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naver.com/nfantastique/690

 

장르문학을 선도했던 웹진 판타스틱이 그동안의 부침을 훌훌 털어버리고 드디어 네이버 카페로 돌아왔네요. 장르문학들이 그저 소수 매니아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성을 더욱 확보할 수 있도록 앞에서 견인하는 카페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해봅니다.

카페 오픈과 더불어 푸짐한 이벤트이니 많이들 응모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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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왜곡의 역사 - 성서비평학자 바트 어만이 추적한
바트 D. 에르만 지음, 강주헌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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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다니는 분들에게는 지극히 불경(不敬)스러운 이야기이겠지만, 예수의 실존(實存)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크리스마스 때면 교회 성극(聖劇)으로, TV 드라마나 영화로 수없이 보아왔던 예수의 생애, 즉 성스러운 탄생과 아픈 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려내는 놀라운 기적(奇蹟)들,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한 사건들은 그 어떤 신화나 전설보다도 드라마틱하고 환상적이기까지 해서 비신자(非信者)들에게는 신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허구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의 신비로운 생애는 종종 문학이나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쓰이는 데,  십자가 처형당시 예수의 왼쪽 편에 매달렸던 강도였던 "사반"을 소재로 하여 메시아로서의 예수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그린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순간 그가 느꼈을 인간적 고뇌를 생생하게 그려낸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예수의 삶을 지상으로 끌어내림으로써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의 모습을 그려낸 제랄드 메사디에의 “신이 된 남자”, 예수의 부활을 대놓고 의심하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결국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라고 주장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등 기독교의 전통 교리를 부정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책들을 손쉽게 만나볼 수 있다. 과연 예수는 실재(實在)했었을까? 실재했었다면 신약성경 복음서에서 전하는 그의 기적들과 부활은 진실이었을까?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회사 연구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는 성경학자 “바트 어만”은 그의 저서 “예수 왜곡의 역사(청림출판, 2010년 5월)”에서 우리가 복음서들을 통해서 알고 있는 예수는 역사 속의 실제 모습이 아니며 복음서 집필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부풀려진 모습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기독교에 있어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씌여진 절대 오류가 없는 완전무결한 책이라는 “축자영감설(逐字靈感設)”과 “성서무오설(聖書無誤說)”은 절대 진리이며 감히 성서의 오류를 지적하는 그 어떤 행위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바트 어만은 신약성경의 4대 복음서(마태, 누가, 마가, 요한) 속의 예수의 생애에 대한 수평적 분석을 통하여 서로 일치하지 않은 수많은 오류들을 하나하나 나열하여 사실 성경은 완전무결하지 않은 오류 투성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베들레헴에서의 예수 탄생 여부와 예수의 탄생을 둘러싼 수수께끼들, 예수가 성전에서 상인을 내쫓는 시기, 같은 기적인데도 서로 다르게 묘사하거나 순서가 뒤바뀐 각종 기적들, 예수의 죽음 시점인 “유월절”에 대한 시기,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외친 예수의 말들, 부활한 예수를 목격한 사람들, 부활 후 승천하기까지의 일들 등 어느 하나 일치하는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오늘날의 기독교를 사실상 창시해냈다고 여겨지는 사도 바울이 썼다는 서신들과 그의 행적이 서로 불일치하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통 받는 메시아, 삼위일체 교리, 천국과 지옥 등의 교리는 사실 후대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것들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며, 기독교는 “서구문명에서 발명한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까지 선언한다. 작가는 책 말미에서 자신이 불신자가 된 이유는  “그러나 언제가 부터 그 신화들이 더 이상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고, 와닿지도 않았으며, 세상을 읽는 방향을 제시해주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폭력적인 현실을 고려할 때 기독교의 핵심적인 믿음이 어떤 식으로 보아도, 즉 신화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내게 ”참“으로 보이지 않는 지경”  이었다는 작가의 독백에서 알수 있듯이 역사 비평학적 관점에서 바라 본 것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의 변화 때문이라고 말하며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예로 들며 “믿음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끝을 맺는다.

  사실 난 기독교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인데다가 예수 실존 여부에 대한 논란의 글들은 각종 책이나 다큐멘터리 들을 통해서 많이 접해본 터라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들이 그리 충격적이거나 놀랍지는 않다. 특히 4대 복음서 속의 예수 생애에 대한 수평적인 분석 방법은 오래전에 다른 책에서 읽고 나도 정리해본 터라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이야기를 처음 접해보는 신도들이라면 이 책의 내용들은 예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탄”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질 만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예전 기독교를 못마땅하게 여겨 사사건건 부정했던 나에게 “종교는 머리로 믿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믿는 것이다”라고 충고했던 친구의 말 그대로 이런 이야기에 흔들리는 믿음이었다면 심각하게 자신의 믿음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다만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한 절대 불변의 근본주의적 믿음으로 타인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그런 편협함을 버리고 다양한 해석과 사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포용력만큼은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은 가져보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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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의 눈 바티미어스 2
조나단 스트라우드 지음, 남문희 옮김 / 황금부엉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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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사마르칸트의 마법 목걸이”에서 사악한 마법사 러브레이스의 음모를 멋지게 막아낸 나타니엘과 바티미어스는 2부 “골렘의 눈(황금부엉이, 2010년 5월)”에서는 신비의 몬스터 “골렘”과 위대한 마법사이자 영국 수상이었던 “글래드스톤”의 마법 지팡이를 둘러싸고 1편에서 잠시 언급했던 “레지스탕스” 세력들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정부 전복의 음모 세력들과 영국 런던에서 체코 프라하까지 이어지는 일대 활극을 벌인다. 여전히 바티미어스의 익살스런 말투와 각주는 읽는 즐거움을 주며 전편에서 잠시 등장했던 신비의 소녀 “키티”가 화자(話者)로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고 흥미진진해진다. 


  책 도입부는 바티미어스가 화자로 등장하여 1868년 위대한 마법사 글래드스톤의 체코 침략을 이야기한다. 글래드스톤은 각종 요괴들을 앞세우고 위대한 힘이 갈무리된 자신의 지팡이를 들고서 프라하를 침공하고, 프라하의 마법사를 주인으로 모시고 전쟁에 참여한 바티미어스는 동료들과 함께 막아내려 하지만 역부족으로 후퇴하고 만다. 도입부가 끝나면 러브레이스의 반란 사건이 있은 지 2년이 지난 후 14세가 된 주인공 나타니엘은 존 맨드레이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국가안전부 장관인 제시카 휘트웰을 새로운 스승으로 모시고 내사국장 보좌관으로 되어 권력의 중심부에 입성하여 활약을 펼친다. 그러나 미국 본토 전쟁이 지지부진을 거듭하고 설상가상으로 레지스탕스의 테러가 계속되면서, 나타니엘을 시기하는 무리들의 질타가 거듭되면서 나타니엘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게 된다. 어느날 밤 런던 중심부 마법 상점 건물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자, 나타니엘은 레지스탕스가 벌인 일 치고는 너무 대형 사고인 것에 대해 의심쩍어하며 자신의 본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소환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바티미어스를 소환하고, 툴툴거리며 나타난 바티미어스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잠복근무를 시작한다.

한편 레지스탕스 일원인 소녀 “키티 존스”는 어릴 적 마법사 거주지역 공원에서 친구랑 공놀이를 하다가 마법사의 공격을 받았지만 살아나고, 레지스탕스를 이끌고 있던 페니 페더에게 “마법 저항력”이 있다는 설명을 듣고 레지스탕스에 가입하여 자신과 같은 마법저항력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마법물품을 훔치고 마법사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활동을 벌인다. 도서관 사서 “홉킨스”와 미지의 은인의 의뢰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글래드스톤의 무덤 도굴 작전에 들어간 레지스탕스들은 글래드스톤이 자신의 유골에 심어놓았던 묘지기 요괴에 의해 대부분 죽임을 당하고 키티는 글래드스톤의 지팡이만을 챙겨서 간신히 도망쳐 나온다. 대영박물관에서 잠복근무 중이었던 바티미어스는 박물관을 부수도 들어온 존재가 예전 프라하에서 보았던 골렘임을 알아보고 일대 싸움을 벌인 후 나타니엘에게 골렘의 출현을 보고하는데, 터무니없는 소리로 치부하는 권력자들에게 골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나타니엘은 체코 프라하로 출장을 가서 그곳에 잠복해 있는 스파이를 만나 조사를 벌이지만 1부에서 만났던 암살자의 방해로 골렘의 조종자를 밝히는 데 실패하고 영국으로 귀환한다.   영국으로 돌아온 나타니엘은 무덤을 도굴한 레지스탕스 잔당을 체포하기 위해 또한 밤마다 런던 시내에 출현해 요괴 및 사람들을 죽이는 묘지기 요괴를 막기 위해 나서고, 키티의 부모님 집에서 키티와 맞부닥치지만 그만  놓치고 만다. 나타니엘은 키티의 오랜 친구인 “제이콥”을 인질로 하여 키티를 체포하려 하지만, 마법지팡이를 노리고 나타난 골렘과 템즈강에 쳐박혀 죽은 줄 알았던 묘지기가 나타나면서 마법지팡이를 둘러싼 일대 활극이 벌어진다. 골렘을 물리치기 위해 지팡이를 깨우려던 나타니엘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 버리고, 골렘의 주먹이 쓰러져 있는 나타니엘을 내려치는 순간 의외의 일이 벌어진다. 

   2부에서는 나타니엘이 권력의 심장부로 들어서면서 반대파들과 암투를 벌이고, 권력의 맛을 알아간 그가 권력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그려지는데 그동안 정의로운 존재로만 그려지던 기존의 판타지 소설과는 다른 독특한 인물설정이 오히려 상투적이지 않아 매력적으로 다가오며, 제3의 화자로 새롭게 등장한 주인공인 키티의 레지스탕스에 가입하게 된 이유, 글래드스톤의 무덤에서 벌이는 일대 모험과 마지막 마법지팡이를 둘러싸고 벌이는 박진감 넘치는 활약들이 더욱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골렘과 마법지팡이 도굴 사건은 결국 해결되었지만 골렘을 조종하도록 사주한 미지의 세력과 레지스탕스를 도굴 사건에 끌여들여 결국 괴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홉킨스”라는 인물과 미지의 은인의 정체는 결국 밝혀지지 않아 과연 어떤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지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며, 타지역으로 떠나는 어릴 적 친구인 제이콥을 따라가지 않고 런던에 남기로 결심하는 키티와 그녀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는 나타니엘과의 미묘한 관계는 어떻게 계속될 지, 전편에서 유황방귀를 뀌고 해산되었다가 툴툴거리며 다시 소환되어 멋진 활약을 펼친 바티미어스가  앞으로 또 어떤 엄청난 사건과 재미나고 유쾌한 이야기를 들려줄 지 시리즈가 거듭될 수 록 기대가 된다.  갈수록 속물이 되어가지만 왠지 정이 가는 주인공 “나타니엘”, 여전히 투덜거리며 빈정대기 좋아하지만 나타니엘과의 묘한 우정이 깊어가는 “바티미어스”, 새롭게 등장하여 멋진 활약을 보여준 “키티”, 이 두 사람과 하나의 요괴가 벌이는 환상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프톨레마이오스의 문”에서는 어떻게 펼쳐지고 대단원의 막을 내릴 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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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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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민주화를 위해 피 흘렸던 우리 선배들이 바친 목숨 값으로 이뤄낸 결과물이고 우리세대는 그런 선배들의 희생의 몫을 향유하는 축복받은 세대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수십년간 우리들 선배들의 투쟁으로 1997년 첫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냈었고, 2002년 시민들은 학벌도 빽도 없는 보통사람을, 그렇지만 가슴속 순수한 열정만큼은 가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냈고, 그런 대통령을 시기한 기득권 세력들이 폭력적인 민주적 절차인 “탄핵”으로 끌어내리려고 했지만, 시민들이 촛불과 투표로 그를 지켜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난 2008년 보수주의 신정부가 들어설 때도 그동안 공고히 다져온 민주적 기반 때문에 상식을 벗어난 독선과 과거로의 회귀는 사실상 어렵지 않겠느냐 하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지 불과 2년 반 만에 우리 사회는 그들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십년”을 넘어 수십년 전으로 완전히 후퇴해버렸다. 자신과 자식들의 건강을 위해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경찰의 군화발과 물대포에 속절없이 쓰러져가야 했고, 경제위기를 경고하는 글을 올리던 인터넷 논객은 수감되어 차디찬 감방에서 몇달을 보내야 했고, 생존을 위해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야 했던 사람들은 “합.법.적.”인 경찰의 진압작전에 의해 목숨을 잃어야 했고, 방송국 기자들과 PD들은 언론자유를 외치며 파업을 하고 있으며, 수십년 만에 종교계 성직자들이 “생명 존중”을 외치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우리가 지난 몇 십년 동안 그렇게 타도하고 물리치고자 했던 각종 반민주적이고 폭압적인 행태들을 2년 반동안 바둑판 복기하듯이 고스란히 다시 겪고 있는 셈이다.  지난 정부가 경제 정책이나 부동산 정책에서 실정을 거듭하면서 - 이것도 보수 기득권 언론들의 악의적인 비난으로 왜곡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 “경제”가 정권교체의 이유가 되었는데 도대체 왜 나아지라는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지고 피땀 흘려 겨우 이뤄낸 민주주의의 시계바늘은 한순간에 수십년 전으로 되돌려지고 만 것일까?  10 여년간 잊고 지냈던 민주주의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도정일, 박원순외 지음, 휴머니스트, 2010년 5월)”는 이 시대에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격정적인 이야기하고 있다. 

  2009년 11월과 12월, 휴머니스트와 오마이뉴스 공동으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민주주의 특강”을 활자로 엮어낸 이 책은 도정일, 한홍구, 박원순, 우석훈 등 그동안 각종 언론 기고 글이나 책, 인터뷰들을 통해서 한번쯤은 만나봤을 만한 역사, 법학, 철학, 과학, 경제, 언론, 인권, 시민단체 등 각 분야에서 명망을 얻은 12명의 강사들이 이야기하는 다양한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  도정일 교수는 여는 글에서 “우리는 어떤 세계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결코 포기하지 말고 인간, 사회, 역사, 문명에 대한 책임을 명심하라고 이야기하고, 한홍구 교수는 지난 100년간의 민주주의 역사를 회상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처럼 ”가만히 있으면 진다!“면서 우리의 미래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장래도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박명림 교수는 우리는 단지 정부를 민주화했을 뿐 역근대화, 사사화, 근본화, 탈공공화, 자영화, 개체화, 만인 불안화 등이 빠르게 진행되어 왔으며 그 결과 이제 사회는 거의 해체 단계에 이르렀다고 경고하며 국가의 공공성을 회복하여 개인 삶의 공공적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또한 여성 인권 운동가인 정희진씨는 국가는 행위자가 아니라 가치에 가까운 관념이기 때문에 국가 자체는 스스로 아무일도 할 수 없고 권력자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자기 행위를 하는 것이고,  실제 국가, 국민 전체의 이익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이익“과 ”국익“이라는 말로 소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이야기하며, 우석훈 교수는 밀레니엄이후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토건”, “10대의 보수화”가 보수주의자들에게 필승의 길을 열어주었고, 토건형 보수 국가로 경제의 기본 체질이 변화되었다고 말하면서 생태적 소양을 갖춘 생태적 시민으로서 자기 존엄성을 가지는 “빈자들의 생태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거리의 철학자” 김상봉 교수는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각 시대나 사회가 꿈꾸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념없는 교육”이며 한국사회에서 학벌은 철저하게 사회적 차별의 기제이자 시민적 의사소통을 치명적으로 왜곡하고 있어 "대학 평준화"만이 학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김종철 교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와 인권을 최대한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즉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인 오연호 기자는 자신의 월간 잡지 “말”과 “오마이뉴스"에서의 근무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동네 신문, 지역소식지, 개인블로그, 온라인 카페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소수의 인원이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언론 ”실핏줄언론“이야말로 그 자체가 희망이며 그들이 연대하면 희망을 넘어서 승리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진보 논객이자 미학자로 유명한 진중권 교수는 21세기는 미디어 패러다임 시대이자 독특함을 보여주는 상상력이 생산되는 시대이며, 정치면에서는 진보적이지만 일상 속에서는 보수적인 습속을 버리고 촛불 집회에서, 허경영 현상에서 미래를 전망(Prospect)하고, 그런 전망 속에서 미래를 기획하는 것, 그렇게 우리 사회를 ”Programing"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  홍성욱 교수는 시민들이 과학기술 정책, 방전방향, 사용에 대하여 더 많이 참여하는 시민과학을 통해서 참여 민주주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김찬호 교수는 서로의 말길을 터주는 “의미 창조의 공간”, 말이 통하는 공간적 공간이자 민주주의 가장 기본 터전인 “마을”을 가꿔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박원순 변호사는 세상을 바꿔온 주역은 “깨어있는 시민”, 즉 개개인 한사람이며 우리 공동체를 위한 의사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면 민주주의도, 경제도, 우리의 삶도, 미래도 절로 만들어지며,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이야기한다.

  12명이 이야기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담론의 공통된 주제는 뒤로만 흘러가는 시계바늘을 앞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들이 그저 체념과 절망에서 벗어나 작금의 현실의 심각성을 충분히 깨닫고 함께 연대하여 정권에 대한 감시의 눈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일것이다.  예전처럼 거리로 뛰쳐나와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투쟁이 아니라 “마을”과 같은 소규모 공동체 운동, 개인 블로그, 인터넷 카페 등 인터넷 언론의 활성화 , 하루에 한 조문씩 읽어나가는 헌법 공부, 우리 사회의 상당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보수적 습속을 버리는 일, 국민 주권인 “선거” 등과 같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며, 시민들이 계속 깨어있어 그들을 감시하는 한 저들의 헛된 노력은 결국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잠시간의 망각으로 우리는 그 소중함을 다시금 잃어버릴 뻔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오랫동안 온갖 희생을 겪으면서 지켜내고자 애써왔던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시금 떠올리고 있다. 이제는 잊지 말고 항상 그 소중함을 간직하고서 저들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함께 연대하여 행동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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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의 마법 목걸이 바티미어스 1
조나단 스트라우드 지음, 최인자 옮김 / 황금부엉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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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도(드래곤라자), 윤현승(하얀 늑대들), 전민희(룬의 아이들) 등 국내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을 정도로 열광하는 “판타지” 소설 장르는 유독 원류(原流)라 할 수 있는 외국 작품들 중에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크게 재미를 느낀 책들이 없었다. 세계 3대 판타지 걸작이라고 꼽히고 영화화되어 공전의 히트를 친 J.R.R.톨킨의 “반지의 제왕”,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어슬러 르귄의 "어스시의 마법사"들은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책으로 읽어서 그런지 강렬한 영화의 시각적인 이미지들이 책을 읽는 내내 나만의 상상을 방해해서 책을 더디 읽게 만들었고, 20세기 들어 가장 많이 팔린 책 중의 하나라는 "해리포터" 시리즈 또한 영화로만 즐겨봤을 뿐 책으로는 낯설기만 한 영국식 문화와 아동용의 한계일 수 밖에 없는 다소 유치한 글 전개, 뚜렷한 주제의식이 없다는 이유로 조금 읽다가 말았던 그런 책이었다. 그래도 역시 영화화 되었던 필립 풀먼의 "황금나침반“이나 역시 ”반지의 제왕“의 감독인 피터 잭슨이 영화화할 예정이라는 나오미 노빅의 "테메레르"는 참 재미있게 읽은 것을 보면 서양판타지 소설 자체에 대한 낯섦이 아니라 내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좋고 나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편식이 심한 내 판타지 소설 취향에 두꺼운 분량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재미와 몰입도를 가진 서양 판타지 소설을 만났다. 전 세계 38 개국에서 출간되어 ”해리포터“의 아성을 물리칠 만한 유일한 소설이라고 평가받는다는 조나단 스트라우드의 “바티미어스 시리즈”의 제 1부인 “사마르칸트의 마법 목걸이(황금부엉이, 2010년 5월)”는 오랜만에 읽는 내내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든 그런 판타지 소설이었다. 

  시리즈 1부인 이 책에서는 마법 수련생인 “나타니엘”이 어릴 적 자신에게 모욕을 준 마법사 “러브레이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5천년을 넘게 살아온 영악한 요괴 “바티미어스”를 소환마법으로 불러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나타니엘은 바티미어스에게 러브레이스가 가지고 있다는, 어떠한 마법적 공격이라도 방어할 수 있는 고대 마법 유물인 “사마르칸트의 마법 목걸이”를 훔쳐오라고 명령하는데, 바티미어스는 온갖 요괴들과 마법 장벽로 둘러 쌓인 러브레이스 저택의 철벽 감시망을 뚫고 천신만고 끝에 목걸이를 훔쳐내어 나타니엘에게 가져다준다. 그런데 단순히 그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이 도둑질에 영국 권력층을 하루 아침에 바꿔놓을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고. 결국 나타니엘은 모시고 있던 스승 부부를 잃고 쫓겨 다니는 신세로 전락한다. 결국 음모가 벌어지는 런던 외곽의 대 저택으로 잠입한 나타니엘과 바티미어스는 러브레이스를 음모를 막기 위해 기상천외한 일대 활극을 벌이게 된다.

  이 책의 세계관은 마법사들이 권력의 주요 요직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 즉 마법과 과학문명이 공존하는 현대의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책에서는 마법의 역사에 대한 설정과 현대 과학 기술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럴싸한 설명은 없지만, 요괴를 소환하고 불이나 광선을 쏘아대는 마법을 사용하면서도 책상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고, 자동차와 버스, 심지어 비행기까지 등장하는 다소 부조화스러운 설정들이 나름 파격적이면서 묘한 재미를 준다. 판타지스러운 설정도 그동안 유명한 판타지 소설들이 보여줬던 거창하고 복잡한 설정이 아니라 일곱 개 차원으로 구성된 세계, 알라딘의 요술 램프 속 요정으로 잘 알고 있는 “지니”와 “이프리트”, “임프” 등 서구 유럽이나 중동지방에서 잘 알려진 “요괴”의 개념, “소환 마법”,“소환 나팔”, “마법 부츠” 등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런 익숙한 개념들이어서 별도의 설정집이나 해설이 없어도 쉽게 이해된다. 특히 이 책만의 매력은 선과 악의 대립이나 기연(奇緣)과 시련을 만나 성장하는 판타지의 전형을 벗어난 독특한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있는데,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자존심과 아울러 복수심이 강렬한, 내성적이면서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도 할 줄 아는, 비쩍 마른 몸매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전혀 영웅스럽지 않고 이뻐할 만한 구석이 별로 없는 어린 소년 “나타니엘”과 오천년을 넘는 세월동안 얻은 수많은 경험들에서 비롯된 탁월한 생존본능과 경이로운 두뇌 회전을 보여주면서도 어린 소년에게 속절없이 휘둘리는 어리숙한 모습까지 보여주는 요괴 “바티미어스”의 조화가 시종일관 유쾌한 재미를 준다. 또한 각 장마다 요괴 바티미어스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때때로 소년 “나타니엘”에 대한 전지적 시점이 가미되는 이야기 전개도 독특한 매력이 있으며, 특히 페이지 하단에 별도의 글씨체로 표기되어 있는 주요 사건들에 대한 일종의 각주(脚註)이자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話者)인 요괴 바티미어스의 독백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지만 사건들에 대한 바티미어스의 유머러스하고 삐딱한 시각들을 엿볼 수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해하기 쉬운 세계관, 재미있는 인물과 시점 설정, 그리고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잘 어우러진 이 책은 당초 상하권으로 분책이 되어 나왔을 정도로 두꺼운 600 쪽 넘는 분량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는 재미와 몰입감이 뛰어나서,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이나 판타지소설의 참 재미를 경험해보지 못한 어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같이 읽어도 좋을 그런 책이었다.


 

  읽는 내내 재미와 즐거움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한 이 책은 2부 “골렘의 눈”과 시리즈 완결편인 3부 “프톨레마이어스 문”로 이어진다니 1부 끝에서 나타니엘과 계약 해지하면서 유황 방귀를 끼고 사라져버리는 소심한 복수를 했던 바티미어스가 어떻게 나타니엘과 계속 엮이게 되었는지, 점점 더 속물이 되어간다는 나타니엘이 얼마나 삐뚤어지는지, 1부를 능가하는 더욱 기상천외한 모험들이 계속된다니 후속권들을 읽을 생각에 벌써부터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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