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브레이크 호텔
서진 지음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에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 ~ 1745)”가 “시간여행자(Time Traveller)"였다는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방송에서는 시간여행자의 증거로 소설에 등장하는 ‘끊이지 않고 반짝이는 불빛’이 현대의 형광등을 의미하고, 또한 하늘을 날아다니는 섬인 “라퓨타”와 우주인에 대한 표현이 현대의 우주선과 우주인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며, 소설 속에서 화성 주위를 돌고 있는 두 개의 위성에 대한 묘사가 151년 뒤 밝혀진 사실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식 이야기지만 “시간여행자”라는 해석이 참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인터넷에 시간여행자의 증거 사진들이라고 해서 화제가 된 몇 몇 사진들을 본 기억이 난다. 대부분 착각이나 또는 조작으로 밝혀졌지만 그래도 꽤나 그럴싸한 사진들이었다. 아뭏튼 시간여행은 실재(實在)와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UFO와 함께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소재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번에 이런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독특한 우리 소설을 만났다. 바로 “서진”의 <하트브레이크 호텔(예담/2011년 11월)>이 그 책이다.

 

 

책은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편들은 부산, 샌프란시스코, 도쿄, 마이애미, 라스베가스 등 세계 곳곳의 7개의 도시를 무대로 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등장한 곳이 바로 제목이기도 한 “하트 브레이크(Heart Break)" 호텔이다. 하트 브레이크, 직역(直譯)하면 ”심장이 깨지다“라는 뜻 일 텐데 심장이 깨질 것 같이 지독한 슬픔, 즉 ”비통(悲痛)”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호텔이 일종의 시간여행자들의 통로 역할을 한다. 즉 이 호텔을 통해서 과거의 “어떤” 시간으로 여행을 하고, 이곳을 통해서 다시 자신들의 시간대로 귀환하는 곳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의 시간여행은 “H.G.웰스”의 <타임머신>처럼 실제 과거로 가는 그런 여행일까? 작가가 시간여행 기술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고 있진 않지만 단편들에서 제시한 단서들을 종합해보면 이 소설에서 시간여행은 ‘Chew-X’라는 약물을 통해 자신의 과거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종의 가상체험 스타일로 보여진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 속의 가상현실이나 영화 <토탈 리콜>에서의 기억 조작과 같은 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평행우주(平行宇宙)” 개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시간여행의 방식이 불분명하지 않은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책에서 시간여행은 일종의 소재로 등장할 뿐 그 “방법”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단편들 속 등장인물의 각자의 “사연”들이 바로 작가가 독자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일테니 말이다.

 

 

책의 첫 시작과 마지막은 <황령산 드라이브>를 PART1,2로 나누어 배치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장치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출판사 소개글에는 소설의 입구이자 출구로 역할을 하는 “뫼비우스 띠”처럼 작용한다고 설명하는데, 이야기의 연계성은 있겠지만 끝없이 순환 반복되는 뫼비우스 띠와의 연관성은 딱히 발견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작품인 <두번째 허니문>부터 본격적인 시간여행자들의 이야기 - 물론 <황령산 ~>PART1 편도 시간 여행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지지만 짐작해볼만한 힌트들은 없었다 - 가 전개되는데, 서로가 다른 지역이지만 공통적으로 “하트브레이크” 호텔이 여행의 출발이자 종료 공간으로 등장한다. 이야기들은 애절한 사랑 이야기 - <두번째 허니문>, <당신을 위한 테러>-도 있고, 시간 여행임을 직접 언급하는 이야기 - <미래귀환명령>, <황령산 드라이브> Part2 - 도 있지만 좀비가 등장 - <휠 오브 포춘>- 하고, 머릿 속에 핸드폰이 들어가 버리는 - <내 머릿속의 핸드폰> - 등 시간여행과는 다소 거리가 먼 기묘한 이야기들도 실려 있다. 이처럼 이야기들은 제각각이지만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어서 금세 읽을 수 있었던 재미있는 책이었지만 “오드리 니페네거”의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서처럼 애잔한 감동이나 깊은 여운을 느껴볼 수 는 없었다.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감동 코드는 부족했다고 할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소재적 실험과 이야기 구성력만큼은 결코 녹록치 않은 작가임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그런 소설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끝으로 나는 이 소설의 작가를 “여성”으로 알았다가 다 읽고 나서 작가가 “남성”이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었다는 사실을 밝혀둬야겠다. 이런 오해를 왜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선 작가의 이름인 “서진”을 여성의 이름으로 착각을 했고, 책 첫 단편에서 등장하는 여학생들의 동성애 장면들 - 남자가 상상으로 썼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구체적으로 그럴싸하게 묘사하고 있다 -, 그리고 이야기들 곳곳에서 묻어나는 감성(感性)적인 면들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듯 하다. 나 혼자만의 오해였겠지만 나에게는 “반전(反轉)”이 되어 버린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