는 마이크 부부와 두 자녀인 에덤과 질의 이야기와 함께 그들의 이웃 가족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다가 중반 이후 첫 장에 등장한 수상한 두 남녀의 살인 행각이 드러나고 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이 등장하면서 더욱 숨 가쁘게 전개되고 결말에 이르러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접점을 이룬다. 

첫 장을 읽으면서는 범죄 스릴러 작가답게 의문의 두 남녀가 벌이는 연쇄살인사건 이겠거니 했는데 이야기는 불과 몇 페이지로 끝내고 연이어 미국 중산층 부부가 아들을 걱정한 나머지 PC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런 느낌도 잠시 마이크 부부와 애덤 이야기와 주변 이웃들의 가정사들이 꽤나 재미있어서 어느새 첫 장의 의문의 남녀는 잊어버린 채 이야기에 푹 빠져 내처 읽었다. 이야기의 변화는 애덤의 친구인 스펜서의 자살에 뭔가 다른 진실이 숨어 있음을 알려주는 사진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중반 이후 첫 장의 의문의 두 남녀가 다시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스릴러 궤도에 접어들고, 연관이 없을 것 같던 모든 이야기가 사실은 접점을 가지고 있다로 귀결되며 반전의 제왕이라는 명성답게 “깜짝” 놀랄 만한 결말로 마무리한다. 밤을 지새우며 이 책을 다 읽어 버리게 되고 말거라는 어느 “경고”처럼 밤샘할 정도는 아니지만 작은 글씨에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무색할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한 그런 책이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미국 중산층 가정의 행복과 위선, 그리고 고민과 위기의 봉합을 코벤 특유의 진실된 문체로 써내려간 이 작품으로 "구글 세대를 위한 최고의 가족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장기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 작가 작품은 처음이라 이처럼 미국 미국 중산층 가정의 위기와 모순에 대한 관심이 작가의 주된 경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스릴러 형식을 빌어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미국인들 가정의 위기를 짚어내는 작가의 글솜씨가 꽤나 매력적이고 색다르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일본 추리 소설의 주요 경향 중 하나인 “사회파 추리소설” - 미스터리 형식을 빌어 현대사회의 모순과 도덕적 문제를 다루는 소설 - 과 그 맥락이 같다고 할까?  

읽으면서 마이크 부부가 애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게 하고 싶다고 합리화하며 애덤의 PC에 감시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대목에서 어릴 적 어머니께서 내가 없는 틈을 타 서랍에서 일기를 꺼내 읽으시다가 나에게 딱 들키자 얼굴을 붉히시면서 “네가 걱정이 돼서......”하시며 말끝을 흐리시던 일화가 떠올랐다. 그 이후로 내가 일기장을 다른 곳에 감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어떻게 알아내셨는지 내 일기장을 가끔씩 몰래 읽으셨었다. 그런데 여기에 내 트릭이 하나 있었으니 어머니께서 몰래 보시던 일기장은 일부러 어머니께 읽히길 바랐던 “가짜” 일기장 - 용돈을 올려줬으면 좋겠다, 무엇이 갖고 싶다 등등 속보이는 내용들만 적어놓은 - 이었다. “진짜” 일기장 - 그렇다고 심각한 일탈이나 비밀을 기록한 것은 아니었다^^ - 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렇다고 어머니는 과연 그 사실을 모르셨을까? 여쭤보진 못했지만 어머니께서도 나의 트릭을 잘 알고 있으셨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어머니와 일기장을 두고 “게임”을 벌였는지도 모르겠다. 코웬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어쩌면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지켜야 할 그 “무엇”- 프라이버시일수도 있겠고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를 넘어선 인격 또는 존엄성으로도 볼 수 있겠다 - 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그 어떤 것을 “위배”해 버렸기에 하마터면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뻔 했었다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과연 마이크 부부가 애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감시 프로그램 설치를 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그렇다고 이 책의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결말은 아찔했지만 오히려 그런 행동 때문에 오히려 감춰져 속으로 곪았을 갈등이 표면화되고 나름 해결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난제(難題), 또는 일종의 딜레마(Dilemma)처럼 느껴졌다. 

꽤나 재미있었지만 아직은 “할런 코벤”에 대한 낯섬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아 그의 작품들을 몇 권 더 읽어야 “그”에 대해 올곧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적지 않은 작품들이 출간되어 있으니 한 권 한 권 차근히 그를 만나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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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 콘크리트 정글에서 진짜 정글로
제니퍼 바게트.할리 C. 코빗.아만다 프레스너 지음, 이미선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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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한 권을 받아들고서 나의 “스물여덟 살”은 어땠을까 잠시 상념에 빠졌다. 그 당시 난 입사한지 갓 일 년이 넘어 이제 막 신입사원 때를 벗고, 업무에 조금씩 재미가 붙어 가던 사회 초년생이었다. 그런데 그 때 대기업들의 연쇄부도가 일어났고 그런 부도의 여파는 결국 국가 대환난인 "IMF 사태“로 이어졌고, 내가 다니던 회사도 그 여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만 부도를 맞고 말았다. 회사 정상화라는 명목으로 많은 선배들과 동료사원들이 줄줄이 퇴사 - 자발적으로 퇴사한 사람들도 물론 있었지만 대부분 회사 경영난에 의한 정리해고였다 - 했고, 남은 사람들도 떠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그리고 회사를 살려야한다는 절박한 마음에 급여 삭감도 감수하고 연일 야근에 휴일특근을 밥 먹듯이 했던 참 어렵고 힘든 시간들이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급여도 낮은 수준이었는지라 정리해고의 칼날은 비껴나갔지만 나 또한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죄송스러움과 과중한 업무 때문에 그 후 몇 년 동안 시간가는 걸 느낄 겨를도 없이 꽤나 바빴던 시간이었다. 다행히 몇 년 후 회사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지만 나는 어느새 삼십을 넘은 나이가 되었고, 그 후 나도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서 그 회사를 떠나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스물 여덟은 괴롭고 힘들었던 “잃어버린 시간” - 물론 회사 정상화에 일조했다는 보람도 있긴 했지만 - 과도 같은 그런 나이였다. 그런데 뉴욕 미디어 업계에 종사하던 스물여덟 살 동갑내기 친구인 세 여성은 남들이 부러워할 직장을 때려 치우고 인생의 해답을 찾기 위한 세계 일주 여행에 나선다. 바로 나를 상념에 빠뜨리게 했던 <스물여덟,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콘크리트 정글에서 진짜 정글로(원제 The lost girls/북폴리오/2011년 10월)>가 바로 그 책이다. 

 서른을 얼마 앞두고 이제 사회라는 정글에서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고 있을 나이인 스물여덟, 같은 나이를 살고 있는 친구인 여성스러운 “제니퍼”와 정열적인 “할리”, 글쓰기 좋아하는 아만다는 뉴욕 맨해튼에서 누구라도 부러워할 미디업계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스물 여덟은 결코 만만치 않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초조하기만 한 그런 나이였다. 남자 친구와의 이별을 일에 몰두하는 것으로 달래보지만 배심원 일로 인해 자리를 비운 사이 새로운 상사에게 해고 통보를 받게 된 아만다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던 댓가가 이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에 들게 되고, 이미 사귄지 오래되었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무심한 연인 엘란 때문에 할리는 점점 지쳐간다. 이처럼 힘들어만 가는 가던 그녀들은 이 년 전에 계획했던 특별한 “모험”을 시작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느끼게 된다. 젊은 여성들에게 목표로 간주되는 중대한 시점들을 성공적으로 지나왔지만 중요한 다음 단계를 향해 돌진하면서 자신들이 따라가고 있는 길이 정말로 마음에 드는 길인지 아니면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길이 우리가 따라가고 싶은 길인지에 대한 의문의 해답은 뉴욕에서 살고 일하면서는 결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네 개 대륙과 열두 나라를 거쳐 육만 마일의 세계 일주를 하기로 한 그들의 “모험”을 바로 지금 스물 여덟의 나이에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자신들에게 스스로 ‘길 잃은 아가씨들’(The Lost girls)을 짓고는 직장도 그만두고 어렵게 얻은 월세 아파트 마저 포기하고 훌쩍 모험에 나선다.  

 그녀들은 일년 동안 이 대륙 저 대륙을 여행하면서 참 많은 경험들을 한다. 아마존에서는 토착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을 하기도 하며, 케냐 오롱카이의 마사이 족 마을에서는 자원 봉사를, 인도에서는 요가를 배우고 교통사고를 목격하기도 하며, 베트남에서는 미터기를 조작하는 운전기사와 대판 몸싸움을 벌이고 절벽 등반에 나서기도 하고, 호주에서는 렌트카를 몰다가 그만 사고를 겪기도 한다. 세 친구는 때로는 불화로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똘똘 뭉쳐 의기투합하면서 점점 더 하나가 되어 가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격려하면서 1년 여간 96,000 킬로미터에 이르는 여행을 씩씩하게 마치고 마침내 자신들의 출발점인 콘크리트 정글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녀들은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진짜 삶이란 바쁘게 미래를 계획할 때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자신들보다 더 어린 자신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교훈들이 이십 대 후반의 삶을 조금 더 쉽게 만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여행 중에 얻은 배움의 과정들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빽빽한 글씨, 6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처음 읽을 때는 진도가 걱정되었는데, 세 여자의 좌충우돌 세계 일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는 황당하면서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에피소드에 미소를 짓다가도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믿는 그녀들의 우정에 짠한 감동마저 느껴보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정도로 몰입감과 재미가 뛰어난 책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그런 여행을 해낸 것을 보면 그녀들에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들도 스스로도 익숙한 생활을 두고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여행을 통해 자신들이 배운 것을 믿고 뛰어내리지 않는다면 결국 후회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야말로 그녀들을 정말 “특별하게” 만든 그 무엇일 것 같다. 길을 잃은 것을 피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이야말로 1년 동안 지구 둘레의 두 배가 넘는 거리를 여행하게 만든 믿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 그녀들과 같은 나이를 살고 있지만 취업문제와 여러가지 문제로 어깨가 갈수록 쳐져가고 있는 요즈음 청년들과 나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아직도 삶에 대한 해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는 "문제" 중년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뭔가 자극이 필요하고 그것을 통해서 뭔가 계기를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스물여덟 살을 잃어버렸다고 여기고 있는 나로서는 그녀들의 이런 특별한 모험이 마냥 부럽고 시샘마저 느껴진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말들 하지만 그런 부러움이 언젠가는 나에게도 어떤 특별한 나이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 나이가 마흔 여덟이 될지, 아니면 쉰여덟이 될지 모르지만 가급적이면 그리 멀지 않은 나이에 나에게도 주어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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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희망 프로젝트 2 - 자궁경부암, 위암, 대장암 편 암 희망 프로젝트 2
서울아산병원 암센터 엮음, 박지훈 그림, 이수겸 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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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망 원인 1위인 “암(Cancer)"을 한자로 쓰면 “癌”라고 한다. 이 글자에는 “입 구(口)” 자가 3개 있고, “뫼 산”(山)자 1개 있는데, 3개의 “口”는 입으로 먹고(吃), 마시고(喝), 호흡한다(吸)는 세 가지 의미가 있는데, 이렇게 우리가 먹고 마시고 호흡하면서 몸 안에 산처럼 쌓인 나쁜 물질이 암(癌)이 된다고 풀이한다고 한다. 실제로 암 발생의 주요 원인들이 “흡연(吸煙)”, “음주(飮酒)”, 그리고 오염된 공기와 물, 그리고 가공식품들 속에 포함되어 있는 각종 화학 물질들이라고 한다니 한자의 풀이가 의미심장하다. 치료기술과 약(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이제 암은 더 이상 불치의 병이 아닌 나을 수 있는 병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암이란 말만 들으면 바로 “죽음”부터 떠올리게 되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을 받게 되는 여전히 무서운 병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국내 암 치료에 있어 권위 있는 병원으로 손꼽히는 “서울아산병원 암센터”에서 이렇게 놀랍고 두려운 일을 겪고 있을 암환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암에 대해 막연한 공포와 불안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을 위해 <암 희망 프로젝트2(북폴리오/2011년 10월)>을 출간했다. 이번이 두 번째 권인데 1권에서는 “유방암, 폐암, 간암”을 다루었고, 이번 2권에서는 한국인에게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위암(1위)”과 최근 서구식 식생활로 그 발생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대장암(3위)”, 그리고 여성들에게 자주 발생하고 있는 “자궁경부암(10위)”를 다루고 있다.(“국가암정보센터” 홈페이지(http://www.cancer.go.kr)에 있는 “2008년 주요 암발생 현황” 통계자료에서 발췌)

 머리말에서 이 책의 목적이 암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치료를 통해 암을 극복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각각의 암에 대한 설명보다는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례를 바탕으로 환자와 의료진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에 중점을 두어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의 구성은 우선 만화로 암환자들의 실제 사례들과 치료과정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소개하고 부록으로 “서울아산병원 암 센터의 암가이드”를 실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위암, 대장암, 자궁경부암”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암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이야기는 암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는 “유승재” 기자에게서 출발한다. 자신의 친한 선배가 폐암에 걸려 입원하고 선배 병문안 차 취재차 방문한 병원에서 대장암과 자궁경부암에 걸린 환자를 만나게 된 유승재 기자는 자신 또한 위에 통증을 느껴 혹시 자신도 암에 걸린 게 아닐까 걱정 끝에 진단을 받게 되고, 다행히 암이 아닌 위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가 만난 환자들과 가족들은 처음에는 암에 대한 두려움으로 괴로워하지만 치료가 진행되면서 암은 치료될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씩 두려움을 극복하고 치료에 매진하게 된다. 고통스럽고 절망스럽기까지 한 암투병이지만 옆에서 그들을 보살피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결코 잊지 말고 전문의들의 치료에 따라 성실히 치료에 임한다면 결국 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결국 유 기자의 선배는 암 제거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게 되면서 새로운 삶을 선물 받게 된다.

 나이가 들다 보니 주변에 암으로 고생하시는 지인(知人)들도 여럿 보게 되고, 그들과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나또한 가슴 아파 눈물 흘린 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병마(病魔)를 이겨내는 데 있어서 그 어떤 치료나 약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희망”과 “용기”, 즉 “마음가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과 고통을 겪고 있을 환자들과 가족들의 심리와 병 치료 과정, 그리고 완치 후 다시 얻게 된 삶의 소중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이 책은 암 환자와 가족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꽤나 유익한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딱딱한 텍스트가 아닌 유려한 만화 그림들이 보다 쉽고 재미있게 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어쩌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암 예방법, 즉 금연, 금주, 규칙적인 운동, 절제된 생활 습관 등도 중요하겠지만 암에 걸렸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암에 걸리는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아야겠지만 막상 그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정보로서 이 책, 미리들 읽어두는 것도 꽤나 좋을 듯 싶다. 책 챕터의 제목처럼 이 세상에 쉬운 병이란 없듯이 암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처럼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어려운 병임에는 틀림없지만 암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가능성은 분명 존재하며, 암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닌 “완치(完治)”가 가능한 병이라는 책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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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최고의 날
카를로스 발마세다 지음, 박채연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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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인기 작가인 “카를로스 발마세다”의 작품은 <식인종의 요리책>에 이번에 만난 <서른살, 최고의 날(북스토리/2011년 10월)>이 두 번 째 작품이다. 전작이 쉽게 입에 붙지 않는 스페인식 이름과 지명, 머릿 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요리 이미지, 낯설기만 아르헨티나 역사 등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식인(食人)”이라는 섬뜩하고 강렬한 이미지가 여운이 남았던 독특하고 재미있었던 터라 이번 책도 어떤 독특한 매력을 선보일지 기대와 함께 아름다운 여인이 뒤에 칼을 감추고 서 있는 인상적인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큰 키에 흑단같이 까만 머리칼, 초록색 눈을 가진 서른 살의 아름다운 여성이자 문학을 전공한 대학 강사인 “파울리나 바르톡”이 대학에서 문학비평과 이론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과학 기술부 연구원인 서른 두 살의 매력적인 이혼남인 “호나스 알파노”를 처음 만난 건 마르델플라타 국립대학교 도서관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던 어느 수요일이었다. 독일 음악가 “베르너 에크”를 아냐는 물음에 시작된 이들의 첫 만남 이후 2주일 동안 매일 만나 함께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데이트로 이어지고, 파울리나는 마침 사귄 지 3년이 된 애인 “라미로”와 이별하게 된다. 그런데 라미로와의 이별 후 며칠 동안 꿈이라기에는 지나치고 논리적이고 생생한 악몽에 시달리게 된 파울리나는 같은 문학과 교수이자 대학시절부터 친구인 “미카엘라”와 꿈에 대해 상의하고, 미카엘라는 그녀에게 라미로와의 이별에서 오는 죄책감에 그런 꿈을 꾸게 되었을 것이며, 꿈의 내용이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의 “페르귄트”- 호나스와 만나게 된 계기가 된 “베르너 에크”가 바로 입센의 “페르귄트”를 개작해 오페라로 만들었다.- 와 일치한다고 말해준다. 파울리나는 연구관계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 있었던 호나스와 다시 재회하게 되고, 그와 함께 밤을 보내면서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파울리나는 시간이 갈수록 호나스에게 빠져들게 되지만 가끔씩 연락이 두절되고, 매력적인 여학생과 어울리는 호나스의 행동에 불안해한다. 열정적인 사랑과 불신(不信)이라는 위기가 반복되면서 괴로움과 악몽이 계속되고, 파울리나는 호나스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그만 유산의 아픔을 겪게 된다. 몸과 마음을 추스린 파울리나는 여전히 호나스와의 불안한 사랑을 계속하게 되지만 호나스가 자신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이 이혼한 전처(前妻)와 재결합을 해서 대학을 떠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파울리나는 헤어졌던 전 애인 라미로를 다시 만나고, 뭔가를 준비한다. 바로 자신이 살아온 서른 살의 삶에서 가장 강렬하고 치명적일, 제목에서처럼 “최고의 날”을 말이다. 

젊은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이별한다는 기본 줄거리만 본다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속적인 연애 소설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신화와 오페라, 연극,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사랑”들에 대한 이야기를 파울리나가 쓰고 있는 논문인 <사랑과 연인들의 책>과 밤마다 그녀를 괴롭혀 온 악몽 등을 통해 선보이면서 이 책이 통속성을 벗어나 인류의 최고 가치이자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이기도 한 “사랑”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민과 사유의 결과임을 알 수 있게 해주고, 또한 독자들에게 두 주인공의 사랑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은, 치명적이고 불길한 결말에 이를 것이라는 예고하는 암시의 장치로써도 활용한다. 또한 호나스와의 치명적인 사랑에 점점 빠져들면서 강렬한 충동과 함께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파울리나의 심리 묘사 또한 꽤나 탁월해서 작가의 글솜씨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꽤나 에로틱한 장면들이 자주 묘사되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노골적이지 않은, 성인들이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정도의 수위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사랑에 대한 진지한 탐구, 탁월한 심리 묘사, 그리고 에로틱한 성애 묘사 등 역시나 전작처럼 색다른 재미를 선보이고  있는데 다만 기존 연애소설과는 다른 독특하고 이색적인 결말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결말의 공개는 생략한다 - 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마다 호불호(好不好)가 나뉠 것 같은 데, 이 책의 제목처럼 “최고의 날”에 동의하게 될 지 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말 - 또는 이해는 하더라도 동의하기 어려운, 그리고 다소 뜬금없게까지 느껴지는 - 이 될 지는 독자들 각자의 감상과 느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파울리나의 선택에 살짝 동의할 수 는 없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던 재미있는 결말이었다. 

카를로스 발마세다,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독특한 재미와 매력을 가진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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