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숨은 세계사 여행 - 영화로 읽는 세계사 이야기
김익상 지음 / 창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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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9대왕 숙종(肅宗)의 여인인 “장희빈(張禧嬪)”을 다룬 드라마를 처음 본 것이 “이미숙” 주연(主演)의 <여인열전 - 장희빈(MBC, 1982)>였다. 어린 나이였던 지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장희빈”을 조선 역사상 최고의 악녀(惡女) 쯤으로 그렸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훌쩍 지난 후인 <동이(MBC, 2010)>에서의 “장희빈”은 독기(毒氣)가 많이 빠진 채 왠지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는, 어릴 적 기억 속의 장희빈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있었다. 이처럼 하나의 역사적 사실(史實)이라도 시대적, 문화적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달리 해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특히 역사 드라마나 영화들은 부족한 사료(史料)와 사실(史實)의 간극을 작가의 상상력(Fiction)으로 메워야 하는, 즉 장르적으로 “팩션(Faction, Fact(사실) + Fiction(허구)의 합성어)”일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종종 역사 전문가들이 역사 드라마나 영화를 역사적 사실로 오해하는 것을 경계하는 글들을 올리지만, 그래도 전문적으로 역사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대중들에게 기승전결(起承轉結)과 인물들 간의 갈등관계가 명확하고, 극적 긴장감과 재미가 뛰어난 역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만큼 역사를 접하고 즐기는 데 좋은 수단이 또 있을까? 특히 인류의 전(全) 시대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다양한 역사 영화들을 통해서 세계사(世界史)를 이해해보는 것도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굳이 영화들을 검색하면서 세계사 연표에 매칭시키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미 이런 주제로 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바로 대학에서 영화방송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지금도 영화 만드는 작업 또한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는 “김익상” 교수의 <스크린에 숨은 세계사 여행; 영화로 읽는 세계사 여행(창해/2011년 12월)>이 그 책이다.

 

 

 

이 책은 인류가 불을 발견했던 선사시대(先史時代)에서부터 20세기의 패자(覇者)인 “미국”의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총 13장으로 나누어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를 각각의 시대를 담고 있는 영화들을 매칭(matching)시켜 설명하고 있다. 구성은 먼저 해당 시대를 그린 영화 한 두 편에 대한 정보 - 개봉연도/감독/배우/제작사 등 -와 “함께 보면 좋은 영화(For more, try these Film)"들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책(For more, try these Books)"를 한 페이지 정도 소개한다. 그리고 본문에 들어서면 해당 시대에 대한 간략한 소사(小史)를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앞서 언급한 영화를 통한 해당 세계사의 해석이 등장한다. 그리고 매 장 말미에는 부록으로 해당 시대에 대하여 두 페이지 내외로 보충 설명을 싣고 있다. “제1장 원숭이에서 인간으로”로 구성을 소개해보자면 먼저 해당 영화인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불을 찾아서>에 대한 간략 정보와 함께 “함께 보면 더 좋은 영화”로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 <솔라리스(1972)>, <메트로폴리스(1927)>을,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책”으로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중앙일보 , “데이비드 버스”의 <이웃집 살인마>를 열거한다. 본문에서는 인간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문명을 창조했기 때문이고, 문명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인간다운 원숭이’는 어떻게, 어느날 갑자기, 왜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진화론에서는 이것을 “진화”와 “변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예로 서양 여자의 상징인 블론드(금발머리)를 든다. 즉, 돌연변이로 나타난 변종인 금발 머리는 남자들의 이목을 끌기가 쉬워 짝짓기에 유리한 경쟁력을 발휘하자 점차 금발 여성(그리고 남자 자손들)이 널리 퍼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화의 개념과 함께 원시 인류의 계보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를 통해서는 도구의 발견을. “장 자크 아노” 감독의 <불을 찾아서(1981)>를 통해서는 인류가 어떻게 불을 찾아내고 다루었는가를 설명한다. 또한 도구, 불과 함께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세 번째 요소로 “언어”를 꼽으면서 언어 사용이 인간의 두뇌를 추상이 가능하도록 발전시키고, 추상능력이 점점 발전하면서 인간의 지적 능력도 더욱 발달해, 육체적인 능력에도 영향을 미쳐 문명을 건설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해석을 소개하는데, 쇼핑을 할 때 남자는 필요한 물건만 사는 반면 여자는 계속해서 매장을 빙빙 둘러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습성이 바로 원시습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원시시대에 남자가 주업이었던 “사냥”은 목표로 정한 사냥감을 잡으면 그걸로 끝이니 뭘 더 고를 일이 없지만 여자의 주업인 “채집”은 사냥과 달리 많이 둘러 볼수록 이익이었다고 한다. 이런 습성이 수만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핏속에 남아 남녀간의 쇼핑 형태 차이로 남았다는 것이다. 부록에는 “선사와 역사의 경계”에 대한 설명을 두 페이지 분량으로 실어 제1장을 마무리한다.

 

 

 이 외에도 “제3장 종교의 발전과 고대 국가의 성립” 편에서는 애니메이션인 <이집트왕자(1998)>를, 동서양의 제국의 탄생을 다룬 4장과 5장에서는 각각 “장이모우” 감독의 <영웅(2002)>과 “잭스나이더” 감독의 <300(2006)>,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2000)>로 동양(중국)의 “진(秦)” 나라와 서양의 “그리스”, “로마” 제국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제 8장 대항해시대와 유렵의 세계 침략” 편에서는 “엔리오 모리꼬네”의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라는 오보에(oboe) 연주곡으로 유명한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1986)>을 소개하고, 미국 대공황 시절을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다룬 “제12장 자본주의와 인간 노동의 소외” 편에서는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 <모던 타임즈(1936)>로 그 시대의 모순과 불합리를 꼬집는다. 마지막으로 “제13장 20세기의 패자, 미국의 현대사” 편에서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포레스트 검프(1994)> - 엘비스 프레슬리, 존 레논, 케네디 대통령 등 유명 인사들 뿐만 아니라 월남전, 중미 탁구외교 등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미국의 주요 현대사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팬 들 사이에서는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영화 속 유명인사와 현대사 사건 찾기가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 를 통해 미국의 현대사를 되짚어 보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를 통해서 세계사의 맥을 짚어보는 구성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세계사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보다 객관화된 해석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이 일부 개입된 점들은 아쉬움으로 남는데, 특히 우리나라 역사를 다룬 내용 중에 그런 예가 몇몇 있었다. 예를 들어 신라(新羅)를 흉노(匈奴)가 남하하여 건국했다는 설 - KBS 역사 스페셜 <신라 왕족은 정말 흉노의 후예인가(2009.07.18. 방송)> 편에서 이 설을 다루고 있는데 아직 정설(定說)로는 채택이 되지 않고 있다 - 이나 “청(靑)”을 건국한 만주족(滿洲族)의 뿌리를 우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설하는 점 - 몇몇 학자들은 만주족 성(性)이 “애신각라(愛新覺羅)”라고 해서 신라 왕조와 연관시켜 해석하고 있다 - 등 정통 역사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해석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흥미롭기는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은 그런 해석들을 굳이 이 책에 담을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물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나 해석들의 맞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작가 또한 역사 비전공자이고 이 책의 대상도 역사학자들과 같은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과 조금 다르다면 다른 해석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가도 좋을 듯 하다. 아뭏튼 대중들에게 친숙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세계사를 짚어보는 시도만큼은 충분한 가치와 재미를 가진 책임에는 분명하니 색다른 세계사를 읽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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