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여야(與野) 할 것 없이 쇄신에, 통합에, 연대에, 물갈이에 난리가 보통 난리가 아니다. 그들의 몸부림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예전 같으면 뉴스에 정치의 “정”자만 나오면 아예 리모컨을 돌려 버리거나 꺼버렸을 텐데, 또는 눈과 귀를 닫아 버리거나 또는 총선(總選)과 대선(大選)이 다가오니 “생쑈”를 반복하는 구만 하고 비웃었을 텐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 물론 냉소적인 시각은 여전하지만 주변 지인들 중에 평소에는 정치에 관심도 없던 분들이 요즈음 정치 뉴스에 부쩍 관심을 갖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분들이 많아졌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현 정치인들에게 뭔가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택도 없는 소리일 것이다. 이렇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시계 바늘을 잃어버렸다는 10년을 넘어 20년, 30년 뒤로 너무 많이 돌려 놓으신 “누구”의 공 - 딱히 잘하신 일은 떠오르지 않는데 정치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분들을 정치판으로 불러들이고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최고조로 이끌어냈다는 점만큼은 만고에 길이 남으실 업적(?)을 쌓으셨다 - 이 가장 크겠지만 “정치”라는 것이 결코 우리의 삶과 전혀 동 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생존”에 직결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정치가 알고 보면 꽤나 재미(?)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데는 이제는 “국민 방송”이라 부를 정도로 위상이 커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역할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보니 <나꼼수> 4인방, 즉 김어준 총수, 정봉주 전 국회의원, 주진우 기자, 김용민 PD의 인기가 웬만한 연예인 뺨 칠 정도로 대단하다고 한다. 4인방 중 정봉주, 주진우, 김용민이야 비교적 최근에 뜬 “신성(新星)”이지만 김어준 총수는 그가 창간(創刊)한 “딴지일보”가 벌써 햇수로 14년(1998년 7월 4일 창간)이 되었으니 한참 묵은 “구성(舊星)” - 이런 단어가 있나 모르겠다^^ - 인 것이 다르다 할 수 있겠다. 최근에 인터넷 칼럼으로, <나꼼수 방송>으로, 몇 몇 인터뷰집으로 띄엄띄엄 만나봤던 “김어준”을 책으로 올곧이 만나게 되었다. 2011년 온·오프 라인 통틀어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지금도 상위 목록을 차지하고 있는 <닥치고 정치; 김어준의 명랑시민 정치교본(푸른숲/2010년 10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 출간 당시 구입했었는데 이 책 저 책 다른 책들 읽는다고, 그리고 아껴 읽겠다고 몇 달 동안 책꽂이에 묵혀 두었다가 해(年)를 바꾼 올해 1월에 들어서야 읽게 되었다. 역시나 기대에 걸맞게 “김어준식” 정치 해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여실히 증명해주는 책이었다.
이 책의 집필 동기가 꽤나 웃기다. 김총수는 서문(序文)에서 이게 다 “조국” 교수 덕이란다. 스펙, 얼굴, 기장, 음색, 사상, 이건 토털 패키지, 이만하면 역대 최고 선수라고 열렬 환호했는데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을 들었다가 재수 없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문 읽다 덮었단다. 그래서 아무도 안 시켰는데 혼자 불끈해서 돕자고 나선 게 이 책이란다. 그런데 이미 돕자고 출발해버렸는데 조국 바람이 너무 빨리 잦아들어 버렸고, 그래도 기왕 나선 거 내처 달리자, 일이 그리된 거란다. 그러면서 다음 페이지부터 펼쳐질 내용, 어수선하고 근본도 없고 막가니 근본 있는 자들은 괜히 읽고 승질내지 말고 여기서 덮으라고 친절하게 사전 경고한다. 그리고는 반론은 받지 않을 테니 열 받으면 니들도 이런 거 하나 쓰란다. 나는 이 책 읽고 승질이 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었으니 근본이 없는가 보다^^
유명한 “인터뷰어(Interviewer)"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지승호“씨와 대담 형태로 이뤄진 이 책, 본문에 들어서면 김어준식 정치 해설이 깨알같이 담겨 있다. <나꼼수>에서 여러번 다루었던 ”가카“의 BBK와 도곡동, 다스 의혹들과 대한민국의 실질적 지배 권력 “삼성” 이야기 뿐만 아니라 심상정, 이희정, 노회찬, 손학규, 한명숙, 유시민 등 야권 정치인들, 박근혜, 홍준표, 원희룡 등 여권 정치인들과 김총수가 조국 교수보다 더 “사모(思慕)”하며 대통령감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로 꼽는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정치, 경제 세력들에게 김어준 특유의 “무학(無學)”적 통찰과 유쾌하면서도 신랄한 메스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워낙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 거리낌 없이 실명(實名)을 거론하고 있어 책 내용을 소개하기가 부담스러운데 - 사실 실제 읽어보면 훨씬 재미있기 때문에 그런 재미를 요약식 소개에 담기가 더 부담스럽다는 게 맞는 말이다 -, 그 중 김어준식 “진보·보수 구별법”과 예언자(豫言者) 포스까지 보여주는 놀라운 혜안(?) 몇 개만 소개해보자.
김총수는 진보와 보수가 교육으로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이라는 특이한 주장을 한다. 저 먼 “사바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좌우의 원형질에 해당하는 감정이나 태도가 바로 살고 싶은 “욕망”과 자기 존재를 위협하는 대상에 대한 “공포”라고 한다. 그 시절의 욕망은 먹고 자고 섹스하는 모든 동물이 가진 본능적 욕구라 할 수 있다면 그 시절 가장 큰 공포는 불확실성이었다고 한다. 사자도 두렵지만 풀숲에서 튀어나올지 뭔지 아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즉 불확실성이 공포의 원형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인 것처럼 불확실성에는 논리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따로 없으니 인간이 불확실성이라는 공포에 따로 대처할 방도를 찾지 못하니까 굿도 하고, 별자리도 보고, 종교도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이라는 공포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 바로 좌, 우인데 우(右)는 기본적으로 세계를 “약육강식의 전쟁터”로 이해한다. 그렇다 보니 생존이 상시로 위협받는 약육강식의 환경에선 살아남기 위해 더 강한 포식자가 되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고, 더 악착같이 그걸 독점하는 굉장히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인지하는 세계에선 자신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게 도저히 죄가 될 수 없는 당연한 생존의 권리이며, 더 강한 자가 더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도 죄일 수 가 없는 마땅한 권리 행사일 뿐인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고생해서 자기 것을 챙겼는데, 만약 그걸 누군가 가져가거나 남들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보면 영 억울하기만 한, 그래서 자기가 강해서 획득한 자산, 그걸 남에게 뺏기지 않을 권리, 그렇게 확보한 자산의 차이로 만들어지는 위계, 그렇게 형성된 계급의 유지, 그 유지를 위해 필요한 질서, 그 질서의 지속적 보장이 그들이 인지하는 세계에선 무척 중요한 요소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격차로 인한 불평등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이치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뒤처지거나 약한 건 전부 자기 탓이니까. 그렇다면 본능에 가까운 기질적 “우”를 정치세력, 우파(右派)라고 불러줄 수 있는 요인을 무엇일까? 바로 그 요인을 김총수는 “자존심(自尊心)”이라고 꼽는다. 정치적 우파와 동물적 우파와 다른 점이 바로 “자존심”의 유무 차이인데 나보다 더 강한 놈이라 해도, 그게 두렵기는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굴복하기엔 자존심이 상해서 자기 존재에 대한 자부심이 그 본능적 공포를 이겨낼 때 진정한 우파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우파는 자존심이 없는 겁먹은 동물이며 정치적으로 우파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다고 잘라 말한다. 친일도, 친미도, 결국 자존심 없는 우가 동물주제에 인간 우파인척 하는 것이며, 우리 정치는 우파가 많아서가 아니라 우파가 없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좌(左)”는 어떤 기질일까? 우가 세계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보고 내가 먼저 포식자가 되어 살아남아야겠다는, 공포에 대한 동물적 반응이라면 좌는 정글 그 자체가 문제라고 접근하는 이들로 개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로 본다고 말한다. 좌도 정글의 불확실석이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우가 그 공포에 압도되어 자기만이라도 살려고 반응하는 거라면, 좌는 그 공포를 잘게 나눠 각자가 담당해야 하는 공포의 몫을 줄여서 해결하려 한다. 우가 본능적 반응이라면 좌는 논리적 대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각자가 처리해야 하는 공포의 크기를 균등하게 만드는, 평등이 아주 중요한 가치로 등장하며, 우가 쎈 놈은 더 가져가도 된다는, 질서와 위계를 당연시 하는 수직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좌는 누구나 같은 조건에선 같은 정도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그러니 연대가 키워드가 되는 거고. 그 연대를 작동시키는 엔진은 염치가 되는, 우의 엔진이 욕망과 공포인데 반해서 좌의 엔진은 인간이 가진 염치가 되는 것이다. 역시 좌 역시 타고나는 것으로 공포를 이성(異性)으로 제어하면서 논리적 추론을 통해 시스템을 문제 삼는 것이기에 기질을 넘어 하나의 세계관이라고 봐줄 수 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세계관은 근대에 들어서 서양의 기획에 의해 이념으로 정리된 것이지, 좌·우가 그제야 탄생한 건 아닌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좌에도 취약점이 있으니 스스로 지적으로 우월하고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부지불식간 드러나는 지적 오만이 대중들로부터 좌를 유리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자기들만의 언어로, 자기들끼리만 대단하고 자기들끼리만 정당하고, 자신들의 언어로 거대한 담론을 설법하려들거나 자기들끼리만 잔치를 하고 자기들끼리만 거룩한 순교자가 되는 것이 바로 취약점이라 말한다.
김총수는 이런 구분법으로 한국적 보수가 북한을 대하는 태도를 설명하는 단서 또한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불확실성 그 자체인 북한이라는 두려움을 가장 손쉽게 처리하는 방식은 상대를 악(惡)으로 규정해버려 윤리적 단죄의 대상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것이다. 무섭다고 하기보단 나쁘다고 규정해버리면 북한은 무서워서 싫은 게 아니라 악(惡)해서 싫다고 그래서 단죄하고 척결해야 하는 한마디로 원시인 수준이라는 것이다.
김총수의 이런 “좌·우” 선천적 기원설(?) 및 구분법이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유효한 해석인지 아니면 김총수식 “개똥철학”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어떤 진보·보수 구별법보다도 쉽게 이해되고 설득력 또한 꽤나 크게 느껴졌다. 물론 내가 “근본”이 없어서 그렇게 이해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말이다^^
김총수는 또한 앞으로 벌어질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전망하는데 몇 몇 건은 최근 실제 정치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어 놀라움마저 느끼게 한다. 책 출간은 작년 10월이지만 녹취(綠翠)는 작년 5월이었으니 최근 일련의 정치 상황들, 즉 서울시 보선(補選)과 야권 통합과 연대, 여권 쇄신 바람이 불기 한 참 전이었을 텐데 그는 심상정이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만의 선통합을 주장하고 최후의 순간에는 탈당(脫黨)까지도 예상하고 있으며(P.218), 작년 7월에 있을 한나라당 전당대회 전망에서 "홍준표"가 가장 일반적인 선택이라고 예측하고(P.255.), 서울시장 보선에서 정치판을 크게 흔들었던, 그리고 연일 유력한 대권 주자로 그 이름을 오르내리고 있는 안철수에 대해서도 대선과는 상관없는 분이지만 어찌나 시대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지, 정치에 전혀 관심 없던 일반인들까지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온몸으로 자각하게 해준 "그분"의 공로로 일이 그 지경이 되다 보니까 안철수 정도 되는 인물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사회적 열망이 생겨났고, 그렇기 때문에 아주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안철수 정도 되는 인물이 정치 전면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기만 하면 기존 정치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거대한 회오리가 일어날 거라고 전망한다(P. 240~241). 이 정도면 거의 “예언자”급 포스가 아닐까? 설마 녹취 후에 일련의 정치 상황을 보면서 수정을 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런 “꼼수”는 “누구”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이 책, <나꼼수> 못지않게 참 재미있다. 김어준식 정치 해설은 딱딱하고 어렵기만 한 정치 상황들을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의 언어 - 여기엔 욕도 포함된다 - 로 가슴 뻥 뚫리는 통쾌함과 재미를 선사하면서도 기성 정치인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웃고 즐기다가도 가슴 한 켠에는 곱씹어 볼만한 생각꺼리를 던져준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 수 있겠다. 경박스럽다느니, 깊이가 없다느니, 여론을 호도한다느니 별별 비난도 많이 듣겠지만 정치를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하는 정치, 시사 평론가가 있었는가? 앞서 언급한 서문에서 그의 말대로 열받으면 그들도 이런 글 쓰면 그만 아닌가? 근데 그런 재주들이 없는지 <나꼼수> 대적용 방송도 만들고 각종 칼럼이나 책들도 쏟아내지만 "그쪽"은 영 인기가 없다. 괜히 트위터 알바나 동원하지 말고, 고소 고발로 그들을 가두려 하지 말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그쪽판 김총수를 만들어가는 게 좀 더 건설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그쪽 편 몇 몇 논객들을 보면 영 싹수가 안보이니 차라리 김총수와 그의 일당들을 천문학적인 고액으로 매수를 하는게 더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물론 이 책에 담고 있는 김어준식 담론을 백퍼센트 믿거나 완전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 않고 견해가 다른 부분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국민들의 식견도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예전처럼 무지몽매한 수준을 벗어나 왠만한 정치 시사 평론가들이 무색할 정도로 많이 높아졌다. 수긍하는 대목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견해가 다른 부분은 무시하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분명 시국이 아주 엄중해서 평소 정치에 관심 없는 게 쿨한 건 줄 아는 사람들에게, 좌우 개념 안 잡히는 사람들에게, 생활 스트레스의 근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번 대선이 아주 막막한 사람들에게, 그래서 정치를 멀리하는 모두에게 이번만은 닥치고 정치를 외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기대를 훨씬 뛰어 넘는 성공을 거둔 것 같다. 그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 “남은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께요”라고 약속했던 것처럼 그는 앞으로도 그 어떤 정치적 외압에도 “쫄지 않고” 끊임없이 뭔가를 해보려고 할 것이다. 그가 하려고 하는 “뭔가”가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 아니 이번이 어렵다면 다음에라도 반드시 결실을 맺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