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신(神, God)”이 실재(實在)하신다면 요즘 인간세상을 굽어보시며 어떤 생각을 하실까? 아마도 이래저래 심기가 불편하실 것 같다. 한 때는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초개같이 버리던 창조물(創造物)인 “인간(人間)”들이 요즘은 자신의 말씀을 따르기는 커녕 자기들이 만들어 낸 “돈”을 창조주(創造主)인 자신보다 더 숭배하고 있으며, 자신을 믿고 따른다는 “신도(信徒)”들도 어떻게 하는 짓들마다 “신(神)” 욕 먹이는 짓만 골라 하는지 신자(信者)들과 불신자(不信者)들 모두 밉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화가 치밀어 확 갈아엎어 버릴까(終末) 싶으시다가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그래도 내가 만든 자식들인데 하시며 화를 꾹꾹 눌러 참고 있으실 것 같다. 그런데 영미 언론 선정 100대 지식인(그중 5위)에 오른 세계적인 정치학자 겸 저널리스트라는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종교 비평서 <신은 위대하지 않다(원제 God Is Not Great: How Religion Poisons Everything / 알마 / 2011년 12월)> 는 꾹꾹 눌러 참은 “신(神)”의 화를 더 북돋울 만한 지극히 “불경(不敬)”스러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신은 죽었다”고 대놓고 외치던 “니체” 만큼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작가는 서문(序文)격인 “1.좋게 말해서”부터 강력한 어조를 쏟아낸다. 작가는 종교에 반대하는 주장 중에서 결코 물리칠 수 없는 것이 네 가지가 있는데 첫째, 종교가 인간과 우주의 기원을 완전히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것, 이 첫 번째 잘못 때문에 최대한의 노예근성과 최대한의 유아독존을 결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둘째, 종교가 위험스러운 성적 억압의 결과이자 원인이라는 것, 셋째, 종교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희망사항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넷째, 자신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경로를 통해 아주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지금까지 수십 개국의 수많은 장소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한다. 이처럼 신을 불신하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원칙들은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들이 오로지 과학과 이성만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에 어긋나거나 이성을 능욕하는 모든 것을 불신하며, 서로의 의견들이 많은 면에서 갈릴 수 도 있지만, 자신들은 모두 자유로운 탐색, 개방적인 정신, 순수한 사상적 연구를 높이 평가하고, 자신의 신념을 교조적으로 떠받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러한 믿음에 관한 논쟁은 모든 논쟁의 기초이자 기원인데, 철학, 과학, 역사, 인간의 본질에 관한 모든 논쟁이 여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며, 믿음에 관한 논쟁은 또한 선한 삶과 정의로운 세상에 관한 모든 논란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신앙은 우리가 죽음, 어둠, 미지의 것, 그리고 우리 서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자신은 설사 종교를 금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종교는 자신처럼 행동 - 종교의 각종 의식이나 행사, 그리고 그들이 믿는 모든 행위들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고 상대방에게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하지 않는 그런 행동 -을 할 능력이 없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종교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글을 쓰고 읽는 자신과 우리들을 파멸시킬 계획, 인류가 힘들게 얻은 모든 성과를 파괴할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는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는 것이 바로 그의 주장이다.
본문에 들어가면 보다 본격적으로 신에 대한 “모독”을 해대기 시작한다. 워낙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요약하기조차 힘든데 몇몇 개만 소개해본다. 작가는 종교가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며 그 예로 인도 캘커타에서 소아마비 박멸운동을 벌였지만, 이슬람교도들이 불길한 서방의 약을 먹으면 성불능과 설사병에 걸릴 거라면서 백신접종이 음모라는 소문을 퍼뜨려 결국 실패했던 사례와 나이지리아 북부에서도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 소아마비 백신이 이슬람 신앙을 파괴하려는 미국의 음모라고 선포하여 금지시켰던 사례를 예로 든다. 또한 바티칸 가족 위원회 의장인 "알폰소 로페즈 데 트루이요" 추기경이 콘돔에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자그마한 구멍을 몰래 뚫어 에이즈 바이러스가 그 구멍을 통과할 수 있다는 어이상실의 경고를 해대는가 하면,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직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티모시 드 와이트"는 “제너(Edward Jenner)”가 발명해낸 천연두 백신 사용이 하느님의 뜻에 간섭하는 행위라며 반대했었으며, 최근에도 유대교 전통인 할례 풍습의 위험성을 경고한 저명한 유대인의사들의 보고를 무시하고 보건 담당 관리들에게 결정을 미루라고 지시한 뉴욕 시장이나 종교적 교리 때문에 수혈을 거부하거나 응급조치가 필요한 자녀들을 방치한 혐의로 기소되지만 유죄판결이 내려지지 않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이런 사례들을 비추어 볼 때, 종교는 보편적인 도덕과 윤리가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한 가지 분야에서는 유난히 범죄를 저지르는 성향이 있음을 증명했으므로 자신의 생각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잠정적인 결론, 즉 첫째, 종교와 교회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이 사실이 너무나 뻔히 드러나 있어서 무시할 수 없고, 둘째, 윤리와 도덕은 신앙과 그다지 결부되어 있지 않으며, 신앙에서 유래할 수 없으며, 셋째, 종교는 자신의 행위와 믿음 덕분에 신에게서 특별한 면죄부를 받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무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기도 하다는 결론을 내려도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무지하기 때문에 자기 자녀를 학대하는 정신병자나 짐승같은 놈들은 처벌 받아 마땅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잔인한 행동을 하면서 천국의 허락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미 악에 물들었으므로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창조론(創造論), 즉 “지적설계론(知的設計論)에 대해서도 비웃는다. 종종 창조론자들이 인간의 눈 같은 놀라운 물건이 "눈먼" 우연으로 생겨났을 리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렇게 지적설계론을 주장하는 일파는 정말이지 더할 나위없는 예를 골랐다며 비웃는다. 현재 우리는 눈을 갖고 있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태어난 이유까지도 잘 알고 있다면서 인간 눈의 해부학적 구조는 사실 "지적인 설계"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지적인 설계자가 최적의 시각을 목표로 했다면, 왜 눈의 위아래, 앞뒤를 거꾸로 만들었겠냐며 반문한다. 우리 눈이 심한 근시가 된 것은 우리가 앞을 보지 못하는 박테리아에서부터 진화해왔기 때문이며, 이 박테리아는 우리와 DNA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진 것처럼, 우리 눈은 일부러 설계한 망막의 맹점에 이르기까지 잘못 설계된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가장 고등하고 가장 똑똑한 동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보다 열등한 생물인 물수리의 눈은 우리 눈보다 60배나 강력하고 정교하며, 독창적인 재주가 빚어낸 또 다른 ”기적(奇蹟)”인 기생충들, 그 미생물들로 인해 종종 발생하는 실명(失明)은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비극적인 장애 중 하나라고 말한다. 즉, 그렇게 놀라운 물건이라는 사람의 “눈”이 구조적인 면에서 너무 모순 투성이며 하등 생물의 눈보다 훨씬 떨어지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보면 전혀 지적 설계의 증거라고 볼 수 없다는 해석이다.
또한 작가는 “종교가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내세울 주장이 없을 때, 종교적 신념이 사람들을 더 낫게 만든다거나 사회를 교화시킨다는 주장을 끄집어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처럼 믿음이 없다면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방종과 이기심에 빠져들 거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게 된다면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다 믿게 된거나 마찬가지라는 “체스터튼”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면서 신자가 미덕을 행하는 것이 신앙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증거가 결코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신(神)”을 부정하게 된 것이 과학이 발달한 근래에 들어 일어난 일일까? 작가는 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 신의 이름으로 악행 저질러졌다는 것, 신을 만든 것이 바로 인간일 가능성, 세상에 피해를 덜 끼치는 대안적인 믿음과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과거부터 항상 있어온 “합리적인 전통”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항상 가차 없는 억압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들의 정체를 파악할 길이 없으며, 겉으로는 경건한 신자처럼 보인 사람들 중에 남몰래 불신앙을 간직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 지도 역시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런 전통을 계승해온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소크라테스, 루크레티우스 - "만물의 본질에 대하여"라는 책을 편찬했던 기원전 1세기의 시인. 그 덕분에 데모크리토스의 원자(原子) 이론이 간신히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졌다 -, 스피노자, 이마누엘 칸트, 프랭클린과 제퍼슨의 친구였던 토머스 페인. 찰스 다윈, 아인슈타인을 예로 든다.
작가는 “결론: 새로운 계몽이 필요하다”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류의 견본은 바로 인간 그 자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계몽주의 운동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예전의 계몽주의자들처럼 대단히 용감하고 재능 있는 소수의 영웅적이고 획기적인 성과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새로운 계몽주의 운동은 과학의 발달로 연구와 개발의 개념 자체가 혁명적으로 바뀌었고, 성생활과 두려움, 성생활과 질별, 성생활과 폭정 사이의 연관성 - 종교는 이를 무기로 인류를 협박해왔고 근래까지는 잘 먹혀 왔었다 - 을 끊어버리려는 시도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능력 범위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새롭고 인본주의적인 문명이 진보주의자들의 꿈처럼 곧바로 발전해나갈 것이라는 믿는 사람은 타고난 유토피아주의자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먼저 선사시대의 흔적을 초월해야 하고, 우리를 굴종과 비굴함과 죄책감이 어우러진 쾌락과 악취를 풍기는 제단과 지하교회로 다시 끌어당기려 하는, 말라비틀어진 손에서 도망쳐야 한다. 그래서 철학의 위안을 부드럽게 제시해주는 말인 그리스인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마음을 깨끗이 하려면 적을 파악하고 싸움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책을 끝맺는다.
이 책, 여러모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2006)>과 비교되는 책이다. <만들어진 신>을 읽은 지가 3년이 넘어 세세하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만들어진 신>이 동물행동학자, 진화생물학자라는 작가의 이력답게 과학적 분석과 해석 기법을 바탕으로 신과 종교를 비판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종교의 허상이나 경전의 모순들을 비판하는 이론이나 학설들은 비교적 간략하게 소개하는데 그치고 저널리스트답게 보다 더 신랄하고 강력한 어조로 비판하는 형식을 취한다. 마치 사실(事實) 관계는 간략하게 소개하고 글쓴이의 주장을 보다 부각해서 명확하고 분명하게 쓰는 신문 사설(社)을 읽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런데 신과 종교에 대한 비판 어조가 보다 명확해지고 분명한 것은 좋은데 관련한 이론들을 간략하게 다루다 보니 이런 종류의 책을 처음 읽는 분들보다는 이미 다른 책들을 읽어 봤거나 종교 비판에 대한 관련 지식이 있는 분들에게 더 잘 맞는 그런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책들을 꽤나 읽어봤음에도 책에서 언급하는 여러 인물들이나 이론들이 꽤나 낯설게 느껴져 어렵게까지 느껴지는 것을 보면 결코 쉽지 않은 책인 것 같다. 그간의 종교 비평서들의 “심화학습” 편이라 할 수 있는 이 책, 그래서 읽는 재미와 이해도는 <만들어진 신>이, 강렬하고 신랄한 어조, 자극적인 면에서는 이 책이 좀 더 낫다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이 책에 더 후한 점수를 주겠지만 이미 <만들어진 신>이나 몇몇 비평서들을 통해서 접해본 익숙한 내용이었기에 신선함을 그다지 느껴볼 수 없었던 터라 아무래도 <만들어진 신>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지극히 불편하겠지만 “무신론자(無神論者)”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에 대하여 믿고 안 믿고는 의미가 없는, 다만 기존 권력이자 질서 - 이제는 종교가 도덕적, 관념적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서 내려온 지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 신과 종교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살인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 위치는 여전히 견고한 것 같다 - 인 종교에 도전하는 흥미로운 이야기 정도로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 때문에 신심(信心)이 투철한 주변 종교인들과 다툴 생각도 없고, 또한 그들이 갖고 있는 "선의(善意)"를 작가처럼 의심하고 싶지도 않다. 즉, 생각이 서로 다를 뿐 이 책처럼 종교인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단, 작가의 주장처럼 우리들을 파멸시킬 계획을 종교인들이 짜고 있다면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읽기 전에는 그간 읽어온 종교 비평서 들보다 더한 재미와 통쾌함을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막상 읽고 나니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평이한 수준이라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종교 비평서로서 탁월한 수준의 논증과 비판을 담고 있는, 읽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한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기회가 된다면 <만들어진 신>과 이 책이 어떤 점들이 같고 다른지 구체적으로 비교해보는 책읽기를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