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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 콘크리트 정글에서 진짜 정글로
제니퍼 바게트.할리 C. 코빗.아만다 프레스너 지음, 이미선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책 한 권을 받아들고서 나의 “스물여덟 살”은 어땠을까 잠시 상념에 빠졌다. 그 당시 난 입사한지 갓 일 년이 넘어 이제 막 신입사원 때를 벗고, 업무에 조금씩 재미가 붙어 가던 사회 초년생이었다. 그런데 그 때 대기업들의 연쇄부도가 일어났고 그런 부도의 여파는 결국 국가 대환난인 "IMF 사태“로 이어졌고, 내가 다니던 회사도 그 여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만 부도를 맞고 말았다. 회사 정상화라는 명목으로 많은 선배들과 동료사원들이 줄줄이 퇴사 - 자발적으로 퇴사한 사람들도 물론 있었지만 대부분 회사 경영난에 의한 정리해고였다 - 했고, 남은 사람들도 떠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그리고 회사를 살려야한다는 절박한 마음에 급여 삭감도 감수하고 연일 야근에 휴일특근을 밥 먹듯이 했던 참 어렵고 힘든 시간들이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급여도 낮은 수준이었는지라 정리해고의 칼날은 비껴나갔지만 나 또한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죄송스러움과 과중한 업무 때문에 그 후 몇 년 동안 시간가는 걸 느낄 겨를도 없이 꽤나 바빴던 시간이었다. 다행히 몇 년 후 회사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지만 나는 어느새 삼십을 넘은 나이가 되었고, 그 후 나도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서 그 회사를 떠나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스물 여덟은 괴롭고 힘들었던 “잃어버린 시간” - 물론 회사 정상화에 일조했다는 보람도 있긴 했지만 - 과도 같은 그런 나이였다. 그런데 뉴욕 미디어 업계에 종사하던 스물여덟 살 동갑내기 친구인 세 여성은 남들이 부러워할 직장을 때려 치우고 인생의 해답을 찾기 위한 세계 일주 여행에 나선다. 바로 나를 상념에 빠뜨리게 했던 <스물여덟,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콘크리트 정글에서 진짜 정글로(원제 The lost girls/북폴리오/2011년 10월)>가 바로 그 책이다.
서른을 얼마 앞두고 이제 사회라는 정글에서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고 있을 나이인 스물여덟, 같은 나이를 살고 있는 친구인 여성스러운 “제니퍼”와 정열적인 “할리”, 글쓰기 좋아하는 아만다는 뉴욕 맨해튼에서 누구라도 부러워할 미디업계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스물 여덟은 결코 만만치 않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초조하기만 한 그런 나이였다. 남자 친구와의 이별을 일에 몰두하는 것으로 달래보지만 배심원 일로 인해 자리를 비운 사이 새로운 상사에게 해고 통보를 받게 된 아만다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던 댓가가 이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에 들게 되고, 이미 사귄지 오래되었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무심한 연인 엘란 때문에 할리는 점점 지쳐간다. 이처럼 힘들어만 가는 가던 그녀들은 이 년 전에 계획했던 특별한 “모험”을 시작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느끼게 된다. 젊은 여성들에게 목표로 간주되는 중대한 시점들을 성공적으로 지나왔지만 중요한 다음 단계를 향해 돌진하면서 자신들이 따라가고 있는 길이 정말로 마음에 드는 길인지 아니면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길이 우리가 따라가고 싶은 길인지에 대한 의문의 해답은 뉴욕에서 살고 일하면서는 결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네 개 대륙과 열두 나라를 거쳐 육만 마일의 세계 일주를 하기로 한 그들의 “모험”을 바로 지금 스물 여덟의 나이에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자신들에게 스스로 ‘길 잃은 아가씨들’(The Lost girls)을 짓고는 직장도 그만두고 어렵게 얻은 월세 아파트 마저 포기하고 훌쩍 모험에 나선다.
그녀들은 일년 동안 이 대륙 저 대륙을 여행하면서 참 많은 경험들을 한다. 아마존에서는 토착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을 하기도 하며, 케냐 오롱카이의 마사이 족 마을에서는 자원 봉사를, 인도에서는 요가를 배우고 교통사고를 목격하기도 하며, 베트남에서는 미터기를 조작하는 운전기사와 대판 몸싸움을 벌이고 절벽 등반에 나서기도 하고, 호주에서는 렌트카를 몰다가 그만 사고를 겪기도 한다. 세 친구는 때로는 불화로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똘똘 뭉쳐 의기투합하면서 점점 더 하나가 되어 가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격려하면서 1년 여간 96,000 킬로미터에 이르는 여행을 씩씩하게 마치고 마침내 자신들의 출발점인 콘크리트 정글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녀들은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진짜 삶이란 바쁘게 미래를 계획할 때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자신들보다 더 어린 자신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교훈들이 이십 대 후반의 삶을 조금 더 쉽게 만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여행 중에 얻은 배움의 과정들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빽빽한 글씨, 6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처음 읽을 때는 진도가 걱정되었는데, 세 여자의 좌충우돌 세계 일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는 황당하면서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에피소드에 미소를 짓다가도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믿는 그녀들의 우정에 짠한 감동마저 느껴보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정도로 몰입감과 재미가 뛰어난 책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그런 여행을 해낸 것을 보면 그녀들에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들도 스스로도 익숙한 생활을 두고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여행을 통해 자신들이 배운 것을 믿고 뛰어내리지 않는다면 결국 후회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야말로 그녀들을 정말 “특별하게” 만든 그 무엇일 것 같다. 길을 잃은 것을 피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이야말로 1년 동안 지구 둘레의 두 배가 넘는 거리를 여행하게 만든 믿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 그녀들과 같은 나이를 살고 있지만 취업문제와 여러가지 문제로 어깨가 갈수록 쳐져가고 있는 요즈음 청년들과 나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아직도 삶에 대한 해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는 "문제" 중년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뭔가 자극이 필요하고 그것을 통해서 뭔가 계기를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스물여덟 살을 잃어버렸다고 여기고 있는 나로서는 그녀들의 이런 특별한 모험이 마냥 부럽고 시샘마저 느껴진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말들 하지만 그런 부러움이 언젠가는 나에게도 어떤 특별한 나이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 나이가 마흔 여덟이 될지, 아니면 쉰여덟이 될지 모르지만 가급적이면 그리 멀지 않은 나이에 나에게도 주어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