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 上 - 신화적 상상력으로 재현한 천 년의 드라마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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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Roma).

기원전 8세기 경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서 지중해를 내해(內海)로 삼았던 서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이자 그리스와 더불어 오늘날 서구(西歐)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국가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서양의 고대사가 곧 로마의 역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서구 역사상 흥망성쇠를 거듭한 수많은 국가 중 가장 중요한 국가인 “로마”의 역사는 학창시절 “세계사(世界史)” 수업에서, 각종 역사 교양 서적들이나 소설, 영화들을 통해서 많이 접해봤는데 기원(起源)부터 멸망(滅亡) - 중세까지 동로마제국,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지만 로마의 멸망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A.D. 476년으로 보는 것이 정설(定說)이라고 한다 - 에 이르기까지 통사(通史)적으로는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동양권에서는 가장 유명한 “로마사(史)”라 할 수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도전해본 적이 있는데, 로마 제국 주의를 지나치게 옹호한 나머지 변방의 국가와 문명들은 생략 또는 왜곡하는 편협한 역사적 시각과 함께 작가의 주관적 해석이 너무 장황하고 과도하게 서술되어 있어 읽다가 그만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언제든 “로마”를 제대로 공부해보자 하는 욕심은 늘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동안 꿈꿔왔던 역사 공부의 대상까지는 아니지만 로마의 기원부터 불세출의 영웅 “카이사르”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주요 사건들을 신화와 접목시켜 색다르게 해석해 낸 “재미있는” 로마 이야기를 만났다. 이미 로마 역사와 추리 소설을 접목시킨 이색적인 로마이야기 <로마 서브 로사(Roma Sub Rosa)> 시리즈를 선보인 바가 있는“스티븐 세일러(Steven Saylor)”의 <로마; 신화적 상상력으로 재현한 천년의 드라마 상,하(원제 Roma/청림출판/2011년 12월)>이 바로 그 책이다.

 

책은 보통 로마사 책들이 그 시발점으로 삼는 건국 영웅 “로물루스”와 “레무스” 이야기가 아닌 엉뚱하게도 후기 청동기 시대인 B.C. 1000 년 무렵, 로마의 일곱 언덕에 아직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그저 쉼터로 이용했던 소금 장수들과 쇠붙이 장수들 이야기(Ⅰ. 소금길의 유숙지) 부터 시작한다. 소금장사 일행을 이끌고 있는 “라르트”와 그녀의 딸 “라라” 일행은 장삿길에서 종종 쉼터로 머무르는 강(江) 안에 있는 섬에서 금속 가공 기술자인 “타르케티오스” 일행을 만나게 되고, 두 일행은 갓 잡은 사슴 고기를 나눠 먹고 각자의 야영지에서 잠을 청하게 된다. 잠을 청하던 라르트는 야영지에 피워 놓은 모닥불에서 새처럼 날개달린 남근(男根) 형상의 불의 정령(精靈) “파스키누스”의 계시를 받고 자신의 딸 라라를 이방인인 타르케티오스와 동침하게 한다. 타르케티오스는 라라에게 새로운 생명의 씨앗과 함께 태양빛처럼 순순한 노란색의 가공하지 않은 금속 덩어리를 실로 꿰어 만든 호신부(護身符)를 남겨주고 헤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를 질투한 소금 장사 일행의 “포”가 타르케티오스 일행을 죽여 버리면서 라라와 타르케티오스의 인연은 하룻밤으로 끝나버리게 되고, 호신부는 “파스키누스” 형상으로 만들어져 그녀의 자손들에게 대대로 전수된다. B.C. 850년 경 드디어 테베레 강의 일곱 언덕에 소수의 사람들이 정착해 살아갈 무렵 “헤라클레스와 카쿠스 전설”로 잘 알려진 사건이 발생 - 고대 신화가 늘 그렇듯이 인간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이 신화로 채색되고 종교로 승화된다 - 하고, 정착민들은 카쿠스라는 괴물 인간을 물리친 “헤라클레스”를 기려 최초로 제단을 만들고 제의(祭儀)를 모셨는데, 그 제의를 주관했던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이라 할 수 있는 “포티티우스” 가문 - 라라의 파스키누스 호신부를 계승한 가문이기도 하다 - 과 “피나리우스” 가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처럼 헤라클레스 신화에서 출발한 두 가문은 B.C. 757 년경 돼지치기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도시를 건설하고 왕을 자처했던 로마 건국시기, B.C. 510 년경 로마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던 시기, B.C. 450년경 로마 최고(最古)의 성문법(成文法)이라는 “12표법”이 공표되던 시기를 거쳐 흥망을 거듭하고, 포티티우스 가문에 전해 내려오던 “파스키누스” 호신부도 이때에 이르러 가문의 피를 이은 사내애였지만 정식 호적에 올리지 못하고 노예가 되어 버린 “펜나투스”에게로 전해지고 만다. 우여 곡절 끝에 호신부는 다른 가문에 입양된 자손들에게 전해지고 몰락하게 된 포티티우스 가문은 고래(古來)부터 모셔온 헤라클레스 제사를 국가에 넘겨 버리게 되고, 호신부 계승자는 자신의 출신이 드러날까 두려워 포티티우스 가문의 남자들을 독살(毒殺)하기에 이르고, 이런 참사는 헤라클레스 제의를 포기해서 신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고 알려지게 된다. 사실상 로마의 가장 오래된 가문인 포티티우스 가문이 멸문(滅門)하게 된 것이다. 호신부는 이런 혼란과 참사에도 불구하고 로마와 카르타고의 대전쟁인 “포에니 전쟁(B.C.216~183)”과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B.C.146~121)", “독재자 술라(B.C. 81~74)"의 시대를 거쳐 로마 공화정을 종식시키고 절대 왕정의 시대를 열었던 “카이사르” 시대에 이르러 카이사르 유언장에서 3인의 상속자로 알려진 “루키우스 피나리우스”에게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천년의 세월 동안 전해 오면서 그 형상이 닳아 없어져 버린 호신부처럼 로마 최초의 신령(神靈)이었던 “파스키누스”와 두 가문의 영욕의 세월도 어느덧 희미해져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간 로마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왕에서 공화정으로, 다시 카이사르 이후의 왕정의 복귀라는 지배 계급 중심으로 기술했다면 이 책은 제목처럼 신화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파스키누스” 호신부의 소유자들의 시각과 관점에서 로마 천년의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것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겠다. 11편 각각의 이야기로 구성된 역사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책에서 건국의 시초 쌍둥이 형제와 “세익스피어”의 비극(悲劇)에도 등장하는 고대 로마의 전설의 장군이자 배신자로 낙인 찍혀 추방되었다가 이방인들을 이끌고 로마에 복수하려 했던 “코리올라누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을 물리친 포에니 전쟁의 영웅 “스키피오”, 4 천 여 명에 이르는 반대파를 숙청하고 철권통치를 했지만 영웅으로 칭송받았던 독재관 “술라”, 그리고 말이 필요 없는 “카이사르”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주요 인물들이 빠짐없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때로는 권력의 핵심으로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노예로 등 서로 다른 계급과 신분에서 그들을 만났던 호신부의 계승자들의 시점으로 그들을 그려낸 것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이렇게 영웅들의 고뇌와 번민, 성공과 실패를 다룬 영웅 중심의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벗어나 역사서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그 당시 여러 계급들의 이야기들을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재구현해내서 마치 그 당시를 살았던 인물들이 자신들이 겪었던 그네들의 삶을, 어쩌면 역사 속 숨은 비화(秘話)들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어쩌면 주연(主演)들이 아닌 조연(助演)들의 이야기라서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 흐름과는 다르게 전개되고, 때로는 단편마다 이야기가 분절(分節)된다는 느낌이 들 수 도 있는데, 주연들 이야기는 역사서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획일화된 전개가 될 수 밖에 없지만 조연들의 이야기는그런 흐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작가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차피 이 책이 전문 역사 서적이 아닌 소설인 이상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다만 결말에서 파스키누스 호신부가 그저 기념물로써 대대손손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을 바꾸는 신성(神聖)의 징표로 그려졌다면 조금더 극적인 재미를 맛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로마사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의 일천한 지식만 가지고 있다 보니 이 책의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허구(虛構)이고 사실(史實)인지를 구별해 낼 수 는 없었지만, 마치 로마 역사를 드라마화한 TV 시리즈를 첫 편부터 마지막 편까지 단숨에 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시오노 나나미 식의 장대한 분량의 로마사를 읽을 엄두가 나지 않거나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한 역사 교양서 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주관이 너무 짙어 아쉬운 분들, 로마사에 처음 입문하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안성맞춤인 그런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이 꽤나 재미있다 보니 작가의 대표작이자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로마 서브 로사(Roma Sub Rosa)>이 절로 궁금해져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색다르다”, “재미있다”라는 호평들이 제법 많다. 기회가 된다면 역사 미스터리로 로마를 여행해보는 것도 꽤나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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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거짓말 - 명화로 읽는 매혹의 그리스 신화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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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조각 등 미술에는 영 문외한(門外漢)이다 보니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도 “루브르 3종 세트”, 즉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일명 니케상> - 관광객들이 워낙 많이 찾는 미술품이다 보니 곳곳에 찾아가는 길 안내 표지판이 있다 - 만 유심히 살펴봤을 뿐 나머지 작품들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관람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내가 갔을 당시에는 한국어 서비스도 없었고 루브르 소개 책자 또한 챙겨 가질 않아 그림들을 보면서도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본 것 같은 그림들만 눈에 들어올 뿐 대부분 영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그림들이었다. 그러다가 가이드와 함께 관람중인 한국 단체 관광객들을 만나 그들 틈에 껴서 같이 구경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을 이끌던 가이드의 엉터리 해설에 실소를 자아냈던 기억이 난다. 이 가이드, “앙투안 드니 쇼데”의 조각인 <에로스>를 기독교의 천사 “가브리엘”이라고 소개를 하고, “줄리오 로마노”의 <비너스와 불카누스(Vénus et Vulcain)>는 추한 용모의 악신(惡神)이 사랑의 여신을 강제로 취하는 불경(不敬)한 그림으로 뒤바꿔 버리지 않나, “프랑수아 부세”의 <다이아나의 목욕(Bain de Diane)>은 성모(聖母) 마리아로 둔갑해 버렸으며, “테오도르 샤세리오”의 <아폴로와 다프네(Apollon et Daphné)>는 중세 기사(騎士)의 애절한 사랑 고백으로 소개 - 이 그림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이드의 설명이 워낙 기상천외해서 한국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일일이 확인해 본 것이다 - 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대해 기초 상식만 있었다면 그림을 모르더라도 제목만 들어도 이 그림이 무슨 내용을 그린거구나 하고 알았을 텐데 그리스신화에 대해 전혀 모르다 보니 엉뚱한 설명만 해댄 것이다. 지금은 한국어 안내 시스템이 잘 구비되어 있다고 하니 그 가이드도 더 이상 루브르에서 안내를 하고 있지 않겠지만 혹 그녀가 아직도 루브르에서 가이드를 한다면 권하고 싶은 책이 하나 있다. 바로 명화(名畵) 들 속에 담겨진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엮어낸 “나카노 교코” 교수의 <명화의 거짓말(원제 中野京子と讀み解く名畵の謎 ギリシャ神話篇 / 북폴리오 / 2011년 12월)>이 그 책이다.

 

작가는 서문(序文)에서 그리스 신화는 이야기의 보고(寶庫)이자 모든 소설의 원형이 여기 담겨 있대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하며, 여러 화가들이 신화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던 것은 화가들 자신이 흥미를 느꼈을 뿐 아니라 그림을 주문한 왕후 귀족과 부유한 계급도 이를 원했다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화를 보면서 그리스 신화를 피할 길은 없지만 그렇다고 괜히 긴장하거나 예술을 감상한다며 격식을 갖출 필요는 없으며, 옛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락’으로 즐기면 되는 것이고, 최소한의 지식만 있다면 애초에 이야기 자체가 충분히 재미있기 때문에 이를 묘사한 그림 또한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즉 이 책, 그리스 신화를 묘사한 그림들을 감상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을 담아놓은 그런 책이라는 설명인 셈이다.

 

본문에 들어서면 우선 올림푸스 12주신들의 계보를 간략하게 도표로 설명하고는 제일 먼저 신들의 제왕이자 바람둥이 신으로도 유명한 <제우스(Zeus)>에 대한 신화와 그림들을 소개한다. 첫 장에는 그리스의 7대 영웅이자 메두사를 죽인 것으로 유명한 “페르세우스”의 어머니인 “다나에”와 제우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데, 관련 그림으로 “렘브란트 판 레인”의 <다나에(1636)>를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렘브란트의 시대, 즉 중세 유럽에서는 미인의 기준이 자그마한 가슴에 임신부로 착각할 만큼 부푼 복부, 살집이 두터운 하반신이 바로 이상적인 누드였다고 이야기한다. 워낙 유명한 신화이다 보니 다나에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여럿 있지만 대부문 연기가 서툰 미녀 배우처럼 자신의 외모에만 의지할 뿐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 - 대표적으로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다나에>를 작은 그림으로 예를 들고 있다 -이지만 렘브란트가 그린 다나에는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역시 “빛과 어둠의 화가”로 불렸던 화가였던 지라 이 그림에서도 절묘하게 빛을 묘사하여, 제우스의 남성성을 상징했으며, 절정이 찾아오기 직전 - 제우스가 황금빛으로 그녀에게 깃드는 - 의 짜릿한 설렘을 빛으로, 그것도 미묘한 암시로써 묘사한 것은 렘브란트이기 때문에 가능한 천의무봉의 기교라고 설명한다. 이에 버금가는 걸작으로 270년 후 그려진 “구스타프 클림프”의 <다나에(1907)>를 소개하면서 렘브란트의 그림이 다나에에게 깊은 인간적인 매력을 부여하여 황홀한 예감에 사로잡힌 인물로 묘사했다면 클림프의 그림은 지극히 근대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여성의 성에 대한 환희를 긍정하고 황홀감 그 자체를 시각화시킨 그림으로 서로 쌍벽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제우스 편이 끝나면 차례대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태양의 신 “아폴론”을 소개하고, 나머지 신들은 “그 외 신화”로 한데 묶어 소개하고 있다. 인상적인 그림이라면 책 표지 그림이기도 한 “장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1882)>와 “피트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1555)>, 앞서 루브르 그림으로 잠깐 언급했던 “프랑수아 부세”의 <다이아나의 목욕(1742)>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 외에도 미술 교과서나 미술 관련 교양 서적들에서 한 두 번씩 만나봤을 많은 그림들이 실려 있다.

 

이 책이 그간 만나본 <그리스 신화 해설서> - 토마스 불핀치나 이윤기님의 작품들 - 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신화 해설서들은 신화 텍스트(Text)를 주로 하고, 이를 소재로 한회화나 조각들은 대표적인 작품 몇 몇 들만 삽화 형식으로 화가 이름과 작품명, 박물관 등 소재지 정도만 간략하게 싣고 있는데 반해, 이 책은 그림을 두 페이지에 걸쳐 크게 싣고 그림 구석구석의 특징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신화를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이 책은 그림들이 주이고 신화를 보조 텍스트로 활용한 점이 다르다고 할까? 또한 신화 해설서처럼 신들의 계보나 일화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진 않지만 서문에서처럼 그림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 이상을 담아내고 있어 그림 해설서 이상의 재미있는 읽을 꺼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즉 눈요기로서의 즐거움과 이야기의 재미를 함께 가지고 있는 그런 책이라고 할까? 그리스 신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회화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신화를 잘 모르는 분이라면 신화 입문서로써의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 책 꼭 챙겨두었다가 다음에 루브르에 갈 때 그 한국인 엉터리 가이드에게 꼭 선물해주고 싶다. 그녀가 아직도 루브르에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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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브레이크 호텔
서진 지음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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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 ~ 1745)”가 “시간여행자(Time Traveller)"였다는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방송에서는 시간여행자의 증거로 소설에 등장하는 ‘끊이지 않고 반짝이는 불빛’이 현대의 형광등을 의미하고, 또한 하늘을 날아다니는 섬인 “라퓨타”와 우주인에 대한 표현이 현대의 우주선과 우주인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며, 소설 속에서 화성 주위를 돌고 있는 두 개의 위성에 대한 묘사가 151년 뒤 밝혀진 사실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식 이야기지만 “시간여행자”라는 해석이 참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인터넷에 시간여행자의 증거 사진들이라고 해서 화제가 된 몇 몇 사진들을 본 기억이 난다. 대부분 착각이나 또는 조작으로 밝혀졌지만 그래도 꽤나 그럴싸한 사진들이었다. 아뭏튼 시간여행은 실재(實在)와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UFO와 함께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소재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번에 이런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독특한 우리 소설을 만났다. 바로 “서진”의 <하트브레이크 호텔(예담/2011년 11월)>이 그 책이다.

 

 

책은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편들은 부산, 샌프란시스코, 도쿄, 마이애미, 라스베가스 등 세계 곳곳의 7개의 도시를 무대로 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등장한 곳이 바로 제목이기도 한 “하트 브레이크(Heart Break)" 호텔이다. 하트 브레이크, 직역(直譯)하면 ”심장이 깨지다“라는 뜻 일 텐데 심장이 깨질 것 같이 지독한 슬픔, 즉 ”비통(悲痛)”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호텔이 일종의 시간여행자들의 통로 역할을 한다. 즉 이 호텔을 통해서 과거의 “어떤” 시간으로 여행을 하고, 이곳을 통해서 다시 자신들의 시간대로 귀환하는 곳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의 시간여행은 “H.G.웰스”의 <타임머신>처럼 실제 과거로 가는 그런 여행일까? 작가가 시간여행 기술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고 있진 않지만 단편들에서 제시한 단서들을 종합해보면 이 소설에서 시간여행은 ‘Chew-X’라는 약물을 통해 자신의 과거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종의 가상체험 스타일로 보여진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 속의 가상현실이나 영화 <토탈 리콜>에서의 기억 조작과 같은 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평행우주(平行宇宙)” 개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시간여행의 방식이 불분명하지 않은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책에서 시간여행은 일종의 소재로 등장할 뿐 그 “방법”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단편들 속 등장인물의 각자의 “사연”들이 바로 작가가 독자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일테니 말이다.

 

 

책의 첫 시작과 마지막은 <황령산 드라이브>를 PART1,2로 나누어 배치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장치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출판사 소개글에는 소설의 입구이자 출구로 역할을 하는 “뫼비우스 띠”처럼 작용한다고 설명하는데, 이야기의 연계성은 있겠지만 끝없이 순환 반복되는 뫼비우스 띠와의 연관성은 딱히 발견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작품인 <두번째 허니문>부터 본격적인 시간여행자들의 이야기 - 물론 <황령산 ~>PART1 편도 시간 여행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지지만 짐작해볼만한 힌트들은 없었다 - 가 전개되는데, 서로가 다른 지역이지만 공통적으로 “하트브레이크” 호텔이 여행의 출발이자 종료 공간으로 등장한다. 이야기들은 애절한 사랑 이야기 - <두번째 허니문>, <당신을 위한 테러>-도 있고, 시간 여행임을 직접 언급하는 이야기 - <미래귀환명령>, <황령산 드라이브> Part2 - 도 있지만 좀비가 등장 - <휠 오브 포춘>- 하고, 머릿 속에 핸드폰이 들어가 버리는 - <내 머릿속의 핸드폰> - 등 시간여행과는 다소 거리가 먼 기묘한 이야기들도 실려 있다. 이처럼 이야기들은 제각각이지만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어서 금세 읽을 수 있었던 재미있는 책이었지만 “오드리 니페네거”의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서처럼 애잔한 감동이나 깊은 여운을 느껴볼 수 는 없었다.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감동 코드는 부족했다고 할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소재적 실험과 이야기 구성력만큼은 결코 녹록치 않은 작가임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그런 소설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끝으로 나는 이 소설의 작가를 “여성”으로 알았다가 다 읽고 나서 작가가 “남성”이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었다는 사실을 밝혀둬야겠다. 이런 오해를 왜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선 작가의 이름인 “서진”을 여성의 이름으로 착각을 했고, 책 첫 단편에서 등장하는 여학생들의 동성애 장면들 - 남자가 상상으로 썼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구체적으로 그럴싸하게 묘사하고 있다 -, 그리고 이야기들 곳곳에서 묻어나는 감성(感性)적인 면들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듯 하다. 나 혼자만의 오해였겠지만 나에게는 “반전(反轉)”이 되어 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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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회장의 그림창고
이은 지음 / 고즈넉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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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古) 미술품들을 감정(鑑定)하는 TV 모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충무공(忠武公) 친필(親筆)인줄 알고 고이 모셔온 글씨가 위조품으로 밝혀지는 웃지못할 사례도 있었지만 지난 2011년 7월에는 18세기에 그려졌다고 알려진 그림 한 점이 방송 시작한지 16년 이래 역대 최고가인 15억원을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 방송을 보면서 우리 집에는 왜 저런 그림이나 글씨 한 점 없을까, 조상님들은 저런 그림 하나 남겨주셨으면 자손들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며 괜히 엄한 조상탓(?)을 하기도 하고 혹시 하는 마음에 옛날 서적이나 그림이 없을까 오래된 살림살이를 뒤져보기도 하지만 매번 헛수고이다. 이처럼 미술품들은 예술로써의 가치뿐만 아니라 훌륭한 재테크 수단이자 재벌들의 편법 증여(贈與)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던데, 몇 해 전 모 대기업 비자금 사건과 연루되어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 그냥 보면 미국 만화 한 컷에 지나지 않을 것 같던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거래 가격이 80 억원을 호가하고 지금은 몇 배가 더 가격이 올랐을 수 도 있다고 하니, 그리고 미술시장 특성상 출처나 소유자가 노출되지 않아 정확한 매입자와 매입가격을 파악하기 어렵고, 고가의 외국 작품의 경우에는 가격 산정조차 쉽지 않다고 하니 그림 몇 점만 잘 거래한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상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비자금의 온상이자 편법 증여의 수단으로 잘 알려진 “미술 시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미술과 사진을 공부하고 미술학 박사라는 자신의 경력을 십분 살려 “미술관”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을 집필해오고 있는 작가 “이은”의 소설 <박회장의 그림 창고(고즈넉/2011년 11월)>는 작가 스스로가 허구의 풍자(諷刺) 소설이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 모 대기업 비자금 사건이 바로 연상되는 그런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엄마 병원비 때문에 사채업자 “양아치”에게 천만원을 빌렸지만 이자가 붙고 또 붙어 결국 삼천 백만원이 되어 버린 “소미”는 미용실로 찾아온 양아치에 일주일내로 모두 갚으라는 협박과 함께 온갖 수모를 당하고야 만다.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동거남이자 백수 청년 “진구”와 다리가 불편하고 지능 또한 떨어지는 그녀의 남동생 “기호”는 그런 소미를 돕기 위해 거리로 나서 자동차 자해 공갈단으로 푼돈이라도 뜯어내려고 하지만 영 소득이 없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외제차를 발견하고 기호가 그 차에 뛰어든다. 그런데 차를 몰던 고급 옷의 여인이 반항을 하자 엉겁결에 지갑이 든 백과 차에 실려 있는 그림을 훔쳐 달아난다. 그런데 이들 상대를 골라도 단단히 잘 못 골랐다. 그 여인은 굴지의 재벌 “세계 그룹”에서 운영하는 미술관 관장이었고 그들이 훔쳐간 돈과 그림은 세계 그룹의 “박노수” 회장 지시로 집권당 총수에게 몰래 상납하기로 한 뇌물들이었던 것이다. 특히 진구가 길거리에서 샀다며 미용실에 걸어놓으라고 내민 그림은 시가로 백억 원대에 이르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과 박회장이 여당 총재에게 보내는 은밀한 편지 때문에 일대 난리가 난다. 박회장은 자신이 거느리는 깡패들인 “은갈치파”에게 그림과 편지를 회수해오라고 지시를 내리고, 소미의 집은 그림을 찾기 위해 난입한 깡패들 때문에 일대 난장판이 된다. 설마 설마 했지만 급한 마음에 양아치에게 돈을 갚아버린 소미는 진구가 저지른 짓이 “보통”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집에서 도망 나와 모텔로 숨어들고 고향에 내려간 진구와 기호를 불러 들여 사정을 전해 듣고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소미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린다. 바로 박회장을 협박해서 5억원의 돈을 받아내고 그림을 넘기겠다는 것이다. 소미는 약속한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인 종로 경찰서 앞에 나서는데, 갑작스레 돈을 갚아 버린 소미를 수상히 여긴 양아치 일행이 나타나 소미에게서 그림을 뺏어든다. 그런데 이 때 승합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덩치가 산만한 사내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와 소미와 양아치 일행을 에워싸는데 또 다른 승합차가 다가와 역시나 잘 차려 입은 사내들이 쏟아져 나와 덩치들과 백주대낮에 경찰서 앞에서 일대 활극을 벌인다. 덩치들은 바로 박회장이 고용한 “은갈치파” 였지만 그들과 활극을 벌인 사내들은 미술품을 전문으로 모으는 수수께끼의 조직인 “피카소파” 였던 것이다. 가까스로 도망친 소미는 이 사태가 영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마음을 좀 더 당차게 먹고 본격적으로 박회장을 골탕 먹이기로 작심하고 계획을 꾸민다. 계란에 바위치기 밖에 되지 않을 무모한 소미의 계획은 과연 무사히 성공할 것인가. 그리고 몇 해 전 방송 기자에게 폭로되었지만 정·관·언(政官言) 인맥을 총동원으로 가까스로 무마시킨 박회장의 “그림 창고”는 과연 그 실체를 드러낼까? 페이지가 거듭될수록 전대미문의 모험이자 사기극이 점입가경에 치닫게 된다.

 

이야기를 요약한다면 사채 때문에 절절 매는 애인과 누이를 위해 기껏 자동차 자해 공갈단으로 나섰건만 하필이면 대재벌가의 차인데다가 거기에 그들이 훔친 것이 집권당 총수에게 보내는 뇌물성 그림과 돈이었다는 재수 옴 붙어 버린 남녀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는데 그런 그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렸다면 일종의 정치 소설이라 할 수 있겠고 오히려 더 현실적이었겠지만 엉뚱하게도 그들이 재벌 회장과 깡패들에 맞서 사상 최대의 비리를 밝혀낸다니 일견 황당하고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그런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책 페이지를 거듭할 수 록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활극과 사기극이 너무나 아슬아슬해서 눈길을 잠시라도 뗄 수 없게 만들고, 마지막의 깔끔하고 통쾌한 결말이 절로 가슴을 다 시원하게 해주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참 재미있고 신나는 그런 책이었다. 몇 해 전 비자금과 편법 증여를 위해 미술품을 거래했다는 것이 드러나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그 사건”이 절로 떠오르게 되는 이 책에서 재벌 회장과 미술관 관장은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논조로 자신들을 변론한다. 즉 박회장은 그동안 나라 발전을 위해 기여한 공로를 따져 본다면 국민들이 그림으로 비자금을 돈 세탁했다고 욕할 게 아니라 오히려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미술관 관장은 예술이 순수했던 적이 없었다며 미술품을 가지고 돈 세탁하는 것도 예술 행위의 일부분이고 재벌 기업이 뒤에서 봐주지 않으면 예술도 예술가도 없다고 주장한다. 경제와 예술 발전을 위해 기여한 그들이 무슨 죽을 죄를 지은 거 마냥 비난받고 손가락짓을 당하는 게 못내 억울하다는 이야기이겠지만 전혀 납득도 안가고 마냥 얄밉기만 한 그런 소리이다. 그런 그들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을 소미와 일행들에게 멋지게 한 방 먹고 재기불능의 상황에까지 추락해버린다니 그 실현 가능성과 개연성 - 작가는 이 소설 속 내용이 허구(虛構)라고 말하면서도 책 처음 시작에 “이 소설엔 의외로 사실인 게 더 많다”는 문구를 써놓는다 -을 차치하고 나서라도 이 얼마나 통쾌하고 신나는 이야기인가.

 

작가가 허구이며 풍자소설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으니 굳이 이 책에서 정경(政經) 비리를 연관시킬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고 그저 재미있고 신나는 이야기로 즐기면 좋을 것 같다. 이 작가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인데 <미술관의 쥐>, <수상한 미술관>, <미술관 점거사건> 등 미술관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로 더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 정도의 재미를 줄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다른 작품도 선뜻 손이 갈만한 그런 작가인 것 같다. 특히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미술관의 쥐>는 일본 고단샤 '아시아 본격 미스터리 선집'에 한국 대표작으로 선정되었고, 국내 대중소설로는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고 하니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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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
코바야시 야스미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코바야시 야스미(小林泰三)”의 추리소설 <밀실·살인(원제 密室殺人/북홀릭/2011년 11월)>의 제목인 “밀실”과 “살인” 사이에는 “가운뎃점(centered dot)” - 책 표지를 자세히 보면 “밀실”과 “살인”을 줄을 바꿔서 표시해놓고 두 줄의 가운데 붉은색으로 작은 점이 찍혀 있다 -이 찍혀 있다. 밀실살인이야 추리소설에서 워낙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트릭인데 굳이 제목 사이에 점을 찍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흔한 밀실살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표시일까 아니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반전(反轉)이 숨어 있다는 일종의 은유(隱喩)일까.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운뎃점”의 의문이 풀리게 된다. 그리고.......읽는 내내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의외의 반전에 소름이 돋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만드니 두가지 모두를 이뤄낸 그런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한 노부인이 “타니마루” 경부의 소개로 요리카와 탐정 사무소를 찾고 신비주의를 자처하는 “요리카와 진” 탐정 대신에 조수인 “요츠야 레이코”가 그녀를 맞는다. “니시나” 부인이라고 소개하는 노부인은 요츠야에게 자신의 아들의 살인 누명을 벗겨달라고 의뢰한다. 니시나 부인의 의뢰와 요츠야가 사건 현장에 가서 사건을 조사한 결과 사연인즉 이렇다. 니시나 부인의 아들과 그의 아내 , 집안 변호사, 그리고 아내의 친구가 함께 “아지” 산에 있는 별장을 찾아갔는데, 서로 아들과 아내의 이혼 문제 때문에 말다툼을 하다가 아내가 나머지 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남은 세 사람이 모두 그 방 앞에 모여 이야기를 더 나누고 있던 중 잠시 후 방안에서 비명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놀란 세 사람은 방문을 열려고 하지만 디지털 키 잠금 장치가 되어 있어 열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옆방의 창문을 통해 그 방으로 넘어가려고 옆방으로 들어가지만 창문 너머 강가에 아내로 짐작되는 여인이 얼음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남편과 변호사는 헐레벌떡 아내를 확인하려 눈 덮인 길을 헤치며 강가로 달려가는데, 그 여인이 짐작대로 아내였음을 알게 된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내, 뒤늦게 경찰에 신고해 보지만 소생시키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고, 현장에 있던 남은 세 사람은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된다. 그런데 사건 수사를 지휘하게 된 “타니마루” 경부는 당혹해 한다. 여인이 죽은 방을 열쇠를 뜯고 들어가 보지만 안의 창문은 단단히 잠겨 있어서 이른바 “밀실”이었고, 용의자 세 사람은 여인이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오지 않았다고 진술한다. 그런데 시체는 밀실 밖에서 발견되다니. 즉 밀실과 살인이 분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수사부와 요리카와 탐정 대신에 먼저 사건 현장에 파견 나온 요츠야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밀실 살인’은 법률 용어도 아니고 경찰 용어도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엄밀히 따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꼭 구분을 하고 싶으시면, ‘밀실’과 ‘살인’ 중간에 가운뎃점을 찍는 게 어떨까요? ‘밀실’이 하나 있고, 살인사건도 발생했으니까요.”

 

즉 제목에서의 가운뎃점은 “밀실”과 “살인”을 분리하는 구분점인 셈이다.

 

(이하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피해자가 밀실에 들어갔지만 시신은 밀실 밖에서 발견된다는 사건 설정,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는 신비주의 탐정 요리카와와 전직 경찰이었지만 시체만 보면 기절해대는 조수 요츠야라는 설정과 의뢰의 목적이 사건 해결이 아니라 범인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만을 입증해달라는 노부인의 의뢰가 색다르고 독특한 맛이 없지 않지만 책 종반에 이르기까지 전개가 지지부진하고 별장이 위치한 아지산의 기괴한 전설과 죽은 여인의 유령이 등장하는 등 밑도 끝도 없는 호러 코드가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 결국 지루하기만 한 전개는 종반부에 이르러 모든 용의자와 경찰들을 사건 현장인 별장에 모아 놓고 숨어서 수사하던 탐정이 “깜짝” 등장하여 사건의 전말을 소개하는 “김전일” 식으로 막을 내리는 데 역시나 예상대로 사건은 전형적인 밀실 트릭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오히려 헛웃음이 지어질 정도로 싱겁게 결말이 나고 만다. 물론 1차 설명이 끝난 후에 탐정이 조수에게 숨은 진상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약간 반전이 있긴 하지만 그 부분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결말이었으니 맥이 다 풀릴 정도로 어이가 없게 느껴졌다. 뭐야 이거 하는 마음에 책장을 덮었는데 뭔가 찜찜했다. 작가 이력을 보니 일본 호러소설대상 단편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SF매거진 독자상 수상 등 호러와 SF, 본격 미스터리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보인 일본의 유명 미스터리 작가라고 하는데 이런 정도의 밀실 트릭으로 그렇게 유명세를 치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뭔가 의문스런 대목들이 금세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밀실에 “깜짝” 등장한 탐정, 그런 등장에 놀라기 보다는 당혹스러워 하는 주변 인물들, 죽은 여인의 유령이 나타나지만 탐정의 손짓에 사라져 버리고, 사건이 다 해결된 후 타니마루 경부의 이상한 말들 등등 이상한 점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래서 결말 부분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었다. 그제야 “아!” 라는 경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이 책의 트릭은 결코 제목이기도 한 “밀실”과 “살인”이 아니었다. 바로..... 탐정과 조수, 이 두 등장인물이 바로 트릭이었던 것이다! 순간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제서야 요시카와 탐정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단지 신비주의나 재미있게 하기 위한 코믹스러운 설정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필연의 이유가 있었다는 점을, 뜬금없다 싶었던 호러 코드들과 조수 요츠야의 과거들 - 그것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왜 이 책의 시점이 요츠야 1인칭 시점일 수 밖에 없었는지 그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오히려 뒤늦게 깨달은 미스터리가 빈약하게까지 느꼈던 밀실 살인 트릭의 밋밋함을 한방에 날려버릴 정도로 소름끼치는 반전이었던 셈이다.

 

이 책을 일본식 추리소설 장르로 분류한다면 밀실과 살인이라는 본격추리를 주 얼개로 하고 있지만 사실은 작품 초반부터 작가가 대놓고 독자들을 속이기로 맘먹고 설계한 “서술트릭” 또한 주된 트릭인 복합장르의 추리소설이라고 분류할 수 있겠다. 물론 밀실과 살인의 본격 추리보다는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서술 트릭이 더 매력적이라고 할까? 독자들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속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서술트릭의 미덕이라면 이 작품, 그 미덕을 제대로 살린 그런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그리고 이미 읽었지만 작가가 숨겨놓은 트릭을 미처 간파하지 못한 분들께 주제넘지만 당부의 말씀으로 이 감상을 마무리해야겠다. 밀실 트릭이 엉성하다고 그냥 책을 덮어 버리지 말길 바란다. 마지막 결말 부분을 찬찬히 그리고 세밀하게 읽는다면 놀라운 반전이 당신을 일순 멍하게 만들 것이다. 역자가 후기에서 말한 가슴 먹먹한 “그것”의 정체를 꼭 놓치지 말기를 감히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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