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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
코바야시 야스미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코바야시 야스미(小林泰三)”의 추리소설 <밀실·살인(원제 密室殺人/북홀릭/2011년 11월)>의 제목인 “밀실”과 “살인” 사이에는 “가운뎃점(centered dot)” - 책 표지를 자세히 보면 “밀실”과 “살인”을 줄을 바꿔서 표시해놓고 두 줄의 가운데 붉은색으로 작은 점이 찍혀 있다 -이 찍혀 있다. 밀실살인이야 추리소설에서 워낙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트릭인데 굳이 제목 사이에 점을 찍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흔한 밀실살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표시일까 아니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반전(反轉)이 숨어 있다는 일종의 은유(隱喩)일까.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운뎃점”의 의문이 풀리게 된다. 그리고.......읽는 내내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의외의 반전에 소름이 돋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만드니 두가지 모두를 이뤄낸 그런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한 노부인이 “타니마루” 경부의 소개로 요리카와 탐정 사무소를 찾고 신비주의를 자처하는 “요리카와 진” 탐정 대신에 조수인 “요츠야 레이코”가 그녀를 맞는다. “니시나” 부인이라고 소개하는 노부인은 요츠야에게 자신의 아들의 살인 누명을 벗겨달라고 의뢰한다. 니시나 부인의 의뢰와 요츠야가 사건 현장에 가서 사건을 조사한 결과 사연인즉 이렇다. 니시나 부인의 아들과 그의 아내 , 집안 변호사, 그리고 아내의 친구가 함께 “아지” 산에 있는 별장을 찾아갔는데, 서로 아들과 아내의 이혼 문제 때문에 말다툼을 하다가 아내가 나머지 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남은 세 사람이 모두 그 방 앞에 모여 이야기를 더 나누고 있던 중 잠시 후 방안에서 비명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놀란 세 사람은 방문을 열려고 하지만 디지털 키 잠금 장치가 되어 있어 열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옆방의 창문을 통해 그 방으로 넘어가려고 옆방으로 들어가지만 창문 너머 강가에 아내로 짐작되는 여인이 얼음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남편과 변호사는 헐레벌떡 아내를 확인하려 눈 덮인 길을 헤치며 강가로 달려가는데, 그 여인이 짐작대로 아내였음을 알게 된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내, 뒤늦게 경찰에 신고해 보지만 소생시키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고, 현장에 있던 남은 세 사람은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된다. 그런데 사건 수사를 지휘하게 된 “타니마루” 경부는 당혹해 한다. 여인이 죽은 방을 열쇠를 뜯고 들어가 보지만 안의 창문은 단단히 잠겨 있어서 이른바 “밀실”이었고, 용의자 세 사람은 여인이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오지 않았다고 진술한다. 그런데 시체는 밀실 밖에서 발견되다니. 즉 밀실과 살인이 분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수사부와 요리카와 탐정 대신에 먼저 사건 현장에 파견 나온 요츠야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밀실 살인’은 법률 용어도 아니고 경찰 용어도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엄밀히 따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꼭 구분을 하고 싶으시면, ‘밀실’과 ‘살인’ 중간에 가운뎃점을 찍는 게 어떨까요? ‘밀실’이 하나 있고, 살인사건도 발생했으니까요.”
즉 제목에서의 가운뎃점은 “밀실”과 “살인”을 분리하는 구분점인 셈이다.
(이하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피해자가 밀실에 들어갔지만 시신은 밀실 밖에서 발견된다는 사건 설정,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는 신비주의 탐정 요리카와와 전직 경찰이었지만 시체만 보면 기절해대는 조수 요츠야라는 설정과 의뢰의 목적이 사건 해결이 아니라 범인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만을 입증해달라는 노부인의 의뢰가 색다르고 독특한 맛이 없지 않지만 책 종반에 이르기까지 전개가 지지부진하고 별장이 위치한 아지산의 기괴한 전설과 죽은 여인의 유령이 등장하는 등 밑도 끝도 없는 호러 코드가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 결국 지루하기만 한 전개는 종반부에 이르러 모든 용의자와 경찰들을 사건 현장인 별장에 모아 놓고 숨어서 수사하던 탐정이 “깜짝” 등장하여 사건의 전말을 소개하는 “김전일” 식으로 막을 내리는 데 역시나 예상대로 사건은 전형적인 밀실 트릭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오히려 헛웃음이 지어질 정도로 싱겁게 결말이 나고 만다. 물론 1차 설명이 끝난 후에 탐정이 조수에게 숨은 진상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약간 반전이 있긴 하지만 그 부분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결말이었으니 맥이 다 풀릴 정도로 어이가 없게 느껴졌다. 뭐야 이거 하는 마음에 책장을 덮었는데 뭔가 찜찜했다. 작가 이력을 보니 일본 호러소설대상 단편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SF매거진 독자상 수상 등 호러와 SF, 본격 미스터리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보인 일본의 유명 미스터리 작가라고 하는데 이런 정도의 밀실 트릭으로 그렇게 유명세를 치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뭔가 의문스런 대목들이 금세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밀실에 “깜짝” 등장한 탐정, 그런 등장에 놀라기 보다는 당혹스러워 하는 주변 인물들, 죽은 여인의 유령이 나타나지만 탐정의 손짓에 사라져 버리고, 사건이 다 해결된 후 타니마루 경부의 이상한 말들 등등 이상한 점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래서 결말 부분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었다. 그제야 “아!” 라는 경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이 책의 트릭은 결코 제목이기도 한 “밀실”과 “살인”이 아니었다. 바로..... 탐정과 조수, 이 두 등장인물이 바로 트릭이었던 것이다! 순간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제서야 요시카와 탐정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단지 신비주의나 재미있게 하기 위한 코믹스러운 설정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필연의 이유가 있었다는 점을, 뜬금없다 싶었던 호러 코드들과 조수 요츠야의 과거들 - 그것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왜 이 책의 시점이 요츠야 1인칭 시점일 수 밖에 없었는지 그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오히려 뒤늦게 깨달은 미스터리가 빈약하게까지 느꼈던 밀실 살인 트릭의 밋밋함을 한방에 날려버릴 정도로 소름끼치는 반전이었던 셈이다.
이 책을 일본식 추리소설 장르로 분류한다면 밀실과 살인이라는 본격추리를 주 얼개로 하고 있지만 사실은 작품 초반부터 작가가 대놓고 독자들을 속이기로 맘먹고 설계한 “서술트릭” 또한 주된 트릭인 복합장르의 추리소설이라고 분류할 수 있겠다. 물론 밀실과 살인의 본격 추리보다는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서술 트릭이 더 매력적이라고 할까? 독자들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속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서술트릭의 미덕이라면 이 작품, 그 미덕을 제대로 살린 그런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그리고 이미 읽었지만 작가가 숨겨놓은 트릭을 미처 간파하지 못한 분들께 주제넘지만 당부의 말씀으로 이 감상을 마무리해야겠다. 밀실 트릭이 엉성하다고 그냥 책을 덮어 버리지 말길 바란다. 마지막 결말 부분을 찬찬히 그리고 세밀하게 읽는다면 놀라운 반전이 당신을 일순 멍하게 만들 것이다. 역자가 후기에서 말한 가슴 먹먹한 “그것”의 정체를 꼭 놓치지 말기를 감히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