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달력 1
장용민 지음 / 시공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고대 마야문명이 예고한 종말(終末)의 날인 “2012년 12월 21일”이 이제 일 년도 채 남지 않았다. 1992년 “휴거(携擧)” 소동과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 종말 예언처럼 해프닝으로 끝나겠지만 그래도 날짜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니 일말(一抹)의 불안감은 지울 수 가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예언이 맞을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이런 마야의 종말론 을 소설, 드라마, 다큐멘터리,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만나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영화가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2012(원제 Two Thousand Twelve/소니픽처스/2009년)일 것이다. 마야 문명이 예언한 2012년 전(全) 지구적 규모의 화산 폭발, 대지진, 지각변동 등의 자연 재앙이 몰아닥치고 히말라야까지 덮어 버리는 거대한 해일을 피해 몇 몇 국가들이 <창세기(創世記)>의 “노아(Noah)"처럼 “방주(方舟)”를 만들어 탈출한다는 내용인데 스펙터클한 영상과 진한 감동 스토리로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157분)으로 보는 내내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마야의 종말론을 소재로 한 기가 막힌 소설을, 그것도 “우리” 작가가 쓴 소설을 만났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운명계산시계> 등 한국형 팩션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장용민”의 <신의 달력 1,2(영어제목 Tzolkin; The Calenda of God / 시공사 / 2009년 7월)>이 그 책이다. 세계 종말에 관련된 책이나 영화 참 좋아하는데, 이렇게 출간된 지 1년이 훌쩍 넘어서야 내눈에 띄이다니 후회 - 그래도 2012년 12월을 넘기지 않고 읽게 된 건 다행이라고 할까? - 가 될만큼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이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전도유망한 역사학자였지만 7년 전 어린 딸 “에밀리”가 악마 숭배자에게 납치당해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고를 겪고는 지난 7년 동안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1만 2천 달러의 빚과 자신에 대한 실망 뿐인 “하워드 레이크”는 이혼을 거부하는 배우자에게 완력을 써서 강제로 도장을 받아내는 탐정(探情)으로 근근히 살아간다. 필라델피아 외곽 빈민가까지 날아가 한 건 해결하고 돌아온 그에게 “에밀리”라는 여인이 사건을 의뢰한다. 납치당했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딸이 말하는 남자 “새뮤얼 베케트”를 찾아 달라는 것이다. 단서라고는 이름 뿐이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지라 거절하지 못하고 수락하고만 하워드는 딸 납치 사건으로 알게 된 형사 “해리”의 도움을 받아 뉴욕에 거주하는 동명의 새뮤얼 베케트 12명의 리스트를 입수하여 차례차례 조사에 나선다. 다섯 번째 새뮤얼을 조사하던 중 아주 특이한 사실을 발견한다. 허름한 군복 점퍼에 맨발로 다니는 이 남자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하는 등 납치 사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또한 자신을 찾아올 남자, 즉 하워드에게 남긴 편지에는 하워드의 과거를 암시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하워드는 해리에게 보다 자세한 자료를 요구하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 회신을 받는다. 쫓고 있는 30대 초반의 새뮤얼이 서류상으로는 이미 134세를 넘겼고, 납세 기록에 따르면 1954년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가 근무했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청소부로 근무했다는 것이다. 연구소에 방문한 하워드는 그곳에서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에 골몰했던 무렵, 그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줬던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바로 “새뮤얼 베케트”였고 수십 년 후 연구소에서 재회한 아인슈타인이 그에게 자신의 노벨상을 전해 주라는 유언이 담긴 비밀 유언장에 대해 알게 된다. 연구소 원장은 하워드와 면담 후 꼭꼭 감춰두었던 유언장을 다른 곳에 택배로 보내지만 그날 밤 정체불명의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이를 목격한 하워드는 급히 뉴욕으로 돌아와 그 택배를 가로채지만 자신 또한 그 세력에 의해 절대 절명의 위험에 처하지만 바티칸 소속 “린지” 수녀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또한 자신에게 사건을 의뢰한 에이미 뒤에는 미국 최고의 스타 목사이자 엄청난 부를 쌓은 “언더우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언더우드에게서 새뮤얼 베케트의 존재를 조사해달라는 정식 의뢰를 받은 하워드는 본격적으로 그의 행적을 쫓게 되는데, 다시 재회한 린지 수녀와 동행하게 된 하워드는 조사가 진행되면서 더욱 믿기지 못할 사실들을 알게 된다. 새뮤얼 베케트가 기원후 지난 이천여 동안 인류 역사상 분기점을 이루는 위대한 발견들, 즉 콜롬버스, 뉴턴, 조나단 스위프트,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뿐만 아니라 최근 인간 DNA를 완전히 해석해 낸 한국인에 이르기까지 그들 앞에 나타나 결정적인 도움을 줬으며, 이천년 쯤 된 오래된 기독교 비밀 무덤에서 발견된 시신이 쥐고 있던, 예수의 실제 초상화로 짐작되는 그림의 얼굴이 바로 새뮤얼 베케트의 얼굴이었다. 즉 이천년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여 승천(昇天)한 것으로 알려진 “예수”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더욱더 믿기지 않는 사실은 예수가 사라진 시기에 마야 문명에 나타난 전형적인 백인 남자 모습의 신(神) “케찰코아틀”도 다름 아닌 새뮤얼 베케트, 즉 “예수”였으며 이처럼 예수는 하늘로 승천하지 않고 지상에 남아 역사의 분기점을 이끌어왔다는 것이다. 위험천만한 모험과 여러 우여곡절 끝에 하워드는 새뮤얼과 만나게 되지만 어이없게도 새뮤얼은 광신도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러나 이천년 전처럼 3일 만에 부활(復活)한 새뮤얼은 다시 사라지고, 고대 마야가 예언한 6가지 종말의 징조들이 차례대로 일어나며 세상은 종말에 대한 두려움으로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하워드는 또 다른 마야의 고대 문서에서 종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고 콜럼버스가 비밀리에 방문했었고,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언급되어 있는 공중 도시, “마추피추”로 향하게 된다. 과연 그는 종말을 막아낼 수 있을까? 인류의 시계는 2012년 12월 21일, 마침내 멈춰 서게 된다.

 

 

처음에는 이천년을 살아온 의문의 남자 “새뮤얼 베케트”가 방랑하는 유대인 “아하스 페르츠(Ahas Pertz)” -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나 이우혁의 <퇴마록>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바로 “예수(Jesus)"라니 이런 기막힌 - 기독교를 믿는 분들에게는 지극히 불경(不敬)한 - 상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사실 예수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이야기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데 여기서 열걸음 쯤 더 나가 이천년을 넘게 살면서 인류 역사 발전을 이끌어 왔다니 작가의 상상력에 절로 경탄이 터져 나온다. 특히 마야의 신 “케찰 코아틀”과 “예수”의 연관성은 이런 음모론이나 미스터리를 즐겨 하는 나로서도 처음 들어본 이야기라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몇 몇 해괴한 문서들이 검색되긴 하는데, 여기에서도 예수가 직접 바다를 건너 고대 멕시코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환생(還生)한 것 쯤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작가만의 기발한 상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정도 만으로도 놀라운데 작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널리 알려진 온갖 음모론들, 즉 사탄 숭배, 원본의 행방이 오늘날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콜럼버스의 항해록”, 최근 시간여행자로까지 오해받고 있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공중 도시 “라퓨타”의 수수께끼, 예수의 피와 살점이 묻어 있다는 성유물(聖遺物) “롱기누스의 창” - 이 창에 묻어 있는 예수의 피와 살점으로 DNA을 복제해서 예수 재림을 꾀한다는 소설도 있다 -,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단골손님인 히틀러와 고대 유물을 찾아나선 나치의 비밀 집단, 금서(禁書)였다가 최근에 그 정체가 알려진 <유다의 복음서>, 외계인이 전수했다는 루머까지 나도는 아인슈타인 상대성 원리 발견의 수수께끼, 그리고 종말의 날을 예언한 마야 달력 등등 음모론을 총망라하여 마치 블록을 조립하듯이 하나하나 꿰맞춰 전혀 새롭고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그런데 이런 블록들이 서로 겉돌거나 어색하지 않고 마치 원래부터 딱 그 자리가 있는 것처럼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내는 것을 보면 작가의 구성력 또한 결코 예사롭지 않은 것을 알게 해준다. 전작들인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1996)>이나 <운명계산시계(2000)>에 대한 호평(好評) 또한 줄을 잇는 것을 보면 15년 넘게 단련된 작가의 내공이 이 책에서 마침내 개화(開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몇 몇 아쉬운 대목도 있다. “롱기누스 창”에 새뮤얼이 결정적 힌트를 준 12 사도의 앞 글자가 새겨져 있고, 거기에는 이천년 전 당시에는 있지도 않은 글씨인 마야 문명의 고대 문자와 심지어 한글(“ㅅ”)까지 새겨져 있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억지스럽다. 결국 창을 소유하는 사람은 세계를 지배한다는 엄청난 전설(傳說)을 간직하고 있는 “롱기누스 창”은 그런 전설이 무색하게 그저 새뮤얼의 12 사도의 정체만 알려주는 데 그치고 만다. 그리고 <걸리버 여행기>라는 놀라운 소설을 쓰긴 했지만 “조나단 스위프트”가 인류 역사 발전에 기여한 바가 뭐가 있길래 12 사도에 끼게 되었는지 잘 납득이 가지 않으며 - 결국 조나단 스위프트의 역할은 “공중 도시”의 정체를 안내하는 정도로 그치고 만다 - , 마야의 종말의 징조가 차례차례 일어나는 대목과 마지막 결말 또한 좀 더 긴장감있고 스펙타클한 면을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이처럼 몇 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2권 합계 7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 너무 짧다고 느꼈을 정도 참 재미있는 책이다. 요즘 들어 별 다섯개 만점을 남발(?)해서 신뢰성을 크게 잃었지만(^^) 이 책, 하룻 만에 다 읽어낼 정도로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기발한 상상력에 더 후한 점수를 줘서 만점을 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철저하게 주관적인 평점이니 비난하지 말아주시길^^ 종말에 관련된 재미있는 읽을 꺼리를 찾는 분이라면, 평소에 음모론이나 미스터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리고 예수에 대한 지극히 불경하고 발칙한 이야기라고 해서 혐오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단지 허구니까 하고 웃어 넘길 수 있는 분이라면 이 책 꼭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이 책, 작가 이름을 외국 이름으로 바꿔 놓고 외국 작가가 썼다고 우겨도 통할 만큼 - 물론 "낙장불입" 같은 우리 단어는 삭제하고 말이다 - 외국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큼  재미있는 책인데 출판사 홍보글에 보면 구상 단계에서부터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작업이 진행되어 에이전시를 통해 해외 진출을 모색 중이라는 글귀가 있길래 관련 기사들을 찾아봤지만 출간된 지 1년이 훨씬 넘었는 데도 감감무소식인 것 보면 결국 무산된 것은 아닌지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이 책, 해외 진출이 아직도 추진되고 있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종말의 날인 2012년 12월 21일 전에 이뤄져야 할 테니까. 그때까지 이뤄지지 않고 실제 종말이 일어난다면 - 설마^^ - 진출 자체가 불가능해질 테고, 종말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미 이 소설은 적기(適期)를 놓쳐버리고 만 셈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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