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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 대형서점들과 인터넷 서점 장르 소설 - 추리, 판타지, SF 등 - 코너를 “점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 장르 소설 열풍이 거세지만, 일본 문학계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를 두 명 -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 “오엔 겐자부로(1994)” - 이나 배출했을 정도로 “순문학(純文學)” 분야에서도 그 성취가 뛰어나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일본 순문학 작품들은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그나마도 “무라카미 하루키”, “아사다 지로” 등 현대에 활동하고 있는 작가 작품들 정도일 뿐 일본 근현대 문학계를 이끌어온 유명 작가 작품들은 거의 접해본 적이 없어 늘 아쉬움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아쉬움을 달래줄 멋진 작품을 만났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에 있는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문(원제 門(1910) / 비채 / 2012년 1월)>이 바로 그 작품이다. 이제는 고전(古典)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작품이지만 100 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시대와 공간에 대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작품이었다.
책은 1910년 어느 일요일 한가로운 일상에서 시작한다. 도쿄 시내에 있는 관청에 다니고 있는 하급 공무원인 “소스케”는 매사에 심드렁한 그런 사람이다. 선친의 유산인 집과 골동품 처리를 숙부에게 일임하면서 동생인 “고로쿠”를 맡겼지만, 숙부가 돌아가신 후 더 이상 돌봐줄 수 없다는 숙모와 동생 학비와 거취 문제, 그리고 숙부의 석연치 않은 유산 처리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지만 미적대며 그저 편지만 보내고는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를 유유자적하며 보낸다. 아내인 “오요네”도 그런 그에게 몇 번 숙부네로 가보라고 말을 건네긴 하지만 재촉하지는 않는, 말 그대로 “부창부수(夫唱婦隨)”인 그런 아내이다. 고로쿠는 그런 형 내외가 못내 답답하기만 하다. 소스케와 오요네는 함께 살면서 지금까지 6년 동안 한 번도 반나절 이상 어색한 기분으로 지내본 적이 없었고, 말다툼으로 얼굴을 붉힌 적은 더욱 없었던 금실이 좋은 부부다. 둘에게 사회는 그저 일상생활의 필수품을 공급해 주는 곳 이상이 아닌 그런 곳으로,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서로뿐이었고, 또 그것으로 충분한,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산속에 살고 있는 듯한 심정으로 살고 있는 부부다. 한때 그 누구보다도 활기차고 전도유망한 대학생이었던 소스케가 이렇게 사회와 동떨어져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숨겨둔 사연이 있었다. 아내인 오요네는 사실 교토대학 재학 시절 가장 친한 친구인 “야스이”의 부인 - 책에서는 야스이와 요오네가 동거 생활하는 걸로 나오는데, 실제 부부였는지 아니면 애인이었는지 명확하게 언급하진 않는다 - 이었는데 그만 친구였던 소스케와 사랑에 빠져 버리면서 야스이를 버리고 그를 따라나서 버린다. 세상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숨어 살다시피 시작한 결혼 생활이었기에 행복했지만 그 행복 이면에는 세 번에 걸친 임신 실패라는 커다란 아픔과 슬픔 또한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유일하게 서로의 집을 왕래할 정도로 친해진 집주인 남자에게서 옛 친구인 야스이의 소식과 함께 그와 만나는 자리에 초대를 받게 된다. 거절하기 어려운 자리이지만 결코 만나서는 안되는 사이였기에 소스케는 야스이를 피하기 위해 회사에 휴가를 신청하고 산사(山寺)로 도피해 버린다. 그곳에서 소스케는 참선(參禪)으로 자신의 번민을 잊어 보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다시 돌아온다. 다행히 야스이는 자신이 없는 동안 다녀가는 바람에 다시금 평온한 일상이 반복된다. 그런데 그의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하다. 새봄이 왔다고 좋아하는 오요네에게 다시 또 겨울이 올 거라고 불퉁거리는 그의 마지막 말을 들어보면 말이다.
이 책, 중반까지는 참 평온한 느낌이었다. 갈등이라고는 숙부와 얽힌 유산 문제가 있지만 자꾸만 피하려는 소스케와 오요네 부부 때문이지 그다지 긴장감이 들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중반 이후 소스케 부부의 숨겨진 사연이 드러나면서 본격적인 갈등이 고개를 든다. 특히 세 번에 걸친 유산의 아픔과 두려움에 눈물 흘리는 오요네와 자신도 가슴 아프지만 그런 아내에게 내색하지 못하는 - 심지어 건강이 나빠진 아내에게 임신한 것이 아니냐며 반색하기까지 한다 - 소스케의 모습에 짠한 그런 느낌마저 들었다. 종반에 이르러 두 부부를 사회와 담을 쌓고 살아가게 만든 장본인 - 물론 두 부부가 가해자이고 야스이는 피해자이니 장본인이라고 지칭하면 억울해할 것 같지만 -이자 결코 마주쳐서는 안 될 사람인 옛 친구 야스이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긴장감은 극에 달하게 되고, 일견 소스케와 야스이가 만나서 파국(破局)으로 치닫거나 또는 화해(和解)를 하는 결말을 기대해보기도 했지만, 숨어 버리고 마는 소스케의 소심한 모습에서 오히려 작위적이지 않은 현실감을 느껴볼 수 있었고, 나또한 그런 상황이었다면 그처럼 도망가 버리고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이입이 되어 버렸다. 결국 다시 찾은 평온, 이런 상황을 알지 못했던 아내는 봄이 온다고 기뻐하지만 마음 고생을 단단히 했던 소스케가 겨울이 올 거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마지막 대목에서 그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기에 입가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책을 덮고 나서 이 책이 과연 100 여 년 전에 씌여진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시대를 알 수 있는 몇 몇 단어 - 이토 히로부미, 조선총독부 등 - 만 고친다면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부부 이야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글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1910년대 격변기의 시대상에 매몰되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았던 어느 소시민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렇기에 당시 가장 화제가 된 사건인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도 이 부부에게는 그저 신문이나 라디오에서만 떠들어 대는 하나의 뉴스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선거철을 맞아 쇄신에 통합에 요란 법석을 떠는 정치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는 “남”의 이야기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그 시대 소설 특유의 과장되거나 또는 격정적인 필치가 아니라 밋밋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담백하면서도 두 부부를 곁에서 직접 관찰하면서 글을 썼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세세한 면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또한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감춰진 슬픔과 아픔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도 역시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끄집어내어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그렇기에 작가의 글솜씨에 취해 책을 읽노라면 어느새 주인공이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바로 우리들 이야기라는 느낌을 들게 만들어 버리는, 제대로 감정이입이 되어 주인공의 말과 행동에 절로 탄식이 터져 나오고 안타까워하며, 다시 찾은 평온함에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게 만든다. 이처럼 100년 전 이야기이지만 전혀 옛날이야기 같지 않다니 참 놀라울 따름이다. “현재도 전혀 낡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가히 기적이다"이라는 어느 일본 소설가의 평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여기서 제목이기도 한 <문>은 어떤 의미일까? 작품 해설에서는 “구원받지 못하는 자기 내면의 '문”을 의미한다고 말하는데 좀 어렵다. 또한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는데 역시 어렵다. 작가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문은 소스케가 산사(山寺)를 찾아갔을 때 듣게 되는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힘으로 열고 들어 오너라" 라는 대목인데, 열어 달라고 소리쳐도 결코 열리지 않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직접 열어야 만하는 그런 문이다. 소스케에게 그 “문”은 사회와 단절하게 만든 야스이와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도 없는, 오직 소스케 스스로가 해결해야 되는 그런 문이지만 소스케는 결국 그 문을 열어 제치지 못하고 그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다보지만 도저히 왔던 길로는 되돌아갈 용기가 없어 다시 가로막고 서 있는 육중한 문짝을 바라보게 되고, 결국 그 문 아래에 꼼짝달싹 못하고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그렇다고 날이 저문다고 해서 결코 열리지 않을 문을 바라보고만 서 있는 “불행한” 사람이 바로 주인공 소스케인 셈이다. 그런데 그가 꼭 불행하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문 앞 계단에 앉아서도 편하지는 않겠지만 쉴 수 있을 그런 사람 같아서 말이다. 열어 제치고 들어가는 것도, 여는 것을 포기하고 되돌아가는 것도, 미련이 남아 계속 머뭇거리는 것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라고 한다면 결국 작가는 “문”이라는 존재를 반드시 부수거나 통과해야만 하는 장애(障碍)가 아니라, 때로는 멈춰 서게 하고, 때로는 쉴 수 있게 하며 때로는 뒤를 돌아보게 하는 다중(多重)적인 의미로써의 “문”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란스러울 정도로 극적인 전개나 반전, 충격적인 결말은 없었지만 읽은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묘한 여운이 가슴 속에 느껴지는 그런 책이었다. 처음에는 욕설을 연상케 하는 그의 이름 때문에 잊혀지지 않겠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엉뚱한 생각을 말끔하게 가셔준 담백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이 책 때문이라도 오래 기억될 그런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