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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5월
평점 :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민주화를 위해 피 흘렸던 우리 선배들이 바친 목숨 값으로 이뤄낸 결과물이고 우리세대는 그런 선배들의 희생의 몫을 향유하는 축복받은 세대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수십년간 우리들 선배들의 투쟁으로 1997년 첫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냈었고, 2002년 시민들은 학벌도 빽도 없는 보통사람을, 그렇지만 가슴속 순수한 열정만큼은 가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냈고, 그런 대통령을 시기한 기득권 세력들이 폭력적인 민주적 절차인 “탄핵”으로 끌어내리려고 했지만, 시민들이 촛불과 투표로 그를 지켜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난 2008년 보수주의 신정부가 들어설 때도 그동안 공고히 다져온 민주적 기반 때문에 상식을 벗어난 독선과 과거로의 회귀는 사실상 어렵지 않겠느냐 하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지 불과 2년 반 만에 우리 사회는 그들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십년”을 넘어 수십년 전으로 완전히 후퇴해버렸다. 자신과 자식들의 건강을 위해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경찰의 군화발과 물대포에 속절없이 쓰러져가야 했고, 경제위기를 경고하는 글을 올리던 인터넷 논객은 수감되어 차디찬 감방에서 몇달을 보내야 했고, 생존을 위해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야 했던 사람들은 “합.법.적.”인 경찰의 진압작전에 의해 목숨을 잃어야 했고, 방송국 기자들과 PD들은 언론자유를 외치며 파업을 하고 있으며, 수십년 만에 종교계 성직자들이 “생명 존중”을 외치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우리가 지난 몇 십년 동안 그렇게 타도하고 물리치고자 했던 각종 반민주적이고 폭압적인 행태들을 2년 반동안 바둑판 복기하듯이 고스란히 다시 겪고 있는 셈이다. 지난 정부가 경제 정책이나 부동산 정책에서 실정을 거듭하면서 - 이것도 보수 기득권 언론들의 악의적인 비난으로 왜곡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 “경제”가 정권교체의 이유가 되었는데 도대체 왜 나아지라는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지고 피땀 흘려 겨우 이뤄낸 민주주의의 시계바늘은 한순간에 수십년 전으로 되돌려지고 만 것일까? 10 여년간 잊고 지냈던 민주주의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도정일, 박원순외 지음, 휴머니스트, 2010년 5월)”는 이 시대에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격정적인 이야기하고 있다.
2009년 11월과 12월, 휴머니스트와 오마이뉴스 공동으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민주주의 특강”을 활자로 엮어낸 이 책은 도정일, 한홍구, 박원순, 우석훈 등 그동안 각종 언론 기고 글이나 책, 인터뷰들을 통해서 한번쯤은 만나봤을 만한 역사, 법학, 철학, 과학, 경제, 언론, 인권, 시민단체 등 각 분야에서 명망을 얻은 12명의 강사들이 이야기하는 다양한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 도정일 교수는 여는 글에서 “우리는 어떤 세계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결코 포기하지 말고 인간, 사회, 역사, 문명에 대한 책임을 명심하라고 이야기하고, 한홍구 교수는 지난 100년간의 민주주의 역사를 회상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처럼 ”가만히 있으면 진다!“면서 우리의 미래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장래도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박명림 교수는 우리는 단지 정부를 민주화했을 뿐 역근대화, 사사화, 근본화, 탈공공화, 자영화, 개체화, 만인 불안화 등이 빠르게 진행되어 왔으며 그 결과 이제 사회는 거의 해체 단계에 이르렀다고 경고하며 국가의 공공성을 회복하여 개인 삶의 공공적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또한 여성 인권 운동가인 정희진씨는 국가는 행위자가 아니라 가치에 가까운 관념이기 때문에 국가 자체는 스스로 아무일도 할 수 없고 권력자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자기 행위를 하는 것이고, 실제 국가, 국민 전체의 이익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이익“과 ”국익“이라는 말로 소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이야기하며, 우석훈 교수는 밀레니엄이후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토건”, “10대의 보수화”가 보수주의자들에게 필승의 길을 열어주었고, 토건형 보수 국가로 경제의 기본 체질이 변화되었다고 말하면서 생태적 소양을 갖춘 생태적 시민으로서 자기 존엄성을 가지는 “빈자들의 생태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거리의 철학자” 김상봉 교수는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각 시대나 사회가 꿈꾸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념없는 교육”이며 한국사회에서 학벌은 철저하게 사회적 차별의 기제이자 시민적 의사소통을 치명적으로 왜곡하고 있어 "대학 평준화"만이 학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김종철 교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와 인권을 최대한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즉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인 오연호 기자는 자신의 월간 잡지 “말”과 “오마이뉴스"에서의 근무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동네 신문, 지역소식지, 개인블로그, 온라인 카페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소수의 인원이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언론 ”실핏줄언론“이야말로 그 자체가 희망이며 그들이 연대하면 희망을 넘어서 승리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진보 논객이자 미학자로 유명한 진중권 교수는 21세기는 미디어 패러다임 시대이자 독특함을 보여주는 상상력이 생산되는 시대이며, 정치면에서는 진보적이지만 일상 속에서는 보수적인 습속을 버리고 촛불 집회에서, 허경영 현상에서 미래를 전망(Prospect)하고, 그런 전망 속에서 미래를 기획하는 것, 그렇게 우리 사회를 ”Programing"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 홍성욱 교수는 시민들이 과학기술 정책, 방전방향, 사용에 대하여 더 많이 참여하는 시민과학을 통해서 참여 민주주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김찬호 교수는 서로의 말길을 터주는 “의미 창조의 공간”, 말이 통하는 공간적 공간이자 민주주의 가장 기본 터전인 “마을”을 가꿔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박원순 변호사는 세상을 바꿔온 주역은 “깨어있는 시민”, 즉 개개인 한사람이며 우리 공동체를 위한 의사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면 민주주의도, 경제도, 우리의 삶도, 미래도 절로 만들어지며,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이야기한다.
12명이 이야기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담론의 공통된 주제는 뒤로만 흘러가는 시계바늘을 앞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들이 그저 체념과 절망에서 벗어나 작금의 현실의 심각성을 충분히 깨닫고 함께 연대하여 정권에 대한 감시의 눈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일것이다. 예전처럼 거리로 뛰쳐나와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투쟁이 아니라 “마을”과 같은 소규모 공동체 운동, 개인 블로그, 인터넷 카페 등 인터넷 언론의 활성화 , 하루에 한 조문씩 읽어나가는 헌법 공부, 우리 사회의 상당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보수적 습속을 버리는 일, 국민 주권인 “선거” 등과 같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며, 시민들이 계속 깨어있어 그들을 감시하는 한 저들의 헛된 노력은 결국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잠시간의 망각으로 우리는 그 소중함을 다시금 잃어버릴 뻔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오랫동안 온갖 희생을 겪으면서 지켜내고자 애써왔던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시금 떠올리고 있다. 이제는 잊지 말고 항상 그 소중함을 간직하고서 저들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함께 연대하여 행동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