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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거짓말 - 명화로 읽는 매혹의 그리스 신화 ㅣ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회화, 조각 등 미술에는 영 문외한(門外漢)이다 보니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도 “루브르 3종 세트”, 즉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일명 니케상> - 관광객들이 워낙 많이 찾는 미술품이다 보니 곳곳에 찾아가는 길 안내 표지판이 있다 - 만 유심히 살펴봤을 뿐 나머지 작품들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관람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내가 갔을 당시에는 한국어 서비스도 없었고 루브르 소개 책자 또한 챙겨 가질 않아 그림들을 보면서도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본 것 같은 그림들만 눈에 들어올 뿐 대부분 영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그림들이었다. 그러다가 가이드와 함께 관람중인 한국 단체 관광객들을 만나 그들 틈에 껴서 같이 구경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을 이끌던 가이드의 엉터리 해설에 실소를 자아냈던 기억이 난다. 이 가이드, “앙투안 드니 쇼데”의 조각인 <에로스>를 기독교의 천사 “가브리엘”이라고 소개를 하고, “줄리오 로마노”의 <비너스와 불카누스(Vénus et Vulcain)>는 추한 용모의 악신(惡神)이 사랑의 여신을 강제로 취하는 불경(不敬)한 그림으로 뒤바꿔 버리지 않나, “프랑수아 부세”의 <다이아나의 목욕(Bain de Diane)>은 성모(聖母) 마리아로 둔갑해 버렸으며, “테오도르 샤세리오”의 <아폴로와 다프네(Apollon et Daphné)>는 중세 기사(騎士)의 애절한 사랑 고백으로 소개 - 이 그림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이드의 설명이 워낙 기상천외해서 한국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일일이 확인해 본 것이다 - 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대해 기초 상식만 있었다면 그림을 모르더라도 제목만 들어도 이 그림이 무슨 내용을 그린거구나 하고 알았을 텐데 그리스신화에 대해 전혀 모르다 보니 엉뚱한 설명만 해댄 것이다. 지금은 한국어 안내 시스템이 잘 구비되어 있다고 하니 그 가이드도 더 이상 루브르에서 안내를 하고 있지 않겠지만 혹 그녀가 아직도 루브르에서 가이드를 한다면 권하고 싶은 책이 하나 있다. 바로 명화(名畵) 들 속에 담겨진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엮어낸 “나카노 교코” 교수의 <명화의 거짓말(원제 中野京子と讀み解く名畵の謎 ギリシャ神話篇 / 북폴리오 / 2011년 12월)>이 그 책이다.
작가는 서문(序文)에서 그리스 신화는 이야기의 보고(寶庫)이자 모든 소설의 원형이 여기 담겨 있대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하며, 여러 화가들이 신화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던 것은 화가들 자신이 흥미를 느꼈을 뿐 아니라 그림을 주문한 왕후 귀족과 부유한 계급도 이를 원했다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화를 보면서 그리스 신화를 피할 길은 없지만 그렇다고 괜히 긴장하거나 예술을 감상한다며 격식을 갖출 필요는 없으며, 옛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락’으로 즐기면 되는 것이고, 최소한의 지식만 있다면 애초에 이야기 자체가 충분히 재미있기 때문에 이를 묘사한 그림 또한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즉 이 책, 그리스 신화를 묘사한 그림들을 감상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을 담아놓은 그런 책이라는 설명인 셈이다.
본문에 들어서면 우선 올림푸스 12주신들의 계보를 간략하게 도표로 설명하고는 제일 먼저 신들의 제왕이자 바람둥이 신으로도 유명한 <제우스(Zeus)>에 대한 신화와 그림들을 소개한다. 첫 장에는 그리스의 7대 영웅이자 메두사를 죽인 것으로 유명한 “페르세우스”의 어머니인 “다나에”와 제우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데, 관련 그림으로 “렘브란트 판 레인”의 <다나에(1636)>를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렘브란트의 시대, 즉 중세 유럽에서는 미인의 기준이 자그마한 가슴에 임신부로 착각할 만큼 부푼 복부, 살집이 두터운 하반신이 바로 이상적인 누드였다고 이야기한다. 워낙 유명한 신화이다 보니 다나에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여럿 있지만 대부문 연기가 서툰 미녀 배우처럼 자신의 외모에만 의지할 뿐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 - 대표적으로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다나에>를 작은 그림으로 예를 들고 있다 -이지만 렘브란트가 그린 다나에는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역시 “빛과 어둠의 화가”로 불렸던 화가였던 지라 이 그림에서도 절묘하게 빛을 묘사하여, 제우스의 남성성을 상징했으며, 절정이 찾아오기 직전 - 제우스가 황금빛으로 그녀에게 깃드는 - 의 짜릿한 설렘을 빛으로, 그것도 미묘한 암시로써 묘사한 것은 렘브란트이기 때문에 가능한 천의무봉의 기교라고 설명한다. 이에 버금가는 걸작으로 270년 후 그려진 “구스타프 클림프”의 <다나에(1907)>를 소개하면서 렘브란트의 그림이 다나에에게 깊은 인간적인 매력을 부여하여 황홀한 예감에 사로잡힌 인물로 묘사했다면 클림프의 그림은 지극히 근대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여성의 성에 대한 환희를 긍정하고 황홀감 그 자체를 시각화시킨 그림으로 서로 쌍벽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제우스 편이 끝나면 차례대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태양의 신 “아폴론”을 소개하고, 나머지 신들은 “그 외 신화”로 한데 묶어 소개하고 있다. 인상적인 그림이라면 책 표지 그림이기도 한 “장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1882)>와 “피트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1555)>, 앞서 루브르 그림으로 잠깐 언급했던 “프랑수아 부세”의 <다이아나의 목욕(1742)>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 외에도 미술 교과서나 미술 관련 교양 서적들에서 한 두 번씩 만나봤을 많은 그림들이 실려 있다.
이 책이 그간 만나본 <그리스 신화 해설서> - 토마스 불핀치나 이윤기님의 작품들 - 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신화 해설서들은 신화 텍스트(Text)를 주로 하고, 이를 소재로 한회화나 조각들은 대표적인 작품 몇 몇 들만 삽화 형식으로 화가 이름과 작품명, 박물관 등 소재지 정도만 간략하게 싣고 있는데 반해, 이 책은 그림을 두 페이지에 걸쳐 크게 싣고 그림 구석구석의 특징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신화를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이 책은 그림들이 주이고 신화를 보조 텍스트로 활용한 점이 다르다고 할까? 또한 신화 해설서처럼 신들의 계보나 일화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진 않지만 서문에서처럼 그림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 이상을 담아내고 있어 그림 해설서 이상의 재미있는 읽을 꺼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즉 눈요기로서의 즐거움과 이야기의 재미를 함께 가지고 있는 그런 책이라고 할까? 그리스 신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회화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신화를 잘 모르는 분이라면 신화 입문서로써의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 책 꼭 챙겨두었다가 다음에 루브르에 갈 때 그 한국인 엉터리 가이드에게 꼭 선물해주고 싶다. 그녀가 아직도 루브르에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