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소설 자체도 많이 읽지만 독자들의 서평(書評)들도 자주 찾아 읽게 된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 특히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는데 크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같은 책을 읽었지만 서로 다른 느낌을 이야기하는 다른 독자들의 글에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는 재미가 제법 신선하고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리소설 서평들을 읽다보면 꼭 만나게 되는 닉네임이 있었다. 바로 인터넷 서점인 알라딘 서재에서 “만두의 추리 책방”을 운영하시던 “물만두”님이다. 내가 읽어온 책들 뿐만 아니라 꼭 읽고 싶었던 책들을 눌러보면 어김없이 물만두님의 서평들이 올라와 있었고 그분의 서평들을 읽으며 내 감상과 비교도 해보고 책 구입 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추리소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닉네임이 바로 “물만두”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난 그분을 추리소설들에 달린 서평글로만 만났지 그분이 어떤 분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분의 서재도 가끔씩은 들어가 봤지만 역시 추리소설 서평들만 읽었을 뿐 그분이 올린 개인적인 일상에 대한 글들은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2010년 12월 어느날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 게시글을 통해 그분의 부음(訃音)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내가 알고 있던 “물만두”님이 맞는지 의아해서 그분의 서재에 들어가 봤더니 이미 그분을 아는 많은 분들의 추모 댓글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처음 든 생각은 죄송스럽게도 슬픔이나 안타까움보다는 이제 추리소설들에 한결 같이 달려 있을 그분의 글들을 읽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예전 가수 김광석의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도 첫 생각은 슬픔보다도 언제나 그를 만날 수 있었던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 가도 그를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과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분의 부음 기사와 추모 댓글을 통해서야 그분이 나와 비슷한 연배의 여성분이라는 것을 알았고, 오랜 기간 동안 병마와 싸워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분이 떠나고서야 그분의 삶의 일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셈이다. 그 이후로 그분의 닉네임을 딴 추리소설 리뷰대회에 응모도 하고, 간간히 그분 서재에 들어가 추모 댓글들이나 과거 글들을 읽곤 했었는데, 역시나 그분의 새로운 글들을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가시지 않았었다. 1년여가 지난 지금 그분을 두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는 그분의 추리소설 서평들을 엮어낸 <물만두의 추리책방>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공개 일기를 모은 에세이 <별 다섯 인생(바다출판사/2011년 12월)>이다. 그 중 먼저 그분의 속삶을 엮어낸 에세이부터 만나게 되었다. 책 앞표지 책띠 속 그분의 작은 흑백 사진, 병마의 고통이 컸다고 들었는데 그런 아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밝은 모습의 그분의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생기신 분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표지를 열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2003년 12월부터 그녀의 마지막 인사가 되어 버린 2010년 10월 20일까지의 일기와 서재 게시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프롤로그 <만두의 진실 또는 고백(2004.9.3)>에서 그녀는 자신이 앓고 있던 병에 대해 털어놓는다. 아마도 그녀가 아프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밝힌 글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진행성 근육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상태는 일어나는 건 못하고 자다가 한 번은 뒤집어 줘야 하며 깨면 일으켜 줘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아픔에 의연하게 대처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인생을 살고 또 다른 사람은 저런 인생을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가끔 엄마가 “하필이면.......” 하시는데,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자신이라도 상관없다는,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인생을 사는 건 재미없는 일이며 그저 자신 나름대로 즐겁고 재미나게 살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조물주가 아홉 개의 건강한 공과 한 개의 병든 공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게 하셨는데, 그중 병든 공 한 개를 골랐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자신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불행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니 남들도 그런 걱정일랑 마시길 하고 씩씩하게 말하고 있다. 보통 오랜 병마에 시달리다가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수기를 보면 온통 좌절과 슬픔이 가득한데 이런 의연함과 씩씩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본문에 들어서면 그 이유를 짐작해볼만한 글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그녀의 밝고 긍정적인 성품(性品)을 들 수 있겠다. 그녀는 아픈 몸 때문에 참 많이도 넘어지고 다쳐서 반창고를 늘 달고 다니지만 그저 해프닝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또한 프롤로그의 글처럼 스물 다섯 나이에 시작된 병에 대해서도 그저 여러 인생 중에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뿐 전혀 동정 받을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하며 나음대로 즐겁고 재미있게 살 생각이라고 말한다.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지만 그 또한 그녀의 밝고 낙천적인 성격 앞에서는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을 끈질긴 사람이라고, 자신의 병도 그런 자신에게 정 떨어져 나가 버릴지 모를 일이라는 그녀의 말 속에 그녀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거기에 가족들의 사랑 또한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은 가지고 싶은 거 다 가져보지 못하고 살았지만 자식들에게만은 그렇지 않고 싶다며 먼저 선물을 내미는, 그러면서도 건강식품과 식탐만큼은 결코 양보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딸 병수발하면서도 전혀 힘든 내색하지 않고 집안에 머물 수 밖에 없는 딸을 위해 사진기로 꽃을 찍어 보여주는 어머니, 때로는 언니와 먹는 걸로 다투기도 하고 언니가 책으로 한번 써봐라 할 정도로 짠순이 동생이지만 속내 깊은 곳에는 언니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여동생 “물만순” - 실제 이름은 참 예쁜데 “물만두” 언니 덕분에 동생들이 다 무슨 “만”자가 돌림자처럼 닉네임에 붙였다 - , 무슨 낮잠을 택배기사의 초인종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푸지게 자서 종종 경비실에서 택배를 찾아오게 하지만 제대 후 혼자 제대로 걷지 못하는 누나 때문에 속상해 대성통곡했다는, 역시 누나에 대한 사랑만큼은 깊었던 남동생 “만돌이”.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를 보살피고 배려해줘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가족”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음식 가지고 다투기도 하고, 아버지 선물 살 때 돈 모으는것 가지고 “꼼수”도 부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이 그녀가 잠시나마 자신의 병을 잊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의 그녀에 대한 사랑만큼은 어찌나 따뜻하고 속 깊은지 읽는 내내 부러움이 다 들 정도였다. “오랜 병고에 효자 없고 형제없다”는 말이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가족 모두가 힘들고 지친다는 뜻이겠지만 이 가족에게만큼은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슴 한 구석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픔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씩씩한 그녀도 아픈 딸을 보살펴야 하는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은 숨기지 못한다.
세상의 어느 자식이 자기 입으로 효자라고 말할까마는 건강한 자식, 안 아픈 자식은 무조건 효자다.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모두 건강하시길. 부모 마음 아프지 않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사시길. 그리고 부모님은 자식 마음 아프지 않게 건강 돌보시길. 건강하다는 건 세상에 나와 이미 한 가지 복은 받은 셈이니까. 그래서 가끔 나는 부럽다.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충분히 행복한 사람들이여. 2005.01.31. - P.150
세 번째는 10년간 올린 서평이 1,838 편에 이를 정도인 책에 대한, 특히 추리소설에 대한 사랑을 꼽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녀는 하필이면 왜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로맨스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는 데미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도 슬픔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다.
슬픔이 더 큰 슬픔과 연민을 동반하고,
가슴에 침잠해 있던 것들까지 부유하게 만드니
가슴이 먹먹해서 기분이 가라앉기 십상이다.
지금도 사랑이야기를 읽고 나서 가라앉은 상태다.
기분을 바꿔보려 애를 쓰지만 왠지 귀찮다.
그래서 추리소설만 읽는다. 2006.02.27 - P.288
결국 병마 때문에 그녀의 감성이 메말랐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더 풍부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달달한 로맨스 소설에 자신의 감성이 흔들릴까 두려워서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닐까? 그녀의 감성은 몇몇 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아파서 자다 깨다 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침에도 후유증이 남는다.
다가오는 날들을 기다리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매번, 매시간, 매일, 오는 날들이여.
반기지 않아도 되갰지 작별은 의식없이.
언젠가 내가 떠나도 괘념하지 마시길, 아주 먼 언젠가.
오늘은 우울이 똬리를 뜬다.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지니고 있기로 했다.
이런날도 있는법.
울고 싶음 울고 우울하고 싶음 우울에 나를 던진다.
그래도 나는 빠져나올 자신이 있으니까. 2006.11.21. - P.267
나,너,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나, 너, 그리고 사랑이 있다가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나와 너는
남았으니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다. 나와 네가 사라지고 사랑
이 남는다해도 그 사랑 또한 좋은 것이니 족하다. 나, 너, 그리고
사랑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모두 함께 사라졌으니 슬픔은 남지 않
아 좋지 않을까. 나와 사랑만 남거나 너와 사랑만 남는다면 그
남은 한자리는 슬픔이고 그리움이고 아쉬움일테니. 2006.11.18. - P.337
어쩌면 그녀 마음 속 저 깊은 곳에는 감당하기 힘든 아픔과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아파하거나 또는 고통의 신음으로 드러내지 않고 의연하게 이겨내려 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한 것 같다. 적어도 추리소설만큼은 감정이 이리저리 흔들릴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저 재미있게 읽고 즐기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밝았던 그녀, 결국은 “그럼 건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 아 심한 건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 2010.10.20.”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2010년 12월 13일 세상과 작별하고 말았다. 어느 누구도 저 글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을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그녀다운” 인사였다. 마흔 살 너머 오토바이로 세계 일주 하겠다던 김광석은 마흔이 되기도 훨씬 전인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서른까지만 살고 싶다던 그녀는 서른을 훌쩍 넘어 열 두해를 더 살다가 마흔 둘에 우리들과 작별을 했다.
물만두님은 전문 작가도 아니었고, 어쩌면 오늘도 병마에 시달려 신음하고 있을 많은 환우들의 사연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그런 “평범한” 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녀가 남긴 이 일기가 가슴 속에 잔잔하지만 결코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은 울림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앞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바로 삶에 대한 그녀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자기 자신에게도 큰 힘이 되어 주었지만 그녀의 삶을 “읽는” 우리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격려와 용기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미사여구로 과장되게 치장하지 않은 솔직하고 담백한 그녀의 말들이 그녀와 함께 이야기 꽃을 피웠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너무 늦게 만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안타까움과 슬픔 뿐만 아니라 가슴 한 켠을 따뜻하게 만드는 감동을 느끼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북 리뷰어” - 동생 만돌이가 이력서의 누나 직업란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 라면 잘 알고 있을 인터넷 서점에서 책 평가 점수 방법인 “별” 평점은 그녀가 남긴 이 책에, 그리고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그녀의 인생에 대해서도 “별 다섯” 만점을 준다. 별점 후하기로 소문난 나이지만 이렇게 흔쾌하게 만점을 주기는 이전에도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매우 드문 그런 일일 것이다.
그녀의 서재에는 올리지 못했지만 추모 댓글 여기서나마 간단하게 적어본다.
당신이 보여준 책에 대한 애정과 아름다운 삶, 정말 고마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