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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하는 작별
룽잉타이 지음, 도희진 옮김 / 사피엔스21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부모님 곁을 떠나서 객지에서 생활을 해온, 이제 결혼을 해서 타향에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나로서는 부모님이 계시는 집은 휴일이나 명절 때 잠시 다니러 가는 곳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부모님이 싸주시는 각종 음식들과 선물들을 두 손에 잔뜩 들고 집 문을 나서면 따라 나오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드려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버스 타는 곳까지 굳이 따라 나오셔서 같이 버스를 기다려주신다. 마침내 버스가 와서 자리에 앉으면 자리 창가 쪽으로 다가오셔서 조심히 올라가고 도착하면 바로 연락하라고 말씀하시고는 손을 흔들어 주신다. 버스는 출발하고 부모님은 들어가셨나 하고 버스 뒷 창문으로 돌아보면 아직도 그 자리에 서 계시면서 내가 타고 있는 버스가 커브 길을 돌아 안 보일 때까지 서 서 손을 흔들고 계시곤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서운해 하시는 데 자주 내려올 걸 하는 후회와 미안함에 가슴 한켠이 저려오다가도, 집에 도착하면 다시금 시작되는 바쁜 일상에 치여 그런 죄송스러움을 까맣게 잊고 지낸다. 이처럼 부모님과 나누는 작은 만남과 이별의 반복, 아마도 조금씩 조금씩 영원히 이별하게 되는 그날을 서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룽잉타이는 “눈으로 하는 작별(원제 目送, 사피엔스 21, 2010년 5월)”에서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 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대만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는다는 작가는 삶의 여행자로서 한동안 믿었다가 다시 한동안은 불신했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여전히 믿음을 찾아 헤맸지만 이제는 세월 앞에서 믿음이나 불신 모두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치매 걸리신 어머니, 그리고 이제는 엄마 품을 벗어나 어엿한 성인으로 자란 자신의 두 아들을 대한 애틋한 사랑, 그리고 세상살이에 대한 작가만의 감성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일종의 수필집이다.
표제작이기도 한 “눈으로 한 작별”에서 작가는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고 타이완으로 돌아와 첫 출근하던 날, 사료를 나를 때 쓰던 낡고 작은 트럭에 태워 데려다 주신 아버지께서 정문이 아닌 옆문이 있는 좁은 골목에 차를 세우시면서 대학교수가 탈 차가 아니라면서 미안해하셨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부모와 자식은 점차 멀어져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눈으로 작별하는 그런 사이구나 하고 느낀다. 또한 어릴 적 살던 집을 찾아 엄마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옛 집 앞에서도 계속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가 돌아가고자 했던 “집”은 우편 번호가 매겨져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어릴 적 자식들이 뛰어놀고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음식을 준비하던, 시간 속의 그 “집”이며 어머니는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에 왔다가 돌아가는 차를 놓친 “시간여행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과 인사처럼 나누는 말 "건강 조심해"라는 말이 늘 진지한 까닭은 항상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며, 사랑이란 속절없이 사라지는 존재라 해도, 반딧불이 밤하늘에 빛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이유를 생각하면 서로 사랑했던 그 시절조차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하고 우리에게 물어온다. 또한 실패에 좌절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우리는 100미터 달리기를 성공적으로 완주하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지만,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가끔씩은 실패가 삶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지, 넘어져 본 사람이 달리기에 더 진지하게 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배운 적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실패가 때로는 다시 힘차게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충고한다. 그녀는 행복이란 항상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는 삶이며, 여느 때처럼 평범한 나날 속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아침에 손을 흔들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나간 아이가 저녁이 되면 아무일 없이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와서 책가방은 방 한구석에 던져버리고 냄새나는 운동화를 의자 밑에 쑤셔 박는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의 평온함이 곧 행복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버지께 안부 전화 드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3부 산과 들에 가득 핀 차나무 꽃”에서는 병마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그 곁을 지키셨던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애틋하면서 가슴 아픈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이 아련해졌다.
가족과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여느 수필과 별 차이가 없겠거니 하고 시작한 책 읽기가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더니, 다 읽고 나서도 그 여운이 길게 지속되는 그런 책이 되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결코 녹록치 않은 삶에 대한 성찰들은 노트에 적어두고 자주 들여다 보고 싶을 정도로 글귀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는 그런 글들이다. 어쩌면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부모님과 그리고 자식들과 매번 눈으로 작별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슴으로 이별하게 되는 그날, 아무리 준비해 둔 이별일지라도 눈에 하나 가득 차오르는 눈물과 심장이 뜯겨나가는 듯한 슬픔을 참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그런 이별이 준비로만 끝나기를, 실제로는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가슴 속으로 빌어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