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섯 인생 -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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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소설 자체도 많이 읽지만 독자들의 서평(書評)들도 자주 찾아 읽게 된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 특히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는데 크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같은 책을 읽었지만 서로 다른 느낌을 이야기하는 다른 독자들의 글에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는 재미가 제법 신선하고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리소설 서평들을 읽다보면 꼭 만나게 되는 닉네임이 있었다. 바로 인터넷 서점인 알라딘 서재에서 “만두의 추리 책방”을 운영하시던 “물만두”님이다. 내가 읽어온 책들 뿐만 아니라 꼭 읽고 싶었던 책들을 눌러보면 어김없이 물만두님의 서평들이 올라와 있었고 그분의 서평들을 읽으며 내 감상과 비교도 해보고 책 구입 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추리소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닉네임이 바로 “물만두”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난 그분을 추리소설들에 달린 서평글로만 만났지 그분이 어떤 분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분의 서재도 가끔씩은 들어가 봤지만 역시 추리소설 서평들만 읽었을 뿐 그분이 올린 개인적인 일상에 대한 글들은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2010년 12월 어느날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 게시글을 통해 그분의 부음(訃音)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내가 알고 있던 “물만두”님이 맞는지 의아해서 그분의 서재에 들어가 봤더니 이미 그분을 아는 많은 분들의 추모 댓글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처음 든 생각은 죄송스럽게도 슬픔이나 안타까움보다는 이제 추리소설들에 한결 같이 달려 있을 그분의 글들을 읽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예전 가수 김광석의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도 첫 생각은 슬픔보다도 언제나 그를 만날 수 있었던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 가도 그를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과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분의 부음 기사와 추모 댓글을 통해서야 그분이 나와 비슷한 연배의 여성분이라는 것을 알았고, 오랜 기간 동안 병마와 싸워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분이 떠나고서야 그분의 삶의 일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셈이다. 그 이후로 그분의 닉네임을 딴 추리소설 리뷰대회에 응모도 하고, 간간히 그분 서재에 들어가 추모 댓글들이나 과거 글들을 읽곤 했었는데, 역시나 그분의 새로운 글들을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가시지 않았었다. 1년여가 지난 지금 그분을 두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는 그분의 추리소설 서평들을 엮어낸 <물만두의 추리책방>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공개 일기를 모은 에세이 <별 다섯 인생(바다출판사/2011년 12월)>이다. 그 중 먼저 그분의 속삶을 엮어낸 에세이부터 만나게 되었다. 책 앞표지 책띠 속 그분의 작은 흑백 사진, 병마의 고통이 컸다고 들었는데 그런 아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밝은 모습의 그분의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생기신 분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표지를 열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2003년 12월부터 그녀의 마지막 인사가 되어 버린 2010년 10월 20일까지의 일기와 서재 게시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프롤로그 <만두의 진실 또는 고백(2004.9.3)>에서 그녀는 자신이 앓고 있던 병에 대해 털어놓는다. 아마도 그녀가 아프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밝힌 글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진행성 근육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상태는 일어나는 건 못하고 자다가 한 번은 뒤집어 줘야 하며 깨면 일으켜 줘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아픔에 의연하게 대처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인생을 살고 또 다른 사람은 저런 인생을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가끔 엄마가 “하필이면.......” 하시는데,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자신이라도 상관없다는,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인생을 사는 건 재미없는 일이며 그저 자신 나름대로 즐겁고 재미나게 살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조물주가 아홉 개의 건강한 공과 한 개의 병든 공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게 하셨는데, 그중 병든 공 한 개를 골랐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자신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불행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니 남들도 그런 걱정일랑 마시길 하고 씩씩하게 말하고 있다. 보통 오랜 병마에 시달리다가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수기를 보면 온통 좌절과 슬픔이 가득한데 이런 의연함과 씩씩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본문에 들어서면 그 이유를 짐작해볼만한 글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그녀의 밝고 긍정적인 성품(性品)을 들 수 있겠다. 그녀는 아픈 몸 때문에 참 많이도 넘어지고 다쳐서 반창고를 늘 달고 다니지만 그저 해프닝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또한 프롤로그의 글처럼 스물 다섯 나이에 시작된 병에 대해서도 그저 여러 인생 중에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뿐 전혀 동정 받을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하며 나음대로 즐겁고 재미있게 살 생각이라고 말한다.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지만 그 또한 그녀의 밝고 낙천적인 성격 앞에서는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을 끈질긴 사람이라고, 자신의 병도 그런 자신에게 정 떨어져 나가 버릴지 모를 일이라는 그녀의 말 속에 그녀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거기에 가족들의 사랑 또한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은 가지고 싶은 거 다 가져보지 못하고 살았지만 자식들에게만은 그렇지 않고 싶다며 먼저 선물을 내미는, 그러면서도 건강식품과 식탐만큼은 결코 양보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딸 병수발하면서도 전혀 힘든 내색하지 않고 집안에 머물 수 밖에 없는 딸을 위해 사진기로 꽃을 찍어 보여주는 어머니, 때로는 언니와 먹는 걸로 다투기도 하고 언니가 책으로 한번 써봐라 할 정도로 짠순이 동생이지만 속내 깊은 곳에는 언니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여동생 “물만순” - 실제 이름은 참 예쁜데 “물만두” 언니 덕분에 동생들이 다 무슨 “만”자가 돌림자처럼 닉네임에 붙였다 - , 무슨 낮잠을 택배기사의 초인종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푸지게 자서 종종 경비실에서 택배를 찾아오게 하지만 제대 후 혼자 제대로 걷지 못하는 누나 때문에 속상해 대성통곡했다는, 역시 누나에 대한 사랑만큼은 깊었던 남동생 “만돌이”.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를 보살피고 배려해줘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가족”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음식 가지고 다투기도 하고, 아버지 선물 살 때 돈 모으는것 가지고 “꼼수”도 부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이 그녀가 잠시나마 자신의 병을 잊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의 그녀에 대한 사랑만큼은 어찌나 따뜻하고 속 깊은지 읽는 내내 부러움이 다 들 정도였다. “오랜 병고에 효자 없고 형제없다”는 말이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가족 모두가 힘들고 지친다는 뜻이겠지만 이 가족에게만큼은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슴 한 구석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픔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씩씩한 그녀도 아픈 딸을 보살펴야 하는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은 숨기지 못한다.

 

 

세상의 어느 자식이 자기 입으로 효자라고 말할까마는 건강한 자식, 안 아픈 자식은 무조건 효자다.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모두 건강하시길. 부모 마음 아프지 않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사시길. 그리고 부모님은 자식 마음 아프지 않게 건강 돌보시길. 건강하다는 건 세상에 나와 이미 한 가지 복은 받은 셈이니까. 그래서 가끔 나는 부럽다.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충분히 행복한 사람들이여. 2005.01.31. - P.150

 

 

세 번째는 10년간 올린 서평이 1,838 편에 이를 정도인 책에 대한, 특히 추리소설에 대한 사랑을 꼽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녀는 하필이면 왜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로맨스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는 데미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도 슬픔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다.

슬픔이 더 큰 슬픔과 연민을 동반하고,

가슴에 침잠해 있던 것들까지 부유하게 만드니

가슴이 먹먹해서 기분이 가라앉기 십상이다.

지금도 사랑이야기를 읽고 나서 가라앉은 상태다.

기분을 바꿔보려 애를 쓰지만 왠지 귀찮다.

그래서 추리소설만 읽는다. 2006.02.27 - P.288

 

 

결국 병마 때문에 그녀의 감성이 메말랐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더 풍부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달달한 로맨스 소설에 자신의 감성이 흔들릴까 두려워서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닐까? 그녀의 감성은 몇몇 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아파서 자다 깨다 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침에도 후유증이 남는다.

다가오는 날들을 기다리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매번, 매시간, 매일, 오는 날들이여.

반기지 않아도 되갰지 작별은 의식없이.

언젠가 내가 떠나도 괘념하지 마시길, 아주 먼 언젠가.

오늘은 우울이 똬리를 뜬다.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지니고 있기로 했다.

이런날도 있는법.

울고 싶음 울고 우울하고 싶음 우울에 나를 던진다.

그래도 나는 빠져나올 자신이 있으니까. 2006.11.21. - P.267

 

 

나,너,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나, 너, 그리고 사랑이 있다가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나와 너는

남았으니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다. 나와 네가 사라지고 사랑

이 남는다해도 그 사랑 또한 좋은 것이니 족하다. 나, 너, 그리고

사랑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모두 함께 사라졌으니 슬픔은 남지 않

아 좋지 않을까. 나와 사랑만 남거나 너와 사랑만 남는다면 그

남은 한자리는 슬픔이고 그리움이고 아쉬움일테니. 2006.11.18. - P.337

 

 

어쩌면 그녀 마음 속 저 깊은 곳에는 감당하기 힘든 아픔과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아파하거나 또는 고통의 신음으로 드러내지 않고 의연하게 이겨내려 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한 것 같다. 적어도 추리소설만큼은 감정이 이리저리 흔들릴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저 재미있게 읽고 즐기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밝았던 그녀, 결국은 “그럼 건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 아 심한 건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 2010.10.20.”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2010년 12월 13일 세상과 작별하고 말았다. 어느 누구도 저 글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을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그녀다운” 인사였다. 마흔 살 너머 오토바이로 세계 일주 하겠다던 김광석은 마흔이 되기도 훨씬 전인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서른까지만  살고 싶다던 그녀는 서른을 훌쩍 넘어 열 두해를 더 살다가 마흔 둘에 우리들과 작별을 했다.

 

 

물만두님은 전문 작가도 아니었고, 어쩌면 오늘도 병마에 시달려 신음하고 있을 많은 환우들의 사연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그런 “평범한” 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녀가 남긴 이 일기가 가슴 속에 잔잔하지만 결코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은 울림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앞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바로 삶에 대한 그녀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자기 자신에게도 큰 힘이 되어 주었지만 그녀의 삶을 “읽는” 우리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격려와 용기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미사여구로 과장되게 치장하지 않은 솔직하고 담백한 그녀의 말들이 그녀와 함께 이야기 꽃을 피웠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너무 늦게 만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안타까움과 슬픔 뿐만 아니라 가슴 한 켠을 따뜻하게 만드는 감동을 느끼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북 리뷰어” - 동생 만돌이가 이력서의 누나 직업란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 라면 잘 알고 있을 인터넷 서점에서 책 평가 점수 방법인 “별” 평점은 그녀가 남긴 이 책에, 그리고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그녀의 인생에 대해서도 “별 다섯” 만점을 준다.  별점 후하기로 소문난 나이지만 이렇게 흔쾌하게 만점을 주기는 이전에도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매우 드문 그런 일일 것이다.

 

그녀의 서재에는 올리지 못했지만 추모 댓글 여기서나마 간단하게 적어본다.

당신이 보여준 책에 대한 애정과 아름다운 삶, 정말 고마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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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수학파일 - 세계사를 한눈에 꿰뚫는
이광연 지음 / 예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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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수학(數學)”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녀석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 때문에 문과(文科)로 진로를 선택했고, 수학 공부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대신 국어와 영어, 암기과목에 집중해서 대학에는 어렵게나마 합격을 했다. 그런데 아뿔싸, 하필이면 학교 진학 담당 선생님께서 취업이 잘되는 과라고 추천해주신 “경제학과”에 합격한 것이다. 대학 들어가면 절대 수학 공부 안하겠다던 그 녀석의 다짐은 1학년 때부터 “경제 수학”이라는 암초를 만나 급좌절하고 말았다. 그런데 경제학과 커리큘럼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계량경제학”, “수리경제학”, “통계학” 등 심화학습을 하는 과정인지라 이 친구 1학년 1학기도 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포기하고는 결국 재수(再修)를 해서 어문(語文)계열로 진학을 했다. 이처럼 “수학(數學)”은 수험생(受驗生)들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제일 부담스러운 과목일 뿐만 아니라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과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렵기만 한 수학, 좀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공부에 왕도(王道)는 없다”는 속담처럼 쉽게 하는 방법은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수학에 대한 기발하고 재미있는 상식을 담은 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그나마 수학에 대한 두려움을 덜 수 있어 다행인 것 같다. 그중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쉬운 수학, 재미있는 수학'을 전파하고 있는 '웃기는 수학자' 이광연 교수일 것이다. 작가가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기고하고 있는 수학 관련 상식과 에세이 글들을 즐겨 읽었었고, 작년에 책으로도 만나본 적이 있었는데, 2012년 신년 들어 이광연 교수가 풀어 넣는 새로운 수학 이야기 책 한 권을 만났다. 바로 수학과 세계사를 접목시킨 <세계사를 한눈에 꿰뚫는 비하인드 수학파일(예담/2011년 12월)>이 그 책이다.

 

 작가는 머리말인 <세계사 속에 생동하는 수학>에서 인류의 역사 속에는 생동하는 수학적 산물들이 즐비하다면서 수학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 즉 세계사와 그 맥을 같이하기 때문에 수학의 역사와 함께 인류의 역사를 비교하면 세계사를 좀 더 간단하게 공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학사(數學史)라는 게 그 자체가 세계사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려우며 그런 방법으로 역사를 알아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세계사를 좀 더 흥미롭고 즐겁게 들여다보기 위해 방법으로 수학이라는 창을 동원하여 역사적인 장면들이 필연적으로 그렇게 펼쳐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간단하고 단순한 수학으로 설명한다면 세계사뿐만 아니라 수학까지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즉 수학으로 세계사를 읽는다면 세계사를 알아가며 수학을 배울 수 있고, 또 수학을 공부하며 세계사를 이해할 수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수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기술한 책이 아니라 세계사 주요 장면들을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수학적 사고와 행동을 연계시켜 설명한 책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성격을 잘 설명해주는 해설인 셈이다.

 

 책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주역인 “수메르”에서부터 20세기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총 28가지의 세계사 주요 장면들을 시간 순서대로 소개하고 있다. 구성은 한 페이지 정도로 각 쳅터에 관련된 세계사를 요약하여 소개하고, 본문(本文)에서는 보다 자세하게 설명한 후 쳅터 후반부에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는 수학적 상식을 소개하는 형식이다. 예를 들어 첫장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주역 수메르인; 60진법” 편에서는 먼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평야에서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 개괄적인 사항들을 한 페이지로 요약하여 설명한다. 본문에 들어서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자였던 “쐐기문자”의 기원과 발견, 해석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고, 이어서 수메르 문명의 고유 셈법인 “60 진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역시 60진법과 연관이 있는 원의 중심각 360°에 대하여 박스 기사 형식으로 소개하고 쳅터를 마감한다. 각 쳅터마다 분량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런 구성을 따르고 있다.

 

 책에는 참 흥미롭고 재미있는 세계사 사건들과 수학적 상식들을 담고 있다. 수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공식(公式)이라 할 수 있는 “피타고라스 공식”이 동양에서는 피타고라스보다 500년 쯤 앞선 기원전 1000년에 이미 알고 있었고, 바로 <주비산경(周髀算經)>이라는 고대 수학책에 실려 있는 “구고현(勾股弦)의 정리” -삼각형의 짧은 변을 '구(勾)', 긴 변을 '고 (股)', 빗변을 '현(弦)' 이라고 한다 - 가 바로 그 공식이라고 한다. 고대 문명인 인더스 문명에는 특이하게도 수학 방정식을 아름다운 시(詩)의 형식으로 표현했다고 하며 알렉산드로 대왕의 “고르디오스 매듭” 일화를 소개하면서 매듭과 매듭이론(knot theory) - 매듭을 수학적으로 연구하는 위상수학의 한 분야 - 를 설명하기도 한다. 또한 절세미인의 대명사인 “양귀비(楊貴妃)”의 아름다움은 바로 “금강비(金剛比)” - 루트비례라고 하기도 하며, 그 비율은 1.41 : 1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건축물과 문화재들이 이 비례를 따라 지어졌다고 한다 -가 숨겨져 있으며, 중세 유럽 기사(騎士)들의 마상시합방식인 “토너먼트”와 관련한 수학 상식을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수학과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베토벤”의 교향곡에는 “파보나치 수(Fibonacci sequence)” -1, 2, 3, 5, 8, 13, 21……와 같이 선행하는 두 가지 숫자의 합이 다음 합의 수치(1+2=3, 2+3=5, 3+5= 8....)가 되는 특수한 수열로서 n항과 n+1항의 비율은 1:1.618 이 된다. 이 비율이 바로 황금비(黃金比)이다 - 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대 첩보전의 대명사인 “암호”에도 수학적 이론과 정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세계사적 주요 사건이나 인물들과 연계시켜 수학 상식들을 소개하고 있어 참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지만 담고 있는 수학 이야기는 마냥 쉽지만은 않은 책이다. 몇 몇 이야기는 그냥 눈으로만 읽어도 무난하겠지만 몇 몇 이야기는 연습장에 수학 문제 풀듯이 써봐야 이해가 되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피라미드 밑변 작도법이나 인도의 줄긋기식 곱셈법 등은 책에 소개한 대로 연습장에 직접 써보면 이해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그렇다고 굳이 수학 공부 하듯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계사 이야기들만 읽어도 재미있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 수학 대목은 그냥 용어 정도만 상식으로 알고 있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상생활에 직접 연관된 수학 상식 - 이제는 필수품이 되어 버린 자동차 네비게이션에 숨겨진 수학 공식 등 - 이나 이 책처럼 세계사 속에 숨겨진 재미있는 수학 이야기들은 수학에 대한 공포를 희석시키는 데는 분명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될 이광연 교수의 “재미있는 수학 이야기”들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엉뚱한 궁금증 하나. 이 글 첫머리에서 언급한 수학을 끔찍이 싫어하는 그 친구에게 이 책을 읽게 하면 어떨까? 이 책을 재미있어 한다면 분명 “쉬운 수학, 재미있는 수학”이라는 작가의 의도는 십분 성공한 것일 테고, 머리를 쥐어뜯게 만드는 고문(拷問)이라면 아쉽게도 실패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너무 잔인한(?) 실험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결과가 너무 궁금해서 이 책, 그 친구에게 꼭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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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인 서울 Date in Seoul -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설렘 가득한 감동 여행지 100곳 in Seoul 시리즈
장치은.장치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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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회사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35세 노총각 후배 사원이 드디어 애인이 생기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입 꼬리를 아예 귀에 걸고 다닐 지경이다.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장가를 보낼까 싶어 - 속마음은 노총각 히스테리에서 드디어 해방(?)이 되는구나 싶어 전 팀원이 쌍수를 들어 환영 중이다 - 퇴근도 일찍 시켜주고 업무도 덜어주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주말마다 데이트 장소 물색에 여념이 없던 그 친구가 나에게 서울 데이트 코스를 추천해달라고 문의를 해왔다. 서울에서 학창시절과 직장생활을 15년 넘게 했으니 잘 아실 거라며 기대감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말이다. 그런데 일순 그 질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이런이런 딱히 추천해줄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 돌이켜 보니 연애 시절, 데이트 한 곳이라고는 대학로에서 연극이나 공연 보고 신촌이나 학교 주변에서 함께 식사하거나 술 마신 기억 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떠듬떠듬 대학로나 고궁(古宮)들 가보라고 우물쭈물 거리고 말았는데, 서울 살았던 거 맞아 하며 실망해 하는 표정이 어찌 그리 마음을 후벼 파는지 에효 하고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어디 추천해줄만한 데가 없을까 고민하던 중 눈이 저절로 번쩍 띄게 만드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제목부터가 딱 안성맞춤인 <데이트 인 서울;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설렘 가득한 감동 여행지 100곳(장치은, 장치선 공저/랜덤하우스 코리아/2011년 12월)>이 바로 그 책이다.

 

 

들어가는 글(序文)인 “최고의 데이트, in Seoul"에서 작가는 최고의 데이트는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과연 상대편이 내 마음을 알아줄지, 그러다가 헤어지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이 자존심만 상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바로 “내”가 남는다고 다독거린다. 즉 어느 순간에서든 행복을 위해 최고의 데이트를 만든 “내”가 남으며 나란 사람이 그를 얼마나 멋지게 사랑했는지, 그 순간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조금 멋들어지게 표현해보자면 ‘자존감’이 남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름다운’ 서울이 남는다고 말한다. 그와 내가 함께 데이트를 즐긴 아름다운 서울이란 공간이 추억으로 남아, 함께 거닐고 즐겼던 데이트 코스를 거닐 때 마다 오늘날 서울에서 최고의 모습으로 사랑한 멋진 내가 남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하는 데이트는 언제나 최고여야 한다고, 쭈뼛대지 말고 솔직하고, 당당하고, 멋지게, 좀 더 적극적으로 최고의 데이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의 결실을 떠나서 최고로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과 공간의 장소로써 서울을 추억했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으로 이해되는 이 글을 읽고 나니 까맣게 잊고 지냈던 핑크빛 연애 시절이 하나 둘 씩 떠오른다. 비를 피해 들어갔던 이름 모를 카페의 진한 커피 내음, 초행길이었던 인사동 길을 같이 걷다가 길을 헤매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나왔던 추억,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명동을 거쳐, 동대문운동장, 한양대까지 몇 시간을 같이 걸으면서도 지칠 줄 모르고 이야기 나눴던 아련한 추억들 - “누구”랑 거닐었는지는 가정 분란(?)을 야기할 수 있으니 밝히지 않기로 한다. 그냥 그 누구가 지금 “아내”라고 생각해주시길^^ -말이다. 과연 이 책에 그런 추억의 데이트 코스들이 오롯이 담겨져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본격적으로 책 속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책은 데이트 코스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앞서 멋진 데이트를 위한 각종 유용한 상식들과 마음가짐, 매너, 준비물들을 일러준다(Part 1. 데이트 준비). 맨 먼저 “심리 테스트로 풀어보는 취향별 데이트 코스”가 나오는데, 각 질문에 YES/NO 화살표 - 색깔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희미해서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 를 따라가 보니 나는 “D type -당신의 연예 타임은 (감성형)” 이라고 한다. 내용인 즉슨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니고 있어 감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한적하고 고즈넉한 곳, 즉 수목원이나 고궁, 도서관이나 북 카페, 미술관 데이트를 추천하고 있다. 음 내 취향을 잘 맞춘 것 같다. 이후로 역시 데이트 카운슬링 책답게 연애기간별 데이트 코칭이 소개되는데 이미 결혼한 지 꽤 된 나로서는 낯간지러운 그런 충고들이었다. 여기에 데이트 정보가 가득한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 데이트 매너와 의상, 메이크업, 커플 도시락 등 성공적인 데이트를 위한 정보들을 한껏 담고 있으니 데이트를 앞둔 청춘남녀라면 잘 읽어보기를 권한다.

 

"PART 2 데이트 계획“ 편에서부터 본격적인 데이트 코스 안내가 시작된다. 먼저 북촌, 동대문, 정동, 서래마을, 대학로, 인사동 등 지역별로 추천 코스를 안내하는데 몇 몇 곳은 나도 코스 비슷하게 다녀 본 곳도 있지만 코스에서 소개하고 있는 각종 카페나 맛집 등은 영 생소하기만 한 그런 곳이었다. 어차피 데이트가 하루 내에 이뤄지는 짧은 코스가 대부분이니 책에서 추천하는 코스 그대로 일정을 잡아도 좋을 것 같다. "Part 3 데이트 시작” 편에서는 PART 2에서 코스별로 잠깐 소개했던 카페/갤러리/맛집/술집/호텔 등을 실내 전경과 주요 메뉴, 시설물들을 두 페이지 내외 분량으로 꼼꼼히 소개하고, "Part 4. 이색데이트 도전“ 편에서는 영화관/찜질방/캠핑장/공연장/프러포즈 장소 등등 테마별로 묶어서 소개하고 있으니 지리적 코스가 아닌 테마별 데이트 코스 선정에는 꽤나 도움이 될 그런 자료들이다. 사실 Part3과 Part4는 작가들이 추천하는 장소들을 나열식으로 소개하는 그런 자료들이라 하나하나 챙겨보기 보다는 그림 위주로 넘겨 읽었지만 데이트 코스를 짤 때 사전에 카페나 음식점, 공연장에 대한 분위기와 정보를 확인해보는 데는 도움이 될 만한 그런 자료들이었다.

 

 

다양하고 색다른 데이트 코스들을 깨알같이 담고 있는 이 책, 지금 이쁜 사랑을 시작하거나 혹은 가꿔 나가고 있는 청춘 남녀들에게는 정말 보물 같은 책일테고, 특히 회색빛 콘크리트 일색인 줄 만 알았던 서울이 사실은 그 어느 도시들보다도 멋스럽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 멋진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첫 생각은 서울 살이 15년 동안 도대체 나는 서울 어느 곳을 돌아다녔나 하는 생각이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수많은 코스들 중 내가 가본 곳은 과장 전혀 하지 않고 10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듯 싶다. 물론 광화문 광장이나 고궁, 박물관, 공원 등 “유명” 관광지야 가보긴 했지만 책 속 카페나 음식점, 레스토랑들 모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런 곳들 일색이었다. 혹시 우리 때 자주 갔던 대학로 카페인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 - 대학 들어가 첫 소개팅 했던 장소였다 - 이 있나 싶어 찾아봤는데 아쉽게도 없는 것을 보면 내가 너무 “올드(old)"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 수 도 있고 아니면 일찌감치 문을 닫았을 수 도 있을 것이다. 하긴 서울 떠난 지가 벌써 7년이 다 되었고 서울 살이 하면서 참 많이 들락거렸던 종로 교보문고 좁은 골목(피맛골)에 자리잡고 있던 “열차집” 돼지기름으로 부친 빈대떡이나 눈물 콧물 흘리며 먹었던 실비집 “매운 낚지 볶음”을 이 책에서 찾는다는 것이 어쩌면 너무 오래된 추억 속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물론 지금 연애를 시작하는 젊은 청춘남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딱 맞춤의 그런 책일 것이다. 다만 오래전 추억의 한자락을 떠올려 보게 하는 그런 코스도 포함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을 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원래 이 책, 내가 잘 읽고 후배 사원에게 몇 가지 데이트 코스 추천과 함께 책을 선물해 줄 생각이었는데 사정이 좀 바뀌게 생겼다. 아내가 이 책을 보고는 책에 나와 있는 코스대로 서울 여행 해보겠다고 책을 옆에 끼고 앉아서 열심히 연구(?) 중인지라 책을 뺏어올 틈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새로 하나 구입해서 후배에게 선물해야 할 것 같다. 혹 이 책 때문에 결혼에 골인한다면 생색한 번 크게 내야겠다^^ 그나저나 아내의 연구 결과가 나오면 주말마다 해오던 “뒹굴뒹굴 집안 탐험” 이제 영 물 건너 갈 것 같다. 벌써부터 어떤 연구 결과가 나올지.......솔직히 두렵다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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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남극지도 강력추천 세계 교양 지도 5
배정진 지음, 이유경 감수 / 북스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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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오지(奧地) 탐험”이라고 해서 “히말라야”나 “아마존”, “아프리카” 관광 상품들도 많다고들 하는데 앞으로 살면서 절대 가보지 못할 곳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남극(南極) 대륙”일 것이다. 더위보다는 추위를 잘 견디는 체질 임에도 눈(目) 닿는 곳은 온통 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고 영하 몇 십 도(℃)는 일상일 것 같은 극한의 추위를 일부러 맛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실제 체험이 아닌 눈(目)으로 하는 간접 관광으로는 이색적인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모 방송국의 <남극의 눈물>을 시청하려 했건만 너무 늦은 시간 - 방영시간인 밤 11시 5분은 나에게는 한참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을 시간이다 - 에 방영하는지라 1화를 놓쳐서 재방송이나 챙겨 봐야 할 형편이 되어 버렸다. 아쉬웠던 차에 남극에 대한 재미있는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남극지도(배정진 저/북스토리/2011년 12월>이 바로 그 책이다.

 

책을 소개하기 전에 “남극(南極, The Antarctic)"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남극”이란 남극대륙(Antarctica)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남극해(the Southern Ocean)로 정의되며, 1819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면적은 약 1,400만 ㎢에 이르는 지구상에서 다섯 번째의 크기를 가진 대륙으로서, 전체 면적의 약 98 %가 일년 내내 두꺼운 빙원(氷原)으로 덮여있어 '백색의 제 7대륙'이라 일컬어지고 있다고 한다(네이버 발췌). 이 외에도 지형적 특성, 생물들, 날씨 등 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책 소개하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책에는 총 7 장(Chapter)으로 나누어 남극 전반에 대하여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꽤나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꺼리들이 많다. 그중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사실들 몇 개만 소개해보자.

 

우선 “남극”은 왜 섬(島)이 아니라 “대륙(大陸)”이라고 불릴까? 섬과 대륙을 구분하는 기준은 당연히 “면적(面積)”인데 그 기준점이 되는 섬이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인 북아메리카 북동부 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있는 “그린란드(Greenland)”라고 한다. 면적이 216만 ㎢로 한반도의 10배 크기의 이 섬을 기준으로 이 섬보다 크면 대륙, 작으면 섬인 것이다. 남극은 앞에서 소개한 대로 면적이 약 1,400만 ㎢에 이르니 “대륙”으로 부르는 것이다. 참고로 “호주대륙”은 그 면적이 남극보다 작은 약 768만 ㎢(세계 6위)이지만 그린란드보다 크니 대륙으로 불린다고 한다. 반면 “북극(北極, Arctic)”은 면적으로는 2,500만~3,000만㎢에 달하지만 대부분 바다로 이루어져 있으니 남극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극과 남극 중 어디가 더 추울까? 북극의 최저 기온은 북극의 베르호얀스크에서 관측된 영하 70℃ 라고 하는데 이 정도는 남극의 겨울철 평균 기온(영하 65℃) 정도라고 한다. 남극은 최저 기온이 영하 89℃까지 내려가기도 하는데, 이렇게 남극의 겨울이 북극보다 더 추운 이유는 지형적인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한다. 즉 육지는 바다보다 쉽게 데워지고 쉽게 식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륙으로 이루어진 남극이 바다로 이루어진 북극보다 기온이 더 많이 내려가는 것이다. 비교적 따뜻한 여름도 남극의 평균기온이 영하 30℃인 반면, 북극의 기온은 0℃ 가까이 상승한다고 하니 추위만큼은 북극이 남극에게 한 수(手), 아니 한 열 수쯤은 뒤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렇게 얼음 천지인 남극에 과연 냉장고가 있을까? 정답은 “있다”를 넘어서 “필요하다”라고 한다. 남극은 연평균 온도가 영하 23℃이고, 여름기온은 5℃에서 영하 32℃이지만 겨울엔 영하 80℃까지 내려가니 웬만한 것들은 순식간에 얼어버려 과일, 채소 등 먹을거리를 밖에 두면 얼어서 먹을 수 가 없다. 그래서 남극과 같이 추운 곳에서는 냉장고가 음식물이 얼지 않도록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남극기지인 “세종기지”에는 냉장고 뿐만 아니라 냉동고도 있는데 음식물이 본래의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온도 변화 없이 일정한 온도가 지속되어야 하는데, 자연 상태의 대기는 시시각각 그 온도가 변해서 냉동 상태의 음식물도 품질이 유지되려면 냉동고 속에 보관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에어컨”도 필요할까? 남극 기지에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공급하기 위해 식물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LED 조명이 태양빛 역할을 하고, 에어컨이 LED빛 때문에 올라가는 내부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즉 남극에도 냉장고, 냉동고, 에어컨이 있다는 말이다.

 

남극에는 "오로라(Aurora)", “백야(白夜, White Night)" 등 신기한 기상 현상이 많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그중 가장 신비로운 현상은 두 개의 해가 뜨는 ”환일(幻日, Parhelion) 현상“ 일 것이다.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극지에서는 대기에도 무수히 많은 얼음알갱이가 섞여 있는데, 이런 얼음알갱이들이 프리즘처럼 태양빛을 산란시키고 굴절시켜 마치 또 하나의 태양이 뜬 것과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고 한다. 주로 남극과 같은 극지에서도 일어나는데 우리나라도 신라 선덕여왕 재위 당시 두 개의 태양이 떠서 백성들이 불안해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최근 2011년 대관령에서는 4월과 5월에 두 번의 환일 현상이 관측되기도 했다고 한다. 반대로 밤이 되면 여러 개의 달이 뜬 것과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현상은 "환월(幻月, Paraselene) 현상"이라고 한다.

 

또한 남극에도 “펭귄”, “고래”, “바다표범”, “갈매기”등 다양한 동식물들이 살고 있는데 그중 가장 경이로운 동물이라면 “북극제비갈매기(Arctic Tern)"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도요목 제비갈매기과에 속하는 몸무게 100g 정도의 작은 바다새인 북극제비갈매기는 이름처럼 북극과 남극을 오가는 철새로 유명한 새이다. 북극제비갈매기는 북극의 여름에 알을 낳아 번식하고 새끼가 먼 거리를 비행할 정도로 자라면 남극으로 날아가서 남극의 여름을 보내고, 여름이 끝나면 번식을 위해 다시 북극으로 날아간다고 하는데 북극과 남극을 오가며 이동하는 거리는 한 해에 무려 38,000 km에 달한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30년을 산다고 하니, 이렇게 긴 여행을 평생 계속하면 달을 3번 왕복(참고로 지구와 달과의 거리는 384,000km 정도라고 한다)하는 거리인 셈이다. 이 외에도 남극점 정복에 도전한 각국의 탐험가들 이야기, 남극에 얽힌 여러 “음모론(陰謀論)”들 - 히틀러 비밀 기지, 지하세계로 통하는 입구, 외계 생명체 등등 - , 환경 보전에 있어 남극이 중요한 이유 등등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는, 이른바 “남극백과사전(南極百科事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 목적이 청소년 교육용이라 쉽고 재미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어른인 나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많을 정도이니 연령에 상관없이 남극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그런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만화형식의 삽화들보다도 남극의 풍광과 동식물들을 직접 찍은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면 교육적으로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긴 했지만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 때문에 남극이 불현듯 가고 싶어졌다고 하면 거짓말일테고(^^) 이 책 덕분에 비록 1화는 놓쳤지만 <남극의 눈물>, 재방송으로라도 꼭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이 6부작이나 된다고 하니 충분한 정보가 담겨 있겠지만 이 책으로 미리 남극에 대한 기본 상식 쯤은 공부한 뒤에 시청한다면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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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트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5 로마사 트릴로지 2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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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책읽기를 우연찮게도 “로마 이야기” 2 종(種) - 권(券)이 아닌 종(種)인 이유라 쓰는 이유는 단권이 아니라 2권 이기 때문이다 -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하나는 로마를 배경으로 한 역사 추리 소설 시리즈를 선보인바 있는 “스티븐 세일러”의 신작(新作) 소설이었고, 또 하나는 <당신들의 조국>, <폼페이>로 만나본 적이 있었던 “로버트 해리스(Robert Harris)”의 “로마 트릴로지(Trilogy, 3부작)" 시리즈인 <<임페리움(원제 Imperium/ 랜덤하우스 코리아 / 2008년 10월)>과 <루스트룸(원제 Lustroom/랜덤하우스코리아/2011년 12월)>이다. 두 종(種) 모두 다른 느낌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고 고대 로마의 역사와 정치, 사회, 문화 등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어서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스티븐 세일러 작품 감상은 최근 올린 적이 있고, 로버트 해리스의 “로마 트릴로지” 1,2부를 소개해본다.

 

이 책은 고대 로마의 문인(文人)이자 철학자, 정치가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BC 43)”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 소설이다. 키케로, 몇 몇 명언집(名言集)을 통해서 그가 남겼다는 명언들은 접해본 적은 있지만 그의 업적이나 일생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낯선 인물이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 인터넷을 검색해봤더니 카이사르(Caesar)와 동시대를 살았던 정치인으로서 최연소 집정관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카이사르와 반목하여 정계에서 쫓겨났고,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에 안토니우스를 탄핵한 후 원한을 사서 안토니우스의 부하에게 암살되었다고 한다. 정치인으로서는 이처럼 영광과 오욕을 모두 맛보았지만 학문적으로는 웅변술이 매우 뛰어난 수사학(修辭學)의 대가이자 고전 라틴 산문의 창조자로 일컬어지며, 오늘날까지도 그의 <국가론>, <수사학>, <법률론>, <노년에 관하여> 등 저서들이 로마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필독서로 불린다니 문인(文人)으로서 더 큰 업적을 쌓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 1부의 제목인 <임페리움(Imperium)과 2부 <루스트룸(Lustroom)>은 어떤 뜻일까? 먼저 <임페리움>은 “고대 로마의 명령권”이라는 뜻으로 민회(民會) 및 원로원(元老院) 등의 소집권, 의안(議案)의 제안권, 군대의 지휘권, 민사소송 및 형사소송의 지휘권이 포함된 것으로 광범위하게는 국가권력, 국가의 지배권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제목의 뜻과 키케로의 삶을 미뤄볼 때 이 책은 키케로가 국가의 지배권이자 국가 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집정관”을 의미하는 뜻이기도 하고 집정관이 되기 위한 정치적 여정(旅程)을 그린 소설로 예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루스트룸>은 단어적 뜻은 “야수의 동굴 또는 보금자리”로 “속죄양(贖罪羊). 특히 감찰관이 5년마다 행하는 속죄의식”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2부 목차를 살펴보니 집정관이 되고 나서부터 5년 간(B.C.63~B.C.58)을 그린 작품으로 이 기간이 키케로에게는 마치 야수들과 같은 위험한 적들의 소굴에서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펼쳐나가는 질풍노도의 시기였을 것이라는 짐작이 된다. 책 소개글에도 <임페리움>이 키케로의 성공기적 성격이라면 <루스트룸>은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는 비극의 성격을 띤다고 하니 제목의 뜻만 가지고 짐작해본 내 예상이 어느 정도 맞은 것 같다. 이제 실제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짚어보자.

 

 

1부인 <임페리움>에서는 키케로가 원로원 시절 당대 최고의 변호사였던 “호르텐시우스”에 맞서 로마 최고의 법정 싸움이라는 “베레스의 재판”을 승리로 이끌고 B.C. 69년 조영관(造營官, Aedilis)에 당선될 때까지를 1부로 구성하고, 법무관(法務官, Praetor)을 거쳐 마침내 B.C. 63년 로마 최연소 집정관(執政官, Consul)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2부로 구성한다. 이 책에서 화자(話者)는 키케로의 노예이자 심복 비서로 평생 동안 그를 수행하며 그의 업적과 웅변을 기록해왔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티로”로 이야기 전개는 종이가 없었던 로마 시대의 기록지(紙)라 할 수 있는 양피지(羊皮紙)나 파라핀지 - 책에서 티로는 키케로의 말과 업적을 기록하기 위해 왼쪽 손목에 양면 파라핀지 4장으로 이루어진 공책을 매달기 위한 고리를 차고 다닌다 - 의 두루마리 분량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 티로가 실존인물일까? <임페리움> 책 첫머리에도 잠깐 언급하고 있지만 <루스트룸> “작가노트”에는 보다 본격적으로 실존인물이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주인인 키케로보다 세 살이 어렸지만 백수까지 누린 인물로 원로 회의 연설을 기록한 최초의 인물이자, 그의 속기술은 6세기 교회에서까지 사용되었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저술은 로마 붕괴 와중에 소실되었다고 하니 이 책은 화자 티로가 자신의 기록과 기억을 더듬어 쓴 글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순전히 작가가 그 시대의 여러 기록물들과 역사서를 통해서 티로의 문장들을 추측, 복원해낸 가공의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부인 <루스트룸>에서 키케로는 드디어 집정관에 오르지만 위험천만한 위기들을 연이어 맞닥뜨리게 된다. 먼저 내장이 모두 파헤쳐 사라진 노예 소년의 살인 사건을 특유의 웅변술로 무마시키지만 카이사르가 그의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면서 두각을 나타내자 로마 권력은 키케로를 중심으로 한 귀족 세력들과 카이사르와 서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카틸리나”의 세력으로 나뉘어 대립한다. 키케로는 웅변술과 위기 대처 능력으로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 그 명망이 더욱 높아지지만 그런 그에게 당시 권력의 핵심들인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 훗날 로마의 “삼두정치(三頭政治, Triumvirate)”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의 회유와 협박은 갈수록 집요해지면서 키케로의 정치적 기반은 갈수록 위태로워진다. 결국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는 결탁을 하게 되고 키케로는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법령이 통과되고 자신의 구원(救援)을 부탁하려 했던 폼페이우스의 배신에 좌절하고는 추격자들의 눈을 피해 여행길에 오른다. 갈리아로 행군하는 카이사르 군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말이다. 즉 앞서 말한 대로 1부가 키케로의 “성공” 드라마였다면 2부는 키케로의 서글픈 “몰락”의 과정 - 옮긴이는 <햄릿>의 비극과 크게 닮았다고 표현한다 - 을 그렸다고 요약해볼 수 있겠다.

 

이 트릴로지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로마 정치 역사상 가장 격변기 - 공화정의 전통이 무너지고 제국으로 변모하던 시기 - 라 할 수 있는 키케로가 살았던 시대를 마치 역사책 속에서 인물들이 튀어나온 것처럼 생생하고 치밀하게 복원해낸 점을 꼽을 수 있겠다. 물론 당시의 역사서들이나 후대의 해석들이 얼마나 존재하고 있는지, 즉 그 시대를 이렇게 복원해내는데 얼마나 많은 참고서적들이 남아있는지는 로마 역사에 일천한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이렇게까지 세세하고 치밀하게 인물들과 사건을 소설로 구현해내는 데 얼마나 많은 자료 조사와 준비가 필요했는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겠다. 특히 키케로가 천신만고 끝에 집정관에 오르고 신흥 권력자들의 암투와 모략, 회유와 배신으로 몰락해가는 과정이 상당히 개연성있고 사실감 있게 그려지고 있어 등장인물들과 사건들만 현대식으로 바꾼다면 수 천 년이 지난 현대의 어느 국가의 정치 상황을 그대로 그려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생생하고 현실감있게 느껴진다. 어쩌면 옮긴이의 해석처럼 로버트 해리스는 이런 치밀하고 생생한 복원을 통해 과거의 비극은 현대에도 무한 반복되고 있으며, 그러한 교훈을 망각하는 이상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 있다는, 그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키케로는 권력의 정점과 몰락을 모두 겪었던, 결국 자신의 신념 때문에 비극적으로 죽음을 당했던 파란만장했던 인물로서 어쩌면 그런 작가의 냉소적 시각을 담아내기엔 그의 삶과 업적이 가장 적합했던 그런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생하고 현실감있는 정치 이야기라는 장점은 극적 결국 책을 무겁고 어렵게 만드는, 일견 지루함마저 느끼게 하는 단점으로 느껴졌다. 나치가 패망하지 않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가상 역사를 다룬 <당신들의 조국>이나 베수비오 화산 폭발을 다룬 <폼페이>에서도 치밀한 고증과 설정은 뛰어났지만 소설로서의 재미는 부족했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로마 역사에 대한 소양이 부족한 나로서는 책 속 등장인물 이름들과 지명들 기억하는 데도 꽤나 애를 먹었던 지라 이야기에 쉽게 집중하지 못해서 <등장인물>과 <용어해설>을 몇 번을 찾아 읽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나중에는 인물들과 지명, 사건들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은 포기하고 이야기 위주로만 읽게 되었는데, 조금은 지루하고 느린 전개로 책을 올곧이 읽어내고 이해하는 데는 어려웠다고 밝혀두어야겠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 소설이었고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로마 역사의 대전환점의 시대를 제대로 체험해볼 수 있었던 멋진 소설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 연말연시 바쁜 시기여서 짬을 내서 읽었던 터라 충분하게 집중하지 못했던 터라 이 책의 즐거움과 재미를 제대로 맛보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트릴로지의 완결편 - 아마도 2부 <루스트룸>보다 더 비극적이고 서글픈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을 것 같다 - 이 출간되어 읽을 기회가 있게 된다면 그때는 1부 <임페리움>부터 차근차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지금부터 2천 년 전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던 인물인 “키케로”의 숨가쁘고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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