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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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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단편 소설의 매력”을 검색해보니 “이야기의 빠른 전개와 장황하지 않은 압축미(네이버 지식iN ID destinyend님 답변 인용)"라고 한다. 단편소설은 이처럼 짧은 호흡 안에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을 압축해서 모두 맛볼 수 있는 재미가 있지만, 이야기의 결말이 분명치 않고 지나치게 생략된 전개 때문에 쉽게 몰입이 되지 않아 읽고 나서도 금세 이해되지 않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행간(行間)에서 생략된 전개와 해설을 유추해보는 여운을 길게 가지며 곱씹어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 편에 너무 머물다 보면 오히려 장편보다 읽는 속도가 더뎌지기도 하며, 단편 소설집인 경우 다음으로 이어지는 또 단편의 이미지 때문에 전 편의 여운은 금세 희미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게 된다. ”김경욱“의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창비/2011년 9월)>이 나에게는 분명치 않은 결말에서의 모호함과 한 편 한 편 어둡기만 한 회색빛의 이미지로 느껴지는 그런 책이었다. 

 책에는 표제작이자 첫 수록 작품인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를 비롯해서 총 9편이 실려 있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이 도시에서만 수백 개의 수도 계량기가 동파된 월요일 아침”이란 문구로 부동산 중개소와 학교,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일어난 도난 사고로 시작된다. 잠금장치가 풀려나가고 자물쇠가 뜯겼으며 열쇠구멍이 횅한 도난 사건이 분명한데 없어진 물건은 전혀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아파트 단지 상세도”와 “학생 신상카드”, “주차스티커 발급대장” 들이다. 이런 의문은 역시 같은 문구로 시작하는 퀵서비스 사내 이야기에서부터 서서히 풀려진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아 시도 때도 없이 졸고 깨어 있을 때도 눈빛이 흐리멍덩해진 손녀가 안쓰러운 사내는 죄송하다고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고 그저 돈으로 무마하려는 가해 아이들의 보호자들을 “심판”하기로 한다. 책 첫머리에서 없어진 물건들은 손녀를 그렇게 만든 아이들과 부모들을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단서들인 셈이다. 마침내 심판의 어둠이 밝아오고 사내는 그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로 숨어 들어가 젊은 시절 열대의 정글을 누볐던 군인이었던 것처럼 작전을 수행한다. 다음날 아침 전기가 끊긴 통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켰지만 아침 뉴스에는 어젯밤 자신이 벌인 작전의 결과가 등장하지 않았다. 결국 남은 건 불덩이처럼 열이 오른 손녀와 발이 붓고 눈이 더 침침해진 자신과 등유가 다 떨어져 불꽃이 시득시득해진 석유풍로뿐. 그런 그에게 손녀는 천진난만하게도 손녀가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불러줬던 캐롤을 할아버지께 들려준다. 다 읽고 나서 일순 당황했다. 한편의 스릴러처럼 진행되던 이야기가 딱히 결말 없이 허무하게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신에게는 손자가 없기 때문에 이 가엾은 사내의 복수극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복수가 처참한 현실까지 극복해낼 수 는 없다는 일종의 허무함이었을까? 물론 현실에서의 그 어떤 복수도 통쾌함은 찰나일뿐 감당하기 어려운 법적 제재가 뒤따를 수 밖에 없고 그런 복수를 해냈다고 하더라도 현실은 전혀 바뀔 게 없는 그런 것이라고 결말을 나름 짐작해볼 수 도 있겠지만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쉽게 이해되지 않은 이야기와 결말이었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결말이 아니라 독자들의 각자의 해석에 결말을 맡겨놓는, 일종의 "열린 결말"을 의도한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을 해보다가 다시 읽기 시작했지만 이어지는 단편들도 모두 이런 식이다. <러닝 맨>에서는 도로 중앙을 달리며 방해하는 뱀 문신을 한 남자와 오토바이에 자신의 학생이자 애인을 실고 달리는 가난한 과외교사와의 막연한 불안감과 긴장감을 그리고 있지만 역시나 뱀 문신 남자의 정체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살인범으로 짐작될 뿐 주인공과의 “사건”은 채 일어나지 않고 마무리되고, <99%>에서도 주인공이 열등감을 느끼게 한 상사가 자신이 알던 동창생으로만 짐작될 뿐 그의 정체에 대해 분명한 결론을 들려주지 않으며,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에서는 시합 직전 왜 체중이 갑자기 불어나 계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들려주지 않는다. 그 외 나머지 작품들도 이처럼 분명한 결말을 맺진 않고 그저 사회 곳곳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군상들의 삶을 그저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렇다 보니 한 편 한 편 읽고 나도 쉽게 마무리가 되지 않고 여운이 길게 남아 꽤나 더디게 읽히고 만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이 작가의 경향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지점마저 부러 절제하고 생략하고 비워놓음으로써 더 많은 의미로 스스로를 열어 놓아서 그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더 큰 진실에 다가가게 만든다”고 해설하고 있는데, 어떤 독자들에게는 이런 “열린 결말”이 작가의 주입식 결말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면에서 사건(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게 하고 각자의 상상대로 결말을 유추해 보는, 말 그대로 더 큰 진실에 다가서는 재미와 감동을 맛볼 수 있겠지만 나로서는 결말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내기 어려워 자꾸 곱씹게 되고, 그러다 보면 더 모호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다만 한 편 한 편 음울하기만 색감과 이미지만큼은 꽤나 강렬하게 느껴져 “모호함”과 함께 “음울한 회색빛” 때문에 여운이 더 짙고 더 길게 남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과문(寡聞)한 탓에 이 책 올곧이 읽어내지 못했지만 이 작가, 이 단편집 한 권 만 읽고 끝낼 그런 작가는 아닌 듯 하다. 다음 번에는 좀 더 호흡이 긴 장편으로 그를 만나봐야 할 것 같다. 그때도 소개글처럼 명료한 해답이 아닌 모호함이 주는 열린 결말이 과연 또다른 진실을 발견케 하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지 아니면 다시 한번 쉽지 않은 이해 탓에 절망케 할 런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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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문학 걸작선 1
스티븐 킹 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조지훈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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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문명이 예고했다는 종말(終末)의 날인 “2012년 12월 21일”이 이제 일 년 남짓 남았다. 그동안 겪어온 종말의 날, 즉 “휴거(携擧; 1992년 10월 28일)”와 “노스트라다무스의 대예언의 날(1999년 8월 18일)” 경험을 비춰보면 다시 한번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 물론 아직도 과거 두 예언의 날이 끝난 것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믿는 분들도 많다 -.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Everything that has a beginning has an end)” 라는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의 문구처럼 인류도 그 시작이 있었다면 언젠가는 끝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 “끝”이 “신(神)”의 분노나 외계인, 또는 자연재앙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한 것일지 아니면 핵전쟁이나 환경 파괴에 따른 인류 스스로의 자멸(自滅)일지, 즉 종말의 원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不可知)”는 게 나의 생각이다. 다만 상상(想像)의 소재로써는 참 흥미로워 하는 소재인지라 종말을 다룬 작품들은 다큐멘터리나 소설, 만화, 영화등 장르를 불문하고 챙겨서 보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최근에 출간된 <종말문학걸작선 1(원제 Wasterlands : Stories of the Apocalypse / 황금가지 / 2011년 10월)>은 꽤나 눈독을 들인 작품인데, 즐겨하는 “종말”을 소재로 한 소설인데다가 “스티븐 킹”, “조지 R.R.마틴”, “올슨 스콧 카드” 등 공포나 판타지, SF 등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작가라면 그 이름만으로도 반가울 유명한 작가들의 단편이 엄선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받아들고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허겁지겁 읽기 시작했다.

유명 판타지, SF 잡지 편집장이자 이 책의 편자(編者)인 “존 조지프 애덤스”는 “들어가는 글”에서 먼저 SF 소설의 어머니이자 <프랑켄슈타인>의 저자인 “메리 셀리”의 <최후의 사나이>에서부터 “종말(Apocalypse) 문학”의 시대별 주요 작품들을 간단하게 짚어보고 나서 우리를 황량한 풍경, 즉 포스트 아포칼립스 문학으로 이끄는 요인은 모험에 대한 우리의 기호, 즉 새로운 발견이 가져다주는 전율 및 뉴프런티어에의 갈망을 실현해 주기 때문이며 과거의 빚을 청산하여 새 출발을 가능케 해주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조금 더 빨리 알았을 경우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을 지를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종말적 원인들 중 외계인들이나 좀비 창궐 등은 다루지 않으며 - 다른 선집의 주제로 남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 이 선집에 수록된 각기 다른 22편(1권에서 12편, 2권에서 10편)은 일부는 다소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반면, 다른 이야기들은 상상이 가능하고, 개연성도 충분한 이야기들이며, 환상을 다루기도 하고, 더 많게는 공포의 영역을 탐구하지만, 그 어느 것이나 우리에게 단 하나의 질문, 즉 “인류가 멸망하면, 우리가 아는 세상과 삶은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들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편자의 소개글이 끝나고 나면 “스티븐 킹”의 <폭력의 종말>을 필두로 본격적인 종말이야기가 시작된다. 각 단편의 첫머리에는 작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작은 글씨로 싣고 있는데, <폭력의 종말>을 첫 단편으로 선정한 이유는 기고자가 유명작가일 경우, 작품 자체가 탁월하거나 강한 정서적 인상을 남길 경우, 그리고 다른 작품의 기조를 결정한다고 여길 경우 등인데 이 단편은 셋 모두에 해당된다고 설명한다. <폭력의 종말>은 화자(話者)의 동생이자 50~100년 만에 하나 간신히 나올 정도의 천재인 “바비”가 세상의 모든 폭력을 일거에 없앴을 수 있는 물질을 발견하고 전 세계에 퍼뜨리지만 오히려 인류의 종말을 불러오는 결과를 가져오자 동생을 총으로 쏴죽이고는 그간의 과정을 기술하는 일종의 회고록 형식의 글로 스티븐 킹 특유의 기발함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이 외에도 <엔더의 게임>이라는 불후의 SF 명작 작가 “올슨 스콧 카드”는 <고물수집>에서 종말 이후 모여 사는 몰몬 교도들의 옛 성지에서 금화가 묻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금화 탐험에 나선 고물 수집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서사 판타지 장편 소설인 <얼음과 불의 노래>의 작가 “조지 R.R. 마틴”은 <어둡고 어두운 터널들>에서 인류 최후의 전쟁 이후 방사능이 온 지구를 덮은 어느 미래, 살아남은 인류들은 지하로 숨어 들어가 다른 존재로 진화하고 달에 남아 재앙을 피했던 인류들이 수 백 년 만에 인류의 존재를 찾아 지구를 수색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앞서 말한 “스티븐 킹”과 함께 두 작가는 그들의 작품을 읽어본 터라 참 반가웠고 인상적이었는데 다른 작가들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나본 작가들이라 그런지 낯설기만 했다. 그중 인상 깊은 작품을 꼽으라면 오늘날 전 세계를 촘촘히 덮고 있는 인터넷 네트워크 망을 소재로 한 “코리 독토로”의 <시스템 관리자들이 지구를 다스릴 때>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작품과 유사한 선집이었던, 핵전쟁(Mega War) 이후의 세계를 그린 작품 모음집으로 이 작품 작가들 이상의 유명 SF 거장들인 “아서 C.클라크”와 “로저 젤라즈니”, “레이 브래드버리” 등 - 이름만으로는 이 작품보다 더 화려하다 -의 단편을 실었던 <최후의 날, 그후>를 읽었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책들과 같은 단편들로는 “종말(Apocalypse)" 이라는 스펙타클한 대재앙을 올곧이 담아내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었다. 물론 이 책의 작품들이 "종말 그 이후(Post Apocalypse)" 상황을 그려낸 작품이니 작품마다 작가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종말 이후 다양한 상황들을 만나보는 재미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종말 그 자체, 즉 종말의 원인과 과정, 결과에 더 흥미를 느끼는 터라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를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차라리 작품들이 단편이 아닌 장편이면 어떠했을까? “코맥 매카시”의 <로드(The Road)>도 종말의 원인과 과정은 생략된 채 이 책처럼 종말 이후의 세계를 다루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생존을 위해 남쪽으로 떠나는 고독하고 위험한 여행을 “장편”이라는 비교적 긴 호흡으로 그려냈기 때문에,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에 푹 빠져들 수 있었으며, 만약 이 책처럼 단편이었다면 그런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실망했었을 그런 작품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다들 유명한 작가들이겠지만 익숙한 작가들 외에는 딱히 눈에 확 들어올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 없었던, 작품마다 편차가 느껴졌던 것도 실망스러웠던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기대감과 아쉬움이 함께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분명 다채로운 음식들이 풍성하게 차려진 성찬(盛饌)임에는 분명한데 그 하나 하나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양에서나 질에서나 조금씩 부족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종말”이라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흥미로운 소재를 담고 있는 작품들인만큼 한편 한편 곱씹어 볼 만한 그런 작품들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겠다. 또다른 맛과 분위기를 보여줄 2권도 꼭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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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아데나 할펀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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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살아온 날들 중에서 돌아가고 싶은 나이가 있다면 그 때는 과연 언제일까? 이런 비슷한 질문을 했던 책들을 몇 권 만났는데 타임머신을 소재로 한 책에서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불행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삶을 바로잡겠다고 답하고 다른 어떤 책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죽던 날로 돌아가 죽음을 반복하는 그런 상황을 들려준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에서는 일흔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어느 할머니는 자신이 가장 부러워하는 손녀의 나이인 “스물아홉 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일 케잌을 앞에 두고 소원을 빈다. “아데나 할펀(Adena Halpern)”의 <스물 아홉 살(원제 29 / 비채 / 2011년 10월)>은 이런 “말도 안되는” 소원이 실제로 이뤄진 후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소동과 함께 달콤한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고 하지만 다 헛소리로만 들리는 올해 일흔 다섯 살 생일을 맞은 “엘리”는 정말 내키지 않지만 딸 “바바라”가 한사코 우겨서 할 수 없이 하게 된 생일파티 케잌 촛불 아래서 꼭 그맘때의 자신을 빼닮은 손녀딸이자 그 젊음이 부러워 미칠 지경인 “루시”와 같은 나이인 스물 아홉 살로 단 하루만이라도 살아보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한다. 생일 케잌 앞에서 하는 기도만큼 허망한 게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이런 말도 안되는 기도가 이뤄진 것이다! 잠에서 일어나 보니 침침했던 눈이 밝아지고 쳐진 가슴은 탄력을 되찾았으며 얼굴에는 주름하나 없는 스물 아홉 그 때의 나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인근 옷 매장에 가서 손녀가 디자인한 옷을 사입고 케잌까지 잔뜩 사들고 돌아온 집에서 자신을 찾아온 손녀 “루시”를 마주하게 된다. 루시는 당연히(!) 할머니 집에 있는 낯선 여인을 경계하지만 할머니와 자신만이 알고 있던 비밀 몇 가지 확인을 한 후에 그 낯선 여인이 할머니임을 알게 되고 역시 놀라지만 이내 할머니의 아주 특별한 “하루”를 자신이 책임져주기로 한다. 엘리는 루시와 미용실에도 가고, 속옷도 사며, 저녁에는 루시가 자주 가는 술집도 가는 등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상상만 해도 기쁘기만 하다. 그런데 이들의 특별한 하루를 훼방놓을 방해꾼들이 있었으니 바로 엘리의 동년배 절친인 “프리다”와 성가시만 한 딸 “바바라”이다.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와 반응으로 전화 응대하는 엘리의 신상에 이상이 있다고 직감(?)한 둘은 의기투합해서 엘리의 집으로 찾아오지만 집은 텅비어 있고 경비원에게서 있지도 않은 조카 손녀와 루시가 함께 외출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루시에게 계속 전화를 해대지만 루시는 묵묵부답이고, 둘은 엘리를 찾아 나선다.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내보지만 하루가 지나야만 신고를 받아준다고 그러자 화가 난 둘은 길을 정처없이 걷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설상가상으로 바바라는 노상강도를 만나 보석과 금품을 빼앗기고 만다. 한편 엘리는 루시와 함께 스물 아홉 살 젊음을 만끽하고 루시의 단곱 술집에서 루시의 애인과 애인의 친구인 푸른 눈의 멋진 남성을 만나 저녁 약속을 하게 된다. 과연 엘리의 특별한 하루는 어떤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까? 두 방해꾼의 고난스러운 여정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

과거의 젊었던 시절로 돌아가 특별한 “하루”를 보낸다는 설정은 사실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와 결말이 빤히 보이는 통속적이고 식상한 소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런 통속성과 식상함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참 재미있다. 이런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별로 안즐겨하는 내가 불과 3~4시간 만에 책 한 권을 뚝딱 읽어낼 정도로  말이다(그래서 별점은 만점을 준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재미있는 대목은 어딜까? 물론 스물 아홉 살로 돌아온 엘리가 자신이 이렇게 예뻤다는 것을 깨달으며 손녀와 함께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멋진 남자와 잊지 못할 하룻밤을 보낸다는 기본 줄거리는 사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그런 줄거리이지만 그 전개가 꽤나 기발하고 로맨틱해서 재미있었던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재미는 개그 콤비인 “바바라”와 “프리다”가 벌이는 기가 막히는 “엄마(또는 절친) 찾기 여정”이라 할 수 있겠다. 참 수다스럽고 어리숙한 두 콤비는 하는 짓마다 실수 연발이다. 열쇠와 지갑을 집 안에 두고 잠궈 버려 쫄쫄 굶고, 프리다와 엘 리가 사는 집과 불과 몇 블록도 안 떨어진 곳인데도 길을 헤매다가 총도 아닌 손가락(!)으로 위협하는 노상강도를 만나 금품을 털리며, 경찰서에 신고하러 가지만 바바라가 학창시절 괴롭혔던 친구가 경찰이 되어 마주하게 되자 머뭇머뭇 거리기도 한다. 엘리가 “판타지”한 캐릭터였다면 현실적인 캐릭터가 이 두 사람일 텐데 현실감보다는 영 희극적이어서 웃음만 나오는 그런 인물들이었다. 물론 결말에 이르러서는 이 하루는 엘리에게만이 아니라 바바라와 프리다의 삶도 변화시키는 정말 “특별한” 하루가 되어 버려 다소 개그스러움이 퇴색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책, 엘리의 로맨틱하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린 “로맨스 판타지”로, 아니면 바바라와 프리다가 벌이는 기상천외한 “코메디”로 각자 취향대로 읽어도 좋을 듯 하다. 아 그리고 결국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엘리의 모습에서 감동적인 면도 느겨볼 수 있으니 모두 합쳐서 “코믹 감동 로맨스 판타지”로 읽으면 가장 좋겠지만 말이다.

굳이 교훈을 찾고자 한다면 한번 지나고 나면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 바로 청춘이니 그 순간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 쯤을 들 수 있겠지만 이 책은 굳이 그런 교훈이나 감동꺼리를 찾을 필요 없이 이야기 자체 만으로도 눈길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과 재미가 뛰어난 책이었다. 홍보글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가 정신없이 웃다가”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결국 펑펑 울게 되는 이야기” 라는 대목은 공감하기 어려운 데 아마도 여성 독자들은 엘리와 하룻밤을 보낸 남자와의 로맨틱하면서도 애틋한 사랑을 떠올리며 눈물 흘릴지도 모르겠다. 억지로 교훈을 찾으려고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책에서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교훈 - 문구에 아예 교훈이라고 못 박고 있다^^ - 인 마지막 글귀 만큼은 한번쯤 생각해 볼 만 해서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친다. 

나는 여러분이 삶에서 원하는 것 모두를 얻기 바란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면, 설령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당신의 인생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저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스물아홉살이건 일흔 여섯 살이건, 여러분 앞에 얼마나 많은 날이 남아 있건, 뼈아픈 교훈을 얻은 나의 말을 믿어라. 여러분에게는 아직 변화를 이룰 시간이 남아있다. 바로 그것이 오늘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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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심리학 - 이성을 마비시키는 점술, 유령, 초능력의 진실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김영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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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사주(四柱) 관련 서적 꼴랑 몇 권 읽고 “얼치기” 도사(道士) 흉내를 낸 적이 있었다. 미팅 때나 M.T.에서 여학생들 한 두 명 사주 봐주고 나면 너도 나도 몰려들어 자신들도 봐달라고 할 정도로 꽤나 인기(?)를 끌었었다. 만세력(萬歲曆)을 펼쳐놓고 년·월·일·시 사주팔자(四柱八字)를 적어가면서 용신(用神) - 사주에서 일간(日刊)이 가장 필요로 하는 오행을 말하며 사주 명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 을 정하고 상생, 상극 관계를 따져보는 제대로 된 풀이가 아니라, 그저 손가락으로 육십갑자(六十甲子) 짚는 흉내 내고 그 사람의 외모나 옷차림새, 어투 등을 잘 살펴보고는 되는 대로 지껄이는, 말 그대로 사기(詐欺)에 불과한데도 왜 이렇게 호응이 좋았을까? 아마도 내가 되도 않게 지껄였던 많은 이야기 중 틀린 것이 더 많았을 텐데도, 정말 우연히 또는 외형이나 말투에서 어리짐작해서 맞춘 몇 개를 더 인상적으로 받아들여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일종의 판단의 “오류(誤謬)”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참 의외의 재주(?)가 있구나 싶어 그 이후 사주 공부를 좀 더 하긴 했지만 어렵기만 해서 지레 포기하고는 가짜 도사 노릇 - 어디까지나 “재미”로였을 뿐 영리적인 목적은 전혀 없었으니 오해하지 마시길^^ - 도 그만두었지만 그때 경험 때문인지 용하다는 점쟁이들도 사실은 나처럼 관찰과 소발에 쥐잡기 식의 우연의 산물일 것이라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읽은 “리처드 와이즈먼”의 <미스터리 심리학; 이성을 마비시키는 점술, 유령, 초능력의 진실(원제 Paranormaility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9월)>은 바로 그런 막연함을 “확신”으로 바꿔 주는 책이었다. 

작가는 프롤로그 <불가사의한 세계로의 여행>에서 자신이 불가사의한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여덟 살 때 할아버지께서 보여주신 “동전마술”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할아버지께 마술의 비밀을 듣고는 푹 빠져 들어 몇 년 동안 마술과 속임수의 비밀에 대해 조사를 벌인 작가는 십대가 되었을 때 200가지의 마술을 할 수 있었고 최고 마술 동호회의 최연소 회원이 되었다고 한다. 런던대학교 심리학과 학부에 재학 중이던 어느날 우연히 보게 된 TV 프로그램에서 한 심리학자가 초자연적인 현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보다는 사람들이 그런 이상한 느낌을 경험하는 이유를 연구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말하는 것을 듣고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해보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이후로 불가사의하다고들 하는 다양한 현상들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유령이 나온다는 집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영매들과 초능력자들을 시험하고 실험실에서 텔레파시에 대한 실험을 하면서 말이다. 

책에서는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익히 알려진 점(占), 유체이탈, 염력, 폴터가이스트, 유령, 독심술과 최면, 꿈(예지몽)을 총 7개의 장(Chapter)로 나누어 작가가 수집하고 연구했던 각종 사례들을 자신의 전공인 심리학을 통해서 해석한다. 결론부터 말해 보면 모든 현상이 우리의 뇌가 저지르는 일종의 “오해(誤解)” - 작가는 “패턴”이라고 표현한다 - 라는 것이다. 패턴을 찾아내는 능력은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게 너무 지나치게 되면 없는 것 - 유령 - 도 보게 되고, 전혀 연관이 없는 일에서도 연관성을 억지로 찾아내는 등 - 예지력 - 의 오해를 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런 오해는 물리학이 아닌 심리적인 면에서 기인하므로 심리학적 해석으로 규명 가능하다는 게 작가의 주장이고 그런 주장과 해석을 실은 책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각 항목별로 다양한 심리학 이론과 해석이 등장하는 데 모두 소개할 순 없겠고 앞에서 내 경험과 연관된 “점”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소개해본다.

작가는 여러 실험과 연구 사례를 들면서 점쟁이들의 영적 능력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 - 적어도 자신이 조사하고 연구한 사례에 한해서는 - 에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손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마치 수정구슬을 통해 화면으로 직접 보고 말하는 것처럼 줄줄이 맞출 수 있을까? 작가는 여기에 “콜드 리딩(cold reading)”이라는 심리학적 기법이 숨어있다고 말한다. 상대방을 사로잡는 마법의 화술이라며 자기계발서 - 이시이 히로유키의 <콜드 리딩> - 로도 소개된 적이 있는 이 기법은 상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상대의 속마음을 간파해내는 기술을 의미한다. 작가는 점쟁이들이 써먹는 여섯 가지 기법을 소개하는 데, 예를 들어 점을 보러 온 사람에게 치켜세우는 말을 잔뜩 늘어놓아 호감을 사서 자신의 점에 우호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거나 (레이크 워비곤 효과)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다른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선택적 기억”의 특성을 이용하기도 하고(“디트머스 인디언스 대 프린스턴 타이거스 효과”), 두루뭉수리 설명해서 상대편이 반응하지 않으면 자신의 말은 비유적인 것이라고 애둘러 변명하여 명백하게 헛짚는 상황을 피해가는 방법(“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바꾸기”) 등이 바로 대표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써먹었던 방법이나 점 보러 갔을 때 점쟁이들이 했던 말들을 떠올려보니 작가가 말하는 여섯 가지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 없을 정도로 공감이 되는 그런 대목이었다.  

책에는 이처럼 심리학적인 해석과 함께 작가가 연구하거나 경험했던 각 사례들을 사진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사이트로 접속하여 동영상 및 텍스트를 확인해볼 수 있는 “QR 코드”를 싣고 있고, 각 장 마다 간단한 심리 테스트와 함께 독자들이 써먹어 볼 수 있는 방법들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으며, 부록에는 “초능력 도구 6종 세트"라는 이름으로 “용한 점쟁이가 되는 법”, “유령을 불러내는 방법” 등 본격적인 사기(?) 방법을 싣고 있다. 이러한 요소와 구성들이 자칫 텍스트 위주의 딱딱한 설명문 - 꽤나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이 될 수도 있었던 이 책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과학이 아닌 심리학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책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작가가 모든 현상이 허구(虛構)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그런 현상들을 설명 불가능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그런 영역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 자신이 해석이 반드시 “정답”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일종의 고정관념 또는 상식 깨뜨리기와 같다고 할까? 책에서 소개하는 7가지 초자연적 현상을 믿고 안 믿고는 독자들의 몫 - 개인적으로는 99%가 가짜라고 해도 1% 쯤은 “진짜”일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 일 것이다. 다만 이처럼 설명 불가능한 일들을 맹신 또는 부정과 같은 한쪽 면으로만 보지 말고 다른 면에서도 본다면 또 다른 모습, 또는 감춰진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의견은 한번 쯤은 새겨 들을 만 할 것 같다. 이 책에는 언급하지 않지만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7개의 현상 못지 않게 불가사의한 현상들, 즉 종교적인 기적(奇籍) 현상, UFO, 텔레파시 등에 대해서는 작가는 어떤 해석을 내릴지 자못 궁금해진다. 속편(續編)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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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2 1 - 인생의 거칠기가 사포의 그것과 같다 낢이 사는 이야기
서나래 글 그림 / 씨네21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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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포털 사이트마다 참 많은 “웹툰(webtoon)”들이 올라오고 있는데, 연재분을 꼬박 꼬박 챙겨보기가 힘들고, 아무래도 온라인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하는 구세대인지라 잘 챙겨보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최고 인기 작가인 “강풀” 작가나 허영만 화백 작품들은 웹툰으로도 보곤 하지만, 연재 중일 때는 제대로 챙겨보진 못하고 연재가 끝나면 한꺼번에 몰아서 보거나 책으로 발간된 후에 전 권을 구입해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몇몇 유명 웹툰들은 연재가 끝나고 책으로 발간되어 읽어본 후에 거꾸로 포털 사이트 연재 작품을 찾아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만난 “서나래” 작가의 <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 2 1권(씨네21/2011년 10월)>이 바로 책으로 읽고 난 후 해당 포털 사이트 연재분을 찾아 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서나래 작가의 “낢이 사는 이야기”는 네이버에 지난 2004년부터 연재하여 횟수로는 7년이 넘은 웹툰으로써는 꽤나 장수 연재한 작품으로 단행본으로도 이번 권을 포함하여 다섯 권에 이르는 작품이다. 여성 특유의 앙증맞고 귀여운 그림체에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그려낸 작품이라 특히 여성 팬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 2011년 10월 2주 (2011.10.10.~2011.10.16.) 네이버 웹툰 순위에서 총 112개의 작품 중 17위 -. “시즌 1”에서는 대학생 시절의 일상을 그렸다면 이번 “시즌 2”에서는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스물 아홉 직장인으로서의 일상과 가족 이야기를 그렸다고 한다. 

 그녀의 직장 생활은 친구가 자신의 회사에 와서 간단한 그림 작업을 도와달라는 부탁으로 시작된다. 처음에야 포토샵 위에서 죽는다는 각오로 시작하지만 첫날부터 출근하기 싫어 후회가 밀려 온 첫 출근날, 사무실 출입문 버튼을 누르니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을 받고는 대학 휴학 시절 인턴 비슷한 것을 했을 때 똑같은 질문을 받았던 상황을 떠올린다. 그때는 당황해서 실제로 자신이 출발한 지역을 말해버린, 즉 “잠실에서 왔는데요?”라고 엉뚱한 대답을 했었는데 - 여기서 “어디서 오셨어요”는 “어떤 일로 오셨어요” 의 의미인 셈이다 - 이번에는 제대로 답변을 했단다. 자리를 배정받고 언니들과 동료들에게서 제일 조심하라는 상사 - 이 상사의 모습은 상사의 강권(?)에 의해 웹툰에서는 샤방샤방 미남자로 그려진다 - 와의 면담, 썰렁한 농담에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삶의 따뜻함이 모두 빠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정성을 다해 웃음 짓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직장 생활이 시작된다. 첫 월급날 직장인의 일에 대한 의욕 그래프는 월급날과 연말 보너스가 있을 경우 최고치에 다다른다는 것에 공감한 그녀는 월급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보지만 그 일을 다 했다가는 금세 빚더미에 올라앉을 기세임을 깨닫고 부모님과 동생에게 용돈을 드리고, 고양이 사료와 모래 사는 꼭 필요한 곳에만 지출했는데도 돈이 떨어져 버리자 “돈 버는 것은 힘들지만 너희들을 보니 나의 삶이 헛되지 않구나”라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린다. 이 외에도 퇴근하려다가 상사에게 들켜 “팀워크를 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남아 야근을 해보지만 이런다고 월급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라면서 불평도 하고, 선배한테 전화한다는 것이 엊그제 일 때문에 만난 업체 팀장님에게 잘못 걸어 실수한 일들 등 누구나 직장 초년병일때 겪었을 법한 이야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그려낸다. 이외에도 “귀여운 여성”, “지적인 여성”, “섹시한 여성” 등 하구 많은 여성 중에 “웃기는 여자”가 되어 버려 소개팅을 한동안 하지 않게 된 사연이나 정월 대보름 더위를 팔기 위해 어머니와 벌이는 가상 퀴즈 대결, 동거인을 넘어 “가족”이 되어 버린 고양이들과의 일화 등등 소소하면서도 유쾌한 에피소드들을 그려내고 있다.
 

 극적인 이야기 전개와 반전이 없는 이야기라 밋밋할 수 도 있지만 마치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재미를 맛볼 수 있었고, “생활 코믹 만화”라는 분류답게 소소한 일상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 솜씨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던, 특히 가족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엿볼 수 있어서 훈훈하기 했던 작품이었다. 중년 남성인 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으니 이 책에 대한 별점을 후하게 줘야겠다. 책을 다 읽고 이 작품이 연재되고 있던 포털 사이트를 들어가 봤더니 책에 실려 있는 분량 이후에도 꽤나 많은 연재물이 올라와 있어 한 편 한 편 찾아 읽는 재미 또한 꽤나 쏠쏠했다. 이 만화, 앞으로도 즐겨찾기에 등록해서 매주 토요일 - 연재를 매주 토요일에 한다 - 마다 찾아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끝으로 제목에서 “낢”이 무슨 뜻인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중학교 시절 친한 친구가 쪽지를 쓰거나 이름을 부를 때 이름인 '나래'라고 하지 않고 한 자로 줄여 나에 'ㄹ'과 'ㅇ' 받침을 붙였는데 워드프로세서로 이런 글자가 입력이 되지 않자 'ㅇ' 대신 'ㅁ'을 붙여서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즉, 여기서 낢은 작가 자신인 “나래”를 의미하는 셈이다. 어떻게 생긴 분인가 궁금해서 다시 검색해보니 얼굴을 공개 안한단다.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면서 각자 머릿 속에 그려보는 즐거운 상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라니 어쩌면 “낢”은 우리 자신일 수 도 있겠다. 기자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예쁘세요”라는 것을 보면 한 미모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 생각보다라는 말이 참 기분 나쁠 수도 있을 텐 데 - 도대체 어떤 생각을 했단 말이냐라 - 부끄러워 하거나 화도 내지 않고 웃음과 함께 감사하다는 말로 응수하는 것을 보니 더욱 궁금해진다. 이 책, 영화화된다고 하니, 조만간 작가도 어쩔 수 없이 얼굴을 공개할 수 밖에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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