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죽이기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15
전은강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아내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해본 적이 있을까? 결혼한 지 제법 되었지만 가끔 얄미워 꿀밤을 한 대 먹였으면 한 적 - 물론 상상으로만. 실제로 했다면 가정 폭력으로 벌써 구속되었을 것이다. 야근에, 회식에 늦기 일 수 고 늦지 않고 일찍 와도 피곤하다고 일찍 자버리는 나를 보면서 아내는 나보다 더 많이, 꿀밤이 아닌 그 이상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 이 있긴 하지만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바람이 났다면? 그것도 하필이면 내가 잡아들인 범죄자와 바람이 난 형사 남편 입장이라면? 반성은 커녕 이혼해 달라고 떳떳이 요구해온다면 과연 어떨까? 정말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전은강의 <아내 죽이기(휴먼앤북스/2011년 6월)>는 바로 그런 기막힌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강력계 형사의 눈물(?)겨우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이야기이다.

 

 

강력계 형사로서는 수많은 사건을 해결한 “베테랑”인 “나”이지만 집에서는 영 찌질한 모습만 보여준다. 업무 스트레스로 아내와 잠자리에서는 영 맥을 못추고 - 오르가즘을 국가에 반납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 잠복근무에 야근으로 툭하면 아내 독수공방하게 만들지 않나, 장인 병원비 보태줄 돈 하나 변변히 없어 사채를 쓰게 만드는 빵점자리 남편이다. 그런데 아내가 “바람”이 나고 말았다. 그것도 내가 “동거녀 납치 강간 혐의”로 긴급 체포했던 “경수”란 놈과 말이다.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있나. 그런데 얼씨구 두 손 두 발 다 빌어도 용서해 줄까 말까 한 아내, 말 한마디 지는 법이 없이 꼬박꼬박 말대꾸하면서 이혼해 달라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홧김에 간통죄로 고소해버릴까 했더니 경수란 놈 “고소해봤자 형사님 쪽만 팔게 될 거에요. 조루증이 이혼사유로 인정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외도 사유로는 인정될 것 같아서요”라고 맞받아친다. 이런 잠자리 얘기까지 하다니 얼굴이 붉어지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미워 죽겠지만 결혼 생활만큼은 유지하려고 했더니만 이 마누라 한 술 더 떠 섹스 동영상을 핸드폰으로 전송해 오지 않나, 심지어 경수 애까지 임신해버리고 살고 있던 집 전세금마저 날려 먹는다. 이래도 이혼 안 할래 라는 식의 아내의 막무가내 행동에 폭발한 나, 결국 아내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것도 형사 경험을 살려 “완전범죄”를 기획해서 말이다. 그런데 웬걸, 아내에게 이혼해주겠다고 말해 놓고 마지막으로 부모님 산소에 찾아뵙고 인사드리자며 산으로 데려가서는 미리 풀어놓은 독사에게 물려 사고로 죽는 것처럼 꾸미는 시도는 독사가 말썽을 부려 실패하고 오히려 뱃속의 아기를 죽이려고 한 거 아니냐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게 된다. 이 남자, 아내 죽일 수나 있을까? 결말은 스포일러라 생략한다^^

 

 

내가 잡아들인 범죄자와 바람난 아내 죽이기라니 설정 자체 만으로도 뭔가 황당하고 기발할 것 같은 책 일 것 이라는 예상을 저버리지 않는 참 재미있는 책이다. 특히 “그 놈 그 놈” 하다가 아내가 “그 놈 그 놈 하지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라는 말에 바로 “ 그 분”이라고 부르지 않나, 남편 말에 하나도 지지 않고 꼬박 꼬박 맞받아치는,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절로 속이 터져 죽어 버렸을 아내의 말대꾸, 승진 심사가 코 앞에 닥쳐 실적을 강요하는 상사에게 빈정거리는 “나”의 대화들이 마치 “만담(漫談)”을 주고 받는 것처럼 꽤나 재미있어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르겠다. 또 중간에 아내를 유기견(遺棄犬)과 동격(同格)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아내 밥그릇에 사료를 담아 개에게 먹이다가 그만 물려 버리는 장면 - 이 대목에선 밥그릇을 나눠 쓰는 그런 “동격”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동서(同壻)”로 만들겠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낛시대에 먹이를 끼워 개를 낛아 사로잡겠다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 이나 신종플루 환자가 쓰던 수건을 불륜남 차에 밀어 넣어 신종 플루를 걸리게 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낙담하는 장면, 형사란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살인 모의 등 웃음이 “빵” 터지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장면들만 계속된다면 영화 <마누라 죽이기>와 같은 코미디 소설 정도로 그쳤을 텐데, 주인공이 각종 사건을 수사하는 장면들만큼은 여느 추리소설과 견주어도 될 만큼 꽤나 진지하다. 엄마가 내연남과 짜고 아빠를 죽였다며 수사를 해달라는 아들 - 마지막에 이르러 사건의 놀라운 전말이 드러난다 -, 성폭행 현장을 목격했음에도 구해주기는 커녕 자위를 하던 남자를 결국 살인하는 여자, 딸과 사위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가출해 노숙 생활을 해서 언론에 대서특필된 할머니, 서로의 상대를 대신 죽여주는 “교차 살인”을 저지르는 두 남녀, 시위가 거리마다 일어나던 혼란의 시절 부상당한 시위 학생을 돌봐달라며 꾀이고는 강간한 남자와 수십 년 만에 거래처 임원과 하청업체 사장 아내로 다시 만나게 된 사연 등 기막히면서도 무겁기 짝이 없는 사건들을 주인공이 수사하는 과정이 꽤나 리얼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이런 진지한 사건들과 “아내 죽이기”라는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자칫하면 겉돌아서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기 십상인데,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내는 작가의 글솜씨가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추리소설로서의 진지한 맛과 코미디 소설로서의 유쾌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이 정도라면 요새 서점가를 장악하고 있는 여느 일본 추리 소설 - 물론 걸작이라 부를 만한 작품들도 있지만 워낙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다 보니 평균 이하의 작품들도 꽤나 있다 - 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재미를 보여준다고 평가하고 싶다. 우리 소설도 참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준 전은강 작가, 앞으로도 더 멋지고 기막힌 재미를 선사하는 소설들을 계속 선보여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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