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금강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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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할 무렵 진로 문제로 잠시 방황했던 적이 있었다.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고자 유홍준의 “나의 문화답사기” 1권과 가벼운 옷 몇 벌 가방에 쑤셔 넣고 혼자서 전국 여행을 떠났다. 책에서 안내해 주는 길을 따라 강원도 양양, 경주, 포항, 부산, 광주를 거쳐 10여일 만에 도착한 곳이 해남 땅끝 마을이었다. 가고자 했던 마지막 길은 “윤선도”의 “보길도”였지만 주머니에 남은 돈이란 돌아가는 차비 남짓이어서 결국 땅끝 마을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보길도 행 배에 오르지 못했고 아쉬움에 배가 지평선 너머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처럼 땅끝 마을은 내 젊은 날 방황의 마침표이자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었고, 마지막 종착지에 이르지 못하고 아직도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내 여행의 긴 쉼표와 같은 곳이었다. 십 수 년 동안 휴가 때마다 보길도 여행을 계획해보지만 아직도 이루지 못했고, 보길도에 대한 아쉬움은 “트라우마”처럼 각인이 되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매번 꿈꿔온 보길도 여행에 하나 추가할 곳이 생겼다. 바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금강스님의 “미황사”이다.

이 책은 매 페이지 페이지가 금강 스님이 우리에게 보내온 미황사로의 “초대장”이다.

매 해마다 새로이 시작하고(겨울), 새록새록 일어나며(봄), 아름다운 길(여름)과 형형색색 깊어가는(가을) 미황사의 풍광과 계절마다 같이 어우러지고 즐기는 축제들 - 당제, 설날, 부처님 오신날, 천도재, 괘불재, 산사음악회 -, 그리고 참여불교 사찰로서 미황사의 오늘이 있게 한 각종 참여 수행 프로그램들 - 참사랑의 향기(템플스테이), 한문학회 - 들에 대해 읽고 있자면 화려하게 치장한 그 어떤 파티 초대장보다도 더 강렬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어릴 적 가기 싫어 버텨보지만 - 어렸을 때는 절이 무서웠다. 접 입구 눈을 부라리는 사천왕상은 그날 밤 꿈에 여지없이 나타나 밤새 날 쫓아다녔고, 그저 기와집만 같았던 대웅전이나 좁은 고갯길을 힘들게 올라가야 했던 산신각은 정말 재미없는 놀이터였다 - 결국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끌려가서는 “다 똑같은데 그냥 가까운 절이나 가지 이렇게 멀리 무엇하러 왔담”하곤 했던 내 어린 시절 불평에 대하여 스님은 부처님의 사상과 가르침이 건물 곳곳에 가치 있는 의미로 숨겨져 있는  절 곳곳마다 무엇 하나 허투루 지어진 공간이란 없으며, 절 마당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기와 하나하나가 들려주는 법문에 귀기울여 보라고 조용히 타일러 주신다.

 일년 중 어느 때 가더라도 좋을 것 같지만 새해가 되면 미황사 아랫 마을에서 열리는 “당제(堂祭)” - 내가 청소년 시절 살았던 마을에서도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 가운데 있던 은행나무 앞에서 당제가 열렸었다 -, 부처님 오신 날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함께 부르고 즐거워하는 동네잔치 “노래자랑”, 미황사를 터전삼아 관게 맺은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10월 25일 “괘불재”에는 시간을 맞춰서라도 꼭 가서 같이 즐기고 어우러져 보고 싶다. 가자마자 돌아올 차편을 챙기는 빠듯함이 아니라 아껴두었던 시간을 넉넉히 챙겨들고 당제에서는 수 백년 된 은행나무에 가족들의 건강도 빌어보고, 노래자랑에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구수한 노래자락에 덩실덩실 춤도 춰 보고, 괘불재에서는 1년 동안 내가 땀 흘려 이룬 성과물을 부처님 전에 올리고 함께 나눠도 보고 싶다.

이 때를 아쉽게 놓쳤으면 또 어떠랴. 여유있을 때 언제라도 가서 금강스님과 마주 앉아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삶의 고단함을 위로 받고 싶고 - 몰래 바늘 숨겨 가지고 가서 과연 스님 손끝을 찌르면 푸른 찻물이 뚝뚝 떨어지는 지 확인해봐야겠다 -, 연말연시라면 달마산 정산에서 아름다운 해넘이와 해맞이를 보면서 한 해를 정리해보고 싶고, 목탁 소리 두 번 울리면 절 너른 마당에서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풀을 매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고, 서정분교 아이들과 신나게 공을 차고는 “서정 구름이”에 올라 아이들과 시끌벅적 떠들어 보고 싶고, 짙 푸른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라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선향(禪香) 가득한 꿈의 산책로, 땅끝 마을에서 미황사에 이르는 옛 길을 느릿느릿 걸어보고 싶다. 그래서 성속(聖俗)은 일체 경계가 없는 하나라는 말씀처럼 300년전 미황사 스님들의 사리를 모셔놓은 부도와 같이 나도 미황사의 오래된 풍경(風景)처럼 함께 어우러져 보고 싶다.

 이제 남도로 떠나는 내 여행 길에는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와 함께 금강스님이 내게 보내주신 초대장인 이 책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이 함께 할 것 같다. 그리고 보길도로 떠나려던 내 여행길은 이 미황사에서 한 참을 더 머물려야 할 것 같아 계속 더뎌질 것 같다. 이제는 보길도를 가지 못했던 아쉬움 보다는 책 표지 사진처럼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과 환한 웃음을 지으시는 금강스님을 만나러 간다는 설레임이 더 큰 그런 여행이 될 것 같다. 올 여름 휴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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