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인간의 경제학 -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
이준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준구 교수의 책은 대학 경제학 전공 시절 그분이 지으신 "미시경제"와 "재정학" 교과서들을 제외하고는 최근 들어 "쿠오바디스 한국경제"에 이어 이 책 "36.5℃ 인간의 경제학(랜덤하우스 코리아, 2009년 9월)"이 두 번 째 책이다. “쿠오바디스 한국경제”는 제목 그대로 한국경제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토로한 책이고 이 책은 최신 경제이론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행태경제이론(behavioral economics)"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 쓴 책인데 이 교수가 이 책을 썼다는 데는 다소 의외이다. 기존 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적인 선택을 절대 전제로 하여 각종 경제적 행위를 수리적, 계량적 모형으로 정형화하여 분석하는 학문으로 이 교수 또한 국내 미시경제의 권위자로서 그러한 경제학적 연구체계를 수 십년 째 강의해온 “기존” 경제학자로 분류되어 왔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도 자신이 이런 행태경제이론에 눈뜬 지가 얼마 되지 않았고 심지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분야가 존재하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지내왔는데 이 분야의 글들을 읽어 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어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그에게도 생소한 분야였던 것 같다. 또한 이 책을 쓰면서 중요한 목표 한가지로 세워 놓았다는, 경제학 책인데도 소설 읽을 때처럼 재미와 기대를 가지게 하겠다는 그의 각오처럼 이 책은 행태 경제이론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이론을 가볍고 재밌게 풀어쓰고 있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행태경제이론은 나에게는 낯설지만은 않은데, 최근 “넛지(캐스 R.선스타인, 리더스북)”, “욕망의 경제학(피터우벨, 김영사)”, “슈퍼괴짜경제학(스티븐 레빗, 웅진지식하우스)”, “내 돈을 지키는 경제학(김진철, 밀리언 하우스)” 등 행태경제학을 설명하는 책들을 제법 읽은 탓이다. 경제학의 오랜 전제인 인간의 합리성과 이기심은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는 행태경제학은 그래서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시켜 합리성과 이기심에서 자꾸 일탈하는 경제주체인 인간을 해석하고자 하는 경제학의 신조류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행태경제학의 많은 이론과 실험, 용어들, 예를 들어 현실의 상황을 판단하는 일이 무척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단순화기 위해 사용하는 주먹구구식 원칙인 “휴리스틱(heuristics)", 배가 어느 지점에 닻을 내리면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자 그 부근에서 맴돌기 마련인 것을 비유하여 아무 의미 없는 숫자가 제시된 다 해도 어떤 것에 대한 최종적 판단이 그 숫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현상인 ”닻내림 효과(anchoring effect)", 똑같은 상황이라도 여러 가지 다른 인식 틀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때 어떤 틀에 의해 상황을 인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태가 달라진다는 “틀짜기 효과”, 귀찮음을 싫어하기 때문에 미리 정해진 것을 그대로 따르려는 경향인 “기정편향”, 사람들이 마음 속에 일종의 장부를 갖고 있어 어떻게 생긴 돈이고 어디에 쓸 돈인지에 따라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기록한다는 “심적회계(mental accounting)" 등의 개념을 주요 사례들과 함께 재밌고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앞에서 언급한 책들에서 이미 한번 씩은 접해본 용어들이라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들이다. 

책 각 장 말미에는 부록 형식으로 ”생활 속의 행태경제학“이란 코너에서는 현재 이슈가 되는 정치, 경제 상황에 대한 ”행태경제학“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데 상당히 흥미가 있는 부문이다. 2008년 5월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광우병 파동“을 행태경제이론으로 해석을 한다면 불과 몇 개월전 쇠고기에서 뼈조각이 하나 발견되어도 전량 반송조치하는 상황에서는 광우병 발병 확률이 거의 0에 가까웠는데 소고기 협상후 30개월이 넘는, 그것도 위험물질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대폭 양보하는 것은 엄청난 손실을 뜻한다는 인식이 정부에 대한 강한 분노를 자아냈으며 이는 사람들이 이득보다 손해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발생할 확률이 아주 낮은 일은 그 가능성을 부풀려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주머니를 털어 당첨될 확률이 지극히 낮은 복권을 사는 사람들의 행위에서 볼 수 있듯이 광우병 발병의 확률이 아주 작더라도 현실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위험의 정도는 상당히 크게 느끼는 것은 행태경제이론에 비추어 지극히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즉 잘못된 방송보도가 사람들을 선동했다는 주장은 어처구니없으며 그럴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거리로 뛰쳐나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준구 교수가 에필로그에서 

“나 자신도 행태경제이론을 공부하면서 종전에 날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에 눈 뜨게 되었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에만 매달려 있던 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는 정책을 보는 내 시각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라고 행태경제학을 접하면서 느낀 충격을 토로하고 있는 것처럼 기존 경제학계에도 충분히 설득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이론으로 그 위상을 높여가고 있고, 미국 경제 위기의 해법으로 행태경제이론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참신한 시도(“욕망의 경제학”)가 있을 정도로 그 중요성 또한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기존 보수적인 경제학의 틀을 깨기에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리적 전제와 모형에 갇혀버린 “이론을 위한 이론”일 수 밖에 없는 경제학에 있어서 좀 더 현실성 있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는 행태경제학이 “내 학자 인생에서 뜻밖의 행운”이라는 이 준구 교수의 말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좀 더 활발하고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어, 아직도 “성장”과 “토목” 에 얽매이는 고루한 경제정책을 답습하는 우리 경제 정책에도 변화가 어서 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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