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트의 마법 목걸이 바티미어스 1
조나단 스트라우드 지음, 최인자 옮김 / 황금부엉이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이영도(드래곤라자), 윤현승(하얀 늑대들), 전민희(룬의 아이들) 등 국내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을 정도로 열광하는 “판타지” 소설 장르는 유독 원류(原流)라 할 수 있는 외국 작품들 중에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크게 재미를 느낀 책들이 없었다. 세계 3대 판타지 걸작이라고 꼽히고 영화화되어 공전의 히트를 친 J.R.R.톨킨의 “반지의 제왕”,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어슬러 르귄의 "어스시의 마법사"들은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책으로 읽어서 그런지 강렬한 영화의 시각적인 이미지들이 책을 읽는 내내 나만의 상상을 방해해서 책을 더디 읽게 만들었고, 20세기 들어 가장 많이 팔린 책 중의 하나라는 "해리포터" 시리즈 또한 영화로만 즐겨봤을 뿐 책으로는 낯설기만 한 영국식 문화와 아동용의 한계일 수 밖에 없는 다소 유치한 글 전개, 뚜렷한 주제의식이 없다는 이유로 조금 읽다가 말았던 그런 책이었다. 그래도 역시 영화화 되었던 필립 풀먼의 "황금나침반“이나 역시 ”반지의 제왕“의 감독인 피터 잭슨이 영화화할 예정이라는 나오미 노빅의 "테메레르"는 참 재미있게 읽은 것을 보면 서양판타지 소설 자체에 대한 낯섦이 아니라 내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좋고 나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편식이 심한 내 판타지 소설 취향에 두꺼운 분량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재미와 몰입도를 가진 서양 판타지 소설을 만났다. 전 세계 38 개국에서 출간되어 ”해리포터“의 아성을 물리칠 만한 유일한 소설이라고 평가받는다는 조나단 스트라우드의 “바티미어스 시리즈”의 제 1부인 “사마르칸트의 마법 목걸이(황금부엉이, 2010년 5월)”는 오랜만에 읽는 내내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든 그런 판타지 소설이었다. 

  시리즈 1부인 이 책에서는 마법 수련생인 “나타니엘”이 어릴 적 자신에게 모욕을 준 마법사 “러브레이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5천년을 넘게 살아온 영악한 요괴 “바티미어스”를 소환마법으로 불러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나타니엘은 바티미어스에게 러브레이스가 가지고 있다는, 어떠한 마법적 공격이라도 방어할 수 있는 고대 마법 유물인 “사마르칸트의 마법 목걸이”를 훔쳐오라고 명령하는데, 바티미어스는 온갖 요괴들과 마법 장벽로 둘러 쌓인 러브레이스 저택의 철벽 감시망을 뚫고 천신만고 끝에 목걸이를 훔쳐내어 나타니엘에게 가져다준다. 그런데 단순히 그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이 도둑질에 영국 권력층을 하루 아침에 바꿔놓을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고. 결국 나타니엘은 모시고 있던 스승 부부를 잃고 쫓겨 다니는 신세로 전락한다. 결국 음모가 벌어지는 런던 외곽의 대 저택으로 잠입한 나타니엘과 바티미어스는 러브레이스를 음모를 막기 위해 기상천외한 일대 활극을 벌이게 된다.

  이 책의 세계관은 마법사들이 권력의 주요 요직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 즉 마법과 과학문명이 공존하는 현대의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책에서는 마법의 역사에 대한 설정과 현대 과학 기술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럴싸한 설명은 없지만, 요괴를 소환하고 불이나 광선을 쏘아대는 마법을 사용하면서도 책상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고, 자동차와 버스, 심지어 비행기까지 등장하는 다소 부조화스러운 설정들이 나름 파격적이면서 묘한 재미를 준다. 판타지스러운 설정도 그동안 유명한 판타지 소설들이 보여줬던 거창하고 복잡한 설정이 아니라 일곱 개 차원으로 구성된 세계, 알라딘의 요술 램프 속 요정으로 잘 알고 있는 “지니”와 “이프리트”, “임프” 등 서구 유럽이나 중동지방에서 잘 알려진 “요괴”의 개념, “소환 마법”,“소환 나팔”, “마법 부츠” 등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런 익숙한 개념들이어서 별도의 설정집이나 해설이 없어도 쉽게 이해된다. 특히 이 책만의 매력은 선과 악의 대립이나 기연(奇緣)과 시련을 만나 성장하는 판타지의 전형을 벗어난 독특한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있는데,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자존심과 아울러 복수심이 강렬한, 내성적이면서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도 할 줄 아는, 비쩍 마른 몸매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전혀 영웅스럽지 않고 이뻐할 만한 구석이 별로 없는 어린 소년 “나타니엘”과 오천년을 넘는 세월동안 얻은 수많은 경험들에서 비롯된 탁월한 생존본능과 경이로운 두뇌 회전을 보여주면서도 어린 소년에게 속절없이 휘둘리는 어리숙한 모습까지 보여주는 요괴 “바티미어스”의 조화가 시종일관 유쾌한 재미를 준다. 또한 각 장마다 요괴 바티미어스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때때로 소년 “나타니엘”에 대한 전지적 시점이 가미되는 이야기 전개도 독특한 매력이 있으며, 특히 페이지 하단에 별도의 글씨체로 표기되어 있는 주요 사건들에 대한 일종의 각주(脚註)이자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話者)인 요괴 바티미어스의 독백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지만 사건들에 대한 바티미어스의 유머러스하고 삐딱한 시각들을 엿볼 수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해하기 쉬운 세계관, 재미있는 인물과 시점 설정, 그리고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잘 어우러진 이 책은 당초 상하권으로 분책이 되어 나왔을 정도로 두꺼운 600 쪽 넘는 분량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는 재미와 몰입감이 뛰어나서,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이나 판타지소설의 참 재미를 경험해보지 못한 어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같이 읽어도 좋을 그런 책이었다.


 

  읽는 내내 재미와 즐거움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한 이 책은 2부 “골렘의 눈”과 시리즈 완결편인 3부 “프톨레마이어스 문”로 이어진다니 1부 끝에서 나타니엘과 계약 해지하면서 유황 방귀를 끼고 사라져버리는 소심한 복수를 했던 바티미어스가 어떻게 나타니엘과 계속 엮이게 되었는지, 점점 더 속물이 되어간다는 나타니엘이 얼마나 삐뚤어지는지, 1부를 능가하는 더욱 기상천외한 모험들이 계속된다니 후속권들을 읽을 생각에 벌써부터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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