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위하여 - 그리운 이름, 김수환 추기경
한수산 지음 / 해냄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김수환 추기경께서 맑은 웃음을 남기시고 하느님 곁으로 훌훌 떠나버리신 지 어느새 1년이 넘었다.  갈등과 증오만 넘치던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약하고 힘없는 자들의 목자로서 분노와 미움보다는 용서와 화해를 가르치셨던 그 분의 말씀이 더욱 더 간절해진 지금 그 분의 빈자리가 더욱 허허롭다. 동네 할아버지 같은 그분의 웃음을 절실히 그리워하던 무렵 그분의 말씀과 삶을 이야기하는 소설을 만났다. 감성적인 언어로 아름다운 글들을 발표해왔던 작가 한수산이 쓴 “용서를 위하여(해냄, 2010년 5월)”이 그 책이다. 

천주교 초대 성인 최양업의 일대기를 글로 쓰고 있던 “나”(작가 한수산)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이라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여러 매체에서 요청한 추도사를 쓰고 나서 추기경이 어린시절을 보낸 경북 군위의 옛집, “민족의 아들, 순교자의 아들,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했던 도쿄의 조치대학, 첫 사목지인 안동의 주교좌 목성동 성당, 젊은 사제 시절의 김천 성의여고와 황금동 성당, 영면하고 계신 천주교 용인공원묘지묘원 등 추기경의 종적을 더듬어 나간다. 그러면서 “한수산 필화사건”으로 일컬어지는 1980년대 고문의 기억을 떠올린다. 1981년 5월 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던 “욕망의 거리”가 당시 군부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연행되어 모진 매질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 무자비한 폭력을 겪고 아무 연관도 없는 죄 없는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대야 했던 그 시절 “서로 사랑하라. 서로 하나가 되라.”라는 추기경의 말씀에  

“사랑할 수 없는 것,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요. 서로 사랑하라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 사랑법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증오를 가르친 자를 어떻게 사랑하나요. 추기경님도 고문 한번 받아보시지요. 그러나서 어디 그 잘난 사랑법을 한번 알려주시지요.” 

라며 가해자의 사과조차 없는 용서가 가능하냐며 분노를 터뜨렸던 그 당시를 떠올린다. 아픈 기억을 치유하기 위해 유배와도 같은 도쿄 생활을 겪으면서 그는 이경재 신부에게서 영세를 받으면서 천주교에 입교하면서 조금씩 “용서”에 대한 의미를 이해해가기 시작하며 잊으려고 애를 쓴다 

“저는 잊으렵니다. 용서하지는 못하더라도 잊으려고 합니다. 제가 살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추기경의 말씀과 삶의 궤적을 쫓아간 지 1년 후 일본에서 출간하는 “까마귀”의 출판문제로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 추기경 선종 장례식에 분향을 하고 김수환 추기경의 모교인 “조치대학”을 방문하면서 그는 마침내 추기경이 그토록 말씀하신 “함께(with)"와 ”용서“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진심으로 용서를 하게 된다.

“그 고문마저도, 미약하고 미약해서 보잘것 없는 나를 더 견고하게 하기 위한, 사회와 역사에 더 깊이 눈을 돌리게 해서 하느님이 나를 쓰시기 위한 담금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감격과 놀람을 표현할 힘이 나에게는 없다. 평생 글을 써왔으면서도 그 표현을 찾을 길이 없다” 

제가 용서하지 못하면서 저는 어떻게 용서받겠습니까. 제가 용서하지 못한다면 저 또한 용서받지 못하는 것을. 단순함이여. 진정이여. 입에만 올렸지 가슴 저 밑바닥이 무너져 내리듯 끌어안지 못했던 나. 내가 용서받았으니 그들도 용서하소서. 제가 그들을 용서하오니, 저 또한 용서하소서”

 이 책은 김수환 추기경의 삶에 대한 전기(傳記) 소설이 아니라 작가가 겪었던 시대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그 분의 삶과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치유되는 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신앙 간증이자 논픽션 에세이로 봐야할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그가 국가의 폭력에 시대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품게 되고, 종교에 귀의하면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잊고자 했던 그들에 대하여 마침내 추기경의 선종과 그의 삶을 돌아보면서 단순히 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심으로 용서하게 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한때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오해를 한 적이 있었다. 90년대 이후 아직도 이 시대는 추기경님의 따끔하고 강한 일침이 필요하건만 이 작가가 느낀 것처럼 그저 용서와 화해만을 강조하시는, 민주화의 성지였던 명동성당이 침묵하고 있다고, 정의의 상징성을 이제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에서도 나오듯이 평생을 자신의 소신과 원칙에서 벗어남 없이 “용서와 화해”를 가르치셨던 그 분의 올곧은 삶을 내 잣대로 함부로 재단해서 내 뜻과 다르다고 변하셨다고 비난했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비록 짧지만 그 분의 온전한 모습을 만나고 나니 나의 그릇된 판단에 대해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이 느껴진다. 그분과 종교를 같이 하고 있진 않지만 결코 화해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어둠조차도 따뜻한 빛으로 감싸 안으시려 했던, “용서”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주신 그분의 삶에 옷깃이 절로 여미어진다. 

그분이 떠나신 지 1년, 아직도 세상은 그분의 따끔한 가르침과 함께 “용서하라”라는 말씀과 함께 지으시던 환한 웃음 두 가지 모두 필요한 그런 세상이기에 그 분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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