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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문학 걸작선 1
스티븐 킹 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조지훈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마야문명이 예고했다는 종말(終末)의 날인 “2012년 12월 21일”이 이제 일 년 남짓 남았다. 그동안 겪어온 종말의 날, 즉 “휴거(携擧; 1992년 10월 28일)”와 “노스트라다무스의 대예언의 날(1999년 8월 18일)” 경험을 비춰보면 다시 한번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 물론 아직도 과거 두 예언의 날이 끝난 것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믿는 분들도 많다 -.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Everything that has a beginning has an end)” 라는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의 문구처럼 인류도 그 시작이 있었다면 언젠가는 끝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 “끝”이 “신(神)”의 분노나 외계인, 또는 자연재앙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한 것일지 아니면 핵전쟁이나 환경 파괴에 따른 인류 스스로의 자멸(自滅)일지, 즉 종말의 원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不可知)”는 게 나의 생각이다. 다만 상상(想像)의 소재로써는 참 흥미로워 하는 소재인지라 종말을 다룬 작품들은 다큐멘터리나 소설, 만화, 영화등 장르를 불문하고 챙겨서 보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최근에 출간된 <종말문학걸작선 1(원제 Wasterlands : Stories of the Apocalypse / 황금가지 / 2011년 10월)>은 꽤나 눈독을 들인 작품인데, 즐겨하는 “종말”을 소재로 한 소설인데다가 “스티븐 킹”, “조지 R.R.마틴”, “올슨 스콧 카드” 등 공포나 판타지, SF 등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작가라면 그 이름만으로도 반가울 유명한 작가들의 단편이 엄선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받아들고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허겁지겁 읽기 시작했다.
유명 판타지, SF 잡지 편집장이자 이 책의 편자(編者)인 “존 조지프 애덤스”는 “들어가는 글”에서 먼저 SF 소설의 어머니이자 <프랑켄슈타인>의 저자인 “메리 셀리”의 <최후의 사나이>에서부터 “종말(Apocalypse) 문학”의 시대별 주요 작품들을 간단하게 짚어보고 나서 우리를 황량한 풍경, 즉 포스트 아포칼립스 문학으로 이끄는 요인은 모험에 대한 우리의 기호, 즉 새로운 발견이 가져다주는 전율 및 뉴프런티어에의 갈망을 실현해 주기 때문이며 과거의 빚을 청산하여 새 출발을 가능케 해주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조금 더 빨리 알았을 경우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을 지를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종말적 원인들 중 외계인들이나 좀비 창궐 등은 다루지 않으며 - 다른 선집의 주제로 남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 이 선집에 수록된 각기 다른 22편(1권에서 12편, 2권에서 10편)은 일부는 다소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반면, 다른 이야기들은 상상이 가능하고, 개연성도 충분한 이야기들이며, 환상을 다루기도 하고, 더 많게는 공포의 영역을 탐구하지만, 그 어느 것이나 우리에게 단 하나의 질문, 즉 “인류가 멸망하면, 우리가 아는 세상과 삶은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들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편자의 소개글이 끝나고 나면 “스티븐 킹”의 <폭력의 종말>을 필두로 본격적인 종말이야기가 시작된다. 각 단편의 첫머리에는 작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작은 글씨로 싣고 있는데, <폭력의 종말>을 첫 단편으로 선정한 이유는 기고자가 유명작가일 경우, 작품 자체가 탁월하거나 강한 정서적 인상을 남길 경우, 그리고 다른 작품의 기조를 결정한다고 여길 경우 등인데 이 단편은 셋 모두에 해당된다고 설명한다. <폭력의 종말>은 화자(話者)의 동생이자 50~100년 만에 하나 간신히 나올 정도의 천재인 “바비”가 세상의 모든 폭력을 일거에 없앴을 수 있는 물질을 발견하고 전 세계에 퍼뜨리지만 오히려 인류의 종말을 불러오는 결과를 가져오자 동생을 총으로 쏴죽이고는 그간의 과정을 기술하는 일종의 회고록 형식의 글로 스티븐 킹 특유의 기발함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이 외에도 <엔더의 게임>이라는 불후의 SF 명작 작가 “올슨 스콧 카드”는 <고물수집>에서 종말 이후 모여 사는 몰몬 교도들의 옛 성지에서 금화가 묻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금화 탐험에 나선 고물 수집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서사 판타지 장편 소설인 <얼음과 불의 노래>의 작가 “조지 R.R. 마틴”은 <어둡고 어두운 터널들>에서 인류 최후의 전쟁 이후 방사능이 온 지구를 덮은 어느 미래, 살아남은 인류들은 지하로 숨어 들어가 다른 존재로 진화하고 달에 남아 재앙을 피했던 인류들이 수 백 년 만에 인류의 존재를 찾아 지구를 수색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앞서 말한 “스티븐 킹”과 함께 두 작가는 그들의 작품을 읽어본 터라 참 반가웠고 인상적이었는데 다른 작가들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나본 작가들이라 그런지 낯설기만 했다. 그중 인상 깊은 작품을 꼽으라면 오늘날 전 세계를 촘촘히 덮고 있는 인터넷 네트워크 망을 소재로 한 “코리 독토로”의 <시스템 관리자들이 지구를 다스릴 때>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작품과 유사한 선집이었던, 핵전쟁(Mega War) 이후의 세계를 그린 작품 모음집으로 이 작품 작가들 이상의 유명 SF 거장들인 “아서 C.클라크”와 “로저 젤라즈니”, “레이 브래드버리” 등 - 이름만으로는 이 작품보다 더 화려하다 -의 단편을 실었던 <최후의 날, 그후>를 읽었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책들과 같은 단편들로는 “종말(Apocalypse)" 이라는 스펙타클한 대재앙을 올곧이 담아내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었다. 물론 이 책의 작품들이 "종말 그 이후(Post Apocalypse)" 상황을 그려낸 작품이니 작품마다 작가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종말 이후 다양한 상황들을 만나보는 재미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종말 그 자체, 즉 종말의 원인과 과정, 결과에 더 흥미를 느끼는 터라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를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차라리 작품들이 단편이 아닌 장편이면 어떠했을까? “코맥 매카시”의 <로드(The Road)>도 종말의 원인과 과정은 생략된 채 이 책처럼 종말 이후의 세계를 다루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생존을 위해 남쪽으로 떠나는 고독하고 위험한 여행을 “장편”이라는 비교적 긴 호흡으로 그려냈기 때문에,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에 푹 빠져들 수 있었으며, 만약 이 책처럼 단편이었다면 그런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실망했었을 그런 작품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다들 유명한 작가들이겠지만 익숙한 작가들 외에는 딱히 눈에 확 들어올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 없었던, 작품마다 편차가 느껴졌던 것도 실망스러웠던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기대감과 아쉬움이 함께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분명 다채로운 음식들이 풍성하게 차려진 성찬(盛饌)임에는 분명한데 그 하나 하나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양에서나 질에서나 조금씩 부족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종말”이라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흥미로운 소재를 담고 있는 작품들인만큼 한편 한편 곱씹어 볼 만한 그런 작품들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겠다. 또다른 맛과 분위기를 보여줄 2권도 꼭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