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인간의 경제학 -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
이준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준구 교수의 책은 대학 경제학 전공 시절 그분이 지으신 "미시경제"와 "재정학" 교과서들을 제외하고는 최근 들어 "쿠오바디스 한국경제"에 이어 이 책 "36.5℃ 인간의 경제학(랜덤하우스 코리아, 2009년 9월)"이 두 번 째 책이다. “쿠오바디스 한국경제”는 제목 그대로 한국경제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토로한 책이고 이 책은 최신 경제이론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행태경제이론(behavioral economics)"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 쓴 책인데 이 교수가 이 책을 썼다는 데는 다소 의외이다. 기존 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적인 선택을 절대 전제로 하여 각종 경제적 행위를 수리적, 계량적 모형으로 정형화하여 분석하는 학문으로 이 교수 또한 국내 미시경제의 권위자로서 그러한 경제학적 연구체계를 수 십년 째 강의해온 “기존” 경제학자로 분류되어 왔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도 자신이 이런 행태경제이론에 눈뜬 지가 얼마 되지 않았고 심지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분야가 존재하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지내왔는데 이 분야의 글들을 읽어 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어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그에게도 생소한 분야였던 것 같다. 또한 이 책을 쓰면서 중요한 목표 한가지로 세워 놓았다는, 경제학 책인데도 소설 읽을 때처럼 재미와 기대를 가지게 하겠다는 그의 각오처럼 이 책은 행태 경제이론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이론을 가볍고 재밌게 풀어쓰고 있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행태경제이론은 나에게는 낯설지만은 않은데, 최근 “넛지(캐스 R.선스타인, 리더스북)”, “욕망의 경제학(피터우벨, 김영사)”, “슈퍼괴짜경제학(스티븐 레빗, 웅진지식하우스)”, “내 돈을 지키는 경제학(김진철, 밀리언 하우스)” 등 행태경제학을 설명하는 책들을 제법 읽은 탓이다. 경제학의 오랜 전제인 인간의 합리성과 이기심은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는 행태경제학은 그래서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시켜 합리성과 이기심에서 자꾸 일탈하는 경제주체인 인간을 해석하고자 하는 경제학의 신조류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행태경제학의 많은 이론과 실험, 용어들, 예를 들어 현실의 상황을 판단하는 일이 무척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단순화기 위해 사용하는 주먹구구식 원칙인 “휴리스틱(heuristics)", 배가 어느 지점에 닻을 내리면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자 그 부근에서 맴돌기 마련인 것을 비유하여 아무 의미 없는 숫자가 제시된 다 해도 어떤 것에 대한 최종적 판단이 그 숫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현상인 ”닻내림 효과(anchoring effect)", 똑같은 상황이라도 여러 가지 다른 인식 틀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때 어떤 틀에 의해 상황을 인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태가 달라진다는 “틀짜기 효과”, 귀찮음을 싫어하기 때문에 미리 정해진 것을 그대로 따르려는 경향인 “기정편향”, 사람들이 마음 속에 일종의 장부를 갖고 있어 어떻게 생긴 돈이고 어디에 쓸 돈인지에 따라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기록한다는 “심적회계(mental accounting)" 등의 개념을 주요 사례들과 함께 재밌고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앞에서 언급한 책들에서 이미 한번 씩은 접해본 용어들이라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들이다. 

책 각 장 말미에는 부록 형식으로 ”생활 속의 행태경제학“이란 코너에서는 현재 이슈가 되는 정치, 경제 상황에 대한 ”행태경제학“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데 상당히 흥미가 있는 부문이다. 2008년 5월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광우병 파동“을 행태경제이론으로 해석을 한다면 불과 몇 개월전 쇠고기에서 뼈조각이 하나 발견되어도 전량 반송조치하는 상황에서는 광우병 발병 확률이 거의 0에 가까웠는데 소고기 협상후 30개월이 넘는, 그것도 위험물질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대폭 양보하는 것은 엄청난 손실을 뜻한다는 인식이 정부에 대한 강한 분노를 자아냈으며 이는 사람들이 이득보다 손해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발생할 확률이 아주 낮은 일은 그 가능성을 부풀려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주머니를 털어 당첨될 확률이 지극히 낮은 복권을 사는 사람들의 행위에서 볼 수 있듯이 광우병 발병의 확률이 아주 작더라도 현실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위험의 정도는 상당히 크게 느끼는 것은 행태경제이론에 비추어 지극히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즉 잘못된 방송보도가 사람들을 선동했다는 주장은 어처구니없으며 그럴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거리로 뛰쳐나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준구 교수가 에필로그에서 

“나 자신도 행태경제이론을 공부하면서 종전에 날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에 눈 뜨게 되었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에만 매달려 있던 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는 정책을 보는 내 시각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라고 행태경제학을 접하면서 느낀 충격을 토로하고 있는 것처럼 기존 경제학계에도 충분히 설득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이론으로 그 위상을 높여가고 있고, 미국 경제 위기의 해법으로 행태경제이론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참신한 시도(“욕망의 경제학”)가 있을 정도로 그 중요성 또한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기존 보수적인 경제학의 틀을 깨기에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리적 전제와 모형에 갇혀버린 “이론을 위한 이론”일 수 밖에 없는 경제학에 있어서 좀 더 현실성 있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는 행태경제학이 “내 학자 인생에서 뜻밖의 행운”이라는 이 준구 교수의 말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좀 더 활발하고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어, 아직도 “성장”과 “토목” 에 얽매이는 고루한 경제정책을 답습하는 우리 경제 정책에도 변화가 어서 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먼 시계공 1
김탁환.정재승 지음, 김한민 그림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치밀한 고증과 독창적인 상상력, 거기에 왕성한 창작활동까지 더해져 역사소설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소설가와 생소한 뇌 공학 분야의 전공자로 최근 대중을 위한 과학 에세이 저술가로도 이름이 알려진 과학자의 만남.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서 2년 동안 근 미래인 “2049년 서울”에 대하여 각자가 쓴 글을 수정하고 토론하는, 문학사에 있어 흔하지 않다는 “공동 창작의 시간”을 거쳐 “SF 소설”를 한편 써냈다. 김탁환, 정재승의 공저 “눈 먼 시계공(민음사, 2010년 5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을 대하면서 가진 처음 느낌은 솔직히 기대보다는 우려감이 더 크게 들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두 작가의 이름과 그동안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던 두 작가의 작품 이력만으로도 절로 기대감이 들기도 하지만, 순수문학을 제외한 장르소설을 경원시하는 우리 현실에서 하필(!)이면 영원히 미개척 분야로 남을 것 같은, “아이작 아시모프”나 “아서 C. 클라크” 같은 저명한 작가의 탄생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 뿐 우리에게는 결코 요원할 것만 같은 “SF 소설”에 도전했다는 우려감이 더 컸었던 탓이었다. 과학적 설정에만 너무 집중하면 재미없고 딱딱한 설명 위주의 과학 교과서로 끝나게 될 테고, 재미에만 치중한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다 보면 과학적 배경은 말 그대로 단순한 들러리일 뿐 글로 씌여진 유치한 만화에 불과할 수 도 있는, 과학과 스토리 두 요소의 조화가 두 사람의 토론과 협의로 어느 정도 선까지 가능할지 궁금증과 우려로 시작한 책 읽기는 총 800 페이지에 가까운 많은 분량의 페이지를 모두 읽고 난 후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자랑할 만한 SF 소설이 탄생했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읽고 나서도 여운이 계속되는 재미와 감동으로 묘한 흥분마저 느껴진다. 두 작가의 시도가 보란 듯이 성공한 것이다! 

“인간은 한때 모든 신비로운 존재 중 가장 위대한 존재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는 우리 자신의 존재가 더 이상 신비하지 않다는 확신이 생겼다. 왜냐하면 그 비밀이 이제 풀렸기 때문이다”라는 세계적인 진화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의 문구로 시작하는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39년 후의 미래, 즉 인간의 팔, 다리, 눈, 귀 등의 신체와 장기들을 기계로 대체하고, 가사용 로봇 뿐만 아니라 미혼자들의 성적욕구를 해소하는 배우자 대용 로봇들이 일상화 되어 있고, 이종격투기 시합에 인간을 능가하는 격투 실력을 갖춘 로봇들이 출전하는 등의 모습은 이 소설만의 독창적이고 기발한 그런 미래라고는 볼 수 없는, 그동안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영화들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던 그런 세계이다. 그러나 책에서는 이러한 과학기술의 결과만을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뇌 공학, 로봇개발, 인공장기 개발 및 이식 기술 등 미래에 현실화되는 주요 기술에 대하여 연대별로 - 물론 2010년 현재 실현되지 않은 가상의 연대지만 - 주요 논문이나 과학 실험들을 단계적으로 소개하는, 마치 2049년 현재의 과학서적을 펼쳐 보면서 읽어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미 역사소설에서 치밀하고 정확한 고증 실력을 선보였던 김탁환의 글 솜씨와 수많은 과학 실험과 이론을 공부해온 정재승의 과학적 추론이 제대로 결합한 결과물로 미래의 역사를 재현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책에서는 연쇄살인사건과 로봇 격투기 시합을 주요 얼개로 삼고 과학기술 발달로 야기되는 여러 문제들, 즉 인간 및 인간성에 대한 의문 - 신체의 70% 이상을 기계로 대체한 사람을 인간과 로봇의 중간개념인 사이보그로 간주해 인권을 박탈 장면, 배우자 로봇에게 인간 그 이상의 애정을 갖게 되는 점 등 -, 돌연변이 생명체까지 만들어 낸 치명적인 환경오염,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금권력이 지배하는 세계 등 다소 무거운 주제들도 다루고 있지만 그간의 SF소설의 주 경향인 과학기술에 대한 냉소와 암울한 디스토피아(distopia)적 미래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학 기술이 인간에 줄 수 있는 희망과 절망, 동전의 양면 모두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독특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쉽게 이해되는 과학적 설득력 - 과학적 소양이 부족한 문과 출신인 나로서는 생소한 용어들과 과학 이론은 영 낯설기만 하지만 여기서 소개되는 각종 과학적 배경이나 장치들은 미래 과학 기술을 설명하기 위한 근거로서 이러이러한 것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로만 이해되어져도 충분할 것 같다 - 과 묵직한 주제 의식 속에서도 결코 재미를 잃지 않는 탄탄한 스토리 텔링과 함께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모그룹 총수 부인이 소장하고 있다고 해서 유명세를 탄 로이 리히테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연상시키는 김하민의 삽화이다. 원색 계열의 강렬한 이 삽화들은 마치 외국 작가가 그린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이국적인 느낌이 들며, 주요 사건 전개를 글로써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쉽게 연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최첨단 테크놀로지 도시 “2049년 서울특별시”에서 뇌를 적출당한 시체가 연이어 발견되면서 보안청 소속 검사이자 죽은 사람의 뇌 전전두엽에서 가장 최근의 기억을 추출하여 영상으로 재생하는 기술인 “스티머스(Sort-term Memory Retrieval System)”를 사용하여 범인을 체포하는 비밀 수사팀 초대 팀장인 은석범은 수사팀의 비밀이 노출된 걸로 여기고 수사를 진행한다. 한편 세계 로봇 격투기 대회인 “배틀원” 참가를 위해 로봇을 개발해 온 최볼테르 박사는 전초전으로 자신의 로봇 “글라슈트”를 전년도 준우승자 “무사시”와 대결시키지만 무참히 패배하고 극심한 분노를 터뜨리고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앵거 클리닉”에 치료받게 된다. 은석범은 환경운동가인 어머니의 주선으로 “글라슈트” 개발팀 일원이자 뇌공학자인 노민선과 맞선을 보게 되고, 뇌를 적출하는 연쇄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민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살인은 계속되고, 살해당한 사람들이 앵거 클리닉에 참가했던 환자들이였다는 실낱같은 실마리에 앵거클리닉 원장 조윤상을 의심하지만 조 원장마저 살해당하고 만다.  “배틀원”은 성황리에 개최되고 최약체로 지목되었던 “글라슈트”는 힘겹게 승리를 거두면서 처참한 패배를 안겨주었던 “무사시”와 결승전을 치루게 되고, 프로그래밍 되지 않은 이상 행동을 보인 끝에 우승을 차지한다. 우승 기념 파티 식장에서 글라슈트의 공격으로 최볼테르와 은석범은 절체 절명의 위기에 처하지만 노민선이 엽총을 발사한 덕분에 위기를 넘기게 되지만 그만 최 볼테르는 유탄에 맞아 사망하게 되고 동일한 시기에 앵거 클리닉에서 치료받은 모든 사람들이 죽음으로써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진다. 그러나 사건은 은석범이 어머니의 유품에서 발견한 사진 한 장으로 놀라운 반전과 함께 모든 실마리가 풀리게 된다. 잔인한 연쇄 살인 사건은 과거의 끔찍했던 사건의 피해자가 간직한 “증오”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나고 작가는 책의 말미에서 증오를 관장하는 뇌의 영역인 인슐라(Insula, 섬), 피각(putamen,조가비핵)에 대해 설명하면서 증오는 삶의 에너지이며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는 사람은 그 순간 살아갈 이유, 즉 증오를 실현하고 복수하기 위해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게 되며, 오직 인간만이 미움의 순간을 곱씹으며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추억한다고 이야기하며 끝을 맺는다. 

  이처럼 과학적 설득력과 스토리텔링, 멋들어진 삽화 삼박자가 잘 어울린 이 소설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SF소설 장르에서 기념비적인 위치를 차지할 만한 재미와 완성도 면에서 탁월한 수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서로 다른 분야인 소설가와 과학자의 실험적인 시도가 이렇게 성훌륭히 성공을 거둔 만큼 이런 시도가 이번 일회성으로 그치지 말고 앞으로도 SF소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장르로도 이어져 풍성하고 다양한 작품들로 우리를 더욱 즐겁게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으로 하는 작별
룽잉타이 지음, 도희진 옮김 / 사피엔스21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부모님 곁을 떠나서 객지에서 생활을 해온, 이제 결혼을 해서 타향에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나로서는 부모님이 계시는 집은 휴일이나 명절 때 잠시 다니러 가는 곳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부모님이 싸주시는 각종 음식들과 선물들을 두 손에 잔뜩 들고 집 문을 나서면 따라 나오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드려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버스 타는 곳까지 굳이 따라 나오셔서 같이 버스를 기다려주신다. 마침내 버스가 와서 자리에 앉으면 자리 창가 쪽으로 다가오셔서 조심히 올라가고 도착하면 바로 연락하라고 말씀하시고는 손을 흔들어 주신다. 버스는 출발하고 부모님은 들어가셨나 하고 버스 뒷 창문으로 돌아보면 아직도 그 자리에 서 계시면서 내가 타고 있는 버스가 커브 길을 돌아 안 보일 때까지 서 서 손을 흔들고 계시곤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서운해 하시는 데 자주 내려올 걸 하는 후회와 미안함에 가슴 한켠이 저려오다가도, 집에 도착하면 다시금 시작되는 바쁜 일상에 치여 그런 죄송스러움을 까맣게 잊고 지낸다. 이처럼 부모님과 나누는 작은 만남과 이별의 반복, 아마도 조금씩 조금씩 영원히 이별하게 되는 그날을 서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룽잉타이는 “눈으로 하는 작별(원제 目送, 사피엔스 21, 2010년 5월)”에서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 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대만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는다는 작가는 삶의 여행자로서 한동안 믿었다가 다시 한동안은 불신했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여전히 믿음을 찾아 헤맸지만 이제는 세월 앞에서 믿음이나 불신 모두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치매 걸리신 어머니, 그리고 이제는 엄마 품을 벗어나 어엿한 성인으로 자란 자신의 두 아들을 대한 애틋한 사랑, 그리고 세상살이에 대한 작가만의 감성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일종의 수필집이다. 

 표제작이기도 한 “눈으로 한 작별”에서 작가는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고 타이완으로 돌아와 첫 출근하던 날, 사료를 나를 때 쓰던 낡고 작은 트럭에 태워 데려다 주신 아버지께서 정문이 아닌 옆문이 있는 좁은 골목에 차를 세우시면서 대학교수가 탈 차가 아니라면서 미안해하셨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부모와 자식은 점차 멀어져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눈으로 작별하는 그런 사이구나 하고 느낀다. 또한 어릴 적 살던 집을 찾아 엄마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옛 집 앞에서도 계속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가 돌아가고자 했던 “집”은 우편 번호가 매겨져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어릴 적 자식들이 뛰어놀고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음식을 준비하던, 시간 속의 그 “집”이며 어머니는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에 왔다가 돌아가는 차를 놓친 “시간여행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과 인사처럼 나누는 말 "건강 조심해"라는 말이 늘 진지한 까닭은 항상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며, 사랑이란 속절없이 사라지는 존재라 해도, 반딧불이 밤하늘에 빛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이유를 생각하면 서로 사랑했던 그 시절조차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하고 우리에게 물어온다. 또한 실패에 좌절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우리는 100미터 달리기를 성공적으로 완주하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지만,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가끔씩은 실패가 삶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지, 넘어져 본 사람이 달리기에 더 진지하게 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배운 적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실패가 때로는 다시 힘차게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충고한다. 그녀는 행복이란 항상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는 삶이며, 여느 때처럼 평범한 나날 속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아침에 손을 흔들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나간 아이가 저녁이 되면 아무일 없이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와서 책가방은 방 한구석에 던져버리고 냄새나는 운동화를 의자 밑에 쑤셔 박는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의 평온함이 곧 행복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버지께 안부 전화 드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3부 산과 들에 가득 핀 차나무 꽃”에서는 병마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그 곁을 지키셨던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애틋하면서 가슴 아픈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이 아련해졌다. 

 가족과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여느 수필과 별 차이가 없겠거니 하고 시작한 책 읽기가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더니, 다 읽고 나서도 그 여운이 길게 지속되는 그런 책이 되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결코 녹록치 않은 삶에 대한 성찰들은 노트에 적어두고 자주 들여다 보고 싶을 정도로 글귀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는 그런 글들이다. 어쩌면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부모님과 그리고 자식들과 매번 눈으로 작별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슴으로 이별하게 되는 그날, 아무리 준비해 둔 이별일지라도 눈에 하나 가득 차오르는 눈물과 심장이 뜯겨나가는 듯한 슬픔을 참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그런 이별이 준비로만 끝나기를, 실제로는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가슴 속으로 빌어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노희경 원작소설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노희경”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배종옥, 유호정 주연의 드라마 “거짓말(KBS, 1998)"이었다. 왠만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감정이입이 어렵다는, 감수성이 무딘 남성 시청자인 나에게 있어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귀로 들리지 않고 가슴으로 들리는 경험을 처음 알게 해준 드라마였다.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기억나는 대사는 거의 없지만 사랑 앞에서 소심하고 답답하기까지 했던 남자 주인공 이성재가 단호한 목소리로 했던 대사, ‘잠 못 이루고 가슴 설레고 참 많이 아픈 사랑,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있어요’ 라는 대사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 검색을 해보니 좀 더 긴 문장으로 되어 있지만 뉘앙스는 같아서 일부러 원래 대사를 옮기지 않고 내 마음 속 남아있는 대사로 썼다 -. “거짓말” 이후로 노희경은 “그들이 사는 세상(KBS, 2008년)” 에 이르기까지 나에게는 빠뜨려서는 안되는 그런 작가가 되었다. 그녀가 “거짓말” 이전 1996년에 썼다는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MBC, 1996)"는 아쉽게도 그 당시에는 시청하지 못했고 몇 년이 지나고 난 후 케이블 방송에서 재방송을 보았었다. 어머니로 나왔던 나문희 씨의 연기에 보는 내내 울음을 참을 수 없었던, 내가 본 노희경의 작품들 중에서 ”거짓말“과 함께 가장 좋았던 드라마로 기억되는 이 작품을 이번에는 동명의 소설(북로그 컴퍼니, 2010년 4월)로 만났다.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에 가득한 눈물 때문에 글자를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드라마보다 더욱 눈물을 많이 흘린 그런 책이었다.  

 암에 걸린 엄마의 죽음과 가족들의 슬픔, 이제는 흔하디 흔한 소재의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책을 덮고 심호흡을 가다듬었는지 모른다.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는 서평들도 읽었었고, 이미 본 드라마여서 결말을 뻔히 알고 있는 그런 내용이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건만 계속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기 때문이다. 감정을 억누르며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려 갔지만 마침내 꾹 참았던 눈물은 엄마가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붙들고 울면서 하던 다음 대사에서 그만 쏟아져 내렸다. 

“어머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나 살았을 때 어머니가 죽어야 어머니도 편하고, 그래야 나도 편히 눈을 감지. 이제 금방 만날 거야, 어머니. 저승에 가서 내가 백 배, 천 배 더 효도할게….”

 결혼하자마자 남편 유학 보내고 사흘 걸러 한번씩 구박하던 시어머니, 부자집 딸인 줄 알고 데려왔건만 가진 것 하나 없다는 것을 알고 모질게 시집살이시킨 시어머니, 그래도 먹을 것 몰래 방에 디밀어 주시던 그 시어머니, 며느리의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로 심한 치매를 앓고 계신 시어머니의 온갖 패악을 싫다는 말 한마디 없이 웃으면서 받아주었던 자신이 죽고 나면 치매걸린 저 어머니의 수발을 누가 드나 하면서 차라리 나 살아있을 때 죽어버리라고 울부짖는 엄마의 대사에 그만 나도 가슴이 무너 내려지는 듯한 슬픔에 눈물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다시 책장을 덮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서둘러 화장지로 몇 번을 닦아내고는 마침 밤 늦은 시간이라 아내가 일찍 잠들었기에 망정이지 아님 주책 맞은 꼴 보일 뻔했네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는 다시 책장을 열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번 흘렸던 눈물은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는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 마다 다시 흐르기 시작하더니, 새로 이사하게 될 집에서 자식들을 보내 놓고 나 언제 생각이 날 것 같아 하는 엄마의 물음에  

“술 먹을 때, 술 깰 때, 잠자리 볼 때, 잔소리 듣고 싶을 때, 어머니 망령 부릴 때, 연수 시집갈 때, 정수 대학 갈 때, 그놈 졸업할 때, 설날 지짐이 부칠 때, 추석날 송편 빚을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당신 빨리 와. 나 심심하지 않게.”

라는 대화에서 그만 도저히 책을 다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다음날 아침 아버지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책은 끝나고, 노희경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마음을 추스릴 수 가 있었다. 지금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도 책 속의 장면들과 대사가 계속 떠올라서 몇 번을 쓰던 것을 중단했다고 다시 쓰고 지우고 했는 지를 모르겠다. 아내를 잃은, 엄마를 잃은 슬픔의 여운이 아무래도 쉽게 가시지는 않을 것만 같다.

 책을 읽고 나서 먼저 잠든 아내를 보면서 “부디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 나 남겨두고 먼저 가면 안돼” 하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는 아내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편히 쉬실 나이에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떠올리면서 죄스런 마음에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간절히 빌었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아내와 이 책에서처럼 아무 준비하지도 못하고 불현듯 작별하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하게 될 이별의 그 순간,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만을 떠올릴 수 있기를, 그래서 그 이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로 기억될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서를 위하여 - 그리운 이름, 김수환 추기경
한수산 지음 / 해냄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김수환 추기경께서 맑은 웃음을 남기시고 하느님 곁으로 훌훌 떠나버리신 지 어느새 1년이 넘었다.  갈등과 증오만 넘치던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약하고 힘없는 자들의 목자로서 분노와 미움보다는 용서와 화해를 가르치셨던 그 분의 말씀이 더욱 더 간절해진 지금 그 분의 빈자리가 더욱 허허롭다. 동네 할아버지 같은 그분의 웃음을 절실히 그리워하던 무렵 그분의 말씀과 삶을 이야기하는 소설을 만났다. 감성적인 언어로 아름다운 글들을 발표해왔던 작가 한수산이 쓴 “용서를 위하여(해냄, 2010년 5월)”이 그 책이다. 

천주교 초대 성인 최양업의 일대기를 글로 쓰고 있던 “나”(작가 한수산)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이라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여러 매체에서 요청한 추도사를 쓰고 나서 추기경이 어린시절을 보낸 경북 군위의 옛집, “민족의 아들, 순교자의 아들,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했던 도쿄의 조치대학, 첫 사목지인 안동의 주교좌 목성동 성당, 젊은 사제 시절의 김천 성의여고와 황금동 성당, 영면하고 계신 천주교 용인공원묘지묘원 등 추기경의 종적을 더듬어 나간다. 그러면서 “한수산 필화사건”으로 일컬어지는 1980년대 고문의 기억을 떠올린다. 1981년 5월 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던 “욕망의 거리”가 당시 군부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연행되어 모진 매질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 무자비한 폭력을 겪고 아무 연관도 없는 죄 없는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대야 했던 그 시절 “서로 사랑하라. 서로 하나가 되라.”라는 추기경의 말씀에  

“사랑할 수 없는 것,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요. 서로 사랑하라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 사랑법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증오를 가르친 자를 어떻게 사랑하나요. 추기경님도 고문 한번 받아보시지요. 그러나서 어디 그 잘난 사랑법을 한번 알려주시지요.” 

라며 가해자의 사과조차 없는 용서가 가능하냐며 분노를 터뜨렸던 그 당시를 떠올린다. 아픈 기억을 치유하기 위해 유배와도 같은 도쿄 생활을 겪으면서 그는 이경재 신부에게서 영세를 받으면서 천주교에 입교하면서 조금씩 “용서”에 대한 의미를 이해해가기 시작하며 잊으려고 애를 쓴다 

“저는 잊으렵니다. 용서하지는 못하더라도 잊으려고 합니다. 제가 살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추기경의 말씀과 삶의 궤적을 쫓아간 지 1년 후 일본에서 출간하는 “까마귀”의 출판문제로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 추기경 선종 장례식에 분향을 하고 김수환 추기경의 모교인 “조치대학”을 방문하면서 그는 마침내 추기경이 그토록 말씀하신 “함께(with)"와 ”용서“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진심으로 용서를 하게 된다.

“그 고문마저도, 미약하고 미약해서 보잘것 없는 나를 더 견고하게 하기 위한, 사회와 역사에 더 깊이 눈을 돌리게 해서 하느님이 나를 쓰시기 위한 담금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감격과 놀람을 표현할 힘이 나에게는 없다. 평생 글을 써왔으면서도 그 표현을 찾을 길이 없다” 

제가 용서하지 못하면서 저는 어떻게 용서받겠습니까. 제가 용서하지 못한다면 저 또한 용서받지 못하는 것을. 단순함이여. 진정이여. 입에만 올렸지 가슴 저 밑바닥이 무너져 내리듯 끌어안지 못했던 나. 내가 용서받았으니 그들도 용서하소서. 제가 그들을 용서하오니, 저 또한 용서하소서”

 이 책은 김수환 추기경의 삶에 대한 전기(傳記) 소설이 아니라 작가가 겪었던 시대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그 분의 삶과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치유되는 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신앙 간증이자 논픽션 에세이로 봐야할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그가 국가의 폭력에 시대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품게 되고, 종교에 귀의하면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잊고자 했던 그들에 대하여 마침내 추기경의 선종과 그의 삶을 돌아보면서 단순히 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심으로 용서하게 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한때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오해를 한 적이 있었다. 90년대 이후 아직도 이 시대는 추기경님의 따끔하고 강한 일침이 필요하건만 이 작가가 느낀 것처럼 그저 용서와 화해만을 강조하시는, 민주화의 성지였던 명동성당이 침묵하고 있다고, 정의의 상징성을 이제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에서도 나오듯이 평생을 자신의 소신과 원칙에서 벗어남 없이 “용서와 화해”를 가르치셨던 그 분의 올곧은 삶을 내 잣대로 함부로 재단해서 내 뜻과 다르다고 변하셨다고 비난했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비록 짧지만 그 분의 온전한 모습을 만나고 나니 나의 그릇된 판단에 대해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이 느껴진다. 그분과 종교를 같이 하고 있진 않지만 결코 화해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어둠조차도 따뜻한 빛으로 감싸 안으시려 했던, “용서”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주신 그분의 삶에 옷깃이 절로 여미어진다. 

그분이 떠나신 지 1년, 아직도 세상은 그분의 따끔한 가르침과 함께 “용서하라”라는 말씀과 함께 지으시던 환한 웃음 두 가지 모두 필요한 그런 세상이기에 그 분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