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구(西歐)권 미스터리·스릴러 작가들 작품을 즐겨 읽지 않다 보니 이름은 들어 알고 있는데 작품은 만나 보지 않은 작가들이 참 많다. 미국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이라는 에드거상, 셰이머스상, 앤서니상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작가이자 “스릴러의 제왕”으로 불린다는 “할런 코벤(Harlan Coben)"이 바로 그 대표적인 작가일 것이다. 그의 국내 출간작들인 <결백>, <단 한 번의 시선>, <영원히 사라지다>에 대한 독자들의 서평들을 읽어 보니 호평(好評)들이 대부분이어서 이미 재미는 검증된 작가일 텐 데 나에게는 영 낯설기만 한 작가인지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그런 작가였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신작인 <아들의 방(원제 Hold Tight/비채/2011년 10월)>로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되었다. 첫 만남의 결과는 역시 그의 명성이 결코 허명(虛名)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첫 장에는 술집에서 두 남녀가 뜬금없는 천지창조와 진화론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매리앤은 우연찮게 그들의 이야기에 말려들게 된다. 술이 올라 당장이라도 목구멍에서 뭔가가 밀고 올라올 것 같자 매리앤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나고 옆의 여자는 그녀를 데려다 준다고 하면서 일어나더니 그녀를 화장실이 아닌 술집 뒷문으로 안내한다. 뒷 문을 열고 나서자 흰색 밴 한 대가 서있고, 술집에 있는 줄 알았던 남자가 나타나 매리앤을 밴 안으로 밀어 넣는다. 매리앤을 태운 밴이 움직이고 남자는 매리앤에게 테이프는 어디 있냐고 물으며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 두 남녀의 정체와 사건의 연유는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책 중반 이후에나 나온다. 잊고 있다가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남녀가 누구였지 하며 의아해하다가 첫 장을 다시 읽고 나서야 그들이 이들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 장면이 바뀌어 리빙스턴 교외에 있는 웅장한 복층식 맥맨션을 소유하고 있는 의사 “마이크”와 변호사 “티아” 부부에게 걱정이 생겼다. 이제 열여섯 살로 어른이 되는 길을 따라 무섭게 질주하고 있던 아들 “애덤”이 어딘가 이상해진 것이다. 학창시절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아버지 마이크가 아이스하키에 대한 사랑을 고스란히 물려준 덕분에 세 살 때부터 스케이트를 타고, 10대가 되자 주니어 아이스하키 팀 골키퍼가 되어 톱클래스의 뛰어난 대학 선수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애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무런 변명도 없이 여섯 달 전에 그만두고 만 것이다. 사람들을 기피하고 홀로 방안에 틀어박혀 허구한 날 판타지 게임을 하거나 인스턴트 메시지를 주고받는 애덤이 넉 달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애덤의 같은 반 친구 스펜서 힐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봐 걱정한 나머지 부부는 애덤이 자신들 곁을 떠날 때까지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게 하고 싶다고 애써 합리화하고는 애덤의 PC에 감시 장치를 설치하게 된다. 감시를 시작한 후 처음에는 해롭거나 뭔가를 암시하는 메시지나 이메일이 눈에 띄지 않았는데 3주 후 상황이 돌변한다. 한편 자살한 스펜서의 엄마 벳시는 죽은 아들의 추모 사이트에서 아들이 죽던 날 밤의 사진을 발견하고 혼자였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여러 친구들과 어울렸다는, 즉 아들의 자살에 뭔가 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이야기는 마이크 부부와 두 자녀인 에덤과 질의 이야기와 함께 그들의 이웃 가족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다가 중반 이후 첫 장에 등장한 수상한 두 남녀의 살인 행각이 드러나고 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이 등장하면서 더욱 숨 가쁘게 전개되고 결말에 이르러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접점을 이룬다. 

첫 장을 읽으면서는 범죄 스릴러 작가답게 의문의 두 남녀가 벌이는 연쇄살인사건 이겠거니 했는데 이야기는 불과 몇 페이지로 끝내고 연이어 미국 중산층 부부가 아들을 걱정한 나머지 PC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런 느낌도 잠시 마이크 부부와 애덤 이야기와 주변 이웃들의 가정사들이 꽤나 재미있어서 어느새 첫 장의 의문의 남녀는 잊어버린 채 이야기에 푹 빠져 내처 읽었다. 이야기의 변화는 애덤의 친구인 스펜서의 자살에 뭔가 다른 진실이 숨어 있음을 알려주는 사진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중반 이후 첫 장의 의문의 두 남녀가 다시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스릴러 궤도에 접어들고, 연관이 없을 것 같던 모든 이야기가 사실은 접점을 가지고 있다로 귀결되며 반전의 제왕이라는 명성답게 “깜짝” 놀랄 만한 결말로 마무리한다. 밤을 지새우며 이 책을 다 읽어 버리게 되고 말거라는 어느 “경고”처럼 밤샘할 정도는 아니지만 작은 글씨에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무색할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한 그런 책이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미국 중산층 가정의 행복과 위선, 그리고 고민과 위기의 봉합을 코벤 특유의 진실된 문체로 써내려간 이 작품으로 "구글 세대를 위한 최고의 가족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장기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 작가 작품은 처음이라 이처럼 미국 미국 중산층 가정의 위기와 모순에 대한 관심이 작가의 주된 경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스릴러 형식을 빌어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미국인들 가정의 위기를 짚어내는 작가의 글솜씨가 꽤나 매력적이고 색다르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일본 추리 소설의 주요 경향 중 하나인 “사회파 추리소설” - 미스터리 형식을 빌어 현대사회의 모순과 도덕적 문제를 다루는 소설 - 과 그 맥락이 같다고 할까?  

읽으면서 마이크 부부가 애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게 하고 싶다고 합리화하며 애덤의 PC에 감시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대목에서 어릴 적 어머니께서 내가 없는 틈을 타 서랍에서 일기를 꺼내 읽으시다가 나에게 딱 들키자 얼굴을 붉히시면서 “네가 걱정이 돼서......”하시며 말끝을 흐리시던 일화가 떠올랐다. 그 이후로 내가 일기장을 다른 곳에 감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어떻게 알아내셨는지 내 일기장을 가끔씩 몰래 읽으셨었다. 그런데 여기에 내 트릭이 하나 있었으니 어머니께서 몰래 보시던 일기장은 일부러 어머니께 읽히길 바랐던 “가짜” 일기장 - 용돈을 올려줬으면 좋겠다, 무엇이 갖고 싶다 등등 속보이는 내용들만 적어놓은 - 이었다. “진짜” 일기장 - 그렇다고 심각한 일탈이나 비밀을 기록한 것은 아니었다^^ - 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렇다고 어머니는 과연 그 사실을 모르셨을까? 여쭤보진 못했지만 어머니께서도 나의 트릭을 잘 알고 있으셨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어머니와 일기장을 두고 “게임”을 벌였는지도 모르겠다. 코웬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어쩌면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지켜야 할 그 “무엇”- 프라이버시일수도 있겠고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를 넘어선 인격 또는 존엄성으로도 볼 수 있겠다 - 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그 어떤 것을 “위배”해 버렸기에 하마터면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뻔 했었다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과연 마이크 부부가 애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감시 프로그램 설치를 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그렇다고 이 책의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결말은 아찔했지만 오히려 그런 행동 때문에 오히려 감춰져 속으로 곪았을 갈등이 표면화되고 나름 해결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난제(難題), 또는 일종의 딜레마(Dilemma)처럼 느껴졌다. 

꽤나 재미있었지만 아직은 “할런 코벤”에 대한 낯섬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아 그의 작품들을 몇 권 더 읽어야 “그”에 대해 올곧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적지 않은 작품들이 출간되어 있으니 한 권 한 권 차근히 그를 만나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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