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 박서양
이윤우 지음 / 가람기획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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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실제 사실이 소설, 영화 속 꾸며낸 이야기보다 더 허구 같고 드라마틱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시련기인 구한말, 일제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은 자신의 이기적 욕심 또는 살기위해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친일”이라는 형태로 시대에 동참하거나,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여 “독립운동”이라는 고난의 길을 겪기도 했고,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 같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윤우의 “제중원 박서양”은 백정의 신분으로 태어나 조선 최초의 양의(洋醫)가 되었고 만주 용정으로 건너가 구세의원과 소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우리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피워낸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박서양”의 삶을 올곳이 담아낸 “역사 팩션” 소설이다. 같은 인물을 주제로 한 다른 소설과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를 접해본 터라 전체 이야기나 인물들은 익숙하겠거니 싶었는데 이 책에서 설명하는 “박서양”은 이야기 전체 얼개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기존 박서양의 삶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새롭게 씌여진 소설이다. 

청, 일본, 서양 제국주의의 강탈장이 된 격변기의 구한말, 백정인 아버지와 의원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불의의 죽음과 태어나서부터 병약해서 같이 한번도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는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후 천형(天刑)과도 같은 백정의 삶을 거부한 댓가로 다 죽어가던 그를 아버지 “금음산”은 “살리든 죽이든 마음대로 하라”면서 - 아들에게 백정의 굴레를 씌워주고 싶지 않는 아버지의 부정(父情). 행여나 다시 데려가라고 잡을세라 뒤돌아오는 걸음을 빠르게 하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슬픔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 최초의 서양의원 “제중원” 앞에 버리고 돌아서고, 서양 의사 “알렌”의 도움으로 제중원 의학당 생도가 되었지만 학우들의 따돌림과 멸시, 치료받기를 거부하는 환자들의 괴롭힘을 이겨내고 제중원 생도중 유일한 졸업생이 되었지만 성공이 아닌 새롭고 더 큰 고난만이 그의 앞길에 놓여지고 만다. 알렌을 따라 떠난 미국행에서 중도에 붙잡혀 초죽음이 되어 돌아와 모든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했지만 다시 얻게 된 일본 유학의 기회를 통해 진정한 의사로서 다시 거듭난 박서양, 일본에 남으라는 만류도 뿌리치고 다시 돌아온 고국은 신분제도는 철폐되고 세상은 자의든 타의든 개벽과도 같은 상황을 맞이했지만, “백정”이라는 신분의 벽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끊임없는 생채기를 낸다. 결국 그는 “의사”로서 “조선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독립운동이 치열하던 “만주”로 새로운 여행길을 떠난다. 책은 아쉽게도 만주로 떠나는 장면에서 끝을 맺고 - 만주에서의 그의 치열한 삶은 후속권으로 나와주길 바란다 - 그 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구세의원을 개업하고 소학교와 교회를 세웠으며, 독립군들의 의료를 도맡아 하는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살다가 머나먼 타국에서 쓸쓸히 죽어갔고 그의 행적은 최근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다가 학계의 연구로 행적들이 알려지면서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박서양이 느꼈을 신분제도의 벽과 삶의 고단함에 왠지 가슴이 묵직해지는 아픔과 슬픔을 공감할 수 있었다. 단지 드라마틱한 그의 삶의 성공스토리 위주였다면 흔하디 흔한 위인전기가 성공담에 그쳤을 이야기를, “백정이 의사가 되는 성공스토리가 아닌, 의사가 되어 우리 역사 중 가장 험난했다 할 수 있는 시간을 살아온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작가의 말처럼 누구나 존경하는 그런 성공담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역정에 초점을 맞춰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작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험난한 격변기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박서양과 비교하여 당신은 과연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냐고. 
 

작가의 물음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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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속에 감춰진 한국사회의 진실 - 진보의 시선으로 바라본 2010 한국사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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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은 성장률도 마이너스로 곤두박질하고 각종 경제지표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97년 IMF 환란 이후 최대의 위기가 될 것이라는 각종 경제기관과 언론, 정부의 경제 전망으로 호들갑스럽게 시작하더니, 경제지표가 하반기 이후 회복세를 보이면서 OECD 국가 중 우리가 가장 먼저 불황 터널을 탈출했고 2010년은 4~5% 성장을 거두어 본격적인 성장 회복기에 이를 것이며 G20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명실공히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거라는 호들갑스러운 말들로 끝났다. 우리 같은 일반국민들에게는 전혀 피부에도 와닿지 않는 성장률이며 물가전망, 실업률 전망들을 남발하면서 일반회사에서라면 잘못된 예측으로 사단이 나도 몇 번이 났을 그런 오류 투성의 경제전망을 내놓으면서도 절대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수많은 주류 경제연구소나 정부기관들의 뻔뻔함은 이미 도가 지나칠 정도이다.

그런데 경제는 회복되고 있다고 그러는데 예전 어느 정치인의 물음처럼 과연 우리 살림살이는 정말 나아졌을까?

벌써 졸업한지 2년이 넘은 우리 옆집 총각은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부모님 눈칫밥을 먹으면서 알바 자리라도 구하기 위해 생활정보지를 뒤적이고 있고, 작년 희망근로로 어렵게 생활을 꾸렸던 윗집 할아버지는 올해 희망근로 인원이 대폭 줄고 근로일수도 6개월에서 4개월로 짧아지고 그것도 작년에 한 사람은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한숨에 바닥이 꺼질 듯 하고, 동네에서 20여년 넘게 조그만 슈퍼를 하시는 아랫집 아저씨는 동네에 들어선 대형 슈퍼 때문에 손님이 반 이상 줄어서 가게를 부동산에 내놓고는 한숨을 바닥이 꺼져라 내쉬고 있고, 건너집 아저씨는 작년에 동결된 급여가 올해는 조금이라도 오르겠지 하는 희망을 가졌지만 구조조정 안한 것을 다행이라 여기라는 회사의 협박에 오히려 삭감된 연봉계약서에 울며 겨자 먹기로 사인했고, 옆 동 아저씨는 올 봄 구조조정할 거라는 회사 통보에 내가 대상이 되는 것 아냐 하고 걱정되고 불안해서 하루하루 술이 늘고 있다.  어째서 각종 지표는 분명히 호전되고 있는데 우리네 삶은 팍팍하고 더 힘들어지는 걸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의 “성장률 속에 감춰진 한국사회의 진실”에서는 이러한 년말 년시 각종 기관들과 정부가 내놓는 각종 경제 지표 속에 숨겨진 허구와 모순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어보고 진보적인 시각에서 현 경제 상황과 정책들을 비판하고 "고용을 통한 성장견인"과 "금융통제","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먼저 1부 “전환기의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서는 먼저 2007년 초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에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가 정점이었던 2009년의 경제상황을 점검하면서 2009년 GDP는 다소 회복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실업문제와 소비침체, 즉 실물경제의 침체가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며 “유연성”에서 “안전성”으로 경제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은 지난 2009년 암울했던 당초 상황을 벗어나 다소 양호했지만 2010년 또한 여전히 불안한 것으로 전망하고,  “확실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불확실성의 시기인 2010년 한국경제의 방향과 방향 잃은 MB 노믹스의 출구전략의 허점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그리고 책의 일관된 주제인 3대 구조개혁, “고용개혁”, “금융개혁”, “가계 경제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경제정책” 세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2부 “한국 국민의 삶,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서는 앞에서 제시한 3대 개혁과제에 대하여 전망과 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고용”분야에서 “고용없는 회복”으로 인한 소비 위축과 내수 부진은 지속될 전망이며 정부는 성장보다 고용을 우위에 놓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여 먼저 공공부문 고용확대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고용불안으로 인한 가계소득의 감소, 이자비용의 증가로 한국 경제 붕괴의 뇌관이 될 수도 있는 가계부채 증가 위험을 대처하기 위해 정부와 금융기관은 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가계경제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경제구조를 바꿔야 하며, 가계 주체들도 그동안의 “빚도 자산, 저축은 손해, 투자를 통한 자산증식”이라는 왜곡된 사회적 의식에서 벗어나 신용카드를 없애고 고정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하는 새로운 마인드 셋(Mind Set)을 가지라고 제언한다.

 3부 “안개속의 한국사회와 전망”에서는 경제문제와 함께 꼭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 “교육”, 사회복지”문제에 대한 현황 점검과 향후 방향을 제시하고, 또한 다소 경제문제와는 연관이 없을 2010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에 임하는 진보세력의 방향성과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는 한반도와 주변세력들, 남북중미 관계에 대한 해법도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마지막 결론인 “한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는 앞에서 각 분야별, 항목별로 언급했던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금융자유화를 규제로 전환”하여 한국 금융시장을 안정화시키고, 노동 유연화를 규제하고 고용을 국가가 책임지는 “고용개혁”을 시행해야 하며, 현재 선진화란 이름으로 강행하고 있는 의료, 교육의 시장화를 다시 공적인 서비스로 전환하여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인 “새사연”은 마지막 말에서 “부채로부터 자유롭고 고용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우며 교육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운 국민으로 살 수 있는 사회”야 말로 그들이 바라는 새로운 사회의 기본 표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란하고 천편 일률적인 주류 경제기관의 “경제전망” 보다는 간과하기 쉬운 “고용”, “사회복지”, “금융개혁”에 대하여 진보적인 시각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지만, 책의 성격이 전문적인 경제서적이라기 보다는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 에세이 수준이고 한정된 지면(280P)의 한계로 각 사안별로 좀 더 구체적인 현황과 계수화된 시스템적 예측 모델, 충분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그러나 <2012년 대한민국의 새로운 청사진> 마련을 위한 첫 걸음이자 다음 대통령직 인수위에 전달될 또 한편의 보고서를 위한 시작이라는 점에서, 완결되지 않는 마지막 장은 바로 이 책을 읽고 공감할 우리들이 채워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새사연의 이런 시도는 충분히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 같다.  새사연의 이런 시도가 요새 마치 유행처럼 러쉬를 이루는 각종 경제서적 출간 붐 속에서 쉽게 잊혀지고 마는 일회성 책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시리즈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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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 무위당 장일순 잠언집
김익록 엮음 / 시골생활(도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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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 [張壹淳, 1928.9.3~1994.5.22]

 한국의 서화가·사회운동가·정치가. 1970년대 반독재투쟁의 사상적 지주 역할을 했고 1980년대에는 자연복구를 주장하는 생명사상운동을 펼쳤다. 서예에 뛰어났고 만년에 난에 사람의 얼굴을 담는 '얼굴 난초' 작업을 했다.

(네이버 두산대백과사전 발췌)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에 대해서는 생명운동가이고 사람 얼굴 난초 그림, 서예 몇 점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예전 어느 책에선가 선생님이 지으신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에 대하여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면서도 분별없는 너른 마음으로 유학,동학,노장사상, 불교사상을 품에 안은 생명사상가의 글로 소개한 서평을 읽고 나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을 뿐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말씀과 그림을 제대로 접해본 것은 이 책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이 사실상 처음이다. 책 양장 커버에 선생님의 약력과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생을 주창한 생명사상가로서 이미 널리 알려지셨던 우리 시대의 스승이시자 사회운동가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짧은 생을 살다가 가셨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따르는 많은 제자들이 선생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살아 생전에도 많은 이의 스승이셨지만 돌아가신 후에 더 많은 이들의 스승이 되셨다는 소개글에 삼가 옷깃을 여미게 되는 숙연함마저 들게 한다.

 

  이 책은 5.16. 군사 정변 이후 그분이 주창하신 "중립화 평화통일론"으로 인해 옥고를 치루시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정부기관의 사찰을 받으신 터라 행여나 남에게 피해를 줄까봐 직접 쓰신 글들을 많이 남기지 않으셨지만, 서화와 강연, 대담을 통해서 남기신 그분의 글과 그림, 말씀을 그분과 인연이 있던 분들과 제자들이 한 데 모아 편찬한 책인데 경전 속 어려운 경귀들이나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닌 투박하고 소박한 맛이 있어  오히려 가슴에 더 와닿는 그런 글들과 그림들이다. 비록 짧막짧막하고 여백이 많은 글과 그림이지만 선생님의 생명사상이 오롯이 녹아 있어 읽으면서 계속 책 표지의 선생님 사진과 간략한 소개, 맨 뒷페이지의 선생님의 약력을 몇번씩 들춰보며 어떤 분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감동을 준다.

 원래부터 상업성이 역력한 인도의 스승 누구 누구의 묵상록 또는 잠언집, 명언·명구집 따위를 싫어하는 터이지만, 우리 시대의 스승으로신영복 선생님의 글들이나 장일순 선생님의 이런 글들은 거창한 선전문구나 요란한 광고가 아니더라도 그분들의 이 시대에 대한 진실한 고뇌와 사랑, 연민에 공감하고 그분들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한권 두권 선택하게 되고 서로에게 선물하게 만드는, 꾸준히 읽히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스승은 꼭 곁에서 모셔야만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남기신 글들이나 육성에 감동받는 간접적인 경험으로도 그분들과 연을 맺고 스승으로 모시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분들이 이 세상에 남기신 글들과 그림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분들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다시금 께닫게 된다. 

 

그러나 참 아쉽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 그리고 이미 돌아가셔서 그분의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많은 글을 남기시지 않으셨기에 그분의 사상과 삶을 공부할 수 있는 교과서가 많지 않다는 것이 참 아쉽다. 마음만 먹고 아직도 읽지 못한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를 빨리 읽고 싶어진다.

 

책 구절구절 하나하나가 소중하지만 몇 가지만 소개해 본다

 

문인화가이자 서예가로 경지를 이루셨던 분임에도 이런 말씀을 남긴다.

 "추운 겨울날 저잣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사람이 써 붙인 서툴지만 정성이 가득한 "군고구마"라는 글씨를 보게 되잖아. 그게 진짜야. 그 절박함에 비하면 내 글씨는 장난이지. 못 미쳐"

"사람마다 제 몫이 다른 것이고 그래서 직업이 다 다른 것이다. 그러나 자기 몫에 대해서 당당하라"

"이때까지 추구한게 의미가 없으면 소리없이 버려야 한다. 10년을 쌓았건 20년을 쌓았건 그게 모래성이란 걸 알았으면 허물 줄도 알아야 한다. 집착이 병통(病痛)이다."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자연스러운 것 만큼 무서운 게 없다. 자연스럽고 이지러지지 않는 삶이 우리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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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러브 - 사랑스런 로맨스
신연식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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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살아오면서 사랑이라곤 친구에게 차인 여자에 대한 짝사랑이 전부인 황혼의 중년 남자와 유년의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스물 다섯 살 여자가 만났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인 남자와 친구가 죽으면서 “하루하루 어떻게 사는지만 좀 살펴 줘”하고 부탁한 친구의 딸,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관계의 두 사람은 엉뚱하게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러니까 너랑 나랑 같이 있는 게 뭐가 문제냐는 거지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피해 주는 사람도 없는데“라는 남자의 서툰 프로포즈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연민 같은 사랑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의 서툰 사랑은 이제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나이가 들어버린 남자가 좁은 작업실에서 벗어나 사진작가가 되길 원하는 여자 때문에, 유학을 가겠다는 여자에게 무슨 돈으로 하며 ”지금이야 니가 내 옆에 있지만 나중엔 기억도 안날 걸? 세월이 지나면 넌 나 같은 건 잊어버리게 될 거야“하고 묻는 남자 때문에 결국 마무리도 서툴게 끝나 버리고 만다.

  여느 소설이나 영화보다 파격적이고 오감을 자극하는 사랑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지만 친구 딸과 사랑에 빠진 중년 남자 이야기 또한 자극적이고 가슴 아픈 사랑이겠거니 하는 기대감을 과감히 저버리고 신연식의 “페어러브”는 파스텔 톤의 옅은 색채로 짤막하게 그리고 있다. 너무 색깔을 연하게 입혔을까? 형만과 남은의 사랑은 온통 서툴고 낯설며 밋밋하기까지 하다. 과연 둘은 사랑을 하기나 한 것인지 아니면 잠깐의 연민과 동정을 사랑으로 착각한 것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제대로 분간할 수 가 없으며, 마지막 페이지 형만이 남은에게 사준 편종소리와 함께 “우리 다시 시작해요”라는 말은 단순히 형만의 착각이거나 바램인건지 아니면 이 둘의 사랑이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는 멀티 엔딩을 의미하는지도 분명치가 않다. 둘의 사랑보다는 우연히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고친 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사진기 수리공의 삶을 살게 된 형만의 인생과 그의 주변 친구들인 강목사, 윤사장, 남은의 아버지 기혁과의 이야기, 형만이 이십대에 만난, 친구인 강목사에게 차이고 “우주 같은 눈물”을 흘리던 종희에 대한 짝사랑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기까지 하다. 찰나간의 열병처럼 지나간 사랑을 형만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때때로 떠올리겠지만, 여전히 사진기 수리 작업대에서 고장난 사진기를 고치면서 오래된 풍경으로 계속 남아 있겠지 하는 생각과 이 둘의 서툰 사랑에 밋밋하다고 느끼는, 메말라 버린 내 감성을 탓하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책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처럼 딱 형만과 남은이인 “안성기”와 “이하나”의 연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분명하지 않게 느낀 그 둘의 사랑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라도 영화를 보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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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금강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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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할 무렵 진로 문제로 잠시 방황했던 적이 있었다.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고자 유홍준의 “나의 문화답사기” 1권과 가벼운 옷 몇 벌 가방에 쑤셔 넣고 혼자서 전국 여행을 떠났다. 책에서 안내해 주는 길을 따라 강원도 양양, 경주, 포항, 부산, 광주를 거쳐 10여일 만에 도착한 곳이 해남 땅끝 마을이었다. 가고자 했던 마지막 길은 “윤선도”의 “보길도”였지만 주머니에 남은 돈이란 돌아가는 차비 남짓이어서 결국 땅끝 마을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보길도 행 배에 오르지 못했고 아쉬움에 배가 지평선 너머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처럼 땅끝 마을은 내 젊은 날 방황의 마침표이자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었고, 마지막 종착지에 이르지 못하고 아직도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내 여행의 긴 쉼표와 같은 곳이었다. 십 수 년 동안 휴가 때마다 보길도 여행을 계획해보지만 아직도 이루지 못했고, 보길도에 대한 아쉬움은 “트라우마”처럼 각인이 되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매번 꿈꿔온 보길도 여행에 하나 추가할 곳이 생겼다. 바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금강스님의 “미황사”이다.

이 책은 매 페이지 페이지가 금강 스님이 우리에게 보내온 미황사로의 “초대장”이다.

매 해마다 새로이 시작하고(겨울), 새록새록 일어나며(봄), 아름다운 길(여름)과 형형색색 깊어가는(가을) 미황사의 풍광과 계절마다 같이 어우러지고 즐기는 축제들 - 당제, 설날, 부처님 오신날, 천도재, 괘불재, 산사음악회 -, 그리고 참여불교 사찰로서 미황사의 오늘이 있게 한 각종 참여 수행 프로그램들 - 참사랑의 향기(템플스테이), 한문학회 - 들에 대해 읽고 있자면 화려하게 치장한 그 어떤 파티 초대장보다도 더 강렬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어릴 적 가기 싫어 버텨보지만 - 어렸을 때는 절이 무서웠다. 접 입구 눈을 부라리는 사천왕상은 그날 밤 꿈에 여지없이 나타나 밤새 날 쫓아다녔고, 그저 기와집만 같았던 대웅전이나 좁은 고갯길을 힘들게 올라가야 했던 산신각은 정말 재미없는 놀이터였다 - 결국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끌려가서는 “다 똑같은데 그냥 가까운 절이나 가지 이렇게 멀리 무엇하러 왔담”하곤 했던 내 어린 시절 불평에 대하여 스님은 부처님의 사상과 가르침이 건물 곳곳에 가치 있는 의미로 숨겨져 있는  절 곳곳마다 무엇 하나 허투루 지어진 공간이란 없으며, 절 마당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기와 하나하나가 들려주는 법문에 귀기울여 보라고 조용히 타일러 주신다.

 일년 중 어느 때 가더라도 좋을 것 같지만 새해가 되면 미황사 아랫 마을에서 열리는 “당제(堂祭)” - 내가 청소년 시절 살았던 마을에서도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 가운데 있던 은행나무 앞에서 당제가 열렸었다 -, 부처님 오신 날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함께 부르고 즐거워하는 동네잔치 “노래자랑”, 미황사를 터전삼아 관게 맺은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10월 25일 “괘불재”에는 시간을 맞춰서라도 꼭 가서 같이 즐기고 어우러져 보고 싶다. 가자마자 돌아올 차편을 챙기는 빠듯함이 아니라 아껴두었던 시간을 넉넉히 챙겨들고 당제에서는 수 백년 된 은행나무에 가족들의 건강도 빌어보고, 노래자랑에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구수한 노래자락에 덩실덩실 춤도 춰 보고, 괘불재에서는 1년 동안 내가 땀 흘려 이룬 성과물을 부처님 전에 올리고 함께 나눠도 보고 싶다.

이 때를 아쉽게 놓쳤으면 또 어떠랴. 여유있을 때 언제라도 가서 금강스님과 마주 앉아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삶의 고단함을 위로 받고 싶고 - 몰래 바늘 숨겨 가지고 가서 과연 스님 손끝을 찌르면 푸른 찻물이 뚝뚝 떨어지는 지 확인해봐야겠다 -, 연말연시라면 달마산 정산에서 아름다운 해넘이와 해맞이를 보면서 한 해를 정리해보고 싶고, 목탁 소리 두 번 울리면 절 너른 마당에서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풀을 매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고, 서정분교 아이들과 신나게 공을 차고는 “서정 구름이”에 올라 아이들과 시끌벅적 떠들어 보고 싶고, 짙 푸른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라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선향(禪香) 가득한 꿈의 산책로, 땅끝 마을에서 미황사에 이르는 옛 길을 느릿느릿 걸어보고 싶다. 그래서 성속(聖俗)은 일체 경계가 없는 하나라는 말씀처럼 300년전 미황사 스님들의 사리를 모셔놓은 부도와 같이 나도 미황사의 오래된 풍경(風景)처럼 함께 어우러져 보고 싶다.

 이제 남도로 떠나는 내 여행 길에는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와 함께 금강스님이 내게 보내주신 초대장인 이 책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이 함께 할 것 같다. 그리고 보길도로 떠나려던 내 여행길은 이 미황사에서 한 참을 더 머물려야 할 것 같아 계속 더뎌질 것 같다. 이제는 보길도를 가지 못했던 아쉬움 보다는 책 표지 사진처럼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과 환한 웃음을 지으시는 금강스님을 만나러 간다는 설레임이 더 큰 그런 여행이 될 것 같다. 올 여름 휴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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