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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노희경 원작소설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노희경”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배종옥, 유호정 주연의 드라마 “거짓말(KBS, 1998)"이었다. 왠만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감정이입이 어렵다는, 감수성이 무딘 남성 시청자인 나에게 있어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귀로 들리지 않고 가슴으로 들리는 경험을 처음 알게 해준 드라마였다.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기억나는 대사는 거의 없지만 사랑 앞에서 소심하고 답답하기까지 했던 남자 주인공 이성재가 단호한 목소리로 했던 대사, ‘잠 못 이루고 가슴 설레고 참 많이 아픈 사랑,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있어요’ 라는 대사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 검색을 해보니 좀 더 긴 문장으로 되어 있지만 뉘앙스는 같아서 일부러 원래 대사를 옮기지 않고 내 마음 속 남아있는 대사로 썼다 -. “거짓말” 이후로 노희경은 “그들이 사는 세상(KBS, 2008년)” 에 이르기까지 나에게는 빠뜨려서는 안되는 그런 작가가 되었다. 그녀가 “거짓말” 이전 1996년에 썼다는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MBC, 1996)"는 아쉽게도 그 당시에는 시청하지 못했고 몇 년이 지나고 난 후 케이블 방송에서 재방송을 보았었다. 어머니로 나왔던 나문희 씨의 연기에 보는 내내 울음을 참을 수 없었던, 내가 본 노희경의 작품들 중에서 ”거짓말“과 함께 가장 좋았던 드라마로 기억되는 이 작품을 이번에는 동명의 소설(북로그 컴퍼니, 2010년 4월)로 만났다.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에 가득한 눈물 때문에 글자를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드라마보다 더욱 눈물을 많이 흘린 그런 책이었다.
암에 걸린 엄마의 죽음과 가족들의 슬픔, 이제는 흔하디 흔한 소재의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책을 덮고 심호흡을 가다듬었는지 모른다.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는 서평들도 읽었었고, 이미 본 드라마여서 결말을 뻔히 알고 있는 그런 내용이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건만 계속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기 때문이다. 감정을 억누르며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려 갔지만 마침내 꾹 참았던 눈물은 엄마가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붙들고 울면서 하던 다음 대사에서 그만 쏟아져 내렸다.
“어머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나 살았을 때 어머니가 죽어야 어머니도 편하고, 그래야 나도 편히 눈을 감지. 이제 금방 만날 거야, 어머니. 저승에 가서 내가 백 배, 천 배 더 효도할게….”
결혼하자마자 남편 유학 보내고 사흘 걸러 한번씩 구박하던 시어머니, 부자집 딸인 줄 알고 데려왔건만 가진 것 하나 없다는 것을 알고 모질게 시집살이시킨 시어머니, 그래도 먹을 것 몰래 방에 디밀어 주시던 그 시어머니, 며느리의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로 심한 치매를 앓고 계신 시어머니의 온갖 패악을 싫다는 말 한마디 없이 웃으면서 받아주었던 자신이 죽고 나면 치매걸린 저 어머니의 수발을 누가 드나 하면서 차라리 나 살아있을 때 죽어버리라고 울부짖는 엄마의 대사에 그만 나도 가슴이 무너 내려지는 듯한 슬픔에 눈물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다시 책장을 덮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서둘러 화장지로 몇 번을 닦아내고는 마침 밤 늦은 시간이라 아내가 일찍 잠들었기에 망정이지 아님 주책 맞은 꼴 보일 뻔했네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는 다시 책장을 열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번 흘렸던 눈물은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는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 마다 다시 흐르기 시작하더니, 새로 이사하게 될 집에서 자식들을 보내 놓고 나 언제 생각이 날 것 같아 하는 엄마의 물음에
“술 먹을 때, 술 깰 때, 잠자리 볼 때, 잔소리 듣고 싶을 때, 어머니 망령 부릴 때, 연수 시집갈 때, 정수 대학 갈 때, 그놈 졸업할 때, 설날 지짐이 부칠 때, 추석날 송편 빚을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당신 빨리 와. 나 심심하지 않게.”
라는 대화에서 그만 도저히 책을 다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다음날 아침 아버지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책은 끝나고, 노희경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마음을 추스릴 수 가 있었다. 지금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도 책 속의 장면들과 대사가 계속 떠올라서 몇 번을 쓰던 것을 중단했다고 다시 쓰고 지우고 했는 지를 모르겠다. 아내를 잃은, 엄마를 잃은 슬픔의 여운이 아무래도 쉽게 가시지는 않을 것만 같다.
책을 읽고 나서 먼저 잠든 아내를 보면서 “부디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 나 남겨두고 먼저 가면 안돼” 하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는 아내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편히 쉬실 나이에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떠올리면서 죄스런 마음에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간절히 빌었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아내와 이 책에서처럼 아무 준비하지도 못하고 불현듯 작별하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하게 될 이별의 그 순간,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만을 떠올릴 수 있기를, 그래서 그 이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로 기억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