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트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5 로마사 트릴로지 2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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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책읽기를 우연찮게도 “로마 이야기” 2 종(種) - 권(券)이 아닌 종(種)인 이유라 쓰는 이유는 단권이 아니라 2권 이기 때문이다 -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하나는 로마를 배경으로 한 역사 추리 소설 시리즈를 선보인바 있는 “스티븐 세일러”의 신작(新作) 소설이었고, 또 하나는 <당신들의 조국>, <폼페이>로 만나본 적이 있었던 “로버트 해리스(Robert Harris)”의 “로마 트릴로지(Trilogy, 3부작)" 시리즈인 <<임페리움(원제 Imperium/ 랜덤하우스 코리아 / 2008년 10월)>과 <루스트룸(원제 Lustroom/랜덤하우스코리아/2011년 12월)>이다. 두 종(種) 모두 다른 느낌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고 고대 로마의 역사와 정치, 사회, 문화 등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어서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스티븐 세일러 작품 감상은 최근 올린 적이 있고, 로버트 해리스의 “로마 트릴로지” 1,2부를 소개해본다.

 

이 책은 고대 로마의 문인(文人)이자 철학자, 정치가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BC 43)”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 소설이다. 키케로, 몇 몇 명언집(名言集)을 통해서 그가 남겼다는 명언들은 접해본 적은 있지만 그의 업적이나 일생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낯선 인물이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 인터넷을 검색해봤더니 카이사르(Caesar)와 동시대를 살았던 정치인으로서 최연소 집정관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카이사르와 반목하여 정계에서 쫓겨났고,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에 안토니우스를 탄핵한 후 원한을 사서 안토니우스의 부하에게 암살되었다고 한다. 정치인으로서는 이처럼 영광과 오욕을 모두 맛보았지만 학문적으로는 웅변술이 매우 뛰어난 수사학(修辭學)의 대가이자 고전 라틴 산문의 창조자로 일컬어지며, 오늘날까지도 그의 <국가론>, <수사학>, <법률론>, <노년에 관하여> 등 저서들이 로마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필독서로 불린다니 문인(文人)으로서 더 큰 업적을 쌓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 1부의 제목인 <임페리움(Imperium)과 2부 <루스트룸(Lustroom)>은 어떤 뜻일까? 먼저 <임페리움>은 “고대 로마의 명령권”이라는 뜻으로 민회(民會) 및 원로원(元老院) 등의 소집권, 의안(議案)의 제안권, 군대의 지휘권, 민사소송 및 형사소송의 지휘권이 포함된 것으로 광범위하게는 국가권력, 국가의 지배권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제목의 뜻과 키케로의 삶을 미뤄볼 때 이 책은 키케로가 국가의 지배권이자 국가 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집정관”을 의미하는 뜻이기도 하고 집정관이 되기 위한 정치적 여정(旅程)을 그린 소설로 예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루스트룸>은 단어적 뜻은 “야수의 동굴 또는 보금자리”로 “속죄양(贖罪羊). 특히 감찰관이 5년마다 행하는 속죄의식”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2부 목차를 살펴보니 집정관이 되고 나서부터 5년 간(B.C.63~B.C.58)을 그린 작품으로 이 기간이 키케로에게는 마치 야수들과 같은 위험한 적들의 소굴에서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펼쳐나가는 질풍노도의 시기였을 것이라는 짐작이 된다. 책 소개글에도 <임페리움>이 키케로의 성공기적 성격이라면 <루스트룸>은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는 비극의 성격을 띤다고 하니 제목의 뜻만 가지고 짐작해본 내 예상이 어느 정도 맞은 것 같다. 이제 실제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짚어보자.

 

 

1부인 <임페리움>에서는 키케로가 원로원 시절 당대 최고의 변호사였던 “호르텐시우스”에 맞서 로마 최고의 법정 싸움이라는 “베레스의 재판”을 승리로 이끌고 B.C. 69년 조영관(造營官, Aedilis)에 당선될 때까지를 1부로 구성하고, 법무관(法務官, Praetor)을 거쳐 마침내 B.C. 63년 로마 최연소 집정관(執政官, Consul)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2부로 구성한다. 이 책에서 화자(話者)는 키케로의 노예이자 심복 비서로 평생 동안 그를 수행하며 그의 업적과 웅변을 기록해왔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티로”로 이야기 전개는 종이가 없었던 로마 시대의 기록지(紙)라 할 수 있는 양피지(羊皮紙)나 파라핀지 - 책에서 티로는 키케로의 말과 업적을 기록하기 위해 왼쪽 손목에 양면 파라핀지 4장으로 이루어진 공책을 매달기 위한 고리를 차고 다닌다 - 의 두루마리 분량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 티로가 실존인물일까? <임페리움> 책 첫머리에도 잠깐 언급하고 있지만 <루스트룸> “작가노트”에는 보다 본격적으로 실존인물이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주인인 키케로보다 세 살이 어렸지만 백수까지 누린 인물로 원로 회의 연설을 기록한 최초의 인물이자, 그의 속기술은 6세기 교회에서까지 사용되었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저술은 로마 붕괴 와중에 소실되었다고 하니 이 책은 화자 티로가 자신의 기록과 기억을 더듬어 쓴 글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순전히 작가가 그 시대의 여러 기록물들과 역사서를 통해서 티로의 문장들을 추측, 복원해낸 가공의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부인 <루스트룸>에서 키케로는 드디어 집정관에 오르지만 위험천만한 위기들을 연이어 맞닥뜨리게 된다. 먼저 내장이 모두 파헤쳐 사라진 노예 소년의 살인 사건을 특유의 웅변술로 무마시키지만 카이사르가 그의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면서 두각을 나타내자 로마 권력은 키케로를 중심으로 한 귀족 세력들과 카이사르와 서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카틸리나”의 세력으로 나뉘어 대립한다. 키케로는 웅변술과 위기 대처 능력으로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 그 명망이 더욱 높아지지만 그런 그에게 당시 권력의 핵심들인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 훗날 로마의 “삼두정치(三頭政治, Triumvirate)”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의 회유와 협박은 갈수록 집요해지면서 키케로의 정치적 기반은 갈수록 위태로워진다. 결국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는 결탁을 하게 되고 키케로는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법령이 통과되고 자신의 구원(救援)을 부탁하려 했던 폼페이우스의 배신에 좌절하고는 추격자들의 눈을 피해 여행길에 오른다. 갈리아로 행군하는 카이사르 군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말이다. 즉 앞서 말한 대로 1부가 키케로의 “성공” 드라마였다면 2부는 키케로의 서글픈 “몰락”의 과정 - 옮긴이는 <햄릿>의 비극과 크게 닮았다고 표현한다 - 을 그렸다고 요약해볼 수 있겠다.

 

이 트릴로지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로마 정치 역사상 가장 격변기 - 공화정의 전통이 무너지고 제국으로 변모하던 시기 - 라 할 수 있는 키케로가 살았던 시대를 마치 역사책 속에서 인물들이 튀어나온 것처럼 생생하고 치밀하게 복원해낸 점을 꼽을 수 있겠다. 물론 당시의 역사서들이나 후대의 해석들이 얼마나 존재하고 있는지, 즉 그 시대를 이렇게 복원해내는데 얼마나 많은 참고서적들이 남아있는지는 로마 역사에 일천한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이렇게까지 세세하고 치밀하게 인물들과 사건을 소설로 구현해내는 데 얼마나 많은 자료 조사와 준비가 필요했는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겠다. 특히 키케로가 천신만고 끝에 집정관에 오르고 신흥 권력자들의 암투와 모략, 회유와 배신으로 몰락해가는 과정이 상당히 개연성있고 사실감 있게 그려지고 있어 등장인물들과 사건들만 현대식으로 바꾼다면 수 천 년이 지난 현대의 어느 국가의 정치 상황을 그대로 그려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생생하고 현실감있게 느껴진다. 어쩌면 옮긴이의 해석처럼 로버트 해리스는 이런 치밀하고 생생한 복원을 통해 과거의 비극은 현대에도 무한 반복되고 있으며, 그러한 교훈을 망각하는 이상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 있다는, 그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키케로는 권력의 정점과 몰락을 모두 겪었던, 결국 자신의 신념 때문에 비극적으로 죽음을 당했던 파란만장했던 인물로서 어쩌면 그런 작가의 냉소적 시각을 담아내기엔 그의 삶과 업적이 가장 적합했던 그런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생하고 현실감있는 정치 이야기라는 장점은 극적 결국 책을 무겁고 어렵게 만드는, 일견 지루함마저 느끼게 하는 단점으로 느껴졌다. 나치가 패망하지 않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가상 역사를 다룬 <당신들의 조국>이나 베수비오 화산 폭발을 다룬 <폼페이>에서도 치밀한 고증과 설정은 뛰어났지만 소설로서의 재미는 부족했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로마 역사에 대한 소양이 부족한 나로서는 책 속 등장인물 이름들과 지명들 기억하는 데도 꽤나 애를 먹었던 지라 이야기에 쉽게 집중하지 못해서 <등장인물>과 <용어해설>을 몇 번을 찾아 읽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나중에는 인물들과 지명, 사건들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은 포기하고 이야기 위주로만 읽게 되었는데, 조금은 지루하고 느린 전개로 책을 올곧이 읽어내고 이해하는 데는 어려웠다고 밝혀두어야겠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 소설이었고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로마 역사의 대전환점의 시대를 제대로 체험해볼 수 있었던 멋진 소설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 연말연시 바쁜 시기여서 짬을 내서 읽었던 터라 충분하게 집중하지 못했던 터라 이 책의 즐거움과 재미를 제대로 맛보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트릴로지의 완결편 - 아마도 2부 <루스트룸>보다 더 비극적이고 서글픈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을 것 같다 - 이 출간되어 읽을 기회가 있게 된다면 그때는 1부 <임페리움>부터 차근차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지금부터 2천 년 전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던 인물인 “키케로”의 숨가쁘고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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