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죽이기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15
전은강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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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내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해본 적이 있을까? 결혼한 지 제법 되었지만 가끔 얄미워 꿀밤을 한 대 먹였으면 한 적 - 물론 상상으로만. 실제로 했다면 가정 폭력으로 벌써 구속되었을 것이다. 야근에, 회식에 늦기 일 수 고 늦지 않고 일찍 와도 피곤하다고 일찍 자버리는 나를 보면서 아내는 나보다 더 많이, 꿀밤이 아닌 그 이상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 이 있긴 하지만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바람이 났다면? 그것도 하필이면 내가 잡아들인 범죄자와 바람이 난 형사 남편 입장이라면? 반성은 커녕 이혼해 달라고 떳떳이 요구해온다면 과연 어떨까? 정말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전은강의 <아내 죽이기(휴먼앤북스/2011년 6월)>는 바로 그런 기막힌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강력계 형사의 눈물(?)겨우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이야기이다.

 

 

강력계 형사로서는 수많은 사건을 해결한 “베테랑”인 “나”이지만 집에서는 영 찌질한 모습만 보여준다. 업무 스트레스로 아내와 잠자리에서는 영 맥을 못추고 - 오르가즘을 국가에 반납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 잠복근무에 야근으로 툭하면 아내 독수공방하게 만들지 않나, 장인 병원비 보태줄 돈 하나 변변히 없어 사채를 쓰게 만드는 빵점자리 남편이다. 그런데 아내가 “바람”이 나고 말았다. 그것도 내가 “동거녀 납치 강간 혐의”로 긴급 체포했던 “경수”란 놈과 말이다.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있나. 그런데 얼씨구 두 손 두 발 다 빌어도 용서해 줄까 말까 한 아내, 말 한마디 지는 법이 없이 꼬박꼬박 말대꾸하면서 이혼해 달라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홧김에 간통죄로 고소해버릴까 했더니 경수란 놈 “고소해봤자 형사님 쪽만 팔게 될 거에요. 조루증이 이혼사유로 인정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외도 사유로는 인정될 것 같아서요”라고 맞받아친다. 이런 잠자리 얘기까지 하다니 얼굴이 붉어지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미워 죽겠지만 결혼 생활만큼은 유지하려고 했더니만 이 마누라 한 술 더 떠 섹스 동영상을 핸드폰으로 전송해 오지 않나, 심지어 경수 애까지 임신해버리고 살고 있던 집 전세금마저 날려 먹는다. 이래도 이혼 안 할래 라는 식의 아내의 막무가내 행동에 폭발한 나, 결국 아내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것도 형사 경험을 살려 “완전범죄”를 기획해서 말이다. 그런데 웬걸, 아내에게 이혼해주겠다고 말해 놓고 마지막으로 부모님 산소에 찾아뵙고 인사드리자며 산으로 데려가서는 미리 풀어놓은 독사에게 물려 사고로 죽는 것처럼 꾸미는 시도는 독사가 말썽을 부려 실패하고 오히려 뱃속의 아기를 죽이려고 한 거 아니냐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게 된다. 이 남자, 아내 죽일 수나 있을까? 결말은 스포일러라 생략한다^^

 

 

내가 잡아들인 범죄자와 바람난 아내 죽이기라니 설정 자체 만으로도 뭔가 황당하고 기발할 것 같은 책 일 것 이라는 예상을 저버리지 않는 참 재미있는 책이다. 특히 “그 놈 그 놈” 하다가 아내가 “그 놈 그 놈 하지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라는 말에 바로 “ 그 분”이라고 부르지 않나, 남편 말에 하나도 지지 않고 꼬박 꼬박 맞받아치는,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절로 속이 터져 죽어 버렸을 아내의 말대꾸, 승진 심사가 코 앞에 닥쳐 실적을 강요하는 상사에게 빈정거리는 “나”의 대화들이 마치 “만담(漫談)”을 주고 받는 것처럼 꽤나 재미있어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르겠다. 또 중간에 아내를 유기견(遺棄犬)과 동격(同格)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아내 밥그릇에 사료를 담아 개에게 먹이다가 그만 물려 버리는 장면 - 이 대목에선 밥그릇을 나눠 쓰는 그런 “동격”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동서(同壻)”로 만들겠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낛시대에 먹이를 끼워 개를 낛아 사로잡겠다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 이나 신종플루 환자가 쓰던 수건을 불륜남 차에 밀어 넣어 신종 플루를 걸리게 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낙담하는 장면, 형사란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살인 모의 등 웃음이 “빵” 터지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장면들만 계속된다면 영화 <마누라 죽이기>와 같은 코미디 소설 정도로 그쳤을 텐데, 주인공이 각종 사건을 수사하는 장면들만큼은 여느 추리소설과 견주어도 될 만큼 꽤나 진지하다. 엄마가 내연남과 짜고 아빠를 죽였다며 수사를 해달라는 아들 - 마지막에 이르러 사건의 놀라운 전말이 드러난다 -, 성폭행 현장을 목격했음에도 구해주기는 커녕 자위를 하던 남자를 결국 살인하는 여자, 딸과 사위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가출해 노숙 생활을 해서 언론에 대서특필된 할머니, 서로의 상대를 대신 죽여주는 “교차 살인”을 저지르는 두 남녀, 시위가 거리마다 일어나던 혼란의 시절 부상당한 시위 학생을 돌봐달라며 꾀이고는 강간한 남자와 수십 년 만에 거래처 임원과 하청업체 사장 아내로 다시 만나게 된 사연 등 기막히면서도 무겁기 짝이 없는 사건들을 주인공이 수사하는 과정이 꽤나 리얼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이런 진지한 사건들과 “아내 죽이기”라는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자칫하면 겉돌아서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기 십상인데,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내는 작가의 글솜씨가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추리소설로서의 진지한 맛과 코미디 소설로서의 유쾌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이 정도라면 요새 서점가를 장악하고 있는 여느 일본 추리 소설 - 물론 걸작이라 부를 만한 작품들도 있지만 워낙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다 보니 평균 이하의 작품들도 꽤나 있다 - 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재미를 보여준다고 평가하고 싶다. 우리 소설도 참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준 전은강 작가, 앞으로도 더 멋지고 기막힌 재미를 선사하는 소설들을 계속 선보여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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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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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사고로 또는 연일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는 끔직한 범죄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영결식장에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오열하는 장면을 보면 절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져 온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살아 남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 가슴에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화인(火印)이 박혀 평생을 아픔 속에서 살아가야 할 남은 자들의 슬픔은 어쩌면 필설(筆舌)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것 일테다. 그런데 일가족이 하루 아침에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홀로 남겨진 피해자의 딸, 그리고 살인사건을 저지른 살인범의 남겨진 딸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남겨진 두 사람의 삶과 상처는 과연 어떠할까? 그리고 그들이 만난다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과연 어떠할까? 감히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하고 두려운 이 상상을 소설로 만났다. SBS 인기드라마 〈연애시대〉의 원작소설 작가인 노자와 히사시의 “심홍”(원제 深紅, 예담, 2010년 7월)이 바로 그 책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가나코는 수학여행 길에 올라 친구들과 즐거운 첫날밤을 보낼 무렵,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가나코를 찾는다. 가족이 큰 사고를 당했다고, 지금 바로 도쿄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담임과 택시를 타고 도쿄로 향한다. 평생의 트라우마로 그녀를 괴롭히는 4시간 후에 도착한 가나코는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일그러진 끔찍한 시체가 되어 누워있는 부모님과 쌍둥이 동생을 만나게 된다. 수학여행 때문에 살아남게 된 가나코는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가슴에 간직한 채 고모 댁에서 성장하게 된다. 그로부터 8년 후 20살의 대학생이 된 가나코는 아직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예기치 않은 순간에 불현듯 찾아오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던 4시간의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대법원에서 범인인 “쓰즈키 노리오”의 사형이 최종 확정된 후 사건 현장을 처음 발견했던 경찰의 인터뷰 기사에서 범인에게 자신과 같은 나이의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녀에게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나도 죽이면 돼. 늘 준비해두고 있던 대사가 틀림없다. 8년 전 사건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늘 그렇게 자멸욕구를 가장함으로써 죄를 면하려는 것이다. 누가 속을 줄 알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카페에서 바텐더를 하고 있는 범인의 딸, “미호”에게 접근한 가나코는 그녀와 점점 친해지면서 마주하고 있는 거울처럼 그녀도 고통을 겪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녀에 대한 동정심과 그녀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분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미호는 자신에게 모진 폭행을 해서 3개월 된 아이를 유산케 한 남편을 죽이고자 결심하고 가나코는 그 살인계획에 가담하게 된다. 과연 미호는 자신의 아버지의 업보를 다시 짊어지게 될 런지, 아니면 또 다른 결말에 치닫게 될 런지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여기서 생략한다.

 

 과연 이 책을 뭐라 분류할 수 있을까? 미스터리 형식을 띠고 있지만 끔직한 살인사건의 개요와 범인, 그리고 동정심마저 드는 범인의 살해 동기는 이미 1장과 2장에 다 밝혀놓았고, 3장에서는 사건이 발생한지 8년 후 가해자와 피해자의 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딱히 추리소설로 분류하기는 그렇다. 가나코가 미호에 대해 품게 되는 적의와 분노, 시간이 흐르면서 미호에 대한 분노 대신 서서히 자리 잡게 되는 연민과 동정심, 그리고 마지막 용서와 화해에 이르기까지의 가나코의 심리 묘사는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연상될 정도로 탁월하고 몰입도 또한 강하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의 일본 평론가들의 평을 보면 2장까지 성공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열기와 광기를 끝까지 가져간다면 엄청난 걸작이 완성되었을 수 도 있었을 것이라는 평도 있던데 - 물론 3장 이후 두 소녀의 이야기가 더욱 매력적이라는 평으로 끝난다 - 만일 그랬다면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잔혹하고 끔찍한 추리소설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나코가 미호에 대해 느끼는 적의와 분노, 그리고 연민, 미호의 살인에 동참하게 되면서 갖게 되는 복잡한 심리에 대한 생생하고 탁월한 묘사야말로 읽는 독자로 하여금 가나코의 심리 변화에 따라 함께 분노하고, 함께 슬퍼하며, 고통 받는 가나코와 미호의 마음의 상처에 같이 아파하고, 미호를 파멸시키려는 가나코의 시도에 불안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감정이입과 몰입감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연일 끔직한 범죄가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어쩌면 가나코와 미호는 소설 속의 상상의 인물이 아니라 바로 소설 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을 바로 우리 이웃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에게 당신이 바로 가나코와 미호가 될 수 있다는, 소설보다 끔찍한 현실이 바로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런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상상에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지막 장을 바로 덮지 못하고 계속 들춰보게 되는,  여운이 오래 남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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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에 숨은 세계사 여행 - 영화로 읽는 세계사 이야기
김익상 지음 / 창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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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9대왕 숙종(肅宗)의 여인인 “장희빈(張禧嬪)”을 다룬 드라마를 처음 본 것이 “이미숙” 주연(主演)의 <여인열전 - 장희빈(MBC, 1982)>였다. 어린 나이였던 지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장희빈”을 조선 역사상 최고의 악녀(惡女) 쯤으로 그렸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훌쩍 지난 후인 <동이(MBC, 2010)>에서의 “장희빈”은 독기(毒氣)가 많이 빠진 채 왠지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는, 어릴 적 기억 속의 장희빈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있었다. 이처럼 하나의 역사적 사실(史實)이라도 시대적, 문화적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달리 해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특히 역사 드라마나 영화들은 부족한 사료(史料)와 사실(史實)의 간극을 작가의 상상력(Fiction)으로 메워야 하는, 즉 장르적으로 “팩션(Faction, Fact(사실) + Fiction(허구)의 합성어)”일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종종 역사 전문가들이 역사 드라마나 영화를 역사적 사실로 오해하는 것을 경계하는 글들을 올리지만, 그래도 전문적으로 역사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대중들에게 기승전결(起承轉結)과 인물들 간의 갈등관계가 명확하고, 극적 긴장감과 재미가 뛰어난 역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만큼 역사를 접하고 즐기는 데 좋은 수단이 또 있을까? 특히 인류의 전(全) 시대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다양한 역사 영화들을 통해서 세계사(世界史)를 이해해보는 것도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굳이 영화들을 검색하면서 세계사 연표에 매칭시키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미 이런 주제로 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바로 대학에서 영화방송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지금도 영화 만드는 작업 또한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는 “김익상” 교수의 <스크린에 숨은 세계사 여행; 영화로 읽는 세계사 여행(창해/2011년 12월)>이 그 책이다.

 

 

 

이 책은 인류가 불을 발견했던 선사시대(先史時代)에서부터 20세기의 패자(覇者)인 “미국”의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총 13장으로 나누어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를 각각의 시대를 담고 있는 영화들을 매칭(matching)시켜 설명하고 있다. 구성은 먼저 해당 시대를 그린 영화 한 두 편에 대한 정보 - 개봉연도/감독/배우/제작사 등 -와 “함께 보면 좋은 영화(For more, try these Film)"들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책(For more, try these Books)"를 한 페이지 정도 소개한다. 그리고 본문에 들어서면 해당 시대에 대한 간략한 소사(小史)를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앞서 언급한 영화를 통한 해당 세계사의 해석이 등장한다. 그리고 매 장 말미에는 부록으로 해당 시대에 대하여 두 페이지 내외로 보충 설명을 싣고 있다. “제1장 원숭이에서 인간으로”로 구성을 소개해보자면 먼저 해당 영화인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불을 찾아서>에 대한 간략 정보와 함께 “함께 보면 더 좋은 영화”로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 <솔라리스(1972)>, <메트로폴리스(1927)>을,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책”으로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중앙일보 , “데이비드 버스”의 <이웃집 살인마>를 열거한다. 본문에서는 인간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문명을 창조했기 때문이고, 문명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인간다운 원숭이’는 어떻게, 어느날 갑자기, 왜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진화론에서는 이것을 “진화”와 “변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예로 서양 여자의 상징인 블론드(금발머리)를 든다. 즉, 돌연변이로 나타난 변종인 금발 머리는 남자들의 이목을 끌기가 쉬워 짝짓기에 유리한 경쟁력을 발휘하자 점차 금발 여성(그리고 남자 자손들)이 널리 퍼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화의 개념과 함께 원시 인류의 계보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를 통해서는 도구의 발견을. “장 자크 아노” 감독의 <불을 찾아서(1981)>를 통해서는 인류가 어떻게 불을 찾아내고 다루었는가를 설명한다. 또한 도구, 불과 함께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세 번째 요소로 “언어”를 꼽으면서 언어 사용이 인간의 두뇌를 추상이 가능하도록 발전시키고, 추상능력이 점점 발전하면서 인간의 지적 능력도 더욱 발달해, 육체적인 능력에도 영향을 미쳐 문명을 건설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해석을 소개하는데, 쇼핑을 할 때 남자는 필요한 물건만 사는 반면 여자는 계속해서 매장을 빙빙 둘러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습성이 바로 원시습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원시시대에 남자가 주업이었던 “사냥”은 목표로 정한 사냥감을 잡으면 그걸로 끝이니 뭘 더 고를 일이 없지만 여자의 주업인 “채집”은 사냥과 달리 많이 둘러 볼수록 이익이었다고 한다. 이런 습성이 수만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핏속에 남아 남녀간의 쇼핑 형태 차이로 남았다는 것이다. 부록에는 “선사와 역사의 경계”에 대한 설명을 두 페이지 분량으로 실어 제1장을 마무리한다.

 

 

 이 외에도 “제3장 종교의 발전과 고대 국가의 성립” 편에서는 애니메이션인 <이집트왕자(1998)>를, 동서양의 제국의 탄생을 다룬 4장과 5장에서는 각각 “장이모우” 감독의 <영웅(2002)>과 “잭스나이더” 감독의 <300(2006)>,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2000)>로 동양(중국)의 “진(秦)” 나라와 서양의 “그리스”, “로마” 제국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제 8장 대항해시대와 유렵의 세계 침략” 편에서는 “엔리오 모리꼬네”의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라는 오보에(oboe) 연주곡으로 유명한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1986)>을 소개하고, 미국 대공황 시절을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다룬 “제12장 자본주의와 인간 노동의 소외” 편에서는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 <모던 타임즈(1936)>로 그 시대의 모순과 불합리를 꼬집는다. 마지막으로 “제13장 20세기의 패자, 미국의 현대사” 편에서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포레스트 검프(1994)> - 엘비스 프레슬리, 존 레논, 케네디 대통령 등 유명 인사들 뿐만 아니라 월남전, 중미 탁구외교 등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미국의 주요 현대사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팬 들 사이에서는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영화 속 유명인사와 현대사 사건 찾기가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 를 통해 미국의 현대사를 되짚어 보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를 통해서 세계사의 맥을 짚어보는 구성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세계사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보다 객관화된 해석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이 일부 개입된 점들은 아쉬움으로 남는데, 특히 우리나라 역사를 다룬 내용 중에 그런 예가 몇몇 있었다. 예를 들어 신라(新羅)를 흉노(匈奴)가 남하하여 건국했다는 설 - KBS 역사 스페셜 <신라 왕족은 정말 흉노의 후예인가(2009.07.18. 방송)> 편에서 이 설을 다루고 있는데 아직 정설(定說)로는 채택이 되지 않고 있다 - 이나 “청(靑)”을 건국한 만주족(滿洲族)의 뿌리를 우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설하는 점 - 몇몇 학자들은 만주족 성(性)이 “애신각라(愛新覺羅)”라고 해서 신라 왕조와 연관시켜 해석하고 있다 - 등 정통 역사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해석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흥미롭기는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은 그런 해석들을 굳이 이 책에 담을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물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나 해석들의 맞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작가 또한 역사 비전공자이고 이 책의 대상도 역사학자들과 같은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과 조금 다르다면 다른 해석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가도 좋을 듯 하다. 아뭏튼 대중들에게 친숙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세계사를 짚어보는 시도만큼은 충분한 가치와 재미를 가진 책임에는 분명하니 색다른 세계사를 읽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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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어느덧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해를 반성하고 새해 계획 세우느라 바쁘시겠지만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들과 함께 새해 계획 세워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2012년 두번째 달인 2월에는 아래 책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1. 로보포칼립스(대니얼 H.윌슨/문학수첩/2011-12-16)

 

 

인간이 만들어낸 놀라운 기술이 인간을 배반하며 촉발된 거대 전쟁을 충격적으로 그려낸 SF 스릴러라니 조금 묵직한  SF 소설일 것 같네요. 그래도 스티븐 킹이 격찬하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전격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하니 재미만큼은 보장된 작품일 것 같습니다. 다소 무겁더래도 진지한 SF 소설로 긴 겨울밤 보내는 것도 제격일 것 같아 추천해봅니다.

 

2. 난반사(누쿠이 도쿠로/문학동네/2011-12-09)

 

 

일본 추리소설 꽤나 읽었다고 자부하는 저인데도 누쿠이 도쿠로, 처음 만나보는 작가이니 일본 추리소설의 저변이 어디까지인지 정말 감탄이 나오네요. 이 책, 소설 첫 장부터 이미 복수의 범인이 있음을 전제하고 사건의 전후 배경을 시간 흐름에 따라 상세하게 서술해나가는 다소 파격적인 형식을 띤 이 작품이라니 그간 접해본 일본 작품들과 차별화된 작품일 것 같아 구미가 당기네요. 또한 제141회 나오키 상 후보에 올랐고 동시에 제63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니 작품성도 검증받은 것 같구요. 이 책으로 누쿠이 도쿠로라는 작가를 알아보고 싶습니다.

 

이 외에도 엘러리퀸 작품과 멋진 장르 소설들이 눈에 띄긴 하는데 이번달에는 이 2권만 추천해봅니다. 두 분 모두 꼭 선정되길 바란다면....욕심이겠죠^^ 그래도 2월의 행복을 책임져줄 저 두 권이 제 품에 들어오길 기원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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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사슬
프리담 그란디 지음, 맹은지 옮김 / 북캐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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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의 작품은 늘 긴장시킨다. 검증이 되지 않은 작가인지라 낯선 작가가 선보일 재미가 어떤 수준일지 가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의외의 재미보다는 실망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무래도 한번쯤은 겪어본 작가들 위주로 책을 선택하게 되고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면 기대보다는 우려가 항상 앞서게 된다. 이번에 만난 “프리담 그란다”의 <영혼의 사슬(원제 A Circle of Souls /북캐슬/2011년 11월)>도 작가가 전업(專業) 작가가 아니라 아동· 청소년 담당 정신과의학 박사로 사실상 비전문 작가인데다가 사실상 첫 번 째 작품이라고 하니 역시나 걱정과 우려로 책 읽기를 시작했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난 지금 낯선 작가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 의외의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하굣길에 10세 어린 소녀 “제닛”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조용한 마을인 “코네티컷 뉴베리”가 발칵 뒤집힌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지만 일주일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자 같은 마을에 사는 유력 정치인이 FBI에 도움을 요청하고 휴가 중이던 어린이 실종 사건 전문 요원인 여형사 “레이아”가 긴급 투입되는데, 얄궂게도 레이아가 도착하던 날 실종되었던 제닛이 토막난 시체로 발견된다. 항공 촬영을 통해 조각 조각난 소녀의 사체가 발견된 지점들을 선으로 연결해보자 묘한 주술적 형태가 드러나고 레이아는 과거 사건을 조사하던 중 30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소녀 살해 사건이 일어난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뉴베리 종합소아병원에서 아동 정신과 상담 및 치료를 전담하는 의사인 “피터 그람”은 몽유병 증상으로 하마터면 발코니에서 추락 사고를 당할 뻔했다가 응급실에 실려 온 일곱 살 어린 소녀 “나야 헤이스팅스”를 맡게 된다. 뇌파 측정 및 MRI 검사 등 여러 검사를 시행하지만 나야에게 딱히 이상을 발견할 수 없는데, 특이한 점은 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아주 자세하게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점이었다. 나야가 전날 꾼 꿈을 그린 그림을 보게 된 피터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그 그림은 바로 제닛의 끔찍한 죽음을 그대로 그려낸 것이다. 소아 병동에 신문이나 TV 시청도 되지 않아 나야는 살인사건에 대한 뉴스를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을 텐데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피터가 나야와 면담해본 결과 놀랍게도 꿈에서 죽은 제닛이 조각조각 난 몸을 실로 꿰맨 채로 나야를 찾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피터는 그림을 들고 제닛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이자 나야의 그림에도 그려져 있는 “코끼리 바위”를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수사를 하고 있던 FBI 요원인 레이아와 뜻하지 않은 조우를 하게 된다. 과연 30년 전과 지금 현재 어린 소녀들을 끔찍하게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나야의 꿈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추리소설인줄 알고 읽었는데 책 페이지가 넘어갈 수 록 이야기 방향이 이상하게 전개되어 당황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어린 소녀가 끔찍하게 살해되고, 이런 사건이 30년 전에도 일어났다는 대목까지만 해도 유아 연쇄살인범을 다룬 미스터리이겠거니 했는데 소아 정신 병동에 머물게 된 소녀의 꿈에 처참하게 살해된 소녀가 나타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담당의인 피터에게 말까지 전달한다니 추리소설의 규칙을 위반한 이야기 전개가 금세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도 출신의 입양된 아이였던 나야의 친어머니 또한 나야와 비슷한 증세 - 몽유병에 예언 능력 - 을 앓고 있었고, 나야의 외삼촌이 나야와 피터가 운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런 운명이 가문에 전해 내려 오는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피터의 전생(前生)이 30 년 전 살인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대목부터는 이제는 더 이상 추리소설이 아닌 본격 심령 공포 소설로 장르를 완전히 전환되어 버린다. 이 책이 어떤 장르인지 분명히 알게 되고 나서야 당황스러움은 사라지고 본격적으로 이야기 전개에 몰입하게 되었다. 노틸러스 북 어워드 수상, USA북뉴스 최우수도서 선정이라는 책표지 문구를 보면 분명 서구(西歐) 쪽 소설인데 그동안 “스티븐 킹” 이외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오컬트적 요소들, 그것도 예지몽(豫智夢), 전생과 환생(還生), 예언(豫言) - 물론 범인의 엽기적 살인 동기는 자메이카 토속 신앙에서 비롯되니 동양적 요소라고 볼 수 는 없지만 - 등 동양적 정서가 다분한 이유가 과연 뭘까? 아무래도 작가가 바로 인도 뱅갈로 출신인지라 자연스럽게 인도 신앙이나 동양적 정서가 배어나온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초자연적인 요소와 추리소설로서의 스릴이 서로 성기지 않고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내어 읽는 내내 유치함이나 지루함 없이 책에서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과 재미만큼은 뛰어난 소설이었다. 다만 아동 실종, 유괴 사건을 해결해 온 전문가로서 의욕적으로 사건 수사에 나선 FBI 요원 레이아는 결국 이렇다 할 활약을 펼쳐보지 못하고 밑도 끝도 없는 어린 소녀의 꿈에 의존해 사건을 해결하게 되고, 결말에 이르러 피터와의 러브라인을 보여 주는 역할로만 그쳐 캐릭터 설정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추리소설을 기대했다가 심령 공포 소설 - 그렇다고 모골이 송연하고 꿈자리가 사나울 정도로 극한의 공포는 아니니 공포 소설을 꺼려하는 분들도 편한 마음으로 읽어볼 만한 수준이다 - 을 만나게 되어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야기 설정과 전개는 꽤나 진지하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어 읽는 내내 긴장감과 스릴을 맛볼 수 있었던 재미있는 책이었다. 다 읽고 나니 엉뚱한 궁금증이 하나 들었다. 이 책이 과연 허구(虛構)일까? 앞서 언급한 작가의 이력처럼 작가가 현재 이 책의 주인공인 “피터 그람” - 이름이 작가와 비슷한 걸 보면 자기 자신을 모델로 한 것 같다 - 처럼 아동·청소년 정신 상담 일을 하고 있다니, 그리고 전문적인 작가가가 아닌 이상 자신의 실제 경험이 녹여서 썼다고 한다면 혹 실제 경험은 아니었을까?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상상해보니 괜히 으스스 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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