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 박서양
이윤우 지음 / 가람기획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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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실제 사실이 소설, 영화 속 꾸며낸 이야기보다 더 허구 같고 드라마틱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시련기인 구한말, 일제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은 자신의 이기적 욕심 또는 살기위해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친일”이라는 형태로 시대에 동참하거나,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여 “독립운동”이라는 고난의 길을 겪기도 했고,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 같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윤우의 “제중원 박서양”은 백정의 신분으로 태어나 조선 최초의 양의(洋醫)가 되었고 만주 용정으로 건너가 구세의원과 소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우리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피워낸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박서양”의 삶을 올곳이 담아낸 “역사 팩션” 소설이다. 같은 인물을 주제로 한 다른 소설과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를 접해본 터라 전체 이야기나 인물들은 익숙하겠거니 싶었는데 이 책에서 설명하는 “박서양”은 이야기 전체 얼개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기존 박서양의 삶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새롭게 씌여진 소설이다. 

청, 일본, 서양 제국주의의 강탈장이 된 격변기의 구한말, 백정인 아버지와 의원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불의의 죽음과 태어나서부터 병약해서 같이 한번도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는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후 천형(天刑)과도 같은 백정의 삶을 거부한 댓가로 다 죽어가던 그를 아버지 “금음산”은 “살리든 죽이든 마음대로 하라”면서 - 아들에게 백정의 굴레를 씌워주고 싶지 않는 아버지의 부정(父情). 행여나 다시 데려가라고 잡을세라 뒤돌아오는 걸음을 빠르게 하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슬픔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 최초의 서양의원 “제중원” 앞에 버리고 돌아서고, 서양 의사 “알렌”의 도움으로 제중원 의학당 생도가 되었지만 학우들의 따돌림과 멸시, 치료받기를 거부하는 환자들의 괴롭힘을 이겨내고 제중원 생도중 유일한 졸업생이 되었지만 성공이 아닌 새롭고 더 큰 고난만이 그의 앞길에 놓여지고 만다. 알렌을 따라 떠난 미국행에서 중도에 붙잡혀 초죽음이 되어 돌아와 모든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했지만 다시 얻게 된 일본 유학의 기회를 통해 진정한 의사로서 다시 거듭난 박서양, 일본에 남으라는 만류도 뿌리치고 다시 돌아온 고국은 신분제도는 철폐되고 세상은 자의든 타의든 개벽과도 같은 상황을 맞이했지만, “백정”이라는 신분의 벽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끊임없는 생채기를 낸다. 결국 그는 “의사”로서 “조선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독립운동이 치열하던 “만주”로 새로운 여행길을 떠난다. 책은 아쉽게도 만주로 떠나는 장면에서 끝을 맺고 - 만주에서의 그의 치열한 삶은 후속권으로 나와주길 바란다 - 그 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구세의원을 개업하고 소학교와 교회를 세웠으며, 독립군들의 의료를 도맡아 하는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살다가 머나먼 타국에서 쓸쓸히 죽어갔고 그의 행적은 최근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다가 학계의 연구로 행적들이 알려지면서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박서양이 느꼈을 신분제도의 벽과 삶의 고단함에 왠지 가슴이 묵직해지는 아픔과 슬픔을 공감할 수 있었다. 단지 드라마틱한 그의 삶의 성공스토리 위주였다면 흔하디 흔한 위인전기가 성공담에 그쳤을 이야기를, “백정이 의사가 되는 성공스토리가 아닌, 의사가 되어 우리 역사 중 가장 험난했다 할 수 있는 시간을 살아온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작가의 말처럼 누구나 존경하는 그런 성공담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역정에 초점을 맞춰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작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험난한 격변기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박서양과 비교하여 당신은 과연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냐고. 
 

작가의 물음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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