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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최고의 날
카를로스 발마세다 지음, 박채연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0월
평점 :
아르헨티나 인기 작가인 “카를로스 발마세다”의 작품은 <식인종의 요리책>에 이번에 만난 <서른살, 최고의 날(북스토리/2011년 10월)>이 두 번 째 작품이다. 전작이 쉽게 입에 붙지 않는 스페인식 이름과 지명, 머릿 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요리 이미지, 낯설기만 아르헨티나 역사 등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식인(食人)”이라는 섬뜩하고 강렬한 이미지가 여운이 남았던 독특하고 재미있었던 터라 이번 책도 어떤 독특한 매력을 선보일지 기대와 함께 아름다운 여인이 뒤에 칼을 감추고 서 있는 인상적인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큰 키에 흑단같이 까만 머리칼, 초록색 눈을 가진 서른 살의 아름다운 여성이자 문학을 전공한 대학 강사인 “파울리나 바르톡”이 대학에서 문학비평과 이론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과학 기술부 연구원인 서른 두 살의 매력적인 이혼남인 “호나스 알파노”를 처음 만난 건 마르델플라타 국립대학교 도서관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던 어느 수요일이었다. 독일 음악가 “베르너 에크”를 아냐는 물음에 시작된 이들의 첫 만남 이후 2주일 동안 매일 만나 함께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데이트로 이어지고, 파울리나는 마침 사귄 지 3년이 된 애인 “라미로”와 이별하게 된다. 그런데 라미로와의 이별 후 며칠 동안 꿈이라기에는 지나치고 논리적이고 생생한 악몽에 시달리게 된 파울리나는 같은 문학과 교수이자 대학시절부터 친구인 “미카엘라”와 꿈에 대해 상의하고, 미카엘라는 그녀에게 라미로와의 이별에서 오는 죄책감에 그런 꿈을 꾸게 되었을 것이며, 꿈의 내용이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의 “페르귄트”- 호나스와 만나게 된 계기가 된 “베르너 에크”가 바로 입센의 “페르귄트”를 개작해 오페라로 만들었다.- 와 일치한다고 말해준다. 파울리나는 연구관계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 있었던 호나스와 다시 재회하게 되고, 그와 함께 밤을 보내면서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파울리나는 시간이 갈수록 호나스에게 빠져들게 되지만 가끔씩 연락이 두절되고, 매력적인 여학생과 어울리는 호나스의 행동에 불안해한다. 열정적인 사랑과 불신(不信)이라는 위기가 반복되면서 괴로움과 악몽이 계속되고, 파울리나는 호나스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그만 유산의 아픔을 겪게 된다. 몸과 마음을 추스린 파울리나는 여전히 호나스와의 불안한 사랑을 계속하게 되지만 호나스가 자신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이 이혼한 전처(前妻)와 재결합을 해서 대학을 떠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파울리나는 헤어졌던 전 애인 라미로를 다시 만나고, 뭔가를 준비한다. 바로 자신이 살아온 서른 살의 삶에서 가장 강렬하고 치명적일, 제목에서처럼 “최고의 날”을 말이다.
젊은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이별한다는 기본 줄거리만 본다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속적인 연애 소설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신화와 오페라, 연극,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사랑”들에 대한 이야기를 파울리나가 쓰고 있는 논문인 <사랑과 연인들의 책>과 밤마다 그녀를 괴롭혀 온 악몽 등을 통해 선보이면서 이 책이 통속성을 벗어나 인류의 최고 가치이자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이기도 한 “사랑”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민과 사유의 결과임을 알 수 있게 해주고, 또한 독자들에게 두 주인공의 사랑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은, 치명적이고 불길한 결말에 이를 것이라는 예고하는 암시의 장치로써도 활용한다. 또한 호나스와의 치명적인 사랑에 점점 빠져들면서 강렬한 충동과 함께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파울리나의 심리 묘사 또한 꽤나 탁월해서 작가의 글솜씨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꽤나 에로틱한 장면들이 자주 묘사되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노골적이지 않은, 성인들이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정도의 수위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사랑에 대한 진지한 탐구, 탁월한 심리 묘사, 그리고 에로틱한 성애 묘사 등 역시나 전작처럼 색다른 재미를 선보이고 있는데 다만 기존 연애소설과는 다른 독특하고 이색적인 결말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결말의 공개는 생략한다 - 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마다 호불호(好不好)가 나뉠 것 같은 데, 이 책의 제목처럼 “최고의 날”에 동의하게 될 지 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말 - 또는 이해는 하더라도 동의하기 어려운, 그리고 다소 뜬금없게까지 느껴지는 - 이 될 지는 독자들 각자의 감상과 느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파울리나의 선택에 살짝 동의할 수 는 없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던 재미있는 결말이었다.
카를로스 발마세다,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독특한 재미와 매력을 가진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